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16화 (116/307)

〈 116화 〉 115화.

* * *

메이드 라쨩의 오리지널 앨범 발표회가 있는 다음 날

언제나 시끌벅적한 버튜버 커뮤니티의 떠오르는 게시글의 주인공은 당연히 메이드 라 였다.

이전부터 알음알음 다른 버튜버의 방송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방송 헬퍼 메이드’인 메이드 라는 11월달 선라이즈 공식 유튜브 채널의 담당자가 되고 이나리와 좋은 호흡을 선보이면서 그 존재감을 알렸다.

그런 그녀의 공식 앨범 발매에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을 보냈는데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11월달에 이르어서 3D 아바타로 데뷔를 한 다음에 12월달에 이르어서는 음반 발표라니!

­사실 나는 버튜버 잘 몰랐는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음악 괴도단 이후로 입문했어요. 어지간한 우타이테(일본 인터넷상 가수)보다 훨씬 잘 불러서 듣기 너무 좋아요.

­저음 허스키한 발음 너무 좋지 않아요? 잘생긴 목소리에 진짜 반했음 ㅜㅜ

­그냥 목소리가 치트키임. 보이스가 말이 되질 않아.

그녀에 대해서 잘 모르던 이들은 꽤나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청자들은 뛰어난 노래 실력과 일본에서 보기 드문 낮으면서도 청량한 목소리 톤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매력은 단순한 노래 실력만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나모의 꿈...마지막 희망... 청초라인의 지도자...

­마왕성의 청초하고 소쇄한 메이드... 어라, 이거 괜찮지?

­랄까, 아직도 유리아 트위터 계정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들보면... 진짜 어디 재벌가의 전문 메이드 아닐까?

­그런 메이드가 게임도 잘하다니 무슨 만화속 캐릭터냐고ㅋㅋㅋㅋㅋ

그녀가 방송중에 보여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유리아를 서포트하는 뛰어난 가사실력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어디가서 부끄럽지 않는 맛있어보이고 예쁜 요리 솜씨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뛰어난 게임 실력

패션왕 콘텐츠에서 만천하에 증명된 패션 센스나 인싸 캐릭터성

그러면서도 (컨셉상) 자신의 주인인 유리아에게 헌신적인 태도

그리고 그녀를 실제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미인’이라는 캐릭터성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더라도 방송인으로서 ‘메이드 라’는 말 그대로 방송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매력을 알게 모르게 뽐내왔던 메이드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은 많았고, 그런 그들은 새롭게 신설된 ‘선라이즈 공식’이 관리하는 ‘메이드 라’의 채널에 몰려들었다.

그 수는 무려 17만명이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 채널의 주인은 ‘메이드 라’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선라이즈 공식이 만든 유튜브 채널로 ‘메이드 라 없는 메이드 라 채널’이라는 웃긴 별명으로 커뮤니티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녀의 데뷔 아닌 데뷔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했다.

메이드 라의 오랜 팬들에게는 드디어 비공식적으로나마 그녀를 덕질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고

음반까지 낸 이상 명실상부한 선라이즈의 공식 소속 연예인이 된 그녀는 전보다 한층 더 자유롭게 다른 방송에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성장세를 조금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 또한 있었다.

샤야 카기 또한 신인 버튜버로서 선라이즈에 소속되어서 안정적인 스타트라인을 끊은 신인으로서 빠르게 캐릭터성을 확보하고 다른 선배들과의 합동 방송에서 기존의 팬들에게 그 존재감을 알려서 5기생 중 빠른 성장을 했다.

그런 그녀의 구독자는 무려 30만

제아무리 옛날에 비해서 버튜버를 보는 이들이 많아지고 기존의 버튜버 덕질을 하던 사람들이 의리상 구독을 눌러준거라고는 하나 유튜브 시장측면에서 보면 신인 유튜버가 데뷔한지 세 달이 지난 시점에서 30만의 구독자를 보유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그녀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일주일도 안 되어서 17만을 달성한 메이드 채널은 마치 초창기의 GB 1기생들의 데뷔 직후를 보는듯한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였기에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물론 서로가 경쟁 관계 아닌 경쟁 관계에 놓여있다고는 하나, 워낙 오타쿠의 장르는 세분화 되어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은 제각기 달랐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상호 보완 관계에 가깝다.

특히 높은 텐션으로 재미를 이끌어내는 자신의 방송과 차분하고 느린 템포의 메이드의 채널은 아예 다른 분야였다.

심지어 메이드는 그 채널로 생방송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 않던가?

“그래서 참 괘씸해요. 어떻게 사람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아니다, 오히려 데뷔를 안 하는게 나으려나…”

스스로 그런 넋두리를 중얼거리면서 자기 위안을 얻으려는 샤야 카기는 잠시 후 스스로에 대해 넌더리가 났다.

낯선 자신에게 친절을 배풀어준 아름다운 외국인 미인에 대한 질투라니

그런 감정을 품고 방송에 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압박감을 느끼는 그녀는 심적으로 망가져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힘드네요…”

아예 언터치블 레벨로 성장한 마나나 GB 1기생들과는 달랐다.

데뷔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 업계 최정상을 향해 도달한 버튜버 마나와 그녀의 동기생들과는 다르게

정식 기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0기생이나 2기생처럼 사장의 스카우트를 받아 들어온 그녀들과도 달랐다.

버튜버 메이드 라, 유나라는 사람은…

그냥 태생부터가 스타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이 인터넷이건 미디어이건 간에, 그녀의 존재는 타인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와 스스로를 비교하자면 점점 더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30만을 달성하고 빠르게 인지도를 쌓아가고 개인 굳즈의 판매량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벽에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에게 약을 뿌리면서 수돗물에 빵을 적셔먹는 자신은 아직도 해야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방송기획, 선배들과의 연락, 오타쿠들이 좋아할만한 컨텐츠 개발, 방송 피드백으로 셀프 점검, 매니저와의 스케쥴 조절, 다가오는 연말 크리스마스의 기획 등등

호수에 우아하게 떠다니는 백조의 수면 아래 발길질처럼 그녀는 언제나 바쁘게 살아가야만 했다.

무언가 있어보이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스스로 별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런 그녀의 메일함에 새로운 이메일이 들어왔다.

발신인을 확인한 샤야 카기는 회사의 이름으로 보낸 그 이메일을 열고 두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뭐야…? [선라이즈 공동 주거 사택 공고]?”

그곳에는 새롭게 건설되는 회사 소유의 소형 멘션에 입주할 버튜버들을 모집하는 공고였다.

자신의 뚝뚝 끊기는 무료 와이파이 환경을 떠올린 샤야 카기는 무심코 인터넷 통장을 열어 잔고와 자신의 신용상태를 살펴보았다.

***

“느아아아 지쳤다…”

“어머나? 오타쿠들의 마음을 울린 신인 버튜버 메이드 라가 아닌가요?”

“미우야….”

미우를 학원에 데려다 주고 회사 혹은 마미 선배의 자택에 출퇴근 하는 삶을 살아가는 나의 휴식 시간은 저녁 시간이었다.

이나리에게 속아 넘어가 본의 아니게 데뷔 아닌 데뷔를 하게 된 나는 오늘 마미 선배와 함께 회사에 찾아가서 수익 분배에 대한 골치 아픈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그런 내가 재미있게 보이는 듯 미우는 얄미운 표정을 지으면서 피자를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나 또한 앓는 소리를 내면서 9도짜리 스트롱 제로를 한 캔 따서 꼴깍꼴깍 마셨다.

쌉싸름한 알코올과 더불어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쓴 레몬 향으로 기운을 복돋은 나는 버튜버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걱정과 다르게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늘도 언니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나에 언니 보고싶다.”

“눈앞에 귀엽고 예쁜 여고생이 있는데 다른 여자 이야기 하는게 실례 아니에요?”

“풉, 술도 못 마시는 꼬맹이가.”

발끈한 표정을 지은 미우가 내 술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물론 그녀의 손짓은 나에 의해 제지당하고 말았다.

“저, 저도 술은 할 수 있거든요?”

“응 일본은 20세부터 술 마시는거 다 알아.”

“히잉.”

요즘 들어서 부쩍 자신의 성숙한 몸매를 자랑하려듯 되도치 않는 섹시 어필을 해오는 미우였다.

하긴 고3이 졸업하고 나면 성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사실 나도 대학년 1학년 때 술을 마시는 일본인 대학생들(일본의 주류법 상으로 불법이다)을 익히 보아온 터라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서 술을 마시려는 꼬마 아이는 제지를 해야하는 게 어른의 의무다.

“아무튼 나에 언니 보고 싶으면 보러 가면 되잖아요? 아직도 접근 금지에요?”

“접근 금지가 아니라… 연습 기간동안에는 직접 보지 말자는 건데… 아무튼 크리스마스까지는 접근 금지야.”

마치 자신의 선물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언니는 연습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했다.

때문에 나는 쿠로가와 나에가 아닌 쿠로시로 유리아의 모습을 매일 지켜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언니도 유나가 아닌 메이드 라­를 여러 채널에서 살펴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버튜버 커플도 아니고

우리가 연애도 버튜얼하게 해야한단 말인가?

“진짜… 사람이 복잡하네요.”

아마 언니에게 있어서… 언니의 인생에 있어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게 처음이라 이러지 않을 까 싶다.

솔직히 나는 그 마음이 이해 안가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언니의 흐트러진 모습조차도 좋아하는데… 삐죽튀어나온 옷자락이나 슬쩍 보이는 속옷, 산발된 머리카락과 눈에 낀 눈곱 마저도 예쁘게 보이는 언니인데 스스로 그런 매력을 모르다니 참 아쉬웠다.

“너는 어떨 거 같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야죠. 뭐 데이트 할 때만 예의 차리면 되지 않을까요? 그 외에는 이런식으로 평소에 어필을 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풉, 나를 대행 연습삼아 하는거야?”

“…… 뭐 일단 그렇다고 해두죠.”

그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 회사 메일의 착신음이 울렸다.

미우의 휴대폰에도 울리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참조 메일인 거 같은데…

“어라 드디어 보내네?[선라이즈 공동 주거 사택 공고]”

저번에 사장과 담판을 지은 그 공동 멘션의 이야기였다.

부지와 방 크기, 주변 시설을 구글 지도로 첨부한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슬슬 이사 업체를 알아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언니는 1층을 좋아하려나 아니면 윗층을 좋아하려나?

미우 또한 슬슬 독립에 대한 생각이 있는 모양인지 그 공고를 유심히 읽어보는 게 느껴졌다.

아니 유심히 읽는 수준이 아니라 눈에 불이 들어온 수준인데 저건…

“언니… 여기 사실거에요?”

“아 그 공동 멘션 이야기… 사실 내가 사장님에게 꺼낸거야.”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보는 미우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고생 셋이 모이면 전차를 상대할 수 있다던가

그 인터넷 상의 낭설이 거짓은 아닌 모양인지 그녀는 강한 힘으로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설명이 필요해요.”

그녀의 생기있는 검은 두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빛났다.

“아주 자세한 설명이 말이죠.”

아무래도 그녀는… 기숙사 대신에 자취를 선택할 모양인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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