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78화 (178/307)

〈 178화 〉 177화.

* * *

머리가 좋은 사람은 무엇을 해도 잘 한다고 하였던가?

아그니는 딱 그런 케이스였다.

선라이즈 소속 버튜버중 가장 고학력자이고, JP소속 인원들 중에서는 여러 언어를 하는 멀티링구얼이였다.

고고학과 이집트 역사 및 신화에 대해서는 전문 박사급 지식을 갖추었으며, 스팀에 존재하는 많은 퍼즐게임들을 다 클리어 할 정도로 머리 쓰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유명하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듀얼

그녀가 오타쿠 길에 빠져들고 버튜버가 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카드 게임의 챔피언을 따낸 일본의 듀얼 퀸이 바로 그녀였고, 그녀는 어느덧 선라이즈의 정상인 겸 두뇌, 때로는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인텔리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벗어던지고자 일부러 머리를 잘 안쓰는 게임, 가령 FPS게임이나 격투 게임 등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다양한 게임에 도전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매력과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의 방송은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다양했다.

물론 네 차례의 라이브에서도 춤이 조금 서툴기는 해도 아이돌의 모습에 걸맞게 아름답고 예쁜 무대를 여러 차례 선보인 그녀는 명실상부한 선라이즈의 대표 버튜버였다.

아무튼 그런 그녀는 자신의 캐릭터를 어떻게 소모해야할지, 어필해야할지 잘 알고 있었으며 그녀가 내건 오프라인 콜라보 방송인 ‘마왕 토벌’의 타이틀을 본 시청자들은 많은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딜가나 느슨한 대화에 야한 농담을 섞어가면서 텐션을 끌어올리는 살아 움직이는 폭탄에 가까운 엘프 카린

개성 강한 동기생들 사이의 유일한 정상인으로 폭주하는 맴버들을 억누르면서도 가끔씩 본인도 폭주하기도 하는 용사 에이아

분위기에 따라서 유치하게 유아퇴행하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같이 방송하는 이들을 카리스마로 휘어잡는 파라오 아그니

이 세사람이 하는 방송은 당연히 기대감이 높아졌다.

캐릭터도 보면 활을 든 카린, 검을 든 에이아, 지팡이를 든 아그니로 완벽한 용사 파티 느낌이 나는 구성원이었다.

“경도하라, 파라오가 여기 있나니! 선라이즈의 파라오, 아그니가 소통을 시작합니다.”

“우와, 선배님 집에 신기한 거 많네요! 앗, 이건 이집트 산 딜…”

“제발 카린!! 선배 집에서 실례 되는 행동 하지 말아줘!”

인사도 하기 전에 아그니의 집 안에 있는 둥글고 길쭉한 모형을 보고 착각한 카린의 발언과 그걸 수습하는 에이아의 필사적인 저지를 시작으로 그들의 방송은 시작되었다.

­우리 엘프가 죄송합니다.

­오늘도 죄송합니다…

­어떻게 선배 집에 놀러와서 하는 게…

­에이아 오늘 죽어나간다 ㅋㅋ

­아그니는 꽤 정상인 축 아님?

­ㄴㄴ 내킬때만 정상인 흉내내고 원래는 망가지는거 좋아함

근황을 묻고 서로 안부를 전하는 평범한 본격적인 방송 전의 6분 가량 토크만으로도 벌써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든 그녀들은 이윽고 ‘마왕 토벌’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건 그날의 방송 소재를 말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링피트

닌텐도 사에서 만들어서 실내에서도 게이머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하는 홈 트레이닝 게임이면서도 그 효과는 상당히 뛰어나서 나온지 일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콘텐츠다.

“오늘의 방송은 다름아닌 링피트로 마왕을 쓰러트리는겁니다.”

“마왕이라면 그, 드래고요?”

드래고는 링피트에서 나오는 근육 빵빵한 검은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파라오는 고개를 저었다.

“드래고보다 더 한 마왕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죠.”

“네?”

그렇게 말한 아그니는 방송을 반으로 분할했다.

버튜버의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아서 권장되지 않는 프로그램 진행 방식이었기에 사람들은 살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잠시 후, 아그니가 경고한 마왕이 등장했다.

“안녕 세상아~ 좋으~~은 아침 점심 저녁이에요. 선라이즈 GB 소속의 구미호, 아리아에요.”

복실복실한 아홉 꼬리

쫑긋 솟은 귀여운 여우귀와 매혹적인 얼굴

다만 평소에 늘 입고 다니는 전통복 대신에 상대적으로 가벼워보이는 트레이닝 복을 입고 등장한 아리아는 유창한 일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라이즈의 파란 그 자체인 구미호의 등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뒤이어 아리아의 광팬들이 방에 몰려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채팅창은 잠시 마비가 걸렸다고 생각 될 정도로 많은 채팅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왕이… 아리아였어?

­어째서?

­아니 근데 아리아라고? 그 GB의?

­그 기부 릴레이 스타트의?

­와 구미호다 겁나예뻐

­일본어로 말하네? 저 사람 GB면 외국인 아님?

­ㄴㄴ 일본인임

열광하는 것은 채팅뿐만 아니었다.

그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버튜버들 또한 드디어 자신의 방송에 등장하는 아리아=메이드의 모습을 보고 크게 반겨주었다.

그 중 가자 열정적인것은 당연히 카린이었다.

“아리아, 드디어 이 엘프의 부탁을 들어주는구나! 합동 방송 하고 싶었어.”

“제발 선배로서의 체통을 지켜줘요!!”

“하아아… 집 주인으로서 미안하구나.”

변태로 이름 높은 카린은 당장 이 예쁘고 탐스럽게 생긴 미인 구미호를 껴안고 싶어하는 듯 발광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대담한 시도는 에이아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런저런 소란 이후로 본격적으로 링피트 방송이 시작되었다.

상대적 유경험자인 에이아와 아그니가 초보자인 카린과 아리아의 설정을 시작해주는 것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왼쪽 화면엔 아그니, 에이아, 카린이 오른쪽에는 아리아 단독으로 캐릭터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 구상을 본 시청자들은 어렴풋이 마왕 토벌이 아리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어서 방송의 컨셉을 아그니가 말해주었다.

요약하자면 선라이즈에 갑자기 나타난 요괴 구미호를 토벌하라는 선라이즈의 부탁을 들은 용사와 엘프, 파라오가 그녀에 맞서 링피트로 대항하는 퀘스트라는 요지였다.

세 사람은 한 팀으로 번갈아가면서 그녀와 맞서고, 체력이 먼저 떨어지는 쪽이 패배한다는 매치였다.

­구미호 퇴치인거야?

­근데 왜 마왕이지?

­후배에게 1:3은 비겁하지 않나? 좀?

­걱정마, 카린은 최약체야

­우리 파라오님도 몸 약해

­그래도 체력이라는게 있는데 ㅋㅋㅋ

“이제 마지막으로 운동 부하를 설정한다음 동작 테스트에 할건데…”

카린은 들을 필요도 없이 최저치인 1로, 아그니는 10, 에이아는 15를 맞추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적자 역할을 하게 된 아리아는 우측으로 최대한 끌어올린 30을 맞추었다.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는 ‘설마?’하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좋아한다고 말했던 이 구미호가 사실은… 어마무시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이윽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다함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이후에는 기본적인 제자리 뛰기 운동, 그러면서도 링피트를 모으거나 잡아당기면서 공기포를 쏘면서 코인을 가져오는 가벼운 게임이 시작되었다.

“헉…헉… 아이고 나죽네.”

선라이즈에서 유명한 체력 고자 겸 개복치로 알려진 카린은 튜토리얼 맵의 2/3을 클리어하고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반면 구미호 아리아는…

다다다다다닥!

타닥타닥 하는 제자리 발걸음 소리가 시청자들의 귀에도 들려오고 그보다 더 큰 소음­ 그러니까 그녀의 손에 들린 링피트 기구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소리를 낸다.

“오오, 이거 재미있네요?”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말을 한다.

운동 기구를 험하게 다루면서 내는 소음에 지지않게 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게임 속 캐릭터는 나는것처럼 달려나갔다.

­…

­???

­아니 저거 하면서 말 한다고?

­유산소 운동하면서 말을…?

­아리아 운동 부하 30 맞지? 운동부하 3 아니지?

­뭔 소리가 ㅋㅋ

이윽고 준비운동 게임이 끝나고 획득한 점수 차이가 공개되었다.

운동 부하를 떠나서, 정확한 자세로 운동을 수행하고 더 많은 반복 행위를 한 플레이어가 당연히 점수가 높았는데… 카린과 아리아의 스코어 차이는 세 배가 났다.

물론 선라이즈 최약체인 카린이 약하기에 그녀가 이길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아가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각인이 되었다.

“선배님들! 빨리 다음 게임 해요!”

“어… 응, 그래.”

카린에 이어서 링피트를 받은 아그니가 굳은 어조를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당연했다.

보기에는 얇아 보여도 링피트가 이루어진 섬유 강화 플라스틱이 얼마나 탄탄한지 알고 있는 아그니는 아리아의 손에 장난감처럼 휘는 링피트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그니는 아는 만큼 그녀의 괴물같은 면모의 편린을 보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자들은 신이났다.

­주인님 산책가자, 가 떠오른다

­아 우리 리트리버 싯포 오늘 산책 안시켰는데…

­…쟤 여우 맞지? 대형견 아니지?

­아니 링피트 처음 하는 사람 맞아? 왜 저렇게 신나있는데

­아니 ㅋㅋㅋㅋㅋ 안 힘드냐고 ㅋㅋㅋ 쟤 뛰면서 운동하면서 말까지 했잖아

­이게… 글로벌? 세상의 벽이 이렇게 높단 말인가?

­이거 3:1 쌉가능할지도 ㅋㅋㅋ

인도어 활동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저질 체력과 운동 부족으로 유명한 선라이즈

그것은 아이돌 데뷔를 위해 체력 운동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모든 방송인들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들만의 세상에 괴물이 등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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