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18화 (118/307)

〈 118화 〉 117화.

* * *

크리스마스 파티에 빠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근사한 요리, 따스한 벽난로, 많고 많은 크리스마스 캐롤 송,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선물 꾸러미, 예쁘게 빚어낸 눈사람, 같이 보낼 친구들…

그리고 술이다.

그래 술!

인간이 발명한 위대한 음료이자 많은 역사를 만들게 한 위대한 음료

한국인인 내가 일본에 와서 놀란 것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싸디 싼 일본의 술 값이었다.

근래 들어서는 다양한 세계맥주를 수입하고 다양한 상품 라인을 내놓으면서 한국도 술의 바리에이션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소주와 맥주를 말아 먹는 소맥 문화가 지배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은 어떤가?

희석식 소주에 과즙과 탄산수를 섞어서 다양한 맛을 선보이는 라이트 칵테일 츄하이를 시작해서 많은 라인업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100엔에서 150엔 되는 저렴한 가격에 330ml의 알코올을 홀짝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위스키의 가격도 한국과 일본과 비교를 하게 되면 일본쪽이 훨씬 저렴하고 다양했다.

그리고 소주로 간을 단련한 건강한 한국인 소녀는 일본에 건너온 이후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게 되는 알코올 애호가가 되었다.

“알코올 중독이겠지 이 주당아.”

“헤헤.”

현란한 손기술로 칵테일을 흔들던 마미 선배가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누구나 꿈을 꾼다던 저택 지하실의 술 창고 겸 마미 선배의 작곡실

유튜브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아티스트 니아의 작업실에는 늘 알코올과 함께였다.

이전 할로윈 파티 이후로 다시 들르게 된 선배님의 술 창고는 알코올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게 된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레시피들은 다 기억 했겠지?”

“다.. 적어뒀어요.”

선배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 적으면서 술의 대략적인 모양새까지 수첩에 적어넣은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내 당당한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마미 선배는 선반 구석을 뒤적이더니 종이 한 장을 나에게 주었다.

무언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펜으로 온갖 교정 부호가 들어간 레시피였다.

콜라, 오렌지 주스, 라임 주스, 구아바, 탄산 음료 등등

알코올 보다는 음료에 가까운 재료들의 배합으로 이루어 진 그 칵테일들은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이게 하는 조합들이었다.

“뭐 술에 있어서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 대충 비율만 지키면 맛은 크게 해치지 않을거야. 그리고 여기에 있는건… 미성년자 용 레시피야. 알코올 없는 음료들로만 조제할 수 있는 것들이거나, 3% 이하의 극히 적은 알콜이 들어간 음료들이지.”

“오! 역시 미성년자 손님들을 배려하는 선배님의 마인드!”

“그리고 우리 언니가 좋아하는 레시피야. 유나야 이거 명심해 둬….”

두 시간 가까이 고생한 쉐이커를 세척하고 탁, 내려둔 마미 선배가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다보면서 말했다.

“너 진짜 우리 언니 술 맥인 다음 손대면 죽여버릴거야.”

“…네?”

“우리 언니… 술 진짜 잘 마셔.”

… 선배가 벌써 취했나?

그리고 나를 왜… 여인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희롱하게 하는 그런 질 낮은 사람으로 보는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선배님에게 불신감을 심어두었단 말인가?

“그런데 언제 취하는지 사람이 잘 몰라. 한 번 마시면 쭉 마시게 된다고. 그리고 만취를 하게 되면…”

“되면…?”

“아무튼 우리 언니가 만취되면 너 진짜 죽을 줄 알아.”

아닌 척 해도 은근히 자기 언니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가득한 마미 선배였다.

세간에서는 이런걸 시스터 콤플…

“시스콘 아니니까 그런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선배, 독심술은 이능력자 협회에서 금지한 이능력이에요.”

“무슨 헛소리야? 유나 네가 이상한 헛소리 헛생각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읽혔다.

완전히 읽혔다.

아무튼 차분한 분위기를 위해 오렌지빛 조명이 깔린 지하실에서 나는 결코 타마… 그러니까 이로하에게 절대로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게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로서 적당한 값만 치룬다면 선배님의 술 콜렉션을 어느정도 마실 수 있다는 건데…

사람들이 어떤 술을 좋아할까?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나는 선배님의 콜렉션을 다시 찬찬히 뜯어보았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게 아닌 기분이 들긴 하지만…”

“에이, 제가 그렇게 염치 없는 사람으로 보여요? 한국인 하면 정과 체면의 민족이라구요.”

“… 그 엄격한 유교관념의 나라라고 생각을 했는데 너를 보니 딱히 그런건 아닌 거 같다.”

“크으윽…”

“하지만… 그래도 뭐…. 언니랑 잘 놀아줘서 고맙다.”

“…네!?”

“고맙다고!”

그렇게 투덜거린 선배는 도망치듯 자신만의 방에서 올라갔다.

하여간, 언니건 동생이건 솔직하지 못하다는 점이 귀엽다니까.

자신의 머리카락 색깔 만큼이나 붉어진 그녀의 뒷목을 보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

잠시 후

파티가 다가오는 일주일 전

나는 미리 마리네이드를 할 고기를 준비하기 위해 이로하와 함께 마트로 왔다.

평소라면 마미 선배와 같이 와야 했지만… 파티 집의 주인인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말과 함께 용기를 낸 이로하가 대신 오게 되었다.

마미 선배는 엄청나게 감동먹은 얼굴로 나에게 자신의 지갑을 던져주었다.

지갑에 담긴 마음만을 살포시 받은 나는 그녀의 지갑을 몰래 집 안에 던져둔 채 인근의 커다란 시장에 들렀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내린 나는 100만 버튜버 주제에 사람들을 꺼려하는 이로하가 내 품안에 꼬옥 안겨드는것을 느꼈다.

“이로하 왜 그래? 벌써부터 두려워?”

생전 처음으로 낯선 환경에 와서 두려워하는 고양이처럼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평소라면 모를까, 연말 분위기가 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는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축제를 기다리는 기쁜 심정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국의 재래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삼정가에 흘러나오는 캐롤 노래가 그 분위기를 더더욱 살게 했다.

“이로하 들어봐 캐롤이야 캐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리듬을 타듯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나의 힘에 이끌린건지 아니면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나에게 방송을 하듯 어울리듯 그녀는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후드를 뒤집어 쓰고 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만 노출하게 하는 멍청할정도로 커다란 마스크를 쓴 이로하였지만 사람 자체가 워낙 체형이 작은 타입인데다가 보이는 눈매 만으로도 귀여웠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무, 무서워.”

“사람들의 시선이?”

“응…”

따돌림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자기만 바라보면 욕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던가…

으음, 따돌림이라 확실히 그건 좀 사람을 병들게 하지.

나는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하는 대신에 어그로를 끌기로 결정했다.

“착각하지 마, 저 사람들은 널 보는게 아니라 나를 보고 있는거야.”

“에?”

“나 이래보여도 길거리에서 헌팅 열 번 넘게 받은 매력 덩어리라고?”

“나, 낯선 사람이 그렇게나 말을 걸어온다고?”

“응, 미인의 숙명이야…”

뭐야 이 재수없는 여자는? 하는 시선으로 날 보는게 느껴진다.

하지만 뭐 어떠겠는가? 그게 사실인 걸…

“그러니까 나랑 같이 걸을 때에는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거니까 이로하는 신경 끄고 걸으셔.”

“으응…”

참나, 이렇게 귀여운 여자를 누가 미워한다고 그럴까

꼭 만화에 보면 있지 않던가? 누구보다도 귀엽고 매력적인 주제에 본인은 평범하거나 못난다고 생각하는 지미(?味)캐릭터 말이다.

뭐, 중학교 시절 연습생일 때에도 그런 동기생들을 본 적이 있지만 이로하가 가장 최고로 본인을 비하하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사악해야 이렇게 소심하고 착한 여자 아이를 왕따시킬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얼굴모를 사람에게 적의감을 불태우는 나는 빠른 손길로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름 모를 상점가 주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즐길 예정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로하가 부담스러워 하는 게 느껴져서 가급적이면 서둘러서 쇼핑을 진행했다.

그래도 대망의 정육점에서는 그러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설명해야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파티용으로 쓸 커다란 닭이요?”

“네, 가급적이면 잡맛이 잡히지 않는 거친 녀석으로 부탁드려요.”

“손님 특이하시네요, 원래는 부드럽거나 잡맛이 제거 된 것을 원하시지 않던가요?”

“아아, 아무래도 마리네이드 된 고기로 조리를 하게 되면 원래의 고기가 거친 맛이 살아있는게 좋거든요.”

“어디보자… 에구머니나, 당장은 재고가 없네요. 인근의 농가에게 연락을 해두면 갓 잡은… 그러니까 손님이 원하시는 육향이 강한 녀석으로 가져올 수 있는데…”

아이고야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닭을 통째로 조리하는 일이 드물다 보니 이런 모양이었다.

그래도 상당히 커다란 정육점 답게 직접 고기를 가져오는 도축장같은 곳에 연락을 할 시스템이 있나 보였는데… 고민을 하던 나는 닭을 주문했다.

그것 의외의 소세지나 다른 반찬에 쓸만한 고기들은 모두 샀지만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칠면조… 는 맛이 조금 떨어지니 거대한 닭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기획하게 된 크리스마스 닭 요리에 쓸 닭은 구하는 것도 꽤나 까다로웠다.

그래도 다른 가게에서 두 번 허탕을 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고기를 구매하게 된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유, 유나 대단해…”

“네?”

“무섭게 생긴 아저씨에게… 쫄지 않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아, 확실히 마지막 정육점 아저씨는 좀 험상궂게 생기긴 했지.

어쩐지 다른 가게에 들릴 때 보다 더욱 나에게 안겨있더라.

나는 심플하게 대답했다.

“저는 당당하고 멋지고 예쁜데다가…”

이로하의 얼굴이 썩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보다 제가 더 강해요.”

“!?”

축 처진 뱃살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

정육점 주인 답게 어느정도 근골이 있었지만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 몸에서 느껴지는 병약함… 몸집은 크지만 근육보다 비계가 가득한 몸…

젊고 날렵한 나에게 있어서 제압은 물론이고 유사시 도망치는 것도 간단했다.

즉, 물리적 위협이 거세된 남성은 나에게 경계심을 주지 못한다.

그런 내 심플한 논리에 이로하는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참… 강하구나.”

“그럼요. 의사도 인증한 20대 고급 피지컬 바디라고. 그리고 그 여성이 지금 너를 지켜주고 있으니까 걱정 하지 말라구.”

“…응.”

동갑인 덕분에 빠르게 친해진(내 일방적인 감정적 일방 통행이긴 했지만)이로하는 내 말에 무언가 감명 받은 모양인지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귀여운 악력을 느끼면서, 자신감을 되찾은 어린 고양이같은 표정을 지은 이로하를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무서워해서 몸부림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던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오늘 내가 그녀에게 보여 준 장면이 꽤 강렬한 모양인지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무심코 나에 언니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언니도… 그러니까 초창기 언니도 약간 이로하 닮았었지?

맹해보이고 순진해보이고 귀여운 느낌을 풍기는 이로하는 정말로 초창기의 언니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언니는 달랐다.

적어도 이로하는 자신이 집 주인으로서 파티에 쓰이는 금액과 준비 방법은 알아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밖에 스스로 나왔으니… 초창기의 언니보다는 조금 레벨이 높다고 해야할까

물론 지금의 언니가 더 대단하지만 말이다.

“무슨 생각 해?”

“아무것도 아니야.”

이로하를 쓰다듬으면서 부족한 나에 언니 분을 땡긴 나는 발을 재촉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트렁크 안에 담긴 어마어마한 식료품들을 본 이로하는 입을 떡 벌였다.

하긴 2인 가구에서는 보기 드문 스케일의 식료품들이긴했다.

“뭔가… 굉장해, 인터넷에서나 보던 거 같아.”

“그런 인터넷에서나 보던 파티를 겪게 될 거니까 집주인 씨 잘 부탁해.”

“…응!”

작디 작은 주먹을 꼭 움켜쥐며 대답을 하던 이로하가 동갑의 여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끌어안을 뻔 했다.

역시… 100만 버튜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어떻게 사람이 몸짓 하나하나에 귀여움이 녹아나오지?

마미 선배님이 알았다면 경을 칠 생각을 하며 나는 악셀을 밟았다.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내가 아까 그녀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흥얼거렸던 캐롤을 읊조리기 시작한 이로하의 노랫소리를 배경음악 삼아서 나는 오늘 산 식품들을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나의 크리스마스 파티 플랜

첫 번째 ­ 술 준비 완료

두 번째 ­ 고기 준비 완료

세 번째 ­ 과자 준비 완료

일단 먹고 마시는것에 진심인 한국인 답게 훌륭한 파티의 근본이 되는 것들을 준비한 나는 이미 반 쯤 파티를 성공시킨 사람이었다.

아무튼… 파티 분위기에 들떠서 신이 난 이로하만큼이나 나 또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기대 되었다.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파티라… 상상만으로도 연말의 피로가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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