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86화.
* * *
“쿠우울.”
야근은 뭐가 야근이란 말인가.
나를 재우지 않을 것처럼 말해놓고 자기가 먼저 지처 쓰러져 잠든 나에 언니의 볼을 쿡 찌르면서 나는 오늘의 일을 되돌아보았다.
잔뜩 긴장한 채 도쿄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예상했던 마미 선배의 꾸지람과, 타마의 한심하다는 보는 눈빛(사실 이건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타마가 감히!)과 나에 언니의 ‘보는 것 만으로도 죄책감이 드는 눈빛’ 삼 연속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꿈에도 그리던 첫 방송 출연과, 방송 끝나고 다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건 흔한 일이라는 내 변명에 그들은 일단 납득 해주었다.
‘그래도 집에서 재우는 건 너무했어. 다른 사람들을 날 돌보듯이 대해주지 마.’
언니가 볼을 부풀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에게 무언가 애틋하게 바라면서도, 나에게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모순적인 그 느낌.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언니… 혹시 질투…하세요?’
‘몰라! 이 바보!’
그 후 얼굴을 붉힌 언니를 달래느라 나는 고생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실력이 오른 마미 선배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난 이후, 방송을 각기 시작한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내 방송을 돌려보았다.
벌써 조회수가 80만이 넘어가는 내 방송 녹화본을 다시보는 나는 내 진행에 이렇다 할 문제점이나 실수를 찾을 수 없었고 같이 방송 녹화본을 보던 마미 선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돌아갈 시간이었겠지만… 언니의 당부가 떠올라서 나는 간만에 손님방에 들어가서 잘 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그 문은 잠겨 있었다.
‘아, 그거 오늘 아침에 문이 고장났어.’
‘그러면 거실에서 자야할까나…’
‘아니, 침대라면 게임방에 하나 더 있어, 거기서 자면 될거야.’
거기서 언니의 방송을 보면서 틈틈이 쌓인 메일을 읽고 있자니, 방송을 끝낸 언니가 게임방에 잠옷 차림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야근이야.’
‘어떤 야근인가요?’
‘유나 요즘 게임 잘 안 했지? 오늘 할 게임은 마리오야.’
아무래도 오늘 야근의 내용은 언니와 함께 마리오 게임을 하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게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했던 나지만, 어째서 일본의 국민 게임에서 그 이름을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깨달았다.
디자인된 스테이지에 느껴지는 미묘한 악의
그리고 묘하게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듯한 그러한 느낌
2인 멀티로 인해서 서로를 도우면서도 방해하는 듯한 그런 미묘한 긴장감
그렇게 밤을 새가면서 게임을 하고 있자니, 쓰러진 언니가 나를 배게 삼아서 쿨쿨 자고 있었다.
“욕심쟁이.”
유독 질투가 심해진 언니의 볼을 다시 쿡 찔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이걸 알아봐주지 않는 언니가 너무했다.
“이미 몇 번이고 내 입술을 가져간 주제에, 이제 조금 안심해도 되지 않아?”
행여나 언니가 들을까 봐 한국어로 그렇게 불평했다.
학교에서 남자들이 가끔 나에게 보이던 추악한 시선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다.
그만큼 나와 사귀고 싶다는 사람은 정말 줄을 섰으니까, 나 또한 작년 까지만 하더라도 근사한 멋진 남성과 데이트를 하고 첫 키스를 하는것을 꿈을 꿨다.
하지만 그것을 낼름 가져가 놓고는 자기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면 불안해 한다.
나의 마음을 떼어간 주제에 너무하다 정말.
그래도 찌르면 찌르는대로 들어가는 언니의 말랑말랑한 볼을 찌르자 기분이 풀어졌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질투를 하고 불안해 하는 언니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귀여워 보이는걸.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로 귀여울 수 있는가
이정도면 불법의 영역이 아닌가
내가 언니에게 가꾸는 법을 알려 주기 전에도 인상이 남을 정도로 예쁜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내가 알려주는 피부 관리법이나 머리 가꾸는 법, 어울리는 화장법을 하나 하나 배워갈수록 아름다워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정말이지, 가끔 길을 가다가도 마스크만 쓴 본 언니에게 연예계 사람들이 언니를 스카웃 해가려고 하지 않던가?
“이 언니는 내가 만든것인데 말이지, 정말이지 도둑 고양이들은 어디에나 있다니까.”
언니의 퍼석한 머리카락에 어울리는 영양제를 찾느라 눈이 빠져라 성분표를 읽었다.
조금만 강한 화장품을 발라도 올라오는 피부덕분에 순한 화장품을 찾느라 온갖 리뷰를 다 돌아보았다.
싫다고 울고부는 언니를 업고서 치과에 가서 이빨 건강에 문제가 생길 뻔한 사실을 막았다.
립밤을 바르지 않는 언니를 위해서 좋아하는 포도향 립밤을 사주어서 입술이 트는것을 막았다.
운동을 빼먹으려고 하는 언니를 붙잡고 딱 붙어서 운동 자세를 알려주고 강제로 운동을 시켜서 처음에는 초등학생과 싸워도 질법한 언니를 이제 성인 여성에 맞는 정도의 건강함을 되찾게 했다.
불규칙한 수면 습관, 불균형한 영양 섭취 그 모든것을 내가 하나하나 이루어 주었다.
미인은 태어난 것에 그치지 않고 만들어진다.
그런 비유를 떠올리면, 지금의 나에 언니라는 이 요정같은 사람은 내가 빚어낸 걸작품과 다를 바 없었다.
창 문 사이로 비쳐지는 달빛이 쿨쿨 자고 있는 언니를 비추었다.
그 모습은 방금 전 게임에서 보던 공주님 따위를 시골 처녀로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움이 깃들었기에, 나는 자고 있는 언니에게 가볍게 입술을 맞추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잤다.
***
“야 유나야, 휴대폰 너무 울리는데 흐아암.”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마미 선배가 들어왔다.
마미 선배의 손에는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이 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나도 모르게 거실에 휴대폰을 두고 온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깬 마미 선배가 나에게 휴대폰을 가져다 주었고, 마미 선배는 자연스럽게 내 풀어진 옷깃 사이에 파묻은 나에 언니를 보게 되었다.
“저, 선배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고 있겠는데 이거 진짜 오해거든요.”
그리고 같은 여성이고 오타쿠인 주제에 부끄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면서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했다.
“쉿 쉬이이잇.”
언니와 함께 자던 나는 언니가 내 옷 사이로 파고 드는것과 동시에 잠에서 깼다.
언니가 떨어지지 않게 벽 쪽에 언니를 두고 내가 바깥에서 자고 있는데, 알고보니 일본의 건물들은 내진 설계를 위해서 나무로 지어진대다가 바람을 그렇게 잘 막지 않는 공간이었다.
하기사, 게임 방은 원래 컴퓨터 두 대가 뿜는 발열 때문에 의도적으로 벽을 얇게 했다던가?
그런 언니를 벽 쪽에 재운 나는 헹여나 언니가 감기에 들지 않도록 꼭 껴안아주며 이불로 덮어주었다.
덕분에 반 쯤 눈을 뜨며 밤을 지새운 나는 마미 선배에게 이불을 부탁할 수 있었다.
붉어진 얼굴로, 두터운 솜 이불을 내온 마미 선배 덕분에 나는 나에 언니를 조용히 내려두고 일어날 수 있었다.
“으드드드득.”
상당히 불편한 자세로 잤기 때문에 근육이 굳어진것이 느껴진다.
그런 나를 불만스러운 듯 보는 마미 선배는 자기 머리카락 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툭 쏘듯 말했다.
“아주 그냥 살아 있는 인간 배게구나 너.”
“선배 그거 아세요? 근육이 많은 사람들은 기초 대사량이 높아서 상당히 체온이 높은 편이라는 걸요? 선배도 제 품에 안겨 보실래요?”
나는 잘 알고있다.
이 강한 척 하기를 좋아하는 마미 선배는 상당히 놀리면 버튜버들 만큼이나 리액션이 찰진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타마도 그렇고 마미 선배도 그렇고,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놀리면 놀리는 대로 신선한 반응들이 튀어나오니 장난을 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저, 저리가 이 음란마귀 서큐버스야!”
“에이 선배 너무 빼지 말고 후배의 따뜻한 품을 누려 보세요.”
그날 아침 나는 방문을 닫고 도망치려는 마미 선배와 실내에서 가벼운 술래잡기를 하면서 잠에서 깼다.
잠시 후, 나에게 시달린 마미 선배가 식탁에 얼굴을 박으면서 말했다.
“유나에게…당했다.”
“약골 선배 아침 운동 시키기 성공,”
“아오 정말이지 이걸 한대 콱 팰수 있는것도 아니고.”
“저를 때릴 거에요? 정말이요?”
나는 두 눈을 깜빡 거리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살짝 애교 섞인 교태로운 어조로 그렇게 말을 하자 금새 얼굴이 빨개진 마미 선배는 집안 곳곳에 놓인 인형들을 나에게 던지면서 화풀이를 했다.
“정말 생긴 건 어른인데 왜이리 애 같이 구는거야?”
“귀여운 사람들과 같이 있게 되다보니 저도 모르게 어려지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게 아닐까요?”
정말이었다.
학교 다닐때에는 냉철한 이성과 지식을 탐구하는 마음 어쩌구 하는 생각으로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정신줄을 똑바로 잡고 다니게 되었는데
선라이즈에 들어오고난 이후 처음 적응기 이후, 일을 할 때 빼고는 긴장감이 몹시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쳇, 그걸로 넘어갈 생각 하지 마라.”
“아쉬워라.”
“툭만하면 선배에게 장난을 치려고 하다니, 어쩌다가 회사의 기강이 이렇게 되었을까?”
“음, 버튜버들이 사장님의 꿈을 조각조각 내버린 다음부터요?”
어제만 하더라도 마인 크래프트에서 좌절한 표정의 사장의 동상이 세워지지 않았던가
언제나 눈물을 흘리는 그는 마르지 않는 눈물샘의 보유자였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사장의 눈물을 흘리게 할 ‘내가 니 엄마랑 자봤는데 니 엄마 꽤나 무겁더라고’ 라고 말하는 GB서버의 소녀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일정 좀 비워둬라.”
“네? 왜요?”
“왜기는, 너도 이제 회사 공식 얼굴이 되었는데 언제까지 그런 장비로 방송을 할 생각이야?”
그러고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는 어디까지나 예비 용으로서, 마이크나 VR기기의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었다.
“너도 이제 방송인이 된 사람인데, 장비는 신경써야지.”
그렇게 말한 선배의 손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회사 법인 카드가 들려있었다.
그렇다.
나는 나에 언니의 매니저이기도 했지만
선라이즈의 마스코트, 메이드 라의 방송인…이기도 했다.
살짝 굳은 내 얼굴을 본 마미 선배가 낄낄거렸다.
“거 봐, 데뷔는 안 할 수 없다니까?”
“개,개인 채널은 절대로 안 만들거에요.”
“네에네에, 데뷔 절대로 안 한다던 우리 후배님.”
그렇게 살짝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하는 마미 선배가 얄미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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