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2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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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우키는 내가 추천에 추천을 거듭한 원피스를 사고 말았다.
산 김에 입어보라는 나의 적극적인 권유에 부끄러움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원피스를 입긴 입어도 그건 니 앞에서 입을건 아니니까 꿈 깨셔!’라는 말을 들었다.
짜식, 솔직하지는 못하기는…
쇼핑을 하는 도중 여름 원피스에 눈이 간걸 내가 모를 리 없는데
관심이 없는 척, 나에게는 저런 옷이 어울리지 않아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 속마음에는 입고싶다는 마음이 존재했기 때문에 나는 추천했다.
입으로는 싫다싫다 하지만, 눈으로는 내가 추천해주는 원피스들이 자신에게 어울릴지 아닐지 계산하는 게 딱 보이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소녀의 마음 비스무리한 것을 보니 순수하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그 덕분에 유우키가 나를 좀 째려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선라이즈에 들어가고 난 이후 알게 된 사람 중에서 가장 정서가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그러니까 변태와 장난꾸러기가 넘쳐나는 버튜버 집단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마음이 놓이는 친구가 유우키와 같이 쇼핑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어 치운 4일째 휴가의 낮은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길한 하얀 머리카락의 소녀를 만나기 전 까지였다.
일본에서 보기 드문 색이라고 할 수 있는 백발의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다가오고 있었다.
여우를 연상하게 하는 날카로운 눈매에는 장난기가 깃들어 둥글게 휘었고
마스크를 굳이 벗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특유의 미소를 지었을것이라 100% 예상되는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녀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우연이! 유나가 아닌가요!”
보기만 해도 활기가 솟구쳐오는 싱그러운 존재지만
그녀에게 워낙 데인 것이 많은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이나리 선배라... 그러고보니 버튜버로 데뷔한 이후로는 본 적이 없구나
"요, 창창한 봄 날씨에 후배들끼리 데이트라? 그것도 선라이즈의 미남 유우키군과 미녀 유나쨩이라니.
역시 휴가 기간에도 스캔들 만들기에 멈추지 않는구나!"
"서, 선배 다른 사람에게 들린다구요!"
"어허, 이 소음 속에서?"
그녀는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얄미워서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지만 천하의 선배님에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분을 삭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어쩐 일이세요?”
하지만 이나리 선배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나와 유우키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어디를 가자는 듯, 우리들을 잡아당겼다.
나와 유우키는 서로 바라보고는, 이 제멋대로의 선배님에게 어울려주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서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교환하고는 선배를 따라갔다.
선배가 향한 장소는 역 인근에 위치한 공터였다.
귀여운 강아지 동상과 함께 복잡하기로는 소문이 난 일본 시내에서 몇 안 되는 약속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갑갑하게 집안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는 예술인도 있었던 모양인지 버스킹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통학하던 시절에는 돌아오는 길에 전철역 앞에서 버스킹을 제법 봤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도통 본 적이 없었다.
“별을 올려다 보아요~”
얼핏 보면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를 사람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도시 소음 속에서도 흥을 잃지 않는 기타 연주 소리와 서정적인 가사의 가사가 울려퍼진다.
“그대 있는 곳이라면 나 어디든지 날라갈 수 있게 창문을 열어줘요~”
노래 실력이 좋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름 유명세가 있는 가수인 듯 그녀의 버스킹 장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조그만 보따리 위에 아티스트가 직접 구운 앨범 CD가 놓여져 있었고, 이나리 선배는 그녀의 음악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금함에 돈을 집어넣고 CD를 세 장 구매하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어때, 우리 유즈키 노래 잘 부르지?”
그렇게 말하는 이나리 선배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과 행복함이 가득했다.
마치 좋아하는 가수를 직접 본 팬의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이나리 선배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이야, 나와 유우키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선배를 바라봤다.
이윽고 유즈키라는 길거리 공연 예술가는 30분 정도 노래를 더 부르고는 다른 아티스트가 도착하기 무섭게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떠났다.
“5년 전부터 꾸준히 응원하던 아티스트야.”
돌아가는 길에 나와 유우키에게 방금 전 구매한 CD를 한 장씩 쥐어주면서 선배가 꿈을 꾸는 표정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도쿄에 올라와서 아는 사람도 적고, 영세하게 시작한 버튜버 방송 또한 완~전히 초심자라서 구독자가 200명 정도여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우 힘겹게 살아갈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은 그녀의 노래가 참 치유가 되었지.”
쾌할한 어조로 과거의 이야기를 한다.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버튜버라고 할 수 있는 이나리 선배는 선라이즈 최초의 100만 구독자를 의미하는 골드 버튼의 소유자로, 이제는 인터넷 방송 뿐만 아니라 공중파 예능 방송에도 나가기도 하는 유명한 버튜버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녀가 어떤 힘든 과거를 보내왔는지 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버튜버라는 길을 가는 내 모습과,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도심 속에서 혼자 열심히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나와 겹쳐 보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도 그녀의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새 힘이 나지 뭐야?”
지금처럼 생방송으로 진행하지 않고 버튜버 아바타를 활용해서 동영상을 완성하고 편집된 동영상을 유튜브에 투고하는 것이 버튜버의 첫 시작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직접 어설픈 기술로 만든 버튜얼 아바타를 가지고 생방송을 하기 시작한 이나리 선배는 영세한 개인 인터넷 방송인+버튜얼 아바타 기술을 활용한 괴짜와 다를 바 없었다.
그 때문에 이유도 없이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치유받는 기분을 느끼고 나니, 아 나도 방송을 하게 되면 유즈키처럼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힘을 나게 하는 긍정적인 방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하지만 선배는 그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방송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지금의 사장에게 스카웃을 받고 선라이즈의 기술과 투자를 받아서 제대로 된 버튜얼 아바타를 가지게 된 선배는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버튜버가 되었다.
“그래서 선배의 방송이 텐션이 높은 이유가...?”
“응,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결국 방송 일이 익숙해지다 보니 방송을 켜는 게 즐겁고, 게임을 하면서 떠드는 게 즐겁고, 후배들 놀리는 게 즐거워졌지.
나중에는 즐거움을 찾으려고 방송을 켜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지 뭐야?”
누군가가 말하기를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천성이라 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먹고사는 것을 천직(??)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회사 버튜버들은 방송하는 것을 천직 삼아서 하는 이들이 참 많은 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사이, 어느새 이나리 선배와 처음 만난 역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네 시 삼십 분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학교가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운이 좋은 이른 퇴근 시간일수도 있는 시간이다.
우리 회사 버튜버들에게 있어서는, 대게 이때 쯤이면 회사에서 하는 일들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개인 방송을 준비할 시간이기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분위기를 가졌다.
그렇게 분위기에 타서 주차장으로 향하던 나와 유우키를 향해 이나리 선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나, 유우키”
“네?”
“이건 선배가 호옥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해주는거니까, 흘려 듣고싶으면 흘려 들어도 되는 이야기야.”
평소 장난기가 많은 선배답지 않게, 목소리를 살짝 낮게 깔고 가벼운 분위기를 지워낸 그녀가 나와 유우키를 향해 조언했다.
“너희들은 이제 유명인이라는 거 알고 있지?”
버튜버 팬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던 메이드 라와 다르게, 버튜버 팬 의외의 인터넷 방송인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 아리아와
타고난 인싸력으로 이제는 합동 방송에 빠지면 뭔가 아쉬운 존재가 된 에이아는 일본의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인지도가 있는 캐릭터다.
그렇기에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우리들 또한 유명인이라고 보는 게 맞기에, 나와 유우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은 유명인이기는 해도, 이것을 현실적으로 언급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운 직업들이야.
뭐 그렇다고 해도 냉전 시대의 스파이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고 국가를 위해 죽는 그런 엄격함은 요구되지 않지만, 우리는 다른 인터넷 방송인들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대중적인 인기인들은 아니야.”
“네, 말 그대로 버튜얼 유튜버니까요.”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적어도 특정 계정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어지간한 지방 방송국의 연예인들에 비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단다.
오프라인에서 스타들의 일상을 스토킹하는 파파라치들이 있다면, 온라인에서는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스토킹하는 렉카 유튜버나 하지도 않는 발언을 소문 삼아 부풀리는 관심종자들이 팬들만큼이나 따라붙게 되지.”
그 순간 유명한 위키에 달린 이나리 선배의 사건사고 역사 기록을 떠올린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방송 버튜버로는 최초로 골드 버튼을 받은 이나리 선배는 본인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건 생각보다 많은 음해와 사고들이 겪어왔다.
“만약 우리가 그냥 인터넷 방송인이면, 우리들도 그런 근거없는 소문이나 악의적인 이야기에 대해서 개인 방송을 열어서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밝히고 유튜브 영상으로 해명 영상을 올리면 되지만, 우리들은 선라이즈라는 기업에 소속해있기 때문에 그런 유연한 대처를 하는 게 어려운 편이야.
너희들도 사실 알고 있겠지만, 우리 회사는 기술 개발쪽에 목숨을 걸었지, 막상 아이돌을 육성한다는 이야기 치고는... 이런 미디어쪽의 대처는 좀 무능한 편이긴 해.
방송 일과 소속사의 일은 다른 데, 소문에 대한 대처나 회사의 입장 발표는 정말 느린 편이야.”
“하하하.”
회사 고참 선배의 지나치게 솔직한(그것도 일본인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발언에 나와 유우키는 살짝 어설픈 웃음을 터트렸다.
“유명한 사람들은 유명한 만큼 일상 생활에 그것을 자각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우리들처럼 23명 전담하는 매니저가 아닌 전용 매니저가 붙고, 운전을 담당하는 로드 매니저나 코디네이터가 붙어다니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유명하면 유명한 만큼 실제 미디어가 붙어다니지.”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에서만 유명해, 그래서 개인의 인기나 미디어의 영향력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아. 이 간극 때문에, 스스로의 유명세를 자각하지 못하고 쉽게 말을 저질러 버릴 때가 있어. 특히 트위터에 투고하는 글들은, 아무리 멤버들에게 보내는 가벼운 글들이라고 해도 조심에 또 조심을 기울이도록 해.”
“그리고 아무리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대처가 느려터지다 못해 속이 타더라도 회사에 먼저 연락을 하는 게 중요해. 알겠지?”
그렇게 빠르게 자신이 할 말을 다 말한 선배는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유우키를 한 번 쓰다듬고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마치 여우에게 홀린 듯 우리는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차에 탔다.
“그러고 보니, 이나리 선배가 예전에 특정한 싱어송라이터를 응원하는 글을 남겼다가 ‘가족이냐’ ‘스폰이냐’같은 악질적인 소문에 휘말린 적이 있었데.”
“아...”
“뭐, 당시에는 선배에게 안티들이 많이 붙던 시기라서 더욱 그러긴 했는데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별 거 아닌 일로 흘러갔고, 선배에게나 그 아티스트에게나 소문이 나는 게 결국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져서 나름 좋게 끝났게 보면 되지만...”
“그럼 선배는 우리에게 이런 경고 하려고 온걸까?”
“그건 모르지, 이나리 선배잖아.”
농담 삼아서 회사 동료끼리 신기(??)가 있다고 말하는 이나리 선배다.
제멋대로 나타나고 제멋대로 사라지는 게 참 선배답다고 해야할지
옛날 동화에 나타나서 조언을 주는 현명한 여우답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나와 유우키는 ‘우리가 과연 유명한가, 유명한다면 얼만큼 유명한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유우키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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