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54화 (254/307)

〈 254화 〉 253화.

* * *

합동 방송에는 보통 벽이 있다.

그도 그럴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아는 사람 끼리 모여서 방송하는 게 무슨 벽이 있겠냐고 묻겠지만, 실상을 돌이켜 보면 조금 다르다.

가장 예민한 문제는 수익 분배다.

당연했다.

사람은 일한만큼 벌고 싶어했으며, 두 명이서 동등한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그날의 컨디션이나 능력에 따라 방송진행능력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고, 방송에 대한 기여도를 퍼센테이지로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팬들 또한 방송에 돈을 쓰지 특정 누군가에게 돈을 쏘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고, 하물며 있다고는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수백개에서 천 개 가량의 도네이션 채팅이 쌓이는 방송 상황 속에서 누구에게 얼마 분배하기는 까다로웠다.

특히 캐릭터 컨셉을 지키고 이것을 유지해야할 의무가 있는 버튜버들이 모인 선라이즈 같은 경우 격의없는 방송은 보기 드문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2년차 이전의 이야기고, 3년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단순한 수익 분배나 방송 지분같은 골치아픈 ‘어른의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모이는 멤버들이 많아져서 합동방송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질때가 잦아졌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바다소리와 함께하는 아무거나 하는 방송]

이미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들의 SNS에 올린 사진을 통해서 이미 선라이즈의 멤버 몇 사람이 모여서 바다로 여행을 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래서 팬들이라면 어떤 멤버들이 바다로 여행을 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역시 하렘대장 아리아ㅋㅋ 메이드 그 자체

­유리아, 클레, 에오스, 셀레네, 루미에까지 ㅋㅋ 도대체 몇 사람이나 꼬신거임?

­저기 타마 있다던데?

­뭐?

­아싸인 타마가??

­‘나는 절대 방에서 나가기 싫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타마가??

허나 닳고 닳은 팬들이라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타마의 참전이었다.

동기생들의 모임에서도 정말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는 오직 다른 멤버들의 ‘목격 썰’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만큼 합동 방송의 횟수도 극히 드물었고, 작년에 했을 때는 절친이라 할 수 있는 유리아와 그녀의 보호자(?) 겸 친구인 메이드를 통해서만 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 들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아싸 기질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이야이가 있었지만, 그녀의 파티는 모두 집에서 이루어졌기에 아무도 그녀가 ‘단체’로 ‘여행’을 갈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정말 없었다.

­우리 타마가 ㅜㅜ

­우리의 아싸가 드디어 ㅠㅠ

­사람은 바뀐다…사람은 바뀐다…

­미녀의 손에 말이지www 나라고 해도 아리아 정도 되는 여자가 바다 가자고 하면 쫄래쫄래 따라갈 듯

[이거 봐요 타마 선배님, 아무도 안믿잖아요]

[알았어 갈게! 은근 슬쩍 등에 차가운 음료 올리지 마! 꺅!]

하늘같은 선배에게 거리낌없이 장난을 치는 루미에는 한참을 깔깔거린 후 중계를 이어나갔다.

[콘타마냥~ 타마에요]

[선배 인사 뺏지 마! 하늘같은 선배에게 무슨 짓이야!]

영락없이 인싸 후배가 아싸 선배를 괴롭히는 모습이었다.

보는이로 하여금 ‘과연 혐성 사자’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루미에는 도망가려는 타마를 붙잡았다.

[어때요 타마 선배 신나죠?]

­혐성 미쳤다…

­일진녀에게 걸린 아싸 오타쿠…

­이거 이지메 아니냐고 ㅋㅋ 다른 애들 뭐하고 있어?

[다른 애들은… 클레는 지금 선텐 즐기고 있고…]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칵테일을 마시다니, 역시 클레 선배님 여유가 철철 흘러 넘치네요.]

[에오스랑 셀레네는…모래로 성을 만들고 있고…]

[참고로 30분째 저러고 있답니다.]

[루미에는 내 옆에서 까불고 있고…]

[기왕이면 방송을 돕고있다고 해주세요 선배!]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디오를 채웠다.

주로 타마가 단편적인 정보를 말하고 루미에는 그 정보에 살을 덧붙이면서 방송을 이끌어나갔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말하기 연습을 시키듯 타마를 칭찬해가면서 그녀에게 많은 말을 시키던 루미에는 유리아와 아리아를 찾기 위해 노트북에서 멀어져서 잠시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목격할 수 있었다.

파도가 간질거리는 바위 위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뜬금없이 키스하는 장면을 말이다.

[그리고 아리아랑 유리아는… 음… 어디있지? 꺄아악!]

그와 동시에 그녀를 찾으려는 타마의 눈을 가렸다.

마치 못 볼 것을 보지 않게 하려는 어른의 마음가짐으로, 루미에는 벌건 대낮에 뜬금없는 애정행각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앞이 안보여! 루미에! 손에 소금기 있잖아!]

[잠, 잠시만요!]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뭐야 갑자기 왜 저래?

­머임머임? 루미에가 눈 가린거임?

­아무리 타마라고 하지만 장난이 좀 지나친데 이건ㅋㅋ;;

[선배 미안해요! 하지만 잠시만 이럴게요! 선배를 지키기 위해서!]

[나 선배인데, 나 선배인데!]

­그래도 웃기긴 하네

­저게 무슨 수라장이야 ㅋㅋ

­과연 루미에는 뭘 봤길래 저래?

­ㅋㅋ설마 휴양지에 벌건 대낮에 두 사람이 키스 같은걸 할 리 없고

하고있다!

하고있단말이다!

심지어 혀까지 서로! 하고있다고!

아둥바둥 거리는 타마의 눈을 가린 루미에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도대체 저 커플은 여기서 왜 이러는데?

부끄러움 모르는 변태들!

저질!

[아아악!]

[나, 깨문다고 그랬어.]

울먹거리는 타마의 목소리와 ㅋㅋㅋㅋ로 도배된 채팅창

난데없는 소란에 모이는 시선과 손 끝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

그리고 분위기가 좀 더 타는 듯 진­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유리아와 아리아를 본 루미에는 모든 죄악을 끌어안고 죽는 성자의 심정으로 어그로를 끌었다.

[으헤헤헤, 타마 선배에게 물렸다. 여러분들 부럽죠?]

[변태! 변태! 나가 죽어!]

[우리 업계에서 이런 걸 포상이라고 해요.]

그야말로 혐성과 어그로를 대표하는 듯한 루미에의 공격적인 언사가 도움이 된 듯 사람들은 크게 흥미를 보였다.

[뭐야뭐야, 아수라장?]

[일본 서버는 참 개방적이네요. 타마 손배 괜찮아요?]

오죽하면 흥미를 느낀 에오스와 셀레네가 일본어로 말을 걸며 다가오겠는가?

아직까지 두 사람이 익숙하지 않는 루미에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크게 터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그러고보니 에오스 선배님, 셀레네 선배님!]

[응?]

[나, 나이스바디!]

­ㅁㅊ

­ㅋㅋㅋㅋㅋㅋ

­뭐 클레 피셜 두 사람 다 섹시 보디라고 하긴햇지만ㅋㅋㅋ

­이걸 생방에서 이렇게 하다니 미치겠네 ㅋㅋㅋ

­루미에라는 애 진짜 똘끼충만하네 ㅋㅋ 선라이즈에 이런 애가 있었어?

어느 새 얼굴은 태양보다 벌겋게 변한 루미에였지만 에오스와 셀레네 너머 보이는 유리아와 아리아의 뜨거운 무드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루미에는 좌절했다.

저 변태 커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한편 루미에의 도발적인 언사에 얼굴이 붉어진 셀레네는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했고, 에오스는 눈을 빛냈다.

[오~호~라, 그렇게 말하는 루미에는 지퍼 속에 이런 몸을 감추고 있네?]

[꺅!]

그 누구의 비명소리보다도 크고 간드러진 목소리에 시선이 모였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선라이즈의 변태 순위를 놓고 보자면 5위 안에 들어가고도 남는 셀레네의 손이…

그녀의 손짓이 참…

뭐랄까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전 이만… 두 선배가 타마 선배님과 잘…]

[어딜가나요? 우리 루미에 후배님]

[저, 저기…]

[맞아! 날 그렇게 놀리고 도망가지 마!]

자신에게 도발을 하는 후배를 얌전히 두고볼 리 없는 에오스와, 마찬가지로 당하고는 못산다는 듯한 친구의 마음가짐을 이어받은 타마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낭패불감

사면초가

등등

온갖 단어가 떠올렸다.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온 손이 그녀의 자켓을 벗겼다.

아리아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 입고있던 수영복이 드러났다.

해변에서 수영복이 뭐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긴했지만

그것이 타인의 손길에 의해 드러나는 건 루미에에게 꽤나 부끄러웠다.

[꺅! 서, 선배!]

[후후, 당신이 나이스 바디라고 말한 선배가 당신에게 호감을 표하고 있다구요]

[하, 하지만 옆에 타마, 타마선배가!]

[으응? 타마 선배님이 왜요?]

­ㅁㅊ

­아니 쟤들 바깥 아님?

­거기에 해변이라면서, 다들 그렇다면 수영복을 입고…

[쉿]

[꺅!]

[그 이상 말하면 낭만이 없죠 후배님]

[누, 누가 이 변태 좀 말려봐요! 셀레네 선배님!!]

그렇게 그날 방송은 매니저에 의해 긴급 송출 정지를 당하기 전까지 많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

[아하하, 낮에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네요.]

[변태들…]

그날 저녁의 방송은 인근의 여관에서 이루어졌다.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더라도, 캠핑카는 완벽한 피로회복이 불가능 했기 때문에 몸이 자산인 그녀들을 위해 특별히 예약한 곳으로 데려왔다.

마이크를 잡고 머리 맡에서 모닥불 타는 소리를 들려주며 편안한 목소리로 토크쇼를 하고 있던 나와 언니는 낮에 있었던 일에 거듭 사과했다.

[루미에가 그런 폭주를 일으킬 줄이야, 조금 의외네요? 그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줄이야]

[그래도 타마랑 잘 놀아줘서 고마웠어.]

[그래도 에오스에게 그런 말을 한 건 의외네요.]

[나도 에오스는 조금 무서워. 착하고 좋은데, 변태야]

우리들의 방송은 낮의 방송과 다르게 조금 텐션이 낮았다.

그도 그럴게 저녁 먹고 몸을 씻고 와서 하는 밤 분위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일본 여관 특유의 사람 긴장을 풀어버리는 분위기에 적응한 나는 목이 적당히 잠겼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시청자들은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듯 잘 어울려 주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

­타닥타닥 모닥불 튀는 소리

­거기에 노곤한 아리아와 유리아의 목소리라니 최고다…

[어머, ASMR 방송을 노린 건 아닌데 말이죠. 참, 유리아 언니 차 한잔 더 할래요?]

[응, 코코아로 줘]

[이거 마시고 양치하고 오셔야해요]

[나 아이 아니거든…]

­낮에 있었던 일들 좀 더 이야기 해줘요.

­코로나로 여행 잘 못가는데 아리아 씨와 유리아 씨 이야기를 들으니 참 행복하네요.

­그래서 에오스 씨가 정말 삐­했나요?

[음, 에오스 선배가 좀 적극적이긴 하죠.]

[아리아, 이 주제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면 큰 일 날거같아.]

[아무튼 사건은 분노한 셀레네에 의해 끝이 났답니다. 그녀는 보기보다 힘이 세거든요]

거듭되는 부끄러운 방송 분위기에 화가 난 셀레네가 루미에와 에오스를 뜯어 말리면서 분위기가 끝났다.

이 모든 일을 흑막처럼 즐기고 있던 클레는 그런 만행들을 사진으로 찍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낯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낮에 두 분은 뭐 하셨어요?

­생중계 때 보면 어디 가신 거 아니에요?

[우리가 뭐 했지?]

[어디보자, 그때 분명히 마실 게 다 떨어져서 자판기에 다녀오고]

[아이스 백에 음료수 채웠지. 아리아가 자판기에 술 안팔아서 시무룩하게 변했잖아. 그때 뭐라고 투덜거렸더라…]

[흠흠, 아무튼 그 후에는 파도에 발 적시러 갔죠. 피곤해서 뛰어 놀 힘도 없었고…]

나는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얼굴의 낙서를 지운 후 다시 평범하게 놀려고 했던 나는 갑자기 피곤함을 느껴서 뛰어놀지 못했고, 언니 또한 피곤한 듯 나와 느긋하게 해변에서 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 마실걸 사러 돌아다녔고, 음료를 다음에…

다음에…

아.

맞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와 언니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실… 낯 부끄러운 일을 한 건 그녀들이 아니라 우리였다.

[그, 그래도 이렇게 복작복작한 게 수학 여행 온것처럼 좋네요]

[그… 그렇지!]

[아하하, 씨,씻으러 간 클레는 언제 오려나?]

[오,오면 카드 게임하자]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시네

­무슨 일 있었지?

­설마 혹시?

­에이, 오타쿠 아니랄까봐 망상하는 거 봐 ㅋㅋ

나와 언니는 숙련된 방송인답지 않게 우리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아, 얼버무리면 안 되는데, 적당히 거짓말 쳐야했는데…!

왜 그랬지?

설마, 카기가 그런 일 한거… 언니하고 내가 보였던 거야?

[일본의 여관 굉장해요!]

[확실히 릴렉스 되는 기분이 호텔과 다르네.]

곤경에 빠진 나를 구원한 건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외국인 연기를 진심을 담아 해주는 말리아와 코토나시였다.

오 세상에 고마워라!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토크에 합류했고, 나와 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전 잠시 과자좀 사올게요]

[올때 포키하고 가리가리 부탁해 후배~]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왠지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들어오는 카기와 마주쳤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방송을 위해서인지 모를 코토나시의 격렬한 장난에 시달린 그녀는 한 10년은 늙어보이는 얼굴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고, 고마워.”

“…알 면 됐어.”

저… 저말은

그러니까…

봐…봤다는 거지?

새삼 목격을 한 게 카기여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후…

평상시 자기 관리 완벽하고 욕망을 잘 통제한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그날만큼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도 뭐… 후회는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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