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116화.
* * *
추운 겨울
간만에 휴가를 받은 나와 나에 언니는 함께 새로 이사할 주택을 보러 왔다.
지하철로는 회사로 30분 거리지만 자동차로는 10분 거리에 있는 위치였다.
신축 건물답게 답답한 무선 회선이 아닌 유선 회선이 설치 가능한 모델이었다.
그것 의외에도 역에서는 걸어서 7분 내외인 역세권이라고 볼 수 있었으며 역 또한 급행 열차가 서는 커다란 기차역이었다.
나의 마음에 쏙 들게 하는것은 당연히 인근의 시설이었는데 다른 종류의 두 종류의 식료품관은 물론이고 역의 동문과 서문을 중심으로 각각 대형 쇼핑 센터가 있어서 상권이 상당히 컸다.
거기에 집의 인근의 400미터 내에 편의점이 무려 세 곳이나 존재했는데 우리 회사와 상당히 잦은 콜라보를 진행하는 로손, 이것저것 시설이 많이 갖춰진 세븐 일레븐, 어찌나 큰지 편의점보다는 음식점에 가까웠던 패밀리 마트까지 완비된 이 공간은 말 그대로 일본 생활의 메카였다.
심지어 자동차 주차장과 자전거 보관소까지 인근에 위치했으니... 정말로 마음에 쏙 들었다.
“우와아... 이게 그 멘션이란 말이야?”
“네, 회사 메일에 나와 있는 사택 주소는 여기네요.”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이야?”
“아니죠.”
나는 추위를 느끼는 지 내 품안에 쏙 들어온 언니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언니와 제가 함께 살 집이죠.”
“...헤헤헤”
혼자 살기에도 좋은 집세였지만 둘이 살게 된다면 정말로 가벼운 집세였다.
그만큼 다른 저축이나 도네이션 채팅을 많이 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서 내년이 와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
거기에 주위에 살게 될 이웃들은 모두 버튜버들이라...
과연 어떤 이웃들이 우리들의 인근에 살게 될까?
“마을도 깨끗하고 골목도 좁지 않고 인근 시설도 좋으니 정말로 좋은 환경이네요.
회사에도 금방 갈 수 있고... 무엇보다도 코스트코에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코스트...코?”
“현대 쇼핑의 천국같은 곳이에요. 주부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죠.”
“뭔지 모르겠지만 이사하게 되면 꼭 같이 가자!”
아악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잡으며 해맑게 말하는 나에 언니의 모습이 너무 눈부셨다.
최근 들어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나에 언니는 정말이지 매 순간 순간이 빛나보이는 요정같은 사람이었다.
이전에는 뭐라고 해야할까, 피터팬의 팅커벨처럼 주머니 속에 쏙 들어오는 나만의 작은 요정이었다면
지금은 만화에서나 볼법한 초월적인 귀여움을 가진 사기적인 존재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서양에서 그려지는 요정과 동양 오타쿠 판에서 그려지는 요정에 대한 차이를 고찰하고 있는 내 볼을 쿡쿡 찌른 나에 언니는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음식점을 가리켰다.
낡은 노렌(일본 가게에 쳐놓는 천)이 펄럭거리면서 아까부터 코를 간질거리는 감칠맛이 느껴지는 육수를 내는 우동 가게였다.
이름 하여 무테키반(無??)
하늘 아래 적이 없을 정도로 맛있다고 자부하는 그 우동 가게는 사람을 홀리게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안 그래도 날씨가 추운터라 따뜻한 국물이 땡기던 나는 언니가 이끄는 데로 가게 안에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어머나? 못 보던 분이시네요?”
사근사근한 주인 아주머니가 따스한 차를 따라주면서 우리들을 반겼다.
이전이라면 부담스러워 할 낯선 사람의 인사와 시선에 겁먹지 않게 된 나에 언니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꾸벅했다.
다 큰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언니의 인사를 바라본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내년에 이사를 오게 될 이웃 후보생이에요.”
“어머나, 이런 예쁜 아가씨들이 오신다구요? 어디에 이사오시나요?”
“저기 앞에 있는 사쿠라장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사쿠라장이라면... 아, 그 자판기 몰린 코너에 있는 그 예쁜 신형 멘션이네요?”
다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주름진 얼굴에 인자함을 새긴 듯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말해주는 일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 주방에서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내자! 손님들 배가 고플텐데 밥부터 시키게 하지?”
“아이고야, 미안해요 아가씨들 여기 메뉴판이에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메뉴판이 펼쳐졌다.
지렁이가 꿈틀거리는듯한 월필로 적힌 그 메뉴는 확실히 외국인 친화적이지는 않았다.
세상에 일본에 살게 된 지 어언 삼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가게 메뉴판을 못 읽을줄이야...
하는 수 없이 나는 만능의 치트키
나에 언니의 주문을 따라하는 주문을 했다.
신중하게 메뉴판을 노려보던 언니는 이내 소 대창과 대파를 함께 끓여 우려낸 육수로 만든 우동을 주문했고 나도 똑같이 주문을 했다.
그나저나 언니는 의외로 이런 꼬불거리는 한자들을 잘 읽는구나...
새삼스럽지만 언니가 대단하게 보였다.
“유나야 왜 그래?”
“아... 메뉴판이 조금...”
“... 맞다 유나 한국인이었지? 하도 일본어를 잘해서 평소엔 잘 몰랐어.”
그렇게 말한 언니는 꼬불꼬불 거리는 한자와 히라가나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이게 달 월(月)자야.”
“...이게요?”
아무리 보더라도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한자로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거는 한자가 아니라 무슨 암호 문자가 아닌가?
이런 악질적이고 폐쇄적인 비친화적 문자 체계는 외국인들을 언제나 공포에 떨게 한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나에 언니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유나는 생각외로 엉뚱한 면이 있네, 평소에는 뭐랄까 만화에서나 볼법한 우수한 메이드 같은 사람이었는데.”
“저도 평범한 사람이라구요. 그냥 생긴게 요래서 사람들이 오해하고는 하지…”
“그치만 방송에서 드러난 모습은 또 다르잖아?”
“그거야 뭐… 언제부터인가 메이드 라짱 에게는 무언가 완벽주의적인 캐릭터성이 붙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그 캐릭터성을 버리기 아까웠다.
최근 들어서는 PON이라던가 허당이라던가 하는 이상한 밈을 붙이면서 나를 악질적으로 개그 캐릭터로 몰아가려는 비밀 음해 키리누커 세력이 있지만… 아무튼 적어도 방송에서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완벽주의자 그 자체였다.
이른바 느슨해진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에게 긴장감을 조여줄 훌륭하고 엄격한 선생님 같은 캐릭터 그게 바로 메이드…
“자아, 주문한 음식 나왔습니다.”
그런 나의 상념을 뚫고 아주머니께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우동을 가져다 주셨다.
노란 기름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국물은 그릇 바닥이 보이는 맑은 국물이었다.
조리 방식은 니고미 우동(?みうどん)으로서 작은 냄비에 면과 국물,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서 끓여낸 방식이었는데 그 덕분에 식욕을 자극하는 고기향이 달콤하게 올라왔다.
기대감이 가득 담긴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어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느끼할 수 있는 대창을 대파와 함께 끓여서 느끼함을 잡아주면서도 대창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잘 살아있었다.
과하지 않는 일본 간장 특유의 단맛이 감칠맛을 살려주듯 절로 면을 땡기게 만들었고, 아삭아삭하게 살아있는 식감의 야채는 느끼한 고기의 무거움을 잘 달래주었다.
가게 메뉴판에 적힌 한자를 욕한 게 방금 전이었지만 이 정도 맛을 가진 우동 집이라면 까짓거 게임에서나 나오는 고대 문자로 메뉴판을 적어도 봐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본에서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가게 이름 그대로 무적의 맛이었다.
“유나야 맛있어?”
“네, 정말… 이런 국물 요리가 정말 그러웠어요.”
“우동… 생각보다 좋아하는구나?”
“여기 집 우동은 평생 좋아할 거 같네요.”
나는 언니의 두 눈에 스쳐지나가는 반짝임을 놓치지 않았다.
뭐, 뭐지!? 언니는 의외로 우동에 진심인가?
하지만 그동안 나에게 딱히 우동을 해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아무튼 언니의 반응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나는 결국 국물까지 완식을 했다.
나는 완식을 해야 보이는 우동 그릇 바닥에 ‘잘 하셨어요!’ 라는 말이 새겨진 글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이사를 오게 되면 이 집의 단골이 될 것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아가씨들 고마워요, 다음에도 또 와요~”
기분이 따스해지는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차가운 눈이었다.
한국에서 살던 나는 오랜만에 보는 눈을 보며 오~ 하는 심정으로 일본에서 맞이하는 첫 눈을 즐겼다.
하지만…
“유, 유나야 눈이야 눈!”
“네?”
“눈이라고 눈!”
언니의 반응은 남달랐다.
마치 난생 처음으로 눈을 본다는 듯, 언니는 마치 눈밭에 달려나가기 직전의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는 듯 웅성웅성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고 지금의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그 분위기를 금새 읽고 언니의 손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눈이네요 눈!”
“그래 눈이야 눈!”
하늘에서 천천히 내리는 눈이 신기하다는 듯 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벌리거나 눈을 손에 모으려는 듯 손을 모았다.
그 다음으로는 조금씩 쌓여가는 눈길의 뽀득뽀득한 감촉을 만끽하면서 행복하게 천천히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때마침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겠구나. 그리고…
“유나야, 저기 공원이 있다고 해, 얼른 가보자.”
“네 좋아요 언니!”
맛있고 따스한 식사, 아름답게 내리기 시작하는 눈, 이 모든것을 함께하고 있는 소중한 나에언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날 우리는 다음 날 일정이 무리가 갈 정도로 신나게 공원에서 눈을 가지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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