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 265화.
* * *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했다.
개발자에 의도에 따라서 에스컬레이트식으로 설계대로 플레이 하는 사람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서 지옥같은 게임이라도 반드시 자기가 생각하는 낭만적인 플레이로 게임을 해야하는 사람
최적화를 통해서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으로 게임의 엔딩으로 나아가는 사람
게임에 널려있는 조각난 이야기들을 끼워맞추고 세계를 탐방하며 감정에 이입을 하는 사람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게임과 음악의 연결고리에 흠뻑 빠져드는 사람
어떻게 게임을 플레이 하던간에, 게임이란 결국 만족을 위한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놀이다.
본인이 재미있으면 그만이었고, 이런 반응을 지켜보는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은 방송인에 따라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눈으로 보면서 즐겼다.
하지만 아리아는 굉장히 독특했다.
“아, 여기서는 딱 봐도 맵이 한 바퀴 꺾이는 구조죠? 앞에 오브젝트를 많이 둬서 길을 찾게 전방을 주시하게 했네요. 그러면 여기서 뒤를 돌면.”
탕
멀쩡하게 길을 나아가던 캐릭터가 뒤를 돌아서 총을 쏜다.
음산한 배경음악 속에서 플레이어를 기습하기로 유명한 괴물이 휘청거린다.
“아, 역시 게임이 좀 진행되니 한방에 안죽네요.”
탕탕탕
망설임이 없다.
몬스터가 흔들리는 프레임에 맞춰서 무슨 핵 프로그램처럼 머리를 따라간 마우스가 괴물의 머리를 터트린다.
“자, 여기서 갈리겠네요. 뒤에 있는 몬스터에게 지독하게 당하면 앞뒤를 왔다갔다 하면서 보게 되겠죠? 그러면 이제...”
탕
천장에서 기습하려는 괴물이 총을 맞고 떨어진다.
정말이지, 소름 끼치도록 정밀한 헤드샷이다.
“천장에서 한 번 나와줘야하거든요. 왜냐면 이 제작자 심정이 배배 꼬여서 스토리 진행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습으로 스트레스 주는 타입이에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냥 챕터 2 깨면서 사람 엿먹이겠다는 의도가 좀 강했잖아요.”
구미호는 태연했다.
공포 게임을 해제하겠다, 투어 가이드를 만들겠다는 선언 이후 그녀는 공포 게임을 개발자와 보이지 않는 수싸움을 하는 플레이어처럼 게임을 했다.
아, 대충 이쯤 있겠지
아, 이 퍼즐은 대충 이런 느낌이겠지
그러면 그녀가 말하는 대로 거의 이루어졌다.
음산한 폐가를 무슨 마당 청소하듯 돌아다니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다른 사람이라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를 장면에 웃음을 터트렸다.
변태인가
미치셨나
게임 개발자 울어요
공포 게임을 무슨 시뮬레이션 게임하듯 플레이 하는 애는 처음 보네
“아 맞아요. 이거 시뮬레이션이라니까요? 저에 대한 비틀린 집착을 가진 게임 개발자와 그들이 보내는 다정한 괴물 친구들과 미팅을 하는거죠.”
미팅이래 진짜
생각하는 게 다르다 달라
미팅 소개비 납탄 5발
“후후, 저는 요괴의 정점이 되는 사람으로 이런 뻔한 괴물들의 등장에 놀라아아악!”
하지만 그녀 또한 사람인지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는 비명을 지르긴 한다.
복도가 꺼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녀도 예상 못했는지 아주 오랜만에 놀라는 반응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기고만장한 버튜버가 곤란한 환경에 처해지자 당연히 환호했다.
클립 각
저는 절대무적입니다(다음턴에 죽음)
그래도 고성으로 비명은 안 지르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스전에 들어온 그녀는 침착하게 캐릭터를 조작했다.
이 장면은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장면으로, 이 지옥같은 저택을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헤드샷 헤드샷.”
저택을 RPG 게임 파밍하듯 샅샅이 털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총알을 낭비하지 않았고, 회복 아이템 또한 충분했다.
보급품 숫자가 적고 적들의 체력이 다른 난이도에 비해 높은 어려운 난이도에서도 그녀는 피지컬로 공포를 찍어 눌렀다.
그래서 그녀는 ‘총이 있으면 악마가 무섭지 않아’같은 마초이즘 정신을 발휘
기이하게 움직이는 보스의 머리에 납탄 장식을 시작했다.
“카이팅 카이팅.”
쏘고 움직인다
장애물을 끼고 빙글빙글 돌면서 머리만 집요하게 노린다.
“왼쪽 오른쪽 왼쪽!”
게임의 장르가...다르네
이거 둠 시리즈였어? 사실 아리아가 조작 하는 건 헬보이였어?
어지럽네 증말ㅋㅋ
이딴게... 공포 게임?
다른 사람들은 비명지르면서 기괴하게 변이하는 보스 몬스터에 기겁한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잡아먹히거나 체력이 떨어져서 시야가 흐려지며 방송인들이 패닉에 빠지기로 유명한 장면에서 그녀는 피할 수 없는 공격만 맞으면서 혼자서 RPG 게임을 했다.
거기 도망치는 구간임
차키 아이템 얻어서 빨리 빠져나가요 좀ㅋㅋ
괴물들도 쉴 권리가 있다!
빅 파더가 저렇게 처맞는 거 처음봄ㅋㅋ
“아 뭐에요, 도망치는 구간이에요?”
이 쌈박질 여우야 빨리 도망가 ㅋㅋ
깨지 말라는 보스 도전하고 있네 진짜
어? 근데 보스가 멈췄는데?
기괴한 음성을 토해내며 아리아의 캐릭터를 노리던 보스가 멈췄다.
사람의 신경을 긁는 공포스러운 음악이 멈췄다.
이 게임이 처음인 아리아와 다르게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열심히 갈고리를 난사했다.
????
이게 뭐임???
이런 전개가 있었음???
아니 나온지 2년 된 게임인데 이거???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임???
“어디 보자, 그러니까 아이템을 얻었는데요?”
사람들의 혼란을 즐기는 듯 즐거운 어조로 보스를 루팅한 아리아의 말에 사람들은 뒤집어졌다.
이 게임에 이스터에그가 있었어? 하는 반응과 함께 깨지 말라는 거 도전해보는 플레이어들도 그만둔 분기점을 새롭게 발견한 아리아의 반응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되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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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희가 계획한 이스터 에그가 맞습니다. 다만 스토리가 DLC의 뒤와 이어지기 때문에 DLC에서 얻은 무기로 게임을 진행해야 빅 파더가 쓰러지거든요.
계산상으로는 4스테이지까지 얻을 수 있는 탄환 300발을 최소한의 사용으로 진행해서 200발을 남긴 다음에, 미스 없이 헤드샷으로 140방을 때려 박아야 열리긴 하네요.]
[DLC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는 다회차 플레이어들을 위한 이벤트였는데 저희도 이렇게 열릴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아리아 같은 플레이어가 있는 게 놀랍네요. 앞으로 공포 게임에서 총은 빼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트위터를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게임 버그가 아니었구나.
7분간 피말리게 레이드 뛴 보스가 버그 걸린 줄 알았네.
개발자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플레이에는 버그가 없다고 했으니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지?
나는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했다.
[아리아는 신이야! 아리아는 신이야!]
[종합 게임 스트리머 중 실력 톱급인 건 알았는데 이건 무슨ㅋㅋ]
[그러니까 원래 2주년 기념 DLC 플레이어를 위한 추가 요소인데 1회차 뉴비가 깼다고?]
[뉴비는 무슨 뉴타입 비스트지]
커뮤니티의 긍정적인 여론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나도 예상하지 못하긴 했지...
그냥 피지컬로 찍어 누르니까 눌러졌다.
솔직히 패턴이 복잡한것도 아니고, 공포 게임 특유의 무서운 분위기만 떨쳐내고 침착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플레이일 것이다.
[응 너는 아리아가 아니야]
[포기해~]
[세 번째 게임하면서도 토끼처럼 깜짝 놀라는데 무슨 히든 루트 하겠다고 ㅋㅋ]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피지컬이 좋아야한다니 이게 뭐냐고 ㅋㅋ]
[DLC무기나 가져와]
그리고 당연하게 나의 플레이를 따라하는 후발주자들이 많았다.
어설픈 짭퉁이 명품을 빛나게 한다고 하던가?
공포 게임 중에서는 이름 높은 시리즈답게 버튜버가 아닌 일반 스트리머들도 참여했고, DLC의 고성능 무기를 가져와서 진행하는 유저라면 모를까, 나처럼 권총으로 도전하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짜릿했다.
그래, 이게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플레이어지
기존 메이드 라가 가지고 있었던 ‘공포 게임 가이드’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구미호에 어울리는 ‘요괴의 왕’ 컨셉 같은 느낌으로 캐릭터성을 세웠다.
끊임없이 이슈를 제시하고 캐릭터의 개성을 만들거나 홍보하는 게 중요한 이 인터넷 방송인 세계에서 나는 한 발짝 나아간 것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다.
만능의 메이드에서 매력적인 구미호로
그것이 나의 목표다.
드라마 속 흑막처럼 씨익 웃고 있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 복귀 이후, 연이은 공포 게임 러쉬로 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유키하라 언니였다.
“유나야... 공포 게임 특집 언제까지 할거야?”
“여름인 8월이 끝나기 전 까지요.”
이번 기획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나의 매니저인 유키하라 언니는 상당히 겁쟁이다.
공포 게임에 식겁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서운 글들도 잘 못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모니터링도 게임 화면은 가려두고, 채팅만 검열한다고 했다.
“다시 방송에 집중해줘서 고맙긴 한데 무슨 심적 변화가 온 거야? 갑자기 기합이 들어갔네?”
“그냥 해외 구독자들 증가 추세가 꺾인 게 신경쓰여서요.”
“그치만 유나는 그만큼 일본 국내에서 많은 팬을 가지고 있잖아?
일본 쪽 내수 시장이 해외쪽 시장보다 굿즈 판매나 협업 제의가 더 좋다는 거 알지?”
언니 말대로였다.
해외에서는 아키하바라같이 오타쿠 굿즈를 거리 단위로 취급하는 곳도 드물고
해외에서는 일본의 대형 온라인 통판 사이트처럼 굿즈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거대한 업체도 드물었으니 말이다.
“그냥 여름이 가기전에 200만 찍고 싶어서요.”
“...그냥?”
전화기 너머로 워커홀릭 이라는 단어가 들린 건 기분 탓이겠지?
“그쯤 되면 회사를 끼지 않고 라이브 3D 아바타 제작 의뢰를 부탁할 수 있는 체급이겠죠?”
“... 너 설마?”
“네, 200만 찍고 올해가 가기 전에 저도 라이브 열고 싶어요. 예산 70만엔 이상으로 잡고, 최상의 아바타로 부탁하려구요.”
이 70만은 당연히 라이브 모델 제작 비용이다.
사니에게 외주로 20만엔 정도는 줘야겠지?
“가, 갑자기 왜그러니? 혹시 내가 그때 세게 말해서 그런거야?”
“아뇨, 매니저인 언니가 저를 걱정해서 제 오버 워크르 막아주신 건 당연한 일이니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아요. 그냥 방송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어서 그래요.”
“뭐, 유나가 의욕적인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구독자 수 챙기고 싶다는 건 처음이니까 나도 그에 맞춰서 움직여줄게.”
“언니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나는 인스타를 켰다.
선라이즈에 들어오기 전 애용했던 인스타에 최근에 구매한 옷과 사진을 올린 흔한 인스타 감성의 글이었다.
나의 근황을 알고 싶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긴 그때 산 옷들은 내 나이대에서 쉽게 사기 어려운 옷들이지.
하지만 나의 인스타를 보는 건 친구들이 아니었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개인 메시지 함을 열었다.
동생놈 : 누나 큰일났어. 엄마가 누나 인스타 보고 뭐 하는지 알게 되었어
동생놈 : 너 그런 일 하라고 유학 보냈냐고 되게 뭐라 하던데?
동생놈 :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난리셔 아주
나 : 그러라고 해, 어차피 유학도 네가 벌어다준 돈으로 갔는데
나 : 그 여자가 뭐래?
동생놈 : 아빠 봐서라도 좀
뭐 버튜버라는 사실은 모르겠지
하지만 젊고 예쁜 여자가 갑자기 인스타에 명품을 올린다면, 그 고지식한 여자가 어떤 천박한 상상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나는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 그래, 올해 안에 하늘 길 열리면 돌아가고, 아니면 화상 채팅으로 간만에 얼굴이나 보여주도록 할게
물론 이 화상 채팅에 나오는 것은 유나가 아니라 아리아다.
짜잔, 당신의 딸내미는 3D로 대체되었습니다.
만화와 게임이라면 입에 거품을 무는 그 여자의 반응을 생각하며 나는 큭큭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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