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63화 (163/307)

〈 163화 〉 162화.

* * *

항아리 게임은 단독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마이너하고 한 번의 실수로 짧게는 1분, 길게는 15분간의 성과를 날리는 플래시 게임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이 게임은 방송인들의 역경의 극복과, 잠깐의 실수로 모든 업적을 날려버리는 악랄한 디자인으로 방송인들의 멘탈을 갈아버리고 그 과정속에서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안겨주는 독특한 게임으로 진화했다.

때문에 이 이후 나온 점프 킹 또한 혼자 하기에는 마이너하고 변태적인 취향의 자기 극복류 게임이고, 방송용으로 사람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좋은 아주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다.

그렇기에 점프킹은 항아리 게임 이후로 인터넷 방송인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 되었고, 신입 버튜버가 하기에도 부적절한 게임은 아니었다.

­구미호가 점프킹한다.

­무난무난한 소재네

­그래서 잘함?

­몰라 방금 샀다는데

데뷔 이후 많은 주목을 모은 구미호 아리아의 첫 게임 방송이 점프킹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호~~잇”

게임은 단순했다.

[꼭대기에는 굉장히 쩔어주는 여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이야기

하지만 조작은 단순하지 않았다.

점프키를 누르는 시간에 따라 뛰는 도약력이 다르고, 5미터 위의 땅에 올라가기 위해서 7미터를 점프한 다음 8미터높이의 벽에 부딪혀서 올라가야한다.

하지만 여기서 힘을 조금, 그러니까 0.1초정도 더 누르게 되면?

10미터의 높이를 점프한 캐릭터는 부딪혀야하는 담장을 넘긴다.

그렇게 되면 기다리는 것은 추락!

이 가혹하고 변태적이고 악랄한 게임은 한 번 떨어지게 되면 되도록이면 많은 성과를 날려버리도록 악랄하게 설계되어있다.

그말인 즉슨…

한 번의 ‘담장을 넘기는 추락’은 5미터, 10미터의 추락이 아닌 100미터를 넘어가는 ‘담장 낙하’이다.

“기야아아악!!”

화면속 캐릭터는 추락할 때 말이 없다.

하지만 4분간 올라간 게임의 진행이 다시 시작시점으로 돌아가게 된 아리아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비명을 질렀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점프, 0.1초 단위의 점프 파워를 조절하지 못한 대가는 끔찍했고, 자신만만하게 게임 스타트를 외친 구미호의 입에는 절규가 울려퍼졌다.

­ㅋㅋㅋㅋㅋㅋ

­구미호 할머니…

­점프킹에 온걸 환영한다 애송이!!

단 한 번의 실수로 4분간의 성과가 사라진다.

10분간의 성과가 사리지는 일도 있다.

이것이 바로 시청자들이 기다린 반응이었다.

아무리 잘생기거나 돈이 많든, 노래를 잘 부르건 인기인이건…

게임은 실력과 멘탈로 하는 법!

사람들은 이 완벽함을 표방하는 구미호의 추락에 기꺼이 찬사를 보냈다.

­아 슈퍼챗 해금 안되서 아쉽다ㅋㅋㅋ

­아ㅋㅋㅋㅋ 그러게

­ㅋㅋㅋ생각해보니 메이드는 FPS 고수였지 ㅋㅋ

­아 메이드하고 구미호하고 다르다고 ㅋㅋ 본인이 그렇대잖아 ㅋㅋ

“꿈이라면 얼마나 좋았을 까…”

잠시 충격을 받은 듯 ‘우으우아아’하는 귀여운 비명소리를 낸 아리아는 다시 게임을 이어나갔다.

방금까지 보이던 높다란 탑의 등반이 아닌, 초록빛 숲으로 부터 시작되는 태초마을에서의 재시작… 원래 점프킹이란 이런 게임인 법이다.

깨어진 멘탈로 부르는, 메이드가 가장 먼저 부른 곡 ‘레몬’이 울려퍼진다.

평소라면 사기적인 목소리와 사기적인 음악적 기량으로 뽐낼 수 있는 아리아의 애창곡

허나 벽이 머리를 박아가면서 점프킹을 하는 아리아의 입에는 산뜻한 레몬 향의 노래가 아닌, 말라 비틀어진 음색이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멍하게 입을 벌리고 흔들린 멘탈로 인해서 1분도 되지 않아 ‘담장 낙하’를 겪게 되었다.

“꿈이라면 얼마나!!! 아아악!!!”

­ㅋㅋㅋㅋ꿈이면 좋겠죠?

­짜잔, 다시 태초마을

­저 초기 할아버지 NPC가 다시 인사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모네이드가 상했네 상했어

­이집 반응 찰지네 ㅋㅋㅋㅋㅋ

“이건 꿈이겠죠?”

­응 아니야

­어림도없지

­다시 올라가

­위에 유리아가 기다리고 있다!

신인 버튜버들에게 쏟아지기에는 너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난스러운 반응

허나 안에 들어가있는 사람이 인터넷 방송 초짜가 아닌 ‘메이드 라’인것을 아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장난을 걸었다.

특히, 어둠의 메이드단들은 자신의 채팅에 일일이 반응해주는 ‘메이드 라’… 아니 ‘구미호 아리아’의 반응에 커다란 쾌감을 느꼈다.

마치 여태껏 공략 불가능한 미연시 캐릭터의 공략이 가능해졌을때의 그 느낌!

­구미호는 점프를 하고 싶다

­아리아짱 ㅋㅋㅋ 귀여워 ㅋㅋㅋ

­이렇게 망가진 모습의 아리아라니… 색다른데?

“꺄아아악!”

방송을 이어나간 아리아는 이윽고 자신이 4분간의 대낙하를 경험한 구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천만 다행으로 담장에 부딪혀서 떨어지는 대신, 점프를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오는 선에서 그쳤다.

­아쉽다.

­근데 비명 지르는 거 귀엽네 ㅋㅋ

­이 구미호 공포 게임 하는 거 보고싶어

­왜, 비명이라는 게 귀 아플때도 있는데 얘는 그냥 소프라노 톤으로 귀가 즐겁네

­아무튼 목소리는 치트키

­겁쟁이

“겁쟁이 아니거든요!”

­ㅋㅋㅋㅋ

­하지만 방금 쫄보처럼 비명 질렀잖아요ㅋㅋ

­허접!

­게임이 취미라고는 했지 잘한다고는 말 안함ㅋㅋ

“이것들이이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분한 듯 씩씩거리면서 하는 내뱉는 그 말은 확실히 성우의 숙련된 연기처럼 기백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시작 당시에 ‘이런 점프만 하는 게임은 금방 깨지 않겠어요?’ 하는 식으로 도발성 넘치는 발언을 한 구미호라는 설정의 캐릭터가 자신을 견제하는듯한 채팅의 도발에 넘어가는 상황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살인마가 외치는 말이라도 귀엽게 들릴 것이었다.

­ㅋㅋㅋㅋ

그리고 영어, 일본어, 한국어를 가리지 않는 비웃는 채팅이 가득찼다.

이 구미호는 은근히 놀리는 맛이 있었다.

아마 같이 사는 누군가에게 강하게 전염받은 듯, 놀림 받을 때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하는 게 찰진 재미가 있기 때문에 평소 채팅을 잘 치지 않던 시청자들도 적극적으로 채팅을 보냈다.

***

­어 근데 벌써 여기야?

­놀리는 사이에 벌써 여기까지?

­생각보다 적응 빨리하네, 4구역 뉴비 절단기를 5트안에 넘기고 다시는 실수안하네

­그러게? 같은 구간 실수가 적어

­이거 설마 첫 방송에 클리어 각 보나?

“말했죠! 저 게임 잘한다고! 이런 단순한 점프 게임 따위!”

흥분한 아리아는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 게임에서 평정심을 잃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주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어림도 없지 바로 대추락!

­구미호는 날 수가 없지

­도와줘요 유리아님!

­ㅋㅋㅋㅋㅋㅋ

­잘­가~~

안전 지대가 있는 8구역의 진입구 바로 앞, 흐트러진 평정심으로 인해서 ‘대낙하’가 시작되었다. 7지역의 낙하는 5지역 중간으로떨어지는 커다란 추락.

맵이 전환되어가며 떨어지는 그 구간은 플레이어의 마음을 철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시청자들에게는 아니었지만.

­아 아쉽다

­더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근데 여기 무덤 아니야? 도약 지점 잡기 어려운 곳

“하…하!”

흐트러진 멘탈의 아리아는 심호흡을 한 다음 다시 점프를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듯 흐트러진 멘탈의 아리아의 점프는 정교하지 못했고

10개의 맵 중 두 번째로 악명높은 5구역의 실수는…

4구역으로 돌려보낼 만큼 악명높았다.

깃발이 있는 지붕에 올라가지 못한 캐릭터는 이윽고 뾰족하고 미끄러운 지붕에 추락, 드라마틱하게 미끄러진 캐릭터는 한참 밑의 지붕으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일종의 세이브 지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8지역 입구 앞에서 뉴비 절단기로 불릴만큼 까다로운 4구역으로 떨어지게 된 셈이었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눈앞에서 박탈당한 셈이었다.

시청자들 또한 장난보다는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처음하는 게임 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적은 편이라 의외로 스피드하게 진행한 편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그러면 무얼하는가

이 게임은 멘탈을 다잡지 못하면 추락하는 게임이다.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하듯 화면속 캐릭터는 4구역에서 3구역 초반부로 떨어졌다.

적당히 실패하면 웃음이라도 나오는데, 이 정도로 화려하게 실패해서야 놀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어지간한 안티팬이라도 동정심이 들 정도의 화려한 추락에 채팅창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이모티콘을 잔뜩 보냈다.

사람들은 오히려 걱정하기 시작했다.

놀리는 반응이 재미있어서 놀려가면서 아리아의 반응을 지켜보던 이들도, 슈퍼챗이 해금되지 않는 신인 버튜버에게 조금 심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미안해’ 같은 채팅을 보냈다.

오디오가 비면 좋을 게 없는 인터넷 방송

하지만 이 방송을 보고 있던 4만명의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녀의 침묵을 반겼다.

멘탈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이어진 20초간의 침묵 끝에 아리아는 다시 아아­하면서 마이크를 점검했다.

“후, 정말 좋은 게임이네요. 고작 2천엔도 되지않는 돈으로 저의 관심을 이렇게 끌 수 있다니 참 대단한 게임이네요.”

자신만만한 아리아의 목소리에 깨진 멘탈의 흔적은 없었다.

정말로, 이 구미호는 이 정도 일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이 오히려 텐션을 끌어올렸다.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억지로 끌어올린 텐션이 아닌,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하는 그 목소리에 시청자들은 안심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숨을 가다듬고 골라야죠. 구미호의 철학이죠.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제가 떨어진거겠죠?”

“게임은 정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잠시 용기를 돋구는 노래를 부르고 가겠습니다.”

­진성 게이머네 ㅋㅋ

­아리아가 탐낼 마인드다

­얼른 슈퍼챗이 해금되서 채팅 쏘고싶어 ㅜㅜ

­진짜 대단하다, 나같으면 바로 방송 껐을듯 ㅋㅋ

“그리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니야.”

이윽고 깔리기 시작한 MR속에 구미호가 외쳤다.

“자, 여러분 박수를 쳐주세요. 박수를 칠 수 없는 사람들은 이모티콘을!”

마치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라이브 가수의 이끌림처럼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자신의 모든 기량을 뿜내면서 노래를 시작했자.

“점프킹처럼 올라가볼까~ 흔들거리는 지붕을 밟아가며~”

그러고는 센스 좋게 가사를 개사하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이어나갔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점프킹’이라는 말을 듣고, 이 버튜버가 멘탈이 깨질 상황에도 노래를 개사할 정도로 여력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멈춰진 게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힘들지도 않는지

아니면 무언가 방송신의 가호를 받았는지

아니면 천재적인 감각이 무언가 신호를 보냈는지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는 점프킹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마치 스피드런에 도전하는 도전자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친것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과감하게 나아가는 그 모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기적적으로 정교한 조작이었다.

같은 구간에 실패를 잘 하지 않을 정도로 셀프 피드백이 확실한 그녀는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Oh my loveee”

폐활량을 자랑하듯 길게 이어지는 끄는 음성을 따라 캐릭터가 점프한다.

4지역을 넘어 5지역으로

5지역을 돌파하여 6지역으로

악명높은 7지역의 눈을 빠르게 돌파하는 그 모습은 분명히 점프의 왕이었다.

이윽고 한참 전에 자신에게 처참한 실패를 안겨준 구역으로 도달한 아리아는 노래를 마쳤다.

“자, 여러분 갈게요? 뻔하고 재미없는 역경 극복이야기, 여기서 끝낼게요!”

그와 동시에 캐릭터가 점프를 뛰었다.

이전의 실수를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한 정교한 점프

캐릭터는 무사히 7지역을 돌파했다.

10지역까지 이루어진 지역 중 아무리 떨어져도 8지역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심리적 안전선이 존재하는 ‘세이프 구간’에 도달한 아리아는 “해냈다!” 하고 외쳤다.

대추락, 빠른 게임 피드백으로 인한 시원한 진행, 스스로 플래그를 세우고 넘어지면서 망가진 다음, 노래를 통해 멘탈을 회복하고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초인적인 게임 능력으로 역경을 돌파하는 일련의 스토리를 방송에 만드는 그 광경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자, 오늘의 ‘게임’방송은 여기까지.”

그렇게 말한 그녀는 게임화면을 닫고 이전의 음악 방송을 선보이던 화면을 띄웠다.

곡 명을 적어두는 세트 리스트와 그녀의 예쁜 모델을 잘 볼수있는 탁 트인 공간과 채팅창

벌써 세 시간을 넘어가는 방송이지만 지치지도 않는 지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배경음악을 깔았다.

“선라이즈에서 최초로 점프킹을 플레이 한 아카리 선배를 기념하여 부르겠습니다.”

“사상최강의 게이머의 드림 랜드!”

그날 구미호 아리아의 방송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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