〈 65화 〉 64화.
* * *
서로 낯가림이 심한 사람들을 한 방에 넣어둔 다음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진행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2인 협조 공포 게임’
‘마땅한 2인 협조 공포 게임이 없다면 그렇게 하게 만들자.’
나는 예전의 공포 게임 방송을 통해서 언니가 공포 게임에 대한 내성이 낮다는 걸 알고 있다.
거기에다가, 어제 콜라보 방송 제안서를 던진 타마 선배 또한 공포 게임에 대한 내성이 낮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든 게이밍 피지컬로 극복하려는 승부욕이 불타는 사람이라서
놀리는 맛이 두 배로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실제로도 내 제안을 들은 타마의 매니저 또한 재미있다는 듯, 선라이즈의 ‘아싸 연합’을 만들자고 했다.
“어… 근데 타마씨는 괜찮으세요?”
“아, 네. 어차피 이 사람 게을러서 제가 이렇게 일을 물어오지 않으면
평생 마인 크래프트에서 광질만 하고 다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제가 일을 물어오거든요.”
“와…”
“선라이즈의 마인 크래프트 NPC라는 이명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고요.”
노래도 잘 부르고 게임도 잘 하고 둘을 좋아한다.
방구석 오타쿠들이 좋아할 요소를 듬뿍 지닌 타마 씨는
평소에는 백치미가 넘치면서도 게임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한 열정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고
게임을 잘 하는 만큼 진행 또한 시원시원하게 했기 때문에 몇 안되는 선라이즈의 실력파 게이머로서의 입지를 오랫동안 다져왔다.
그 덕분에 1기생 중 이나리씨를 이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콜라보 방송 제안 일정이 빡빡하거나, 본인이 조건을 까다롭게 봐서 혼자만 방송하는게 잦고,
콜라보 방송을 할 때는 무조건 동기생과 함께여야만 해서 의외로 난이도가 높은 선배인 줄 알았는데…
그냥 자기 게임만 하느라 그런거 신경 안 쓰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을 먼저 못 거는 사람이라서 이랬구나…
나는 타마 씨가 컨셉이 아닌 '진짜’ 아싸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자 나는 내 눈앞의 나에 언니가 아싸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호,혹시 언니도 '진짜'인가 싶어서 말이다.
“왜, 뭐, 유나야 왜?”
나의 불손한 시선을 알아차린 듯 언니가 대답했다.
“언니 혹시…아싸에요?”
“어…”
“아, 아니 언니가 아니라 유리아 말이에요. 언니가 자주 하는 캐릭터 분석! 그거요!”
“아!”
…
하기사 동거인이자 친한 동생이 갑자기 '언니 아싸에요?'라고 물어보는 건 말도 안되는 실례였지 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미안해…
“으응, 유나를 만나기 전 까지는 나…그러니까 유리아가 아닌 쿠로가와 나에는 아싸가 맞았어.
협동 방송은 회사 첫 대면시에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미우 의외에도 하지 않았고…”
그러고 보니 언니의 합동 방송은 언제나 미우와 함께하는 2인 합동 방송밖에 진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미우와 내가 만난 것도 나에 언니에 대해 신경을 쓰던 사람이 이웃 사람인 내가
미우에게 소중한 나에 언니의 매니저가 되었다는 게 믿을 수 없어서 확인하러 온거라고 그녀가 고백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거에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낯가림이 심하고 타인의 시선을 꺼려하는 언니가 그 반대의 성격인 미우와 친해지게 된 건 내가 봐도 신기하다.
“으응, 첫 만남에는 친절하게 대해주었는데… 다음 날 모델링 점검을 위해서 전원의 페이스 레코딩을 위해서 회사에 간 적이 있었는데…”
꽤나 비싸고 번거롭지만, 향상된 페이스 트래킹을 통해서 섬세한 표정 변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된 선라이즈의 모델링 작업에는 시연자의 섬세한 얼굴 정보가 필요하다.
대략 삼십 분 가까이 표정을 움직이면서
기계에 자신의 얼굴 정보를 각인시키는 고통스러운 작업이페이스 레코딩(Face Recording)인
한 번 시연해본 적이 있는 나는 그 고통을 알고있다.
“어… 언니 시절에는 분명히 레코딩에 한 시간 가까이 걸렸죠?”
그래도 나름대로 선라이즈의 최신 기술을 먼저 시연받은 적이 있는 4기생들이었다.
그 덕분에 시작점부터 좋은 모델링을 가진 그녀들은 다른 선배들에 비해서 조금 더 수려한 모델링을 가질 수 있었다.
“응, 그래서 모두가 힘들어했어. 초록 배경인 공간에서 이상한 기계들을 얼굴에 착용하고 다양한 표정을 지시받으면 그 대로 움직여야 했으니까 말이야.”
“아…”
“그런데 그 때의 나는 그것 보다는 그냥 여러 낯선 스태프들이 나를 바라보는 게 너무 부끄럽고 싫었어… 그래서 그냥 구석에 있었는데… 미우가 와준거야.”
나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분명히 언니의 첫 인상이 맞다면… 언니는 지금과는 달리 전혀 관리되지 않는 부스스한 몰골로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 혼자서 구석으로 가있었겠지.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해맑게 다가가는 미우라…
성녀라는 캐릭터에 맞는 미우 특유의 상냥함과 따사로운 햇살같은 미소는 충분히 언니에게도 와닿았겠지.
이렇게 두고 보니… 언니가 미우에게만큼은 정말 살갑게 대하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 그래서 한 때는 내가 정말 미우를 사, 사랑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어.”
…
그게 사랑으로 이어저?
오타쿠의 비약 무섭다.
타인에 대한 친절을 바로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줘!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유나가 있으니까라는 말을 작게 말한 언니가 언니만의그윽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마치 미우를 향한 내 사랑이 어디로 갔을 거 같아? 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눈길이었다.
아무튼, 타인에 대한 친절을 바로 사랑이라고 착각...
바로 사랑이라고 착각…
착각하지…
…
언니의 역공에 당황한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그,그래도 다,다행이네요 어, 음, 저희 나라에서는 미성년자에 대한 사랑은 사회적으로도…”
“하지만 유나는 미성년자가 아니지, 그치?”
“…네에…”
효과는 별로였지만 말이다.
나를 귀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언니는 책상 맞은편에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아무튼 이번 타마 선배님과의 콜라보 기대할게. 유나라면 분명히 재미있는 기획으로 날 놀래켜 주겠지?”
어 음
언니 그건 재미있는 기획이라기 보다는
아닌가 맞나?
하지만 언니에게는 재미가 없을거에요.
미안해요…
나는 차마 언니에게 노트북 화면에 쓰여진
[게임 고수 타마와 게임 초보 유리아의 2인 1조작 공포게임 진행하기]
라는 나의 기획안을 보여 줄 수 없었다.
***
“안녕하세요?”
“아, 말로만 듣던 유나씨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이쪽 업계에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해본 나였지만
이렇게 어린 외모인 사람이 매니저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대게는 스물 다섯이 넘는 대학생 졸업을 한 분들이 매니저를 하거나 엘프의 매니저인 에이비 매니저같은 경력직들은 서른이 넘어간다.
그런데 명함에 써진 나이가 열 아홉살
나보다 어린 나이의 매니저는 처음본다.
“앗, 실례합니다.”
“아뇨, 그런 시선에 익숙해요. 오히려 저야말로…”
나는 타마의 매니저 ‘니아’씨의 어린 나이에
그녀는 나의 외모를 보고 서로 길게 바라보았기에 서로 사과를 했다.
“그런데 니아 씨라면 설마…?”
“네, 못난이 언니의 매니저도 겸하고 있지만 언니의 솔로 곡들도 써주고 있는 아티스트 니아입니다.”
“아, 혹시 ‘지평선 너머로’를 작곡하신?”
“… 그래도 그거 언니가 예쁘게 불러서 유명해진거니 그렇게 존경하지 않으셔도…”
“아니예요 곡이 얼마나 좋은데!”
그나저나 언니와 동생의 조합이라니
그리고 그 언니들이 낯가림이 심한 아싸라니
우리들은 그 동질감으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친동생은 아니지만 뭐, 그래도 언니 동생하는 사이 아닌가
“아 맞다, 오늘 방송 기획에 대해서 언니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에?”
“언니, 보나마나 공포 게임이라고 하면 침대에서 안 일어나서 스튜디오로 오지도 않았을걸요?”
“아…”
“그래서 전 오히려 기술적인 문제로 스튜디오에서 진행해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초창기 멤버다 보니까 여기 인근에 집을 구하긴 했어도… 사람이 워낙 게을러서.”
듣다 보니 타마씨는 상당히 게으른 사람인 것 같다.
아니 단순히 게으른 걸 넘은 거 같은데?
“제가 언니 포장을 좀 잘 하긴 했죠…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대단하시네요.”
“아뇨, 대단한걸로 치면 그저께 라이브에서 나온 밈 가지고 바로 방송 기획하시는 유나 씨겠죠. 그리고 1인칭 공포 게임을 나눠서 진행이라니 얼마나 악랄하면서도 재미있는 방식인가요.”
피지컬이 좋고 게임을 잘 하는 타마씨가 마우스 조작을
그리고 나에 언니는 타마씨의 말을 듣고 키보드를 누르는
한 캐릭터를 그렇게 나눠 조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일명 아싸 친구들의 프랜드쉽(웃음)
“하하, 저는 언니에게 말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그쪽 언니 분께서는 말을 잘 따라 주시네요.”
“네, 그래서 고마울 따름이죠.”
처음에는 방송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면 언니가 조목조목 반박을 해주었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내 기획안을 그대로 시행해주는 언니였다.
본인 또한 센스가 뛰어나서 내가 언니를 돌봐주지 못 할 때에도 ‘집착 얀데레 유리아’를 완성하거나
시청자들을 ‘조련’하는 테크닉을 2기생의 선배들로부터 배워와서 잘 써먹으면서 무럭무럭 커가는 그녀였기 때문에
나는 늘 언니의 성장에는 크게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그런 내 말을 듣고 유나는 자기 옆에만 있어줘도 힘이 난다고 한다고 하니…
그런 언니의 상냥함에 기대어서 편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직책이 오른 이후로 언니의 매니저로써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그런 내 말에 잘 따라주었고
본인이 잘 하지 못하는 공포 게임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주었다.
그야말로 천사
정말로 천사였다.
“하아, 언니도 좀 제 말을 잘 들어주었으면… 맨날 자기가 언니라면서 어쩌구 하지만 자기 양말도 말아서 세탁하는 주제에 뭐가 메이드냔 말이야.”
“어… 가사 일은 니아씨가 직접 하세요?”
“네, 아무래도 다른 매니저들에 비해 언니는 심하게 마이페이스고, 제가 굳즈 제작이나 광고를 물어다주면 별 다른 말 없이 바로 수락을 하다보니 워낙 일이 적어서 말이죠.”
“그래도 작곡 활동도 하시는데…”
“언니에게 주방을 맡기면 냄비가 타올라요. 다시는 그 재앙을 보고 싶지 않아…”
고양이 메이드라는 뻔뻔한 메이드 컨셉을 주장하는 캐릭터와 다르게
그녀의 가사 능력은 처참한가 보다.
하긴… 가사는 결국 꼼꼼함과 반복이지
니아 씨는 나의 위로를 받아주었다.
그 후 우리들은 대기실에서 그녀들의 방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 방송 시작전에 늘 30분 정도의 잡담 방송을 해야만 한다는 타마의 유명한 방송 습관대로,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청자들과 화기애애하게 진행하는게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짜잔~ 오늘의 게스트는 유리아입니다! 정확하게는 제가 스튜디오로 출근한거지만 말이죠. 응응, 맞아맞아, 출근하는 거 귀찮지, 그래도 배신자 유리아를 본 다는 말에!]
“오, 제법 강하게 말하네요?”
“아, 저 사람 원래 저래요. 유리아 씨 들어가면 쭈그러들걸요?”
[콘유리~ 유리아입니다. 오늘은 운영의 기획대로 선라이즈의 아싸연합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 응… 잘 부탁해…]
…
그리고 의외로 말을 유창하게 하는 언니에게 ‘정말 배신자였어? 컨셉이었어?’ 하는 리얼한 표정이 캐릭터로 구현되는 걸 보았다.
그리고 단 1분만에
방송의 주인은 분명히 타마씨였지만, 그 주도권이 언니에게로 넘어간 게 보였다.
“거 봐요. 언니가 원래 저래요.”
“하,하,하…”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뭐어어어!? 거,거,거,거,거짓말 마!! 어떻게 공포 게임을!! 매, 매니저 날 속였구나!!]
“아 속이지는 않았어요. 그냥 기술상 오프 콜라보 방송을 해야한다고만 말했지.”
그렇게 말하는 버튜버 타마의 매니저 겸 친동생인 니아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푸딩의 복수? 뭐라는거야 저 바보 언니가. 크하하하”
연하의 여성에게 들을 거라고 생각 못한 그 사악한 웃음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저 연하의 일본인을 나만의 인명 리스트에 ‘위험 인물’이라고 분류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