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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누군가는 알고 있다 (14/183)

14. 누군가는 알고 있다2021.06.16.

조용한 집무실. 지헌은 정오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사방이 막혀 있는 곳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금은 편하게 이 여자를 지켜보고 싶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은 언제나 같은데, 그 와중에도 매번 미약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채집망에 붙잡힌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던 여자가, 그다음에는 형사처럼 나타나 손목을 잡고, 한 많은 미망인처럼 눈물을 뚝 흘리다가, 이번에는 풋내기 신입사원처럼 의기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것은 좋지만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헌은 누구에게나 그랬듯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16551138072336.jpg“본인 이름이 남을 만큼 유명한 광고라도 찍었습니까?”

지헌의 냉대에 그녀 또한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후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16551138072345.jpg“……할 말이 있습니다. 이사님.”

마른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결심한 듯 힘주어 목소리를 낸 순간. 드르르르. 드르르르. 그녀의 목소리를 막는 진동이 울렸다.

16551138072336.jpg“전화 온 거 아닙니까?”

16551138072345.jpg“아뇨. 괜찮습니다.”

정오가 제 주머니를 손으로 막았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듯. 진동은 끈질기게 계속 울렸다.

16551138072336.jpg“일단 받아요. 급한 전화일 수도 있으니까.”

지헌은 선심이라도 쓰듯 턱짓을 해 보였다. 누가 전화를 했으려나, 그 통화 상대 또한 궁금했으므로.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휴대폰에 뜬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16551138072345.jpg“그럼 밖에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지헌의 눈이 커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지헌이 붙잡기도 전에 정오는 날름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하……. 나가라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집무실에서 통화를 하라는 거였는데.

16551138072345.jpg“네. 선생님.”

집무실 밖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라는 작자가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지헌은 꼼짝없이 그녀가 통화를 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10분, 20분……. 그녀가 떠나며 남겨놓은 정적 속에서 지헌은 시계만 바라보았다. 무슨 통화를 30분씩 하지?

16551138072336.jpg‘혹시 선생님이라는 작자가 클라이언트인가?’

30분이 흘렀을 무렵, 지헌은 더는 못 참고 문을 열었다.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51138072336.jpg“이정오 대리는 아직?”

16551138072396.jpg“네? 이정오 대리는 한참 전에 갔는데요.”

……이런 황당한 경우가.

16551138072336.jpg“다시 오라고 해요.”

지헌의 서슬퍼런 목소리에 비서가 부랴부랴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후 집무실로 소식이 전해졌다.

16551138072396.jpg“이사님, 이정오 대리 외출했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설명도 없이, 간다는 말도 없이, 할 말이 있다고 해놓고는. 하. 어처구니가 없어 탄식밖에 나오질 않았다. 휘둘리지 않으려 애썼는데 제대로 한 방 먹었단 생각이 들었다. *

16551138072396.jpg[예나 어머니, 예나가…… 안 와서요……. 선생님이 제 시간에 마중 나가긴 했는데, 어린이집 버스가 일찍 도착해서 일찍 내린 모양이더라고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정오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자리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잠시 외출하겠단 말도 택시를 타고 나서야 했다. 사정을 다 말하진 못했지만 성미란 팀장은 너른 마음으로 헤아려주었다. 퇴근시간 무렵이라 택시는 굼벵이걸음이었다. 차 안에서 흐르는 1분이 한 시간, 아니, 1년 같았다. 정오는 애원했다.

16551138072345.jpg“기사님, 빨리, 빨리…….”

16551138072396.jpg“여기서 더 빨리는 못 가요.”

16551138072345.jpg“저희 애가 없어져서요……. 버스에선 내렸다는데, 일찍 도착해서…… 애가, 학원에서는, 없어졌다고…….”

정오는 그저 흘러나오는 대로 횡설수설 말했다. 꽉 막힌 도로가 숨통까지 조이는 듯했다. 두서는 없었으나 정오의 애달픈 마음은 제대로 전해졌다. 정오의 사정을 제대로 알아들은 기사의 손발이 바빠졌다. 기사는 제가 아는 가장 빠른 길로 내달렸다. 도로를 급하게 달린 차가 바둑학원 앞에서 멈춰 섰다.

16551138072345.jpg“선생님!”

정오는 택시에서 내려 바둑학원 원장에게 달려갔다. 학원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둑학원 원장, 보조 선생님과 남자아이, 여자아이, 그리고 정오와 비슷한 연배의 여자였다.

16551138072396.jpg“예나 어머니.”

16551138072345.jpg“우리 예나는요? 예나 찾았어요?”

16551138072396.jpg“찾았어요. 지금 연락 왔어요.”

16551138072345.jpg“어디 있다고 하나요?”

16551138072396.jpg“경찰이 보호하고 있대요. 이쪽으로 데려온다고 했어요.”

하아아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원장이 전해준 소식에 긴장이 풀린 정오가 가슴에 손을 얹고는 주저앉았다. 원장과 그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양옆에서 정오를 부축했다.

16551138072396.jpg“많이 걱정하셨죠. ……죄송합니다.”

원장의 사과에 정오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 있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고서 얼굴을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정오를 부축해준 낯선 여자가 인사했다.

16551138132028.jpg“안녕하세요. 예나 학원 친구 도빈이 엄마예요. 도빈이가 예나를 좋아해서…… 예나 보고 간다고 해서요.”

16551138072345.jpg“아, 네. 안녕하세요.”

정오는 도빈의 엄마, 진서에게 인사했다. 진서의 옆에 서 있던 예나 또래의 남자아이가 꾸벅 인사하고는 쑥스러운 듯 제 엄마 뒤로 숨었다. 네가 도빈이구나.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지만 예나의 또래를 보니 반갑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제대로 중심을 잡고 일어난 순간 멀리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청록색의 경찰 제복을 입은 키 큰 남자와 예나였다.

16551138072345.jpg“예나야.”

정오는 예나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달려갔다.

16551138132043.jpg“엄마아!”

예나도 와락 달려왔다.

1655113813205.jpg

  정오는 예나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모두의 걱정을 끼친 예나를 혼내야겠단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눈물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6551138072345.jpg“어디 봐. 어디 다친 덴 없어? 괜찮아?”

16551138132043.jpg“응. 괜찮아.”

16551138072345.jpg“어디까지 갔었어. 혼자 그렇게 멀리 가면 어떡해.”

16551138132043.jpg“내가 혼자 간 거 아니야. 이상한 아줌마가 학원 선생님이라면서 손잡고 막 갔어. ”

예나가 또박또박 말했다.

16551138072345.jpg“학원 선생님이라고 했다고?”

정오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16551138132043.jpg“응. 그렇게 데려가 놓고 나중에는 어머 너 누구니? 그러면서 손을 놨어.”

가슴이 철렁했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함께 온 경찰을 바라보니 경찰이 말했다.

16551138163673.jpg“수상한 사람 같아서 조사해볼 계획입니다. 근처의 CCTV를 확보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간략하게 계획을 전한 경찰이 뒤늦게 자신을 소개했다.

16551138163673.jpg“화양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권배일이라고 합니다.”

준수한 용모에 훤칠한 남자였다. 얼굴이 희고 인상도 순해서 형사로서 범인을 취조하는 장면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16551138072345.jpg“네. 안녕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오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편안하게 웃은 배일이 그사이의 정황을 설명했다.

16551138163673.jpg“동료가 차로 순찰을 돌다가 이 친구를 봤다고 합니다. 여기 남자친구 목청이 하도 좋아서요.”

배일이 도빈을 가리키자 도빈의 두 뺨이 붉어졌다.

16551138163673.jpg“어디서 누구를 잃어버렸다는 걸 금방 알게 돼서 동료가 찾으러 다녔는데, 예나가 제 동료를 보고 도망갔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제복 차림이 아니라 무서운 아저씨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16551138132043.jpg“아저씨이…….”

배일의 정황 설명이 부끄러운지 예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두 사람은 그사이에 친해진 것 같았다. 배일은 계속 말을 이었다.

16551138163673.jpg“결국 제가 가서 데려오게 됐습니다. 혼자 소방서 앞까지 갔더라고요.”

16551138132043.jpg“경찰서가 안 보이잖아. 그래서 찾아다녔단 말이야.”

예나가 야무지게 말했다. 정오는 예나의 손을 꽉 쥐었다. 이만하길 다행이야.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딸은 제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그 뼈에 사무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 지헌은 퇴근할 생각도 잊은 채 턱을 괴고 앉아 시계만 바라보았다.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진 이정오에게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연락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기다린단 사실을 잊은 것 같았다. 저녁 7시를 막 지났을 때 드디어 노크 소리가 들렸다.

16551138072336.jpg“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이정오가 아니라 친구 박승규였다. 자리에 바르게 고쳐 앉았던 지헌의 표정이 다시 험상궂게 변했다.

16551138193003.jpg“퇴근 안 해?”

승규는 여상하게 질문하며 응접 테이블 앞에 앉았다. 정오가 앉았던 그 자리였다. 지헌의 곁눈질이 날카로워졌다. 승규는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아들 자랑을 시전하고자 입을 열었다.

16551138193003.jpg“내가 웃긴 얘기해줄까? 아들내미가 빠져 있는 애가 있어.”

16551138072336.jpg“아들이 스무 살은 된 것처럼 말하네.”

16551138193003.jpg“요즘 애들이 그래. 일곱 살도 조숙하더라고.”

16551138072336.jpg“…….”

16551138193003.jpg“첫눈에 반했다더라. 제 엄마 몰래 나한테 얘기해줬지. 요즘 애들 참 재밌다.”

16551138072336.jpg“너야 재밌겠지만 그 애 아빠가 그 얘길 들으면 충격받지 않겠어?”

비꼬는 듯한 지헌의 태도에 승규의 눈이 멍해졌다. 여기서 그 애 아빠가 왜 나와? 그리고 내 아들이 어때서? 그리고, 첫눈에 반했다는 말 정도에 충격받을 애 아빠도 있나? ……아무래도 내 친구에게 무언가 심기 불편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승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헌 쪽으로 다가갔다. 눈이 마주치자 지헌이 무시하듯 고개를 돌렸다.

16551138193003.jpg“무슨 일 있었어?”

16551138072336.jpg“일은 무슨 일.”

16551138193003.jpg“무슨 일 있구먼, 뭐.”

16551138072336.jpg“그런 거 없어. 퇴근이나 해.”

고개를 돌리고 딴 곳을 바라보는 지헌은 새침데기 어린아이 같았다. 승규는 픽 웃고는 농담을 던졌다.

16551138193003.jpg“너 나 싫어하지.”

16551138072336.jpg“무슨 소리야.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16551138193003.jpg“날 좋아한다고? 네가?”

농으로 건넨 얘기가 찐이 되었다. 16년 동안 친구에게 이런 고백은 들어본 적이 없는지라 승규의 얼굴이 잠시 상기되었다.

16551138072336.jpg“그럼. 좋아하지.”

지헌이 다시 고개를 돌려 승규를 바라보며 실금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왠지, 그 희미한 미소가 삐딱하게 느껴졌다.

16551138072336.jpg“그래서 널 내 옆에 두는 거잖아. 어머니가 보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승규의 표정은 금세 굳었다. 친구를 친구로서, 상사보다는 친구로서 우정을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승규의 자부심이 일순간 무너졌다. 지헌이 무정하게 말을 이었다.

16551138072336.jpg“너한텐 잘할 거야. 널 실망시킬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

16551138193003.jpg“……너는 나를 그런 놈으로 보고 있었구나.”

이 끔찍한 이야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친구의 태도에 승규는 울컥했다. 모든 직원에게 공평한 싸가지 없음으로 밥보다 욕을 더 많이 먹고 있는 친구였지만 승규에게 지헌은 언제나 안쓰러운 존재였다. 그랬던 친구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16551138193003.jpg“너는 내가 우습지?”

16551138072336.jpg“난 네가 우습다고 한 적 없는데. 좋아한다고 했잖아.”

16551138193003.jpg“아니. 우스울 거야. 속으로는 계속 그렇게 생각할 테지. 네 이중성을 내가 모를 줄 알아?”

승규 또한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 놓았다. 박승규가 오랜 시간 지켜봐 온 정지헌이라는 인간에 대하여.

16551138193003.jpg“매사에 그래, 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버려두고 차선을 택하고. 항상 100을, 150을 투자할 수 있으면서 80만 공을 들이고. 1등을 할 수 있으면서 2등, 3등을 하고. 넌 그래. 넌 어떤 일에도, 어떤 관계에도 노력하지 않아. 넌 인생이 쉬워. 아니야?”

지헌을 보면 80%만 충전되면 자동으로 방전되는 배터리가 떠올랐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한 지점에서 스스로 타협점을 찾으며,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일부러 세상의 기대치를 한껏 낮춰놓고 ‘시늉’만 하며 인생 편하게 사는 녀석. 하지만, 그게 정말 편한 인생이었을까? 시늉만 하는 녀석의 인생은 과연 편할까? 그래서 정을 주었다. 너무 안타까운 친구라서. 3년간 쌓아올린 기억을 몽땅 잃어버리고 깨어난 그날에도 덤덤하고 묵묵했던 친구라서.

16551138193003.jpg“넌 소중한 게 없잖아. 널 지나쳐 간 모든 사람들이 하찮지, 너한텐.”

승규의 혹독한 평가에도 지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친구를 잃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무표정. 그 표정에 불쑥 서러워지는 건 모진 말들을 꺼낸 승규였다. 녀석을 원망하면서도 미워할 수는 없었다. 미련스럽게도.

16551138193003.jpg“그럼에도 널 지지해.”

16551138072336.jpg“…….”

16551138193003.jpg“넌 믿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화가 나는 순간에도 널 지지해, 이 자식아. 네가 대체 왜 그렇게 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나는 널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는지 넌 모를 거야. 평생.

16551138193003.jpg“네 어머니가 아니라 네 편이라고. 나쁜 놈아.”

승규는 마지막을 각오하며 맺힌 마음을 쏟아내고서 집무실을 나왔다. 쾅. 일부러 문도 쾅 닫았다. 하지만 떠나는 걸음은 무거웠다. 마음을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남은 마음이 미련처럼 발목에 매달렸다. * 몇 분 뒤에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연실색하여 달려왔다.

16551138072396.jpg“예나를 두고 떠나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어린이집에서 잘못한 일이 맞지만, 선생님이 이렇게 사과를 하니 정오도 화를 내기가 어려웠다.

16551138072345.jpg“괜찮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죠. 번거로우시겠지만 앞으로 학원 앞에 도착하시기 몇 분 전에 학원으로 연락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16551138072396.jpg“네.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문제가 터져 가까스로 봉합이 되었다면, 이후에는 예방에 힘쓰면 된다. 경찰에게도 예방에 힘쓰겠단 약속을 받았으니 믿고 의지하고, 시름을 놓아야 한다. 정오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예나의 어린이집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방에 뭔가가 들은 것 같아 흔들어보았다.

16551138132043.jpg“엄마, 가방에 그림 들었어. 오늘 어린이집에서 동물원 만든 거야.”

가방 안에는 ‘동물원’이라고 쓰인 종이 액자가 들어 있었다.

16551138072345.jpg“이게 무슨 동물이야?”

16551138132043.jpg“그거 사슴.”

……예나야, 너는 이게 정녕 사슴이라고 생각하니? 사슴인지 사자인지, 아니면 사마귀인지. 초록색의 몸에 육식 동물의 이빨을 지닌 이 특별한 동물을 사슴으로 인정해야 한단 사실이 우스워 정오는 웃고 말았다. 그러던 중, 가방의 앞주머니에 삐죽 나온 쪽지가 보였다. 정오는 아무 생각없이 쪽지를 빼들었다. 쪽지 안에 쓰인 글씨는……. - 외모는 엄마, 성격은 아빠. 반씩 닮은 아이네요. 그리고, 장난스럽게 그려진 세련 그룹의 로고……. 평온하게 지은 정오의 미소가 흐트러졌다. 심장이 발밑으로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알고 있다. 내가 정지헌의 아이를 낳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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