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307화 (307/307)

〈 307화 〉 306화.

* * *

요즘 들어서 아리아의 방송은 이미지 체인지를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이 가득했다.

메이드의 전설을 다시 팬들에게 각인시켜 준 요리 방송은 물론이고

소통 방송에서도 다소곳하고 얌전한 여자라고 꾸준히 어필했다.

물론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아리아의 골반 댄스는 다름 아니라 아리아가 추었던 춤이 바로 틱톡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제로투 댄스였다.

본인은 꼬리를 보라고 흔든 것이지만, 사람들은 꼬리의 소름 돋은 디테일에 감탄하기 보다는 보이듯 말듯 흔들리는 천 자락과 댄스에 숙달된 사람들만 보일 수 있는 특유의 야한 움직임에 크게 감탄했다.

그래서 아리아의 이미지 개선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가 사라질법 하면 그놈의 제로투 댄스를 포함한 골반 댄스가 틱톡이나 유튜브 숏츠 등의 짧은 영상으로 번져나갔다.

아리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성인 게임의 캐릭터라고 오해할 정도로, 그녀의 야한 분위기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으니 말이다.

만약 아리아가 인지도가 부족한 인터넷 방송인이었다면 이 행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소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개의치 않았겠으나, 그녀는 애먼적에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유명 버튜버가 되었기에 이런 관심은 바라지도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다른 선라이즈 버튜버 선배들처럼 스스로를 청초한 아이돌이라고 주장하는 선라이즈식 청초에 물들여버렸다.

그녀의 진정한 팬들은 그녀가 청초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녀를 야하다는 이미지로 몰아가고, 짓궂은 농담을 던지면 환상적인 리액션들을 보여주는 데 말이다.

그리하여 마치 기름을 부어 발생한 화재가 물에 쉽게 가라앉지 않듯 아리아의 이미지는 그녀의 의도대로 바뀌지 않았다.

“후, 어쩔 수 없네요. 나에 언니와 함께 한 요리 방송으로도 잠재울 수 없다니.”

“당분간 정기 콘텐츠로 해야하지 않을까?”

다소 사심이 잔뜩 들어간 나에의 발언이었다.

“여자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꾸준히 이런 어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원래 끈기와 반복은 일본 여자의 매력이라고.”

“언니의 말대로 그럴거긴 한데…

아무래도, 조금 더 강력한 수단을 써야겠어요.”

“무슨 생각이야?”

“3D 라이브 춤으로 생긴 오해는 3D 라이브로 풀어야죠.

구체적으로는 운동 컨텐츠를 진행할 생각이에요.”

“혹시나 말해서 링피트 할 생각은… 아니구나, 다른 애들은 링피트 방송에 숨을 헐떡이는 변태같은 ASMR 소리같은 게 나오는 데 유나는 문제가 없겠구나.

그러면 어떻게 할거야? 너도 알겠지만 아무리 정교한 3D 아바타라고 해도, 결국 디테일한 움직임을 표기하는 건 문제가 있잖아.”

“제가 이것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그랬는데… 어쩔 수 없죠.

언니 혹시 태보라고 아세요?”

“태…뭐?”

“섹시 이미지와 대조되는 개그 이미지, 그것이 저의 이미지를 바꿔 줄겁니다.

뇌근(?)과 개그, 이것으로 승부를 볼 거예요.”

가정적인 이미지 좋다.

여성력이라는 일본적인 표현으로 자신에게 생겨난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얌전하고 조신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를 연기할 때 마다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거북한 감정이 들었다.

당분간 요리 방송 같이 자신의 여자력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건 중요하지만, 결국 3D 라이브에서 생긴 오해는 3D라이브에서 풀어버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유나가 택한 것은 에어로빅 댄스, 그것도 조금 개그 코미디로 남은 이웃 나라의 유명한 밈이었다.

******

아리아의 3D 아바타 방송은 데뷔 때 한 번, 해명(?)방송 때 한 번, 그 두 번 이후 다시 켜진적이 없었다.

아바타 자체는 문제 없었고, 기술력과 자본이 빵빵하게 들어간 아리아의 아바타는 선라이즈의 프론티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본인이 부끄러워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그러게 좀 작작 놀리지’같은 의견이 나왔지만, 그래도 아리아의 부끄러워하는 반응은 솔직히 말해서 선라이즈에서 제일 야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동의할만큼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날의 3D 방송만큼은 적당히 놀려야지, 같은 생각을 지닌 시청자들은 아리아의 예쁘고 비싼(중요했다) 아바타를 보고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일단 디자인 부터가 예뻤다.

맨 살갗이 드러나는 부위는 고작해야 손과 발목 정도로 극히 적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바디 라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짜 타이즈 복장은 노출한 것보다 야했다.

잡아당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리아 특유의 동양풍 무늬가 들어간 검은 타이즈의 허벅지 부분은 하얀 피부가 보이게 살짝 구멍이 나있었는데, 이 살짝 드러난 부분이 팬들을 미치게 하는 포인트였다.

물론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는 타이즈 위에 붉은 비단 천을 덧대어 가렸지만, 펄럭거리는 천이 매력 포인트를 더해주었따.

거기에 해상도가 다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디테일 높은 옷 장식까지 더해지니, 살갗을 드러냈는데도 묘하게 단정한 이미지를 주는 방송용 아바타가 아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친 수준이 되었다.

오죽하면 보자마자 야한 농담으로 된 도네이션을 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겠는가?

하지만 그날의 아리아는 조금 달랐다.

일단 두 번의 방송처럼 굉장히 들뜬, 마치 도시에 갓 상경한 여자아이같던 푼수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대 또한 달랐다.

앞서 사용했던 아리아의 스테이지를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옛 교토 풍 배경 대신에, 댄스 연습실을 연상하게 하는 거울과 나무바닥으로 이루어진 심플한 공간에 선 아리아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3D 아바타랍니다.”

­아리아님 귀여워!

­너무 예뻐요!

­콘아리아~ 역시 디자인이 너무 예뻐요 ㅠㅠ

일본어와 영어가 섞인 채팅창을 읽어주며 반갑게 응대한 아리아는 가벼운 근황 이야기 (가을 전어를 먹고 싶다는 내용이었다)를 한 후 본격적으로 오늘의 콘텐츠를 밝혔다.

“오늘은 3D 아바타를 활용한 방송이에요.

여러분들이 저에게 춤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이것은 10월 달에 예정된 라이브 준비를 위해서 아껴두고 있어요.”

“네, 그렇습니다! 아리아의 300만 구독자 달성 기념의 3D 라이브가 10월 2주차에 예정되어있다구요! 어라, 아직 300만이 아니니까 무리 아니냐구요? 저 아리아에요 아리아!

10월달이면 300만은 가능하죠.”

“그래서 저는 요즘 라이브 공연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스테이지를 보이기 위해서 체력을 비축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가을 들어서 살이 좀 쪘는데 (이 말에 시청자들이 야유했다), 살을 빼기 위해서 평소 하는 근력 운동 말고도 굉장히 도움 되는 운동을 하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이 운동을 한다면 아리아처럼 예쁜 몸…을 가지는 건 무리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사는 건 가능해요. 뭐, 저처럼 변하지 않냐구요? 꿈 깨세요. 아리아같이 예쁜 몸은 유일무이하다구요.”

최근 들어서 자신감이 붙어서 그런지 자화자찬 하는 일이 잦아진 아리아는 얄밉게 혀를 내밀며 시청자들을 놀렸다.

4주 안에 15만 구독자가 늘 것이라고 당당히 자부하는 아리아의 언행에 일부 시청자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대다수는 수긍했다.

솔직히 아리아는 보면 볼수록 새로운 매력이 피어나서 자연스럽게 주위에 권하게 되는 버튜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 운동이 뭐냐구요?”

“태보라고 하는거에요. 태­ 보, Tae­bo”

“태보가 뭐냐구요? 태권도와 복싱을 섞은 운동입니다.

하루 25분 정도만 투자한다면 병든 몸이여 안녕! 건강한 삶이 가능합니다!”

이어서 에어로빅 특유의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 복싱을 하듯 가볍게 톡톡 뛰기 시작한 아리아는 복싱의 기본 자세를 잡으며 힘차게 외쳤다.

“자아, 따라만 하세요 따라만 하세요!”

그리고 아리아의 방송 가운데 역대급으로 골 때린다는 방송인 태보 방송이 시작되었다.

****

[아리아 무친련

아니 시발, 저 예쁜 아바타로 한다는 게 태보라고?

나는 아리아의 예쁜 골반을 보러왔는데, 에어로빅 영상을 보고 있지?]

­따라만 하세요 따라만 하세요 이러는데 미치는 줄 ㅋㅋㅋ

­댄스… 댄스 맞나? 아니야 이건 댄스가 아니야!

­그래도 웃기긴함ㅋㅋㅋ

­근데 이 태보라는 게 아시아권에서 유행하는 종목인가?

ㄴ미국에서 시작됬는데, 태권도 하면 아시아 스포츠니 아시아에 유행하는거겠지.

­박자와 아리아의 원 투 쓰리가… 너무 매치된다.

­아리아는 원래 재능 낭비가 심하지만, 이번엔 좀 심했어.

[태보…묘하게 중독된다.

아리아는 언제나 우리를 특유의 아름다운 동작으로 매혹시켰지

그녀의 화려한 꼬리와 자극적인 복장은 언제나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어.

하지만 그녀가 빌리의 부트캠프같은 에어로빅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아리아가 자신을 야한 소재로 삼지 말라는 일종의 시위인셈이지.

그래도 아리아를 좋아하는 나는 그녀의 영상을 보고 태­보를 했는데, 생각보다 운동이 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유튜브에 올라온 그녀의 태보 영상을 보면서 운동하려고, 아리아의 말대로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도네이션 많이 해야지.]

­아리아가 마지막 말은 한 적이 없는데 ㅋㅋ

­근데 태보 도움되는 거 맞음? 일단 아리아가 하라고 하니 하는데…

­짐 매니저입니다. 그녀의 25분 태보 동작은 다칠 위험이 없고 기초적인 동작을 위주로 한 영상이라 평소 운동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입문이 가능합니다.

­내 생각에 그녀는 상당히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야, 전공이 그쪽인가?

­본인 말로는 스포츠과학과 출신이라고 하니, 나름 전문적이지

­발차기 하는 몇 동작을 제외한다면, 요양원에서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빌리의 부트캠프처럼 힘들지 않고, 코로나로 운동할 일이 적어진 사람들에게 적당합니다.

ㄴ거기에 일단 아리아가 이쁘니 집중이 된다 인정?

ㄴㄴ절대 인정

ㄴㄴㄴ절 대 태 보 해

인정하기 싫지만, 아리아는 오타쿠들에게 딱 맞는 피트니스 강사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장비를 합친다면 1천만엔 이상이 투자된 버튜얼 서비스와 업계 최신 가상 아바타 기술을 가지고 에어로빅을 한다는 기발한 발상을 한 버튜버는 여태껏 없었다.

그러기에 아리아는 유튜브 역사상 최초의 라이브 에어로빅 버튜버 라이브를 진행한 셈이었다.

그런 자부심(?)을 품고 아리아의 팬들은 그녀의 기행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꼭 해보라는 말에 동작을 몇 번 따라하다가 묘한 중독성에 이끌렸다.

‘따라만 하세요’

‘내일도 하세요’

‘절 대 태 보 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꼬실것 같은 구미호 아바타로, 태권도 발차기와 권투의 잽을 날리면서 외치는 그 모습은 파격적이다 못해 파란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리아가 가져온 에어로빅 영상, 태보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팬들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25분동안 열심히 소리치면서 에어로빅 동작을 취해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그녀에게 ‘선라이즈 육체 최강자’라는 별명이 붙고, 그녀의 태보 영상은 선라이즈 각국의 팬들에게 번역되어 보급되었다.

그래서 2020년 가을, 일본 오타쿠 사이에서는 때아닌 태보 열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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