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95화.
* * *
삼 십 분
세상에 삼십분이다 무려 삼십분!
컵라면을 열 번 만들고도 남는 시간이 30분인데 지금 그 시간을 남겨두고 회사에 데려 가달라는 거야?
정말 정신이 아득해지는 꼬맹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과 별개로 내 몸은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외출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만을 하고, 5분만에 옷을 갈아입고 마이유를 닥달하면서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미, 미안해요 언니…”
“으아악 마이유 너는 버튜버란 말이야 방송인이야 방송인!!”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서 밟았다.
정말 태어나서 이런 식으로 밟아도 되나, 교통 위반으로 체포당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정말 세게 밟았다.
정말 신이 보우하셔서 그런지, 시외도로는 별 문제 없이 쭉쭉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 시외도로만.
도쿄의 오후 도로는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그마저도 시내 중심을 관통해서 반대편으로 가야하는 터라, 차마 교통상황을 체크하지 못하고 급하게 온 나는 지옥같은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도로를 빠져나와서 회사를 향해서 거세게 달렸다.
광란의 질주 끝에
나는 내 집으로 놀러온 마이유를 도쿄의 선라이즈 본사로 데려갈 수 있었다.
범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면서 밟을때는 밟고, 부산에서 운전 연수를 받던 그 때를 떠올리면서 새치기 끼어들기 꼬리물기를 연달아 한 결과 나는 정말 빠른 속도로 회사에 도착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지각이었다!
애초에 회사와 집까지는 한 시간이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왠지 장난스럽게 웃는 마이유의 머리를 잡고 90도 세게 인사를 했다.
뭔가 억울했지만 별 수 없지 않는가!
메이드니 뭐니해도 일단은 (나에 언니 전용이긴 하지만)매니저라고!
하지만 내 필사적인 인사를 본 용사 에이아 역할의 유우키 아오이는 왠지 우스운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 얼굴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1기생의 이나리 또한 특유의 의기양양한 미소를 나에게 보이고 있었다.
이거 설마?
에이 설마 그건 아니지
마이유가 나를 준비실로 아닌 방송 진행실로 데려온 이유가 설마… 설마!?
연금술사의 리나씨가 빵~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짜잔~~ 몰래 카메라 대 성공!”
“얏호!!”
“내가 뭐랬어요! 메이드씨라면 이런 거 잘 낚인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녀들이 팔짱을 끼면서 폭소를 한다.
아...
아!!
몰래 카메라였어!!?
나는 그 말에 다리의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몰래 카메라
불법 촬영을 뜻하는 그런 몰래 카메라가 아닌
일본 예능으로부터 비롯된 돗키리(ドッキリ)였다.
사전에 상황설명을 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치는 거대한 규모의 장난인데, 표정 변화와 ‘몰래 카메라였습니다!’를 밝힐 때 놀라워하거나 어벙한 표정을 촬영하는게 포인트였다.
“언니 미안해욧!”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각을 빌미로 나를 속인 마이유가 정말로 미안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사과했다.
그러니까 이게 이... 이 중학생의 고도의 장난이라고?
고도의 설계라고?
평소에 지각을 하는 이미지를 활용해서 이렇게...활용한다고?
하긴 이상했다!
늦잠이나 교통 체증이 아니면 지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방송을 사랑하는 버튜버가 고작 게임을 한다고 방송 약속이 있다는 것을 잊을리가 없잖아?
특히 저기에 있는 사람은 무려 선라이즈의 전설이자 대표인 0기생 이나리 씨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제아무리 기수간 위계질서가 느슨한 선라이즈라고 해도, 천하의 악동이라도 그녀를 고작 게임으로 잊게할 리는 없었다.
애초에 마이유가 매니저 없이 따라 나온게 다 설계였구나!!
“자아자아, 얼른 준비해주세요 메이드 씨! 곧 촬영 들어갑니다!”
“네!?”
그렇게 말한 이나리씨는 패닉상태의 나에게 방송 장비를 건네주었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직접 나에게 장비를 씌워주면서 말했다.
“천사 용사 여우 그리고 연금술사 4인방의 즉석 기획! 일명 누가 제일 옷을 잘 고르느냐의 대회입니다!”
“하하하...”
몰래 카메라로 놀린 다음에는 바로 일시키기인가?
이것이 나를 뽑은 이유인가 선라이즈?
이렇게 굴려먹으려고 그랬던거야!?
나 이래 보여도 매니저인데! 나에 언니에게 최근에 거절당하긴 해도 매니저인데!
그런 내 항변의 얼굴을 무시한 채 이나리씨는 미리 준비된 대본마저도 나의 품에 얹었다.
“아무튼 방송 기획은 이렇구요, 얼른 스탠바이 해서 5분 내로 들어와주세요! 그 동안에는 깜짝 기획으로 당황한 유나씨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거라구요!”
하하…
그런 의미였구나
그래도 이나리씨의 맑고 고운 목소리를 면전에서 직접 듣게되니 뭔가 힘이 난다.
초면인데도 목소리만으로도 긴장을 풀게하고 방송에 들어갈 마음을 만들게 하다니
역시 그녀는 전설이구나.
자신의 방송 캐릭터와 이름이 똑같은 선라이즈의 대표 캐릭터 하얀 여우 이나리씨는 나에게 윙크를 하고는 나를 방송 준비실로 밀어넣었다.
캐릭터의 편한 몰입을 위해 백발로 염색하고 다닌다고 했는데 정말 신비롭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기 시작헀다.
**
최근들어서 활발함을 띄기 시작하는 선라이즈의 공식 유튜브에 새로운 라이브 스트리밍이 올라왔다.
오후 다섯 시, 사람들이 적당히 퇴근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시작된 이 방송에는 0기생의 전설 이나리, 2기생의 리더인 다비, 최근에 인기를 얻기 시작한 4기생의 용사 에이아와 천사 미카엘이 등장했다.
최근에 몬스터 발매된 신작 헌터 4인 방송으로 케미를 다져온 그녀들이 또 무슨 새로운 기획을 냈을까? 하며 기대를 하는 사람들을 반겨주는 것은 의외의 방송이었다.
“자아자아, 드디어 이 시간이 왔습니다. 선라이즈의 제일가는 패션 왕이 누구냐!”
“남자 아이들에게는 누가 더 게임을 잘해? 누가 더 운동을 잘해? 누가 더 여친에게 메일을 더 많이 받았어? 그런 지표가 있다면 여성들에게는 단연! 여자력을 겨루는 별미! 패션 평점이 있죠!”
“게임 오타쿠 버튜버들의 코디 배틀에서 시작된 이 전설의 기획은 무려! 선라이즈의 공식 채널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들이 신난 텐션으로 방송을 띄운다.
때마침 몰래 카메라 장난이 크게 성공해서 그런지 시작부터 기분이 좋은 그녀들은 아주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고보니 이나리 선배, 선배는 평소에 이런 기획이라면 항상 진행자 역할을 맡으시지 않으셨나요?”
에이아는 다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물어봐주었다.
실제로 이나리는 워낙 유명하고 워낙 캐릭터성이 강해서의도적으로 진행자 포지션으로 방송에 낯설어하는 후배들을 도와주기로 유명했다.
방송에 관록이 붙기 시작해도 아직 선라이즈가 유명하기 전 부터 버튜버로 활동한 이나리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4기생의 두 후배들을 도와주는 포지션으로 등장할 줄 알았으나
그녀는 이번 방송에 진행자가 아닌 공식 게스트로 등장했다.
“후후후, 다른 것도 아니고 패션 쇼인데 제가 빠질 것 같나요 에이아 후배!”
“아,이나리짱은근히 커스터마이징에도승부욕강해서 이런 거 단순히 진행자로는 만족 못하는 편이야. 잘 알아둬~”
이나리와 몇 번 호흡을 맞춘 다비가 부연 설명을 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방송의 기획과 진행 방식을 설명하던 이나리의 말이 끝날 무렵에내가 등장했다.
“자아자아, 그렇다면 심사의 평가자는 누구냐! 평가자 또한 패션에 대해서 잘 알아야하고
누구보다도 여자력이 높은 사람이어야 하는게 인지상정!
그런고로 선라이즈의 최고 패션 여왕이자 여자력의 정점! 메이드 라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선라이즈 집사부 소속의 메이드장 메이드 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박수~!”
“그런고로 이제부터 진행은 제가 맡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의 없으시죠?”
““““네에~””””
이러니 저러니해도
얄궂은 장난을 치건 안 치건 그녀들은 버튜버들이다.
몰래 카메라에 당해서 나빠진 기분도 잠시, 방송 상에서 행복하게 미소지으면서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그녀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그 성공한 덕후인가 하는 그거인가?
아무튼 나도평소와는 다르게텐션을 올린 후대본에 쓰여진대로 읽기시작했다.
사실 텐션을 높이는 건 메이드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았으나…
이나리가 직접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그 대본에는 <힘차게! 활기차게!="">라고 강조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텐션을 높였다.
“자아, 그렇다면 선수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3기생의 대표! 남자들을 울리는 그녀의 야한 농담이 과연 여자력으로 이어져서 좋은 센스를 발휘할 것인가! 연금술사 다비~!”
“콘다비~ 남자애들이 흥분될만한 그런 패션으로 놀래킬테니까 기대하라구~”
스스로의 매력을 잘 이해하고, 남성 시청자들을 특유의 성적 농담이 가득한 발언으로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는 꼬마 연금술사 다비
“다음으로는 선라이즈의 제일 가는 인기 대장 용사 에이아! 라인 친구 500명의 그녀다운 인싸력은 곧 패션으로도 이어질 것인가!”
“유우샤 헬로~ 아니 메이드쨩!! 그건 아니지! 그중 100명은 플러스 친구라고! 아무튼 4기생의 용사 에이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라이즈 최초의 오타쿠가 아닌 인싸 캐릭터이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만화와 게임을 즐기면서 오타쿠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용사 에이아
“천 년의 품격! 쿄토의 우아한 게이밍 여우, 선라이즈의 대장, 더 이상 말 하기가 피곤하다! 0기생의 이나리님!”
“콩콩키링~ 하하하, 님이라고 굳이 안 붙여줘도 괜찮아요! 이나리, 이번에는 선수로서 정정 당당하게 참여합니다!”
선라이즈의 최초 100만 버튜버이자, 버튜버의 개념이 낯선 시기에 홀로 활동을 하다가 선라이즈에 입사 후 빵빵한 지원을 받고 자신의 채널과 선라이즈를 키운 전설 이나리
“마지막으로는,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선라이즈 최고의 페션 테러리스트, 그녀의 미적 감각이 이번에는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 4기생의 천사 미카엘!”
“아니 테러리스트 아니라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옷들이 다 우연히 대중에 안 맞는 거 뿐이라고!”
그리고 정말로 나도 그녀가 왜 이 멤버 사이에 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귀엽고 꼬마스러움으로 시청자들을 미소짓게하는 천사 미카엘
“그렇다면 우당탕탕! 선라이즈 제 1회의 패션 쇼 시작~~합니다!”
그렇게 지각을 막기 위한 매니저 긴급 호출은 몰래 카메라로 이어졌고, 그것은 바로 즉석 페션 토크 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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