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96화 (296/307)

〈 296화 〉 295화.

* * *

아리아의 방송 패턴이 바뀌었다.

이전이라면 매주 새로운 콘텐츠를 들고 오는 식이라 언제나 새로운 게임 새로운 도전을 하던 그녀는 러스트 합동 방송을 기점으로 이전까지 전혀 손대지 않았던 샌드박스형 게임 혹은 긴 시간이 필요한 게임들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JP 서버와 GB 서버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합동 방송을 이어갔다.

다른 때라면 큰 준비를 하고 신중하게 합동 방송을 진행하던 그녀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송에 들어갔다.

다른 선라이즈 버튜버들이 그러하던 것처럼, 아리아 또한 근래 들어서 편안한 느낌으로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다.

특히 그동안 일정이 맞지 않아서, 혹은 잘 알지 못해서 교류를 적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특히 죽이 가장 잘 맞는 버튜버는 츠키노와 이나리였다.

완전 성향이 반대인 아리아와 츠키노는 아리아가 츠키노를 핍박하는 형태로 압력을 세게 넣는 형태였다.

마치 캐릭터 그대로 육식 동물인 구미호(본인 주장)와 초식 동물 토끼 그 자체인 둘은 생각보다 어울렸다.

혼잣말이 많은 츠키노에 아리아는 크게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재잘거림을 듣다가 한두 마디씩 툭툭 던져주었다.

그러다가 츠키노가 흥얼거리기 시작하면 같이 노래를 불러주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 않으며 그녀가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혼자 놀기 좋아하는 히로인과 성격 나쁘면서도 은근히 다정한 빌런을 보는 듯한 분위기에 두 사람은 잘 어울렸다.

유리아와 함께 게임 할 때 빼고는 거의 붙어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는 이나리와의 조합이었다.

“아 아리아 3에 걸었죠? 3에 스크랩(게임 화폐)를 꼴아박아버렸죠? 킹받죠? 이나리에게 도박으로 덤빈 거 후회하죠?”

“시끄러 엄마!”

“오호호호, 그러니까 얘야, 이 이나리 엄마가 돈 따는거나 잘 봐두도록 하렴!”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억제기를 풀어버리는 듯 있는 그대로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었다.

마치 현실 친구 두 사람이 낯가림 없이 투닥거리며 유치한 자존심 배틀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런 것들이 JP 와 GB를 대표하는 아이돌 버튜버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아무튼 여우 선배에 게임 선배인 이나리는 아리아의 어머니를 자칭했다.

물론 평소 도박을 좋아하는 이나리는 생존 게임에서 제공하는 룰렛 시설에 완전 마음을 빼앗기고 멤버들을 도박의 길로 이끄는 악덕 도박왕 포지션을 택한 덕분에, 아리아는 졸지에 도박 중독 어머니 밑에서 고생하는 효녀 포지션이 되었다.

그러다가 가끔 이나리에게 도박으로 승부를 걸었는데, 선라이즈 최고의 재액(災?) 여우라는 별명에 부끄럽지 않은 처참한 승률을 보여주며 이나리의 좋은 놀림감이 되었다.

아무튼, 선라이즈의 러스트 서버 상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유리아와 아리아는 결혼해서 성을 지으며 몬스터들 상대로 정복 전쟁을 벌이는 사이

츠키노는 아리아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패배한 노예로 가축 토끼가 되었다.

이나리는 평소 후배들을 돌봐주기 좋아하는 본인의 캐릭터 성을 살려서, 샌드박스류 게임 초보인 아리아를 보살피는 어머니를 자청했고 아리아 또한 이를 받아들여 여우 패밀리가 형성.

공교롭게도 동물 컨셉 버튜버들이 많은 덕분에 숲의 마녀인 헤카테는 설정상 그녀들의 신앙을 받아먹는 마녀 내지는 숲의 신 역할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금고를 털어버리거나 문짝을 파괴하는 등 제멋대로 활개 치고 다니면서 멤버들을 괴롭혔다.

이런 선라이즈 특유의 캐릭터 컨셉 놀이가 더해지면서 멤버들이 모이는 오후 9시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왔다.

일상 애니메이션의 지분율을 잡아먹었다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버튜버 산업

그 산업에서 톱에 가까운 버튜버들이 각잡고 상황극을 연기하니, 매번 예능과 드라마를 섞은듯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수한 에피소드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역시 도박이었다.

다른 분야면 모를까, 뽑기와 도박에 관해서라면 허접 중의 허접인 아리아

그런 아리아를 도발하고 도박의 길로 이끄는 못된 어머니 이나리

사람은 착한데 도박운이 절망적이라 언제나 앵벌이에 동원당하는 츠키노

처음에는 이나리의 손에서 구출하려고 이나리에게 접근했다가, 도박의 맛을 깨달아버린 이후 이나리와 손잡아 아리아의 지갑을 노리는 유리아

여기에 혼돈 그 자체인 헤카테가 끼어들면서 아리아를 둘러싼 도박 판은 언제나 꿀잼을 보장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엄청난 기획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멤버들과 재미있게 웃고 떠드는 것으로 본인도 즐기고 시청자들도 즐기는 재미있는 방송을 많이 만들게 된 아리아는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렇기에 아리아를 연기하는 유나는 다음 기획에 온 힘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원 투 쓰리 포! 턴! 스텝! 시선은 아래로, 위로!”

그것은 바로 3D 아바타 제작 후 퍼스트 라이브의 준비였다.

다니던 헬스장 주인의 인맥을 빌려 실제 아이돌 업계에 종사했었던 트레이너를 만난 아리아는 댄스에 적합한 코어 근육을 만들면서 댄스 레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평소 회사에 직접 출근해서 회의나 교육 등 근무만 했던 유나는 이제 나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트레이너들을 찾아 다니고 그녀들의 한계를 쥐어 짜내고 있었다.

유리아의 데뷔를 도와주며 한때 트레이너들과 얼굴을 트고 그녀들의 실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낸 적 있는 유나의 등장에 댄스 트레이너들은 물론이고 보컬 트레이너들은 긴장을 바짝 했다.

그도 그럴게, 저번에는 ‘쿠로가와 나에’의 한계에 맞춰서 춤과 노래를 지도했다면, 이번에는 현역 톱 급 아이돌을 상대로 지도를 해야했다.

솔직히 버튜버 회사에 소속되기에는 경력이 조금 아까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보자면 유나가 지닌 아이돌의 기량은 선라이즈가 품기에는 아까운 수준인 것도 맞았다.

톱 클래스 아이돌에게는 톱 클래스 트레이너가 붙는다.

그러기에 트레이너들에게 있어서 이번 기회는 자신들의 한계를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물론 그것은 트레이너들 사이에 감돌고 있는 분위기였고

유나는 오랜만에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트레이너들의 존재들을 해맑게 반겼다.

그 순진무구하고 맑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트레이너들은 그녀의 춤 영상과 녹음 파일을 수십 번 돌려 보면서 발전 사항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싸움의 기억을 되찾아 가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기량을 회복하기 시작하는 유나와 그런 유나에게 직업 윤리를 실현하기 위한 트레이너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결과, 지금 춤추며 노래하는 유나의 모습은 그냥 그 자체로 완벽한 아이돌 퍼포먼스였다.

가끔 인기 걸그룹이 연습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지 않던가?

대외 홍보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잘 연습된 영상은 그 자체로만 가치가 넘쳤는데, 지금 유나의 모습도 딱 그러했다.

버튜버 프로덕션이 아니라 아이돌 기획사였다면 진즉에 영상을 올리고도 남았다.

그 덕분에 아리아의 첫 무대의 퍼포먼스는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기술부에서 본다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세세한 카메라 워크를 짜기 시작했고 유나 또한 바뀌는 카메라 포인트를 외우고, 물리적 제약을 벗어난 버튜버식 퍼포먼스를 보이기 위해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쯧쯧, 못 보던 사이에 괴물이 되었구나 넌.

아닌가? 원래 괴물이었나?”

“마미 선배!”

“자, 여기 신곡.”

붉은 머리의 작곡가

올해 들어서 가장 성공한 작곡가가 된 아티스트 니아이자 선라이즈 인기 버튜버인 타마의 매니저이자 친동생인 마미는 회사의 의뢰를 받아 만든 신곡을 직접 건네주었다.

받기 무섭게 노트북에 USB를 넣고 멜로디와 가사를 확인한 유나의 얼굴에는 감동이 가득했다.

“역시 마미 선배가 최고야.”

“그래그래.”

댄스곡에서 가창력을 한계까지 뽑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격한 안무로 거칠어진 호흡으로는 음을 안정적으로 내고 유지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미는 유나의 무식한 운동량을 알았고, 이미 가창력의 한계까지 쥐어짜낸 본 경험이 있기에 세계구 급으로 노는 일류 아이돌들도 혀를 내두를만한 곡을 짜냈다.

“1번 곡은 진짜 초반에 불러야한다. 아니면 안무를 약하게 짜거나 해야할거야.

2번 곡은 다른 애 주려고 만들었다가, 너가 생각나서 그냥 니걸로 했다.”

“흑흑 선배...”

“뭐, 나도 너 덕분에 올해 재미 좀 봤으니까... 야! 껴안지 마! 냄새 나!”

“흐에에엥 선배에에에.”

땀범벅이 된 유나는 마미에게 달려들었고, 마미는 질겁하며 그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간의 피지컬 차이를 비교하자면 문자 그대로 중학생과 국가 대표만큼의 간극이 있었기에, 결국 마미는 땀범벅이 된 유나의 뜨거운 포웅을 받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워낙 자기관리 깔끔한 사람 덕분에 불쾌한 냄새보다는 기분 좋은 체향이 났기 때문인지, 마미는 발버둥치는 것을 포기하고 작곡가로서 곡의 설명을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해프닝이 지나간 후, 유나의 매니저인 유키하라는 일정을 점검햇다.

엄격한 스테이지 세팅

한계를 쥐어짜서 만든 무대 구성

최고의 포텐셜을 끌어내기 위해 갈려나가는 스태프와 트레이너

여기에, 두 곡의 새로운 오리지널 곡이 준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록 스테이지를 빌리는 일과, 값비싼 3D 모델링을 받는 것만 남았다.

선라이즈의 전설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유키하라는 수화기를 들어 올려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사람들을 열심히 쪼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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