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화 〉 3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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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현재 270만 구독자를 보유한 아리아의 전생은 바로 메이드 라였다.
노래면 노래 게임이면 게임, 토크면 토크, 센스면 센스, 문자 그대로 다재다능하기로 유명했던 그녀는 선라이즈에 얼마 없는 ‘자취 경력이 있는’여성이었다.
그녀의 발언으로 추측해보면, 그녀는 꽤 빠듯하게 생활했으며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명문대에 재학하며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에서 볼법한 완벽한 여성이었다.
본인이 하는 말로는, 오타쿠 문화에 빠져들기 전 유튜브를 보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메이드 라가 만들어주는 화려한 식사와 간식은 한 때 모든 버튜버들의 질시를 받을 정도로 부러움을 샀었다.
하지만 아리아로 데뷔한 이후 그녀는 쿡방을 선호하지 않았다.
일단 문화권 차이도 있지만, 원래 요리 방송은 준비가 번거로운 편이었다.
오랫동안 삶아야 익혀야 하는 요리가 있다면, 방송 시작 전에 타이밍에 맞춰서 미리 조리를 해두어야 하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여분의 밑 재료를 준비해둬야 했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조리가 이루어지는 40분에서 90분, 심하다면 3시간을 가뿐히 넘어가는 요리 방송 도중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여러 게스트를 초대하여, 오디오를 비지 않게 하는 게 정상이지만 아무래도 GB의 선배들 절반 넘게 해외에 나가있고, 일본에 거주중인 두 사람은 저마다의 일로 바쁘다보니 요리 방송을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리아는 요리 방송을 하지 않았다.
거기에 버튜버로 데뷔하고 나서 방송이면 방송, 회사 일이면 회사 일, 녹음이면 녹음, 트레이닝이면 트레이닝, 숨 가쁜 일정이 그녀를 조여왔고, 언제나 건강한 식단과 요리를 챙기던 그녀의 삶은 건강과 멀어졌다.
다른 버튜버들은 요리를 잘 모르거나 귀찮아서 대충 해먹는 일이 잦아졌다면, 아리아같은 경우는 해외 방송의 일정을 맞추느라 수면 패턴이 워낙 불규칙하게 변해서 이런 일이 더욱 잦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메이드 라 시절부터 그녀를 지켜봐 온 어둠의 메이드 단들이 아닌 이상 그녀가 요리를 잘 한다는 사실을 아는 팬들은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 그녀가 수월하게 칼질을 하는 영상은 팬들에게 신세계였다.
탁탁탁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양파가 잘린다.
요리하는 사람의 솜씨는 칼질만 봐도 안다고 했는가?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아리아의 칼질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와 대조되는 유리아의 칼질을 본다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리아는 마치 숙련된 주방장처럼 동작이 이어졌다.
야채 준비와 소스 만들기, 후라이팬을 달구다가 고기를 굽는다.
아마추어 요리 방송에서 흔히 보여주는 어설픈 손짓과 실수가 하나도 없는 깔끔한 연계는 비록 손만 공개되는 제한된 방송이라고 하더라도 알맞은 퍼즐이 블록이 들어가듯 쾌감을 주었다.
“유부초밥이요? 아쉽게도 제가 다니는 마트는 수요일에만 가공 식재료를 세일해서 별로네요.”
“여우는 무조건 유부 아니냐구요? 그거 편견이라니까요?”
“유리아님, 피망은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그러면서도 그녀는 곁눈질하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요리에 자신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자연스러운 관록이었다.
시청자들은 방송 주제가 주제다 보니 요리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아리아는 능숙하게 그런 주제들을 받아쳤다.
“국적 공개요? 여우에게는 국경이 없답니다. 그리고 어차피 제 팬들은 제가 일본에 살고있는 거 다 알고 있지 않나요?”
“영수증 이야기를 왜 꺼냈냐고요? 제 시청자들은 제 방송 보느라 바빠서 밥할 시간이 부족하고 도네이션을 하느라 여윳돈이 부족한데, 식비라도 아끼라고 제가 싼 가격으로 보는 법 알려드리려구요.”
“국경 차별 아니냐구요? 어쩌겠나요,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일본이니, 일본인들에게 유용한 콘텐츠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서도 손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천상 방송인다웠다.
아무튼 익숙한 동작으로 볶음밥을 만드는 한편 달걀을 푼 후 휘저어서 예쁜 달걀물을 만든 아리아는 계란물을 돌돌 말아가며 거대한 오믈렛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리아님은 오므라이스를 참 좋아하시죠.”
“흐흠, 잘 알고 있구나.”
“유리아님, 슬슬 튀김기 시간을 확인하시는 게...”
“...으앗! 큰일 날뻔 했도다!”
자기 일을 처리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작업에도 신경 써주며 주방을 통제하던 아리아는 능숙한 손동작으로 볶음밥을 옮겨 담았다.
그 후 밥 위에 오믈렛을 올리고는 칼로 가볍게 툭 쳤다.
그러자 오믈렛이 열리면서 알맞게 익은 계란이 볶음밥을 감쌌다.
어우, 맛있겠다.
저런 전문점 수준의 오므라이스를 가정에서?
이전에 했다는 알바가 양식점 알바인가?
맛있겠다, 저렇게 준비하는 데 쌀값 빼고 500엔도 안 든다고?
모에모에 큥 해주세요.
“모에모에 큥~ 유리아님 전용 식사야~ 맛있어져라~”
그렇게 오므라이스를 완성하면서도, 유리아는 달그락거리기 시작한 냄비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시청자들이 볼 수 있게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옮기며, 내용물을 보여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서양의 정식인 크림 스튜랍니다. 우유와 크림을 많이 때려박을 필요 없이, 하인즈 화이트 소스 한 통이면 완벽하게 완성!”
어머니가 끓여주는 스튜보다 맛있어 보여...
재료 큼지막하게 썰었네, 진짜 맛있겠다.
게임에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비쥬얼이네 ㅋㅋ
아리아 당신 정체가 뭐냐고! 선라이즈 요리 방송은 마녀님 방송 빼고 개그 아니었어?
“후후 저를 더 칭찬하라구요. 저만큼 조신하고 신부다운 구미호 세상에 어디 없다구요.”
의기양양해진 아리아는 자랑스러운 어조로 그렇게 대답했다.
다소 얄밉게 보이는 발언이지만, 아리아의 요리 솜씨를 알게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대단함을 칭찬했다.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게임이나 노래와 다르게, 요리는 누구나 신경 쓴다면 어느 정도 먹을만 하고 봐줄 만한 요리가 나오기 때문에 ‘우와 대단해!’같은 경외감 보다는 ‘대단하구나~’하는 듯한 감탄에 가까웠다.
저런 솜씨를 쌓기 전까지 노력을 제법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이런 요리는 천재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얼마나 익숙하고 자주 접하였냐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리아는 본인의 주장대로 정말 ‘신부 수업을 제대로 받은’ 요조숙녀 같은 여우였다.
적은 돈으로 요리를 잘하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게임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오타쿠 코드를 이해하고 돈도 잘 버는 여성이라니
그야말로 오타쿠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아리아, 플레이팅 좀 도와줘.”
“네, 잠시만요~”
거기에 꼬마인 유리아를 잘 돌보는 모습을 보면 모성애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평소의 방송을 통해, 그리고 다른 버튜버들의 증언을 통해 아리아가 상냥하고 다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 팬들의 머릿속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아리아의 꼬리 댄스(라고 쓰고 야한 골반 흔들기 춤이라고 읽는다)가 점차 잊혀졌다.
마망
여우 마망이다!
진짜 어머니네, 어머니는 위대해!
아리아에게는 천박하다는 이미지 대신 어머니... 그러니까 오타쿠적으로 불쾌함이 들어간 마망이라는 밈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아리아가 이 채팅을 보았으면 결혼도 안 한 사람에게 무슨 소리냐고 외칠만한 소리였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지금 식탁을 차리고 있느라 채팅을 잠시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리아 마망이라는 단어는 빠르게 번져나갔고, 영어로도 마마 아리아라는 단어가 생기며 그 단어가 혀에 익을 무렵 모든 조리가 완료되고 요리 방송에 이은 먹기 방송이 시작되었다.
가라아게와 양파 튀김, 오므라이스와 스튜라는 화려한 식단이다.
두 여성이 먹기 제법 많은 양이었지만, 아리아의 팬들은 그녀의 무시무시한 기초대사량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허나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아리아는 방송에 적극적으로 밥을 챙겨먹다기 보다는 유리아의 식사를 돕기 시작했다.
한입에 넣기 큰 가라아게를 다정하게 썰어준다거나, 건너편에 위치한 후추를 가져다 주는 단순한 보조부터 스튜에 야채를 골라내는 유리아를 혼내는 일까지
철이 덜 든 딸과 그런 딸을 다정하게 돌봐주는 어른의 느낌이 풀풀 났다.
실제로 대화를 들어봐도 그런 느낌이 강했다.
“유리아님 훌륭해요. 가라아게가 정말 잘 익었네요.”
“역시 오로시 폰즈는 최고네요. 간 무와 유자가 들어간 간장은 무적이야.”
“아이참, 아직도 입가에 뭘 묻히시다니, 누가 보면 큰일 나겠네요.”
뭐 어른과 아이라기 보다는 귀족집 아가씨를 모시는 메이드에 가까웠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분위기가 살아났다.
그렇게 식사하면서도 채팅창을 꾸준히 주시하여 시청자들이 하는 말에 대답해주며 소통한 덕분에 방송은 화기애애했다.
식사가 끝난 후, 후라이팬을 효율적으로 설거지하는 방법, 일회용 행주의 유효성을 설파하며 주방을 깨끗이 관리하는 법과 그 중요성을 설파하는 아리아의 설거지 팁을 끝으로 방송은 마무리 되었다.
그 방송은 어찌 보면 타인의 단란한 일상을 훔쳐본 기분이 들게 하는 방송이었다.
유리아와 아리아가 프로 방송인답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채팅창에 주목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보인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익숙한 탓에, 금술 좋은 새내기 부부의 일상을 훔쳐본 듯한 묘한 죄책감과 미약한 배덕심이 생기게 한다고 해야할까나.
그러기에 아리아가 그토록 전달하고자 했던 ‘가정적인 구미호 아리아’라는 이미지가 성공적으로 정착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구미호 마망이라는 다소 불손한 별칭이 붙은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함부로 야한 이야기를 하는 무례한 아이가 없듯, 어머니 이미지는 그녀를 동료와 선배, 그리고 시청자들이 내뱉는 야한 농담의 빈도가 줄어들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이렇게 가정적인 사람이 인싸들의 클럽 가서 천박하게 춤을 출 리 없어!’같은 오타쿠 희망적인 트윗들이 공감받고 유리아를 보살피는 아리아의 그림 몇 장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아리아에게 붙었던 ‘천박하고 야한 구미호’의 인기는 조심스럽게 사그라들었다.
유나가 계획한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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