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77화 (177/307)

〈 177화 〉 176화.

* * *

“유나야 부끄러워하지 마렴.”

묘하게 달아오른 언니의 목소리가 나를 압박한다.

“솔직하게 말해, 너도 좋잖아?”

아아

그것은 속삭임이다.

나를 파멸시키기 위한,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기 위한 속삭임.

마치 이브에게 선악과를 머금게 하려는 교묘한 소리였다.

“하지만 언니...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어머나.”

언니의 손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뱀처럼 내 몸을 쓰다듬는다.

능숙하게 내 등을 어루만지는 그 손길에는 애정과 탐욕이 깃들어있는 부드러운 희롱에 가까웠다.

“유나의 이 두근거리는 가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본데?”

내 등에 귀를 가까이 다가와, 나를 뒤에서 살포시 껴안는 언니의 부드러운 동작이 나는 무서웠다.

사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상상했던 현실이 실제로 다가오자 나의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이 콩딱거리기 시작했다.

“유나야... 두려워하지 마려구나, 너는 그냥 선을 넓으면 되는거야.

언젠가 언니가 한 번 넘었던 그 선을... 너라면 충분히 넘을 수 있어.”

“부, 부끄러워요.”

부끄럽고 무서웠다.

여태껏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한다는 걸 말이다.

나도 사람인 이상,여자로 태어난 이상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걸 하는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로 다가오고, 나를 요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언니 앞에서 하는건...

너무 부끄러웠다.

“자, 두려워하지말고.”

나의 마음속 망설임을 꿰뚫어본 언니가, 내 등에 가슴을 밀착시킨 언니가 내 손을 잡는다.

평소에는 그토록 가녀리고 약했던 언니의 손아귀가 이렇게 강하게 나를 속박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언니의 손이 발버둥치는 내 손을 꽉 붙잡자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아니 언니 이건... 이건 너무나도...

“유나야, 자 말해보려구나.”

그렇게 말한 언니는 귀에 바람을 훅, 불어넣었다.

그것은 천지창조의 숨결이었다.

마치 바람이 불어야만 움직이는 풍차처럼, 언니가 내 귀에 가볍게 불어넣은 바람은 내 심리적 거부감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후흐응, 인간분들이 그러면 저 섭섭해요.”

그것은 내 목소리되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간드러진 목소리, 누군가를 홀리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 요염한 소리였다.

이전에 장난삼아서 시청자들을 놀릴 때 내본 적 있는 나의 목소리

하지만 언니의 섬세한 튜닝을 거치고 완성된 문장을 하는 이 말은...

이 말은 말하고 있는 내가 듣기에도 너무나도 야했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치마속 팬티가 보이고 럭키 스케베니, 여름의 노출 높은 수영복이니 뭐니...

일본의 서브컬쳐 문화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나는 오히려 예쁘고 멋진 여캐들의 야한 노출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직접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 목소리를 낮게, 높은 음성으로 꼬시는 목소리 내지 마.”

“어, 언니!”

나의 혼신의 연기조차도 언니는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언니는 내가 입고 있는 바지를 내리려고 했다.

“이거 너무 부끄러워요!”

“바로 그 텐션이야 유나야. 잊지마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려고 하면 그 부끄러움과 당황함 사이에 나오는 그 목소리여야만 해.”

언니는 엄격했다.

선라이즈의 수금 3위

구독자 숫자 비례해서 슈퍼챗 단가가 높은 언니의 방송 비결은 철저한 시청자들의 조교였다.

밀고 당기면서

집착해줄때는 가슴 철렁하게

그들에게 나에 대한 관심을 요구할때는 장난스럽고 부드럽게

하지만 때로는 엄격하게

그리고 아주아주 가끔은... 속삭이는 ASMR처럼 달콤하게

언니의 포인트는 이 달콤함이었다.

마치 성인용 초콜렛에는 알코올이 들어가는것처럼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홀리려면 사랑 속에 독을 담으라고했다.

그 달콤한 독이야말로 시청자들을 빠지게 만드는 비법이라고 했다.

“그, 그치만 너무 부끄러워요.”

“왜? 내 가슴 만질래?”

“그, 그게 어떻게 거기로 이어지냐구요!!”

나에게 부끄러움을 벗어던진 언니는 이제 나를 성희롱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나 온라인에서 보던 야한 농담도 웃어 넘기는 나는 언니의 이 성희롱이 익숙하지 않았다.

스트레스

그래 스트레스인가?

언니가 방송 스트레스로 이럴 리가 없고, 내 보컬 트레이닝이 문제인가?

내 눈은 만화적인 표현대로 @.@ 같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진의 강도로 치자면 강도 7의 대지진급

그러거나 말거나 언니는 내 손을 뻗어 언니의 가슴을 만지게 하였다.

“어, 언니!”

“아이 참 왜 그래? 예전에도 유나가 가슴 만지게 해주었잖아?”

“그건 근육!”

“그래 언니의 근육도 만져보렴, 그리고 가슴의 조형도.”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내 얼굴색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에게는 부끄러움이 없는 모양인지 내 손으로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고는 만지게 하였다.

같은 여성으로서는 이정도는 가능하잖아?의 분위기가 아니다.

이건 너무나도 명백하게...

이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이것은...

“어때?”

“부, 부끄러워요...”

“하지만 아까만큼은 아닌데?”

정작 내 손이 언니의 가슴에 닿자 느껴지는 부끄러움은 없었다.

언니의 옷 아래 느껴지는 가슴 근육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들 가슴이라고 부르는 평범한 살결의 감촉이나, 부드러운 지방의 감촉이 느껴진다.

만지기 직전에는 코에 피가 날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정작 만지고 나니 별 거 아니었다.

“그렇네요...?”

“그래, 원래 선을 넘기 직전 그 감정이야 말로 우리가 표현하는 풋풋함이지.

너무 자주 넘으면 카린처럼 가볍게 되어버리고, 너무 아끼면 클라티에나 셀레네처럼 풋풋하게 보여버리지.”

이어지는 언니의 캐릭터 분석론

직장 동료와 다름없는 그녀들의 평소 연기톤이나 캐릭터 컨셉 지침을 말한 덕분에 설명이 귀에 딱 들어왔다.

“그래, 사실 너처럼 사랑이라는 성애적인 감정은 아무렇지도 않는데, 너무 많은 작품을 보아온 탓인지 선을 넘는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단다.”

“심지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사람들조차도 가슴을 간질거리는 이 느낌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 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은 이미 종착점에 도달했으니까.”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그 애매한 감정선을 조절하면서도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깝게 조절할 줄 알아야한단다. 적어도... 내가 유리아를 새롭게 해석해서 성장을 한 배경은 그래.”

언니의 방송 경험과 왠지 모르게 상처나는 듯한 사랑에 대한 해석으로 인해서 나는 무언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숙련된 배우가 연기에 들어가기 전 기억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감정 상태를 이런식으로 조절한 다음 목소리를 내는...

이 상태에서 사람들을 그럴싸하게 홀리는듯한 문장을 내면...

나의 머릿속에서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가 잡힌다.

이성으로 이해한 캐릭터를 언니의 손길을 통해 육체적 감정과 교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지금의 유나는 이전의 유나와 다르다.

이전 구미호 아리아가 내는 목소리는 지방에서 도시의 패션 잡지를 읽고 어설프게 따라한 소녀의 모습이라면

지금은 업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을 받은 모델 그 자체였다.

지금의 나는 다시 태어난 유나, 진정한 구미호 아리아다!

“그런데 유나야? 언니 가슴 언제까지 만질 거야?”

“네!? 앗 미안해요!”

“뭘, 유나의 손길인데 나만 좋지.”

“...”

짓궂은 아저씨처럼 농담하는 언니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이 언니가 내가 알고 있던 언니가 맞는가?

그렇게 나는 언니가 자랑하는 가장 강력한 그녀만의 무기, 사람을 꾀는듯한 그 목소리 연기법과 감정 조절 방법 등등을 익히게 되었다.

**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유나씨,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생활까지 보고 하시는건 좀...”

“A.”

자기 도전류 게임 점프킹

스토리 몰입형 게임 언더 테일

일본에서 인기있는 온라인 게임 에이펙스 레전드

그리고 스토리고 나발이고 신나게 때려죽이면서 텐션을 높이는 DOOM

구미호 아리아의 피지컬과 매력적인 목소리는 시청자들의 몰입을 도왔고, 방송을 시작한지 40일이 다가오는 지금에 이르어서는 나의 게임 실력은 시청자들에게 인정받았다.

영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하는 소통, 그러면서도 한국에서의 슈퍼챗을 읽어주는 나의 소통 방송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고 느껴질만큼 잘 되었다.

합동 방송들 또한 잘 이어져 나갔는다.

타마, 유리아, 클레, 에이아, 미카엘, 아그니, 다비같이 메이드와 함께 방송을 한 경력이 많은 버튜버들에게 메이드가 아닌 구미호 아리아로 다가가게 됨으로서 사람들은 이따끔 일어나는 관계 역전이나, 유리아의 사람이니까 꼬시지 못한 구미호 아리아에게 날린 플러팅의 색다른 반응에 시청자들은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이 때문에 나는 캐릭터의 확장을 위해 좀 더 본격적인 감정 연기와 캐릭터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방면에서는 업계 최고나 다름없는 나에 언니의 지도 아래에 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버튜버로서 크게 발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뭐랄까

나도 모르겠다, 내가 어째서 언니의 그... 과격한 교육을 유키하라 매니저 언니에게 말했는지는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래서 저도 이 목소리를 활용한 콘텐츠로...”

“그런데 그... 유리아님의 지도,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않나요?”

“...네? 네. 확실히 언니는 아직...”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리아의 그 고혹적인 목소리 연기는 아예 이야기를 따로 써서 하는걸로 하죠. 시나리오 오디오 방송같은것도 좋고, 아니면 협찬을 받아서 만화책 읽기 방송도 좋겠네요. 유나의 목소리 연기폭은 뛰어나니까요.”

“그러니까 제 목소리 연기가 더 무르익고 나서 가자는 말씀이죠?”

“네, 아리아는 최고여야 하니깐요.”

“그렇다면 그 동안 매니저 언니가 생각해온 게 있어요?”

“아직 세상사람들은 몰라요. 메이드의 소문을 들어서 아, 아리아가 이런 존재겠구나...하는 건 있지만 말이에요.”

그렇게 말한 나의 매니저님은 갓 사온듯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그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세상에, 생각해보니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자부해도 되잖아?

역시 혼자 방송거리 생각하는 것 보다 매니저의 지원을 받는게 좋긴하다.

“어때요, 가능해요?”

도발하듯 묻는 매니저님의 말에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죠. 몹시 가능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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