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 2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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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을 받았다.
아주 오랜만에 선라이즈 입사 전 시절로 돌아간 하루는 내 머릿속에 있던 업무에 관한 스트레스와 감정 파편을 모조리 털어내었다.
평소 나의 최대 체력이 100이라면 지금은 120이 된 기분이랄까
그야말로 뇌가 적절하게 세척된 기분에 나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상큼해진 기분으로 나는 내 방송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버튜버 아리아의 기반은 65%의 해외 팬들과 35%의 일본 팬들로 이루어져있다.
게임 스트리밍 같은 경우는 순수 영어로 진행하지만, 방송의 35~40%를 이루는 소통 방송에서는 영어로 말을하고 동시에 일본어로 내가 한 말을 손수 번역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GB 1기생에 비해서 일본 팬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거기에 메이드 라의 시절을 기억하던 사람들 덕분에 나는 일본의 버튜버들과 열심히 콜라보를 때린 덕분에 나보다 훨씬 많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300만 구독자의 마나나 200만의 셀레네보다 일본에서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았다.
영어라면 사악한 이교도의 기도를 듣는 수도원의 사제처럼 기겁을 하던 일본인들이 가슴 큰 예쁜 구미호가 일본어로 영화 자막처럼 동시 통역을 하는 방송은 큰 메리트였고
덕분에 나는 일본에서도 상당한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지도와 수입은 어디까지나 덤이었다.
잠재적 시장이 더 높은 쪽은 당연히 해외 쪽이었다.
슈퍼챗 비율로만 보자면 일본이 많지만, 그렇다고 서구권의 팬들이 나에게 돈을 아예 안 쓰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신중하게 팬들의 비율을 분석했다.
일본 팬들의 구독자 증가 추세는 확실하게 보이긴 했으나, 피자로 비유하자면 S 사이즈 피자에 토핑이 늘어난 수준이다.
그에 비해서 해외 팬들의 구독자 증가 추세는 상당히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푸짐하게 먹어야할 패밀리 사이즈 피자에 페페로니와 치즈 정도만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쩨쩨하게 페페로니와 치즈가 뭐야, 적어도 리코타 치즈와 이탈리안 소세지와 바질 정도는 올려줘야 피자지.”
언니가 말한 ‘성공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떠올리며 나는 팬을 돌리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관성적으로 이어져 온 방송은 나쁘지 않았다.
게이머 유나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내가 ‘다음 게임은 뭘 하지?’하는 생각으로 게임에 몰입해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물론 데뷔한 이래로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GB 1기생들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아무리 후발주자라고는 해도, 최근 들어서 해외쪽 팬들의 성장세가 꺾이는 건 GB 소속인 나에게 있어서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언니의 라이브를 돕고 난 이후 나는 내 방송을 돌이켜보면서 개선할 여지를 찾으려고 고민하고 있었다.
일단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음과 같았다.
마인 크래프트
많은 버튜버들이 즐겨 방송하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게임이라고 해도 부족함 없는 그것 말이다.
이미 많은 버튜버 선배들이 이 게임을 통한 많은 서사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으며, 자연스럽게 합동 방송으로 흘러가면서 서로 즐겁게 노는 글로벌 시뮬레이터 게임이었다.
ASMR
피나는 노력으로 배운 성우 발성법과 캐릭터 연기를 살려서 진행할 수 있는 방송이다.
거기에 이쪽 분야의 고수인 2기생의 마녀에게 배운 방송의 기본을 살린다면 귀에 거슬리지 않을 ASMR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방송
사실 이쪽이 더 나의 특기에 가깝긴 했다.
단순히 훈련받은 경험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재능이 하늘의 별처럼 널린 이 인터넷 방송업계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재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음악 방송을 통해서 서양권에 제대로 먹힐 음악들을 부르면서 이쪽으로 굳혀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사실 유키하라 언니가 ‘그래서 마인 크래프트는 언제 하니?’라는 말을 자주 하기는 하지만 아직 나는 그 게임에 커다란 재미를 못느끼고 있었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 몰입 하겠는가?
ASMR은 분명히 나쁘지 않지만 특정한 팬덤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릴 뿐이었다.
음악 방송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GB는 마나와 셀레네라는 걸출한 음악 팬덤을 잡고있는 선배들이 있다.
한쪽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어레인지를, 다른 한쪽은 음악적 감각을 살려 오리지널 곡을 10곡 이상 찍어낸 아티스트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민했다.
현재 아리아에게 잡힌 캐릭터 설정은 구미호, 그리고 아이돌이라는 설정이었다.
아이돌이라는 설정에 따라가기 위해서 노래 콘텐츠에 큰 힘을 실었고, 세상에 커다란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구미호라는 컨셉답게 여러 분야에 도전을 했다.
고전 게임 탐방, 쿠소 게임 탐방 등으로 종합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았다.
에이펙스나 협곡 같이 여러 번 진행하는 게임은 오히려 피했다.
왜냐면 그런 실력 게임을 하게 되면 진심으로 게임에 몰입하게 되어버리고 말 수가 줄어들고 게임을 하는 아리아가 아닌 게임을 하는 유나로 돌아가는 일이 잦았다.
솔직히 다이아에서 마스터 구간까지는 컨셉질하면서 게임이 가능했지만
그 이상으로 가버리면 말 수가 줄어들고 집중 모드에 들어가는 한국인 유전자 때문에 도저히 구미호나 아이돌이라는 컨셉을 지켜가면서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컨셉을 지키지 못하는 버튜버 연기를 밀고 나가는 것도 좋긴 하지만
내 옆에 살고 있는 버튜버가 그 누구보다도 마계 공주 연기에 진심인 버튜버다 보니, 데뷔한지 반년이 다 되어가는 나는 확실한 연기노선을 잡고 싶었다.
마치 내가 예전에 아리아에게 ‘형’이라는 이미지를 떼어내려고 ASMR 방송을 했듯이
아리아에게 새로운 캐릭터성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보는 게 맞았디.
그렇게 고민하며 자료를 살펴보던 나는 내가 이전에 했던 방송을 돌려보면서 나만의 캐릭터성을 찾아내었다.
딴 건 몰라도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름이 끝나가기 전에 신나게 써먹어 줘야지.”
바로 공포 게임 부수기
PvP로 멘탈 갈아가면서 게임 하는 것보다 설계된 게임을 해석하면서 게임 개발자와 심리전 거는 게 더 재미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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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은 의외로 인기가 좋은 방송 소재다.
물론 많은 시청자를 흡수할 만큼 좋은 소재는 아니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깜짝 튀어나오는 공포 소재는 놀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즐겨볼 수 없는 콘텐츠였으니 말이다.
동시에 팬들은 좋아하는 콘텐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스트리머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악질적인 팬들이 넘쳐나는 인터넷 게임 방송판에서 체통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우는 스트리머를 보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는 게 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놀라라고 만든 게임을 빨리 깨는 것에 목숨 거는 코리안
여름이 끝나가기 전 스팀에 있는 인기 공포게임들을 모조리 조질 생각에 흥이 났다.
결심은 빨랐고 행동은 더 빨랐다.
나는 복귀 후 일주일에 2일 내지는 3일을 공포 게임 플레이에 전념할 예정이라는 글을 올렸다.
인터넷 방송인이 ‘저는 공포 게임 무적이에요’라는 말에 넘어오지 않을 시청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공포 게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나의 도발넘치는 말에 흥분한 팬들이 몰려들었다.
“좋은 아침~점심~저녁이에요~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콘아~
정말 라이브 방송 안하실건가요?
유리아 라이브 썰 좀 더 풀어주세요!
언니의 라이브 무대가 끝난지가 일주일이 넘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궁금해하다니, 유리아의 라이브는 아무래도 다른 라이브에 파급력이 큰 모양이었다.
나는 적당히 다음 소통 방송으로 그들의 호기심을 돌린 후, 방송에 들어가기 전에 말했다.
“노인과 임산부, 그리고 심약한 사람의 시청을 금합니다.”
공포 게임에 들어가기 전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멈추면 심심하지
“하지만 본인이 무서운 거 잘 못 본다! 공포 게임은 항상 키리누키 영상 하이라이트만 본다! 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리아와 함께하는 공포 게임은 공포 게임이 아니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내지는 이 게임의 살인귀들과 데이트하는 집착 시뮬레이션 게임이니까요.”
공포 게임 그거 별것이 있나
플레이어를 겁먹게 하기 위한 온갖 악의를 쑤셔 넣은 다음에 ‘핫하! 엿 먹어 봐라! 어디 겁에 질려봐라!’하는 개발자의 포인트를 읽어 나가면 두렵지도 않지
프로그램 된 AI에 따라서 나를 추적하는 귀신들은 어찌 보면 나를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소통(일방적인 폭력이라는 게 아쉽지만) 대상이었다.
즉 나에게 끈질긴 구애를 하는 스토커들을 떨쳐내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비슷한 느낌이다.
이게 무슨 여우 소리야?
공포 게임이 언제부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된건데
무쳤네 증말
휴가 동안 위험한 공기 마시고 온 거 아니야?
아쉽게도 나의 팬들은 공포 게임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신뢰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나는 공포 게임에 대한 나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기 위해서 당당하게 방송을 켰다.
아웃라스트
유리아와 타마를 이어준 기념비적인 게임이 등장했다.
이미 다른 버튜버들의 방송에서 몇 번 다뤄진 게임이 음산한 음악과 함께 등장했다.
“보시다시피 제 스팀 게임 내역은 깔끔해요.
다른 버튜버들의 방송을 보긴 했어도, 전체 영상을 본 적은 두 번 정도가 다입니다.”
“그러니까 가이드 모드로 갑니다.
여러분들도 아시죠? 제 ‘친구’의 공포 게임 가이드.”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나에게 있어서 공포 게임이란 플레이어와 제작자의 수읽기 싸움
음산한 배경음악과 기괴스러운 디자인은 불쾌하기만 하지 나를 겁주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사악한 계획을 꾸미는 악동처럼 미소 지으면서 게임을 시작했다.
공포 게임에서 공포를 거세하고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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