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14화 (114/307)

〈 114화 〉 113화.

* * *

나는 아이돌 연습생이던 시절 딱 한번 회사 내부에 위치한 스튜디오 녹음실에 방문한 기억이 있다.

반쯤은 회사 견학에 가까운 구경이었지만 세계인들을 울린 수많은 케이팝 명곡들이 태어난 그 방의 모습은 머리에 깊게 새겨진 모양인지 나는 음악 믹싱 기계나 고가의 마이크, 방음실 부스에 새겨진 브랜드 로고마저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스튜디오 녹음실 또한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양인지 음악을 녹음하기 위한 부스와 외부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방, 그리고 믹싱과 어레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기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인터넷 환경 방송에서 녹음을 하는 것이 아닌

음반에 들어갈 정도의 고음질의 음악과 편곡을 가능하게 하는 전문 녹음실에는 나에게 익숙한 하얀색이 보였다.

“어라, 유나 후배님? 니아 매니저 씨?”

마미 선배가 자주 들른다는 그 음향 녹음실의 방음 부스 안에서 이나리가 튀어나왔다.

특유의 하얀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갑다는듯이 인사하는 그녀를 본 나는 수상쩍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당신이 왜 여기서 나와요?”

“케헥, 당신…인가요… 아무튼 저도 첫 수록곡을 여기서 했다고요.

니아 매니저님… 그러니까 니아 아티스트님에게서 곡을 받아서 여기서 트레이닝도 받았고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야. 회사… 그러니까 초창기 때에는 나모 사장님은 당시에 검증받지 않았던 아티스트였던 나의 음악을 사고는 회사 소속의 버튜버들에게 주었지.

나는 그런 그녀들의 기본적인 보컬 트레이닝 정도도 시켜주었고.”

“하하. 당시에는 둘 다 서로 어설펐죠. 말 그대로 인디 정신이 흘러넘친다고 해야했을까나… 아, 아무튼 저는 연습이 다 끝났는데… 혹시 괜찮다면 유나가 연습하고 있는거 봐도 될까요?”

“저 방금 받은 곡을 연습하러 왔는데요?”

“앗, 그러면 이만 돌아가 볼게요.”

“아, 아니에요 그렇다고 매정하게 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에요. 그냥 관객 앞에서 연습 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후흥, 그렇다면 선라이즈를 울린 유나의 음악 솜씨좀 지켜볼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노트북을 키는 이나리의 모습은 조금 수상쩍게 보였지만…

저렇게 보여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100만 버튜버인것을 아는 나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고 마미 선배가 나에게 준 곡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 곡은 순수한 보컬 기교로 부르는 발라드 풍 노래고, 다른 한 곡은 뭔가 회사의 다른 곡들과 어울리는 빠른 템포의 전파곡에 가까운 노래야.”

“무, 무려 두 곡이나 된다고요?”

“아티스트로서 유나같이 소화폭이 넓은 보컬들에게 다양한 곡을 시켜보고 싶거든. 그리고 유나같은 사람이…”

마미 선배는 양 손을 머리쪽에 귀엽게 올리고서는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말했다.

“이렇게 우마뾰이 우마뾰이! 하는것도 보고싶고 말이야.”

“뭐, 뭐에요 그게!?”

“아티스트로서 엄청난 영감을 준 명곡이야.”

진지한 어조로 깡총거리는 귀여운 포즈로 말하니 장난을 치는 건지 진짜로 말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음악의 멜로디를 듣고 가사를 흥얼거려보았다.

“별빛이 내리는 달 아래에~”

가사의 내용은 밤 하늘 아래를 걷다가 만나게 된 요정과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였다.

1절에서 다친 요정을 구해준 한 명의 기사가 되어서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2절에서는 기사의 고독한 여정을 알아주는 요정에게 반한 기사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3절에서는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

요정이 등장하는 판타지스러운 가사에는 뭐라고 해야할까… 마치 뮤지컬이나 게임 속에 나올법한 음악이었다.

아니 근데 이런 곡을 내가… 내가 불러도 되는걸까 정말?

예쁜 가사에 흥겨우면서도 차분한 음악이었다.

악기들이 풍성하게 음을 채우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멜로디만 깔아 주는 정도라 음악이었다. 그 말은 즉 이 곡은 순수하게 나의 목소리로 매력을 내야하는 그런 곡이었다.

그 의 이름은 말 그대로 [페어리 러브]였다.

몽환적인 그 이름을 흥얼거리며 가사를 음미한 내가 물었다.

“그나저나 기사네요?”

“응, ‘메이드 라’라는 캐릭터만 빌려오는 거야. 해당 버튜버의 곡이라고 해도 무조건 메이드가 주제가 되는 게 아니니까. 곡의 세계관은 곡마다 다르게 설정하는 편이지.

마녀가 아이돌이 되기도 하고 드래곤이 백수가 되기도 하니까 문제 전혀 없어.”

“아하? 버튜버의 연기는 음악까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양이네요?”

“응 그렇지. 저 기 이나리만 하더라도 어떤 곡에서는 평범한 여우 귀를 단 여고생이 되어 학교에 다니거나, 구미호가 되어서 에도 시대를 뛰어놀거나, 변신로봇이 되어서 은하를 날라다니기도 하니까 곡에는 분위기와 소재거리를 만드는거에 집중하면 되니 걱정하지 마렴.”

“으, 은하를 누비는 로봇이라니...”

오타쿠판은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이 곡은 마미 선배가 나를 위해서 만들어 준 소중한 곡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곡을 만들고 나는 그것을 부른다.

이래서는 정말로 아이돌 같지 않는가?

그나저나 지상파가 아닌 인터넷상이기는 하나, 이 세상에 첫 노래를 선보이는 것이라…

“유성우가 쏟아지는 밤 하늘 아래에 속삭이는 사랑의 이야기를 여기서 노래하네~”

마미 선배가 해준 이야기에 대한 해석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히 가사를 불렀다.

나는 끓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요정같은 소중한 사람을 감싸는 그 마음만큼은 잘 알고 있는 나는 요정이 놀라지 않게 부드러운 어조로, 하지만 다친 요정을 감쌀 수 있는 강인한 어조로 노래를 완창했고…

내 부드러운 절제되는 목소리로 부르는 게 정답이었는지, 녹음실 밖의 마미 선배는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몇 번 음 이탈을 잡고, 호흡의 포인트를 정한 나는 박자를 빠르게 찾아냈다.

그런 내 이어폰 사이로 마미 선배의 콜이 들려왔다.

<유나야, 이제="" 녹음에="" 들어갈게=""/>

“에?”

<에? 는="" 무슨,="" 원래="" 녹음하고="" 난="" 이후="" 다음="" 날="" 들어보아야="" 인상이="" 다른="" 법이란다.="" 알겠지?=""/>

레코딩실에서 프로듀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아무튼 원작자가 오케이라고 하는데 별 수 있겠는가

나는 마미 선배의 지시에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표정을 가다듬고 노래를 연이어 첫 번째 곡을 불렀다.

내가 생각해도 잘 불러졌는데, 마미 선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미소로 그 미소에 화답을 보냈는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 이나리가 왜 저기에 있지?

혼자서 노트북으로 업무 보고 있던 거 아니야?

이나리가 투명한 유리 너머로 나를 보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이나리가 왜 버튜버 방송용 기기를 몸에 붙이고 있지?

**

“자아자아, 여러분 들어보세요. 이게 바로 메이드 라­의 신곡인 페어리 러브랍니다~ 어때요? 굉장하죠? 이런 대단한 여성이 자기는 개인 앨범을 안 낸다고 하네요.”

­재능낭비ㅋㅋㅋㅋ

­아니 근데... 저게 신곡이라고? 오늘 곡을 받았다고?

­무슨 조작 아니지?

­이나리가 장난 방송에 조작하는거 봤어?

­그나저나... 메이드가 노래 괴도 페어로 디스코드에서 깽판치고 다닌 건 알고 있지만 진짜 부르는건 처음 듣는데 정말 좋네요.

­음 올라가는 거 봐... 미쳤다...

­그러면 이제 메이드의 개인 채널이 생기나요? 제발 도네좀 제발

­공식굳즈라도 제발 내 달라고요!! 이게 무슨 희망고문이야!!

이나리를 모르는 이들도 알고 있는 이나리의 몰래 카메라 방송

오늘의 장난 대상은 ‘메이드 라’였다.

이번 장난의 컨셉은 무려 ‘음악 녹음 현장 까발리기’

좋은 재능을 지녔는데 그것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괘씸한 후배를 혼내주기 위한 콘텐츠라고 한다.

다른 버튜버들처럼 연습을 하느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는 아이돌이 아니니까’ 라면서 거절을 했다고 했다.

그런 이나리의 설명을 들은 이들은 기가 찼다.

‘선라이즈 오타쿠들은 다 알고 있는 메이드 라 인데, 아이돌이 아니라는 이유로 저 재능을 썩힌다고?’

‘이제야 보컬 트레이닝에 들어간 자신의 최애 캐릭터보다 노래 부르는 솜씨가 좋은데도 순번을 미룬다고?’

‘심지어 개인용 곡을 주었는데도 이런 곡을 발표를 안 한다고? 심지어 작곡가가 그 유명한 아티스트 니아인데도?’

이나리의 몰래 카메라, 메이드의 깜짝 신곡 발표(본인은 모름)의 탄생 배경을 알게 된 시청자, 그 중 메이드의 팬들은 제발 돈을 내게 해달라며 눈물의 도네이션들을 쏘았다.

“후흐흥, 제가 뭐라고 했어요? 메이드는 너무 괘씸하다고 했죠? 이렇게 돈으로 혼내줘야한다니까요? 조금 있다가 방송 반응을 지켜보게 해야겠어요.”

­이나리 천재

­역시 여우신님 오늘도 기도합니다.

­메이드의 정식 데뷔 가즈아아아!!

“후후후, 메이드 쨩, 당신의 팬들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구요~!”

이나리의 눈매가 장난스럽게 휘었다.

그 장난의 협력 대상자인 마미는 생각보다 뜨거운 채팅의 반응에 하하하, 거리면서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생각보다 채팅의 분위기가 뜨거웠고, 방송에 쏟아지는 만엔 단위의 도네이션 채팅이 파도처럼 이이저는 것을 보고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녹음실 밖의 유나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신도 궁금하기도 했지만...생각보다 커지는 이나리의 장난 스케일에 마미는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뭐 노래 부른다고 해도 내가 부르는 거 아닌데... 유나가 알아서 하겠지?’

설마 이렇게까지 5만명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데 발뺌을 하게 될까?

아무래도 올해가 가기 전 유나의 버튜버의 데뷔 방송보다도 앨범이 먼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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