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52화 (252/307)

〈 252화 〉 251화.

* * *

별들이 내려다보는 하늘 아래

저기압과 고기압이 만난 부드러운 바람이 모래를 살포시 만지는 해변가

적막함을 달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깨어났다.

영원할 것 같은 파티가 끝나고 낯선 환경에서 신나게 노느라 지친 친구들이 잠든 모습을 본 나는 절로 미소 지었다.

해변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한 입장에서 이렇게 전심전력으로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으니까.

“으으~”

마지막 기억으로는 의자에서 잠들었지만, 바깥에서 자는 나를 그녀들이 옮겼구나, 하면서 상황을 파악한 나는 그녀들을 깨우지 않게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켠 나는 조리를 신고 차 밖으로 나왔다.

도쿄 시내였다면 불쾌한 후덥지근한 바람이 나를 반겼겠지만, 해안가 특유의 시원한 바람이 나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간질였다.

서울과 도쿄의 하늘에서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별들이 맑은 공기 탓에 선명하게 보이는 나는 이 상황이 참 로맨틱하다고 생각헀다.

시끄러운 전화 소리나 SNS 알림음, 호기심을 자아내는 회사 메일 알림이나 유키하라 언니의 연락이 없는 이 완벽하게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공간에서 나는 감성적으로 변했다.

마치 번잡한 속세를 벗어나 산에 오른 승려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나는 해변가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오타쿠 생활을 해서 그런가? 평소보다 여행의 감동이 큰 거 같네.”

취업, 오타쿠 생활, 코로나, 인터넷 방송인 데뷔

이 네 가지가 운명의 매듭처럼 나를 감쌌기 때문일까?

그동안 도통 여행을 떠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여행 욕구를 해소한 것 같았다.

역시 문화 콘텐츠 사업을 극한으로 즐기고 활용하는 직업을 가지긴 해도, 나는 역시 바깥이 좋은 사람이었다.

“오타쿠 실격인가?”

그렇게 스스로 자조하면서 나는 해변을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모래사장에 새겨지는 발걸음에 고민을 꾹꾹 눌러 담고

발등을 쓰다듬어주고 물러가는 바다에 고뇌를 흘러 보내면서 나는 평소와 다른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신작 만화, 에니메이션, 업계 인사의 주요 뉴스, 방송 일정, 기획 따위가 아니라

평소 생각하기 힘들었던 주제, 가령 가족 말이다.

사실 나는 스스로를 코리안 유교 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와 대판 싸운 입장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라는 공부보다는 아이돌이 되고 싶다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부모님에게 졸랐으니 말이다.

개방적인 아버지와 다르게 보수적이고 전통 가치를 중요히 여기는 어머니에게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딴따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고집으로 시작된 아이돌 데뷔는 어머니에게 지기 싫다는 오기, 여기서는 더 물러날 수 없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나는 독종처럼 살았다.

“따지고 보면 중2병이었네.”

자아가 비대해지면서, 재능을 알게 되면서 생긴 자신감과 오만함

빛나는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사람이 내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경쟁 사회를 강조하는 한국의 정점에 선 엔터테이먼트 아니랄까봐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연습생들을 ABC반으로 분류하고 각 파트별로 트레이너와 선생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높은 반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에서 C급 반에서 A급을 1년도 되지 않아 올라간 인재는 내가 유일했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틀렸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가진 재능과 어른들의 찬양과 격려는 나를 그 누구보다도 높은 곳으로 이끌었고

발밑을 보지 않았던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의 자살과 함께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떨리는 마음과 움츠러드는 몸, 불안정해지는 목소리

새하얀 순백의 스테이지에서 그 아이의 시체가 보이는 트라우마를 가진 나는 아이돌의 길을 포기했다.

하지만 몰락한 귀족들이 옛 영광을 잊지 못하듯

나는 그 화려한 연예인들의 삶, 아이돌의 삶을 잊지 못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다면 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존재가 되거나 그 그림자가 되리라고 생각한 나는 어머니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척했다.

그러고는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

한국 아이돌들이 다음 진출 무대로 삼는 일본에서 업계에서 알아주는 대학과 학과를 나와 자격증을 배운다면 스태프로 아이돌의 삶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의절했다.

다행히 등록금은 아버지가 해결해주었지만, 학비는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도와준 건 프로게이머가 된 동생이었다.

그 후에는 뭐 죽기 살기로 노력했고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참 웃긴 사람이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을 죽기 살기로 달려 나가는 게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한국인다웠으니 말이다.

이가 안 되면 잇몸으로 손가락이 부러지면 팔목으로 독하게 앞만 보면서 달려나가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삶이 막막해졌다.

인맥을 관리하고 관리된 인맥으로 꿈을 펼쳐 나가려던 나의 삶은 중국이 가져다 온 커다란 재앙으로 인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이국의 표류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언니를 만났다.”

쿠로가와 나에 언니를 만났다.

그게 컸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운 만남이었다.

방음 시설도 갖추지 않고 방송하던 언니는 직업을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대뜸 버튜버라고 밝혀버렸다.

회사의 비밀 유지 계약을 신경 쓰지 않던 언니나 그 의미를 모르던 나는 처음 탱고를 추는 어설픈 파트너처럼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은

나의 미래는

.

.

.

“유나야, 안녕?”

이 언니가

야밤에 여자 무서운줄도 모르고 혼자 돌아다니

자기 귀여운 줄 모른다니까?

나참, 무슨 자신감으로 야밤에 저런 차림으로 산책을 한담?

정말이지 위험한 줄 모르는 언니라니까.

눈을 두 번 깜빡이는 순간에 언니를 걱정하는 서른 다섯가지의 생각과 해맑게 웃는 모습에 언니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마흔다섯 줄의 문장이 떠올랐지만 내가 입에 담은 건 한 단어였다.

“언니!”

우려와 반가움이 담긴 내 목소리에 언니는 베시시 웃었다.

나는 예전에 온천 여행을 떠올렸다.

달빛 아래 정원에 서서 나에게 멀어지지 말아달라고, 나를 잊지 말아달라며 물망(?忘)하던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것 같은 요정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을 비껴나가는 요괴나 선인처럼 소녀처럼 해맑게 웃는 언니가 거기 서있었다.

깊은 바다 속 용궁에서 외유를 나온 공주님이 저러할까

낮에도 그렇게 물놀이를 즐기고도 언니는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안아줘.”

누구의 말이라고 거절할까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린 뱃사람처럼 홀린 듯이 다가간 나는 언니를 껴안아 올렸다.

여전히 작고 어린 체구다.

하지만 꺼져가던 생명처럼 느껴지던 과거와 달리, 언니에게는 충만한 생명력이 있었다.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갈구하던 소녀가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들게 하는 그런 생명력 말이다.

“여전히 유나는 나의 편이네.”

버튜버와 매니저의 관계에서 버튜버와 버튜버의 관계가 되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보살피던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가 되었다.

지칠 때 서로 등 기댈 수 있는 사이 말이다.

“그럼요.”

그렇기에 언니의 안식처가 내가 되었듯

나의 안식처 또한 언니가 되었다.

호기심을 갈구하고 나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던 조그만 인형 같던 언니는

나의 인생에 녹아들고 나의 가슴속에 들어오고 나의 혼에 녹아들었다.

그래

마치 산소처럼 말이다.

나의 품에 안긴 언니는 장난스럽게 내 입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마치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파다가 오고 가듯

언니의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말이다.

“조금 더 깊게 자지 그랬니? 운전하고 놀아주고 먹여주느라 고생했는데.”

사실 나도 지금의 내 기분을 모르겠다.

원래 대로라면 깊이 잠드는 나는 어지간해서는 정해진 시간이 아니고서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술을 마셔서 생체 리듬이 살짝 흐트러졌어도, 나는 항상 해가 터올 무렵 일어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글세요, 언니가 사라져서 그런가?”

살짝 힐난하는 어조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낯선 장소에서 혼자 이렇게 무방비하게 돌아다니다니 무책임하지 않는가?

이러다가 감기라도 들면 어쩌자고 그럴까.

“피, 그래도 내가 언니인데?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어.”

나의 품에 어린 공주처럼 안긴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 퍽 우스웠다.

“흐응, 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째 불경하다?”

“불경하다뇨.”

언제나 요괴처럼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언니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찔린 구석이 아예 없는 게 아닌 나는 변명을 하는 대신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위에서 아래로

조금 강압적으로 말이다.

“정말이지, 언니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거 같아.”

어느새 떠오르기 시작한 일출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장난이 과격한 까닭이었는지

언니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이지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글쎄요, 조금 더 ‘존중’해드릴까요?”

“...”

야해 보였다.

목소리로 수익 창출 금지 및 경고문을 받은 적 있는 아리아의 보이스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이 풍겨져 나왔다.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더 품어져 나오는 그런 매력 말이다.

“변태.”

그 말에 나는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탐(?)하라

탐(?)하라

탐(?)하라

욕망을 채우라고 내 심장이 명령했다.

욕망울 채우지 않는다면 이성의 끈이 뒤틀린다고 협박하듯, 언니가 내뱉은 말은 레이스의 스타트를 끊는 신호탄처럼 나를 움직였다.

“자, 잠깐만!”

아무도 오지 않는 고요한 바닷가

차가운 밤바다의 파도조차 식히지 못한 열망이 차올랐다.

“유나야? 유나야!?”

“언니.”

“아무리 그래도 여긴 바, 바깥이고!”

설마 자신이 장난처럼 내뱉은 말이 이런 결과를 일으킬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까닭일까?

자신의 매력으로 사로잡은 포로가 급작스럽게 일으킨 반란에 대응하지 못한 마녀처럼 언니의 목소리는 당혹 그 자체였다.

“쉿.”

발버둥 치는 언니의 몸짓을 억누른 내가 말했다.

별들이 사라져 가고 태양이 모습을 보이는 순간, 설명하지 못할 마력에 일어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나는 모든 고민을 잊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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