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 229화.
* * *
일반적으로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이 내는 음악들은 따라 부르기 쉬운 대중음악이라 분류할 수 있는 곡들이 대다수였다.
그도 그럴게 원래 아이돌의 팝 뮤직을 다르게 풀어서 표현하면 대중가요라고 할 수 있고, 이른 음악들은 쉽게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르기 편한 곡들이 많았다.
가끔 키를 높게 잡아서 남자가 따라 부르기 힘들거나 박자가 독특해서 맞추기 어려운 곡들이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몇 번 듣다 보면 따라 부르기 편한 곡들이 많았고, 신나는 멜로디와 풍성한 사운드를 통해서 단조로움을 보완한 곡들이 많았다.
이런 식으로 ‘아이돌 음악’들을 부르는 선라이즈 버튜버들의 트랜드에 반항을 하듯 자신만의 곡을 만들어 낸 이가 있었으니, 그녀는 다름아닌 GB 소속의 셀레네였다.
평소 방송에서도 음악적 재능을 숨기지 않았고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항상 말했던 그녀는 종종 유튜브에 자신만의 음악을 올렸다.
싱어송라이터처럼 기타를 연주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어쿠스틱
시끄러운 연주 소리 사이에 혼을 담아 내지르는 록
감정을 거친 표현으로 화를 내듯 내뱉는 힙합
일본어의 운율에 맞춰서 이야기와 교훈을 노래하는 라쿠고 등등
그녀는 하나의 음악에 멈추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작곡하고, 편곡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가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그 이후, 일반 아이돌을 따라하려는 듯 한 스타일만 고집하던 선라이즈의 음반들도 다른 장르의 음악을 도전하면서 음악의 지평선이 점점 넓혀져 갈 무렵, 아이돌들의 음악은 이래야만 한다는 일본인들의 상식을 부수려는 듯 새로운 앨범이 등장했다.
현재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로서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한 이후 많은 이슈를 만들어 낸 구미호 아리아
버튜얼 아이돌이라는 컨셉을 지키고자 선라이즈의 그 누구보다도 음악 활동을 활발히 이어나갔던 코모레비
이 두 사람이 합동으로 앨범을 내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커뮤니티 내부에 번져 나갔다.
그도 그럴게, 두 사람은 이미 음악적 재능은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는 팬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번 앨범을 담당한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선라이즈 소속의 유명 아티스트인 니아였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대망의 발매일인 4월 7일의 하루 전날인 4월 6일의 저녁
아리아의 첫 앨범이면서도 코모레비의 세 번째 앨범인 ‘푸른 혜성에 빌어’의 타이틀 곡인 ‘닫혀진 하늘 아래에서’가 공개되었다.
두 사람을 알고 있던 이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녹아 내려가는 하늘 아래, 머나먼 저편에 있는 그대에게 노래할게. 바람아, 내 목소리를 싣고 나아가다오.”
뇌리에 꽂히듯 시원하게 내지르는 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테니스로 비유하자면 강력한 서브 샷이었고
야구로 비유하자면 초구 홈런이었다.
다른 버튜버들의 음악을 생각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혼내는듯한 시원한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노래하는, 멸망하는 세계 속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미친 이게 도대체 뭐야?
버튜버가 이런 음악을??
어이 미쳤다고 이건 그냥ㅋㅋ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 그러니까 흔히들 모에 보이스라고 하는 여성이 내는 귀여운 목소리로 벌꿀처럼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일본 아이돌다운 음악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수가 모든 역량을 모조리 끌어모아야 낼 수 있는 목소리로, 세상의 고난 속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소프트 록에 가까운 음악이었다.
와 근데 진짜 잘 부르긴 한다 두 사람
코모레비가 노래 잘 부르는 건 알고 있었는데, 코모레비와 비슷하게 노래 부르는 쟤 누구임? 아리아?
GB소속의 신인 구미호 아리아임. 원래 노래 잘 부르기로 글로벌에서도 유명한데, 미쳤네 진짜
셀레네 덕분에 아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는데, 이런 멋진 곡을 내다니 울 수 밖에 없잖아ㅠㅠ
그것은 귀여움을 극대화하며 모든 여성은 반드시 멋지다 보다는 귀여워야만 한다! 하는 기존의 흐름을 벗어나는 울림이었다.
때문에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거 근데 아이돌 음악 보다는 좀....뭐라 해야하나, 그냥 록 밴드 음악 아니야?
ㅋㅋ애초에 선라이즈 버튜버들이 아이돌임? 나모가 듣고 웃겠다.
아 맞다. 그렇지 참!
아 맞다는 무슨 맞다야! 너무하네 진짜 ㅋㅋ
아무렴 어때 노래가 듣기 좋으면 그만이지 ㅋㅋ
하지만 애당초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이 열심히 활동해온 결과, 아이돌 보다는 예능인...에가까운 이미지가 잡혀버린 까닭인지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은 아이돌이니까 무조건 귀여운 음악만 불러야 해!’하는 이들은 적었다.
오히려 그런 이들 보다는, 이 좋은걸 나만 알고 있으면 안 돼! 하는 흐름들이 더 많았다.
오타쿠 음악이지만 오타쿠 음악이 아닙니다.
솔직히 노래 실력만 보면 그냥 음악 잘한다는 애들하고 비교해도 되겠는데?
아리아는 이미 공중파에서 소개 된 목소리라구 ㅋㅋ
그런 아리아와 호흡 맞추는 코모레비는 뭐냐고 또 ㅋㅋ 노래 잘 부르는 건 알고 있었는데 느낌이 아예 다르네
일단 퍼가자.
해외 형들이 벌써 번역 영상 만들었네 ㅋㅋ
이건 그냥 팬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추천해줄 만한 곡이야.
그렇기 때문일까?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추천해줄 수 있는 잘 만든 곡은 메인 컬쳐인 인터넷 방송과 서브 컬쳐인 오타쿠 문화를 한 발씩 걸치고 있는 버튜버라는 특수한 장르성에 힘입어서 거리낌 없이 확산되었다.
**
“츠유야 대박이야! 우리 음반이! 우리 PV가!”
“저저저저,보보고 있어요, 버, 벌써 83만회라구요?”
“이,일본 인기 급상승 순위 1위야 우리!”
우리의 영상이 공개된 그날 밤
오랜만에 듣는 코이즈미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다급히 놀란 나는 츠유의 집으로 처들어갔다.
영문을 모른 채 멀뚱멀뚱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츠무기와 그런 츠무기를 얼싸안고 있던 츠유는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안겨왔다.
그도 그럴게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인기 급상승 1위를 찍은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인구수가 한국에 비해서 훨씬 많은 일본에서 말이다!
솔직히, 솔직히! 노래를 녹음했던 나는 잘 되겠지라고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의 인기를 기대한 적은 없었다.
숱한 일본 아이돌들도 달성하지 못했던 그 영역을 밟을 수 있었다!
물론 활동 분야가 인터넷과 공중파는 엄청나게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아무튼 그렇다고!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으에에에에....”
괴성을 지르는 나와 츠유 사이에 낀 츠무기가 이상한 소리를 내었지만 우리는 아주 솔직하게, 잠옷 차림으로 나갔던 내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했던 언니가 나를 끌고 내려가기 전까지 이 기쁨을 만끽했다.
잠시 후
“유나야 진정했니?”
“넵.”
“츠유는?”
“저도 그렇습니다.”
“츠무기는 들어가서 마저 자렴, 언니들이 철없어서 미안해.”
“아, 안녕히주무세요...”
상황을 정리하듯 때아닌 소란을 제압한 나에 언니의 지도하에 미성년자인 츠무기는 먼저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고, 나와 츠유는 경찰에 잡힌 도둑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1층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가 따라주는 시원한 물을 마시고 흥분이 가라앉힌 우리는 화가 잔뜩 난 나에 언니의 말을 기다렸다.
“한 사람의 크리에이터로서, 선라이즈에 속한 동료로서, 너희들의 이웃이자 친한 친구로서 나는 너희들이 마땅히 축하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오히려 내가 너희들에게 있어서 가까운 사람이라는 게 나는 기뻐.”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나에 언니는 확실히 ‘언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야밤에 소란을 일으켜도 정도가 있지... 특히 유나.”
“넵.”
“너... 세수하다 말고... 왜 그 차림으로 올라간거야?”
가만
그러고보니 내가 전화를 어떻게 받았더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내 차림을 돌아봤다.
속옷이 살짝 비치는 얇은 여름 잠옷
그리고 내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적나라하게 가려주는 바지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슨 추태를 저질렀는지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어쩐지 언니가 필사적으로 올라왔더라!
“미성년자인 중학생이 있는 집에 속옷 차림으로 처들어 가는 건...”
말을 흐렸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언니의 ‘경멸’이었다.
눈빛부터 말하는 어조까지 완벽한 경멸 그 자체였다.
만약 언니의 팬들이 여기에 있었더라면 좋아죽겠지만, 나는 언니의 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언니 제발 거기까지만요. 저 쪽팔려 죽을거같아요.”
“그리고 츠유! 너도 여동생이 있는데 그렇게 소리만 지르면 어떻게 하니? 애가 혼란스러워 하는 거 안 보여? 평소에 워낙 당돌하고 야무져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죄, 죄송해요!”
“아무튼, 우리 바보 때문에 옮은 거로 생각할게. 너도 이만 올라가서 여동생 좀 달래주렴.
기쁜 일이 생겨서 좋은 건 좋은 건데, 어린 여동생이 너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데 이정도 배려는 가족으로 해줘야지?”
뭔가 나하고는 대하는 게 천지차이이지 않아요 언니?
아닌가?
나이 많은 내가 좀 더 어른스럽게 대했어야했나?
그래도 조금 서운한데?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있던 나는 츠유를 바래다주고 온 언니가 돌아올 때 까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잠시 후, 현관에서 돌아온 언니는 나를 그대로 안아주었다.
“어이구 우리 유나 장하다 장해, 언니는 못해 볼 유튜브 인기 급상승 1위를 찍다니!”
아까와는 전혀 다른 오구오구 텐션에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짓던 나는 언니의 쓰다듬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그런 내 혼란스러운 시선을 읽었는지, 언니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나가 팬티 차림으로 뛰쳐나가지만 않았으면, 그것도 중학생 소녀가 있는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으면 이렇게 화내지도 않았을거야.”
그러니까... 문제는 내 옷차림이란 말인데 이에 대해서는 뭐라 변명할 거리조차 없는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내가 귀엽게 보였는지 언니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내 볼을 잡아당겼다.
마치 내가 언니의 귀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가 언니의 볼을 잡아당기듯 말이다!
“그리고 100만 구독자 달성 축하해!”
“에?”
“그나저나 대단한걸? 언니에 이어서 골드 버튼의 소유자가 되다니 말이야.”
멍한 표정을 짓는 내 얼굴 앞으로 언니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선라이즈 아리아의 채널’
‘구독자 100만 141명’
평소와 전혀 다른 단위의 숫자가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