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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이를 위하여 엄마는 강해진다 (15/183)

15. 아이를 위하여 엄마는 강해진다20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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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서는 오늘 일로 충격을 받은 정오와 예나를 살뜰하게 챙겼다. 어쩌다 보니 정오는 진서의 차를 얻어타고 국순백반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16551138363342.jpg“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같이 저녁 드시고 가세요.”

16551138363347.jpg“어머, 그럴까요? 감사해요.”

진서는 붙임성 있게 정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예나가 가장 먼저 식당 문을 열었다.

16551138363351.jpg“할머니이!”

16551138363355.jpg“아이고, 우리 강아지!”

국순은 달려오는 손녀딸을 두 팔 벌려 맞았다. 반가운 기색과 더불어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정오의 연락을 받고, 국순도 하염없이 걱정을 했던 것이다.

16551138363355.jpg“우리 강아지, 어디 안 다쳤어?”

16551138363351.jpg“응!”

16551138363355.jpg“금방 찾아서 천만다행이네. 이 이쁜 걸 잃어버렸으면 어쩔 뻔했어…….”

국순이 예나의 뺨에 제 뺨을 비볐다.

16551138363342.jpg“엄마, 이쪽은 예나 바둑학원 친구 도빈이 어머니야. 오늘 예나 찾는 데 도와주셨어.”

16551138363347.jpg“안녕하세요. 여사님.”

예나를 끌어안고 있던 국순이 정오의 소개에 몸을 일으켰다.

16551138363355.jpg“아이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국순이 진서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들며 재차 고개를 숙이자 진서도 어쩔 줄 몰라 하며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16551138363355.jpg“우리 예나가 도빈이 얘기하더라고.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요.”

16551138399099.jpg“도빈이 얘기 뭐요?”

국순의 인사에 도빈이 참견했다.

16551138363355.jpg“네가 도빈이구나.”

국순이 도빈을 귀엽게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16551138363355.jpg“도빈이가 친구라고 얘기했지.”

도빈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신이 어떤 표현을 하든 뚱하고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새침데기 예나가 자신을 친구라고 말했단 사실에 흡족해진 것이다. 이윽고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국순은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온갖 반찬들을 내왔다.

16551138363347.jpg“맛있게 먹겠습니다. 감사드려요.”

16551138363355.jpg“아이들 입맛에 맞을까 모르겠네.”

예나의 할머니에게 점수를 딸 좋은 기회. 도빈은 밥을 크게 한술 떠 입으로 가져갔다. 집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짓이었다. 진서가 그런 도빈을 흐뭇하게 보고는 국순에게 말했다.

16551138363347.jpg“저희 친정엄마도 근방에서 장사하셨거든요. 오랫동안 하셨어요.”

16551138363355.jpg“그래요?”

16551138363347.jpg“네. 진서 꽃집이라고 아세요? 6년 전에 시장 사거리 쭉 들어가면 있었는데.”

16551138363355.jpg“알지, 알지! 그 집 딸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언뜻 본 것도 같네!”

16551138363347.jpg“저도요.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여사님이 왠지 잘 알던 분 같았어요.”

16551138363355.jpg“어머니는 안녕하시고?”

16551138363347.jpg“네. 지금은 일 정리하시고 시골 가셔서 아빠랑 농사지으세요.”

16551138363355.jpg“그렇구나. 그랬구나. 그때도 두 분이 얼마나 잉꼬 같던지. 아유, 인연이네, 인연이야. 반가워요. 아들도 딸도 차암 똘똘하게 생겼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정오는 한창 고민에 빠져 있었다. 경찰에 얘기할까? 얘기를 하면 믿어줄까?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에 들어있던 쪽지를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심에 살을 붙여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엔 너무 성급하게 여겨졌다. 쪽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정지헌과의 사이가 밝혀질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예나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어쨌든 경찰 쪽에서 예나를 데려갔던 수상한 여자를 추적해보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16551138363342.jpg‘그 쪽지도, 세련그룹의 로고도 장난이고 우연일 수 있지. 충분히.’

또한 쪽지가 협박도 아니고, 단순한 사실일 뿐인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긴장하지 말고 앞으로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정오는 몰래 스스로를 다독였다. 진서는 국순에게 깍듯하고 정오에게 다정했다. 정오에게 애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인지도 묻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정오는 진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16551138363347.jpg“체계적인 육아를 하고 싶었는데, 생각대로는 안 되더라고요. 책도 많이 읽고 육아 방송도 많이 봤거든요. 나름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은 건 많은데도 실제로 응용은 안 돼요. 그럴 때 참 내가 무력하게 느껴져요.”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진서가 현재의 근심을 털어놓았다.

16551138363347.jpg“지금 일하시죠?”

16551138363342.jpg“네.”

16551138363347.jpg“멋있어요. 정말.”

16551138363342.jpg“…….”

16551138363347.jpg“학원 선생님도 예나 칭찬을 얼마나 하시는지 몰라요. 그렇게 멋있게 일도 하시고 아이도 똑똑하게 키우시고. 정말 대단하세요.”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인데.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이 더 힘들 것 같은데. 진서의 칭찬에 정오는 머쓱해졌다.

16551138363342.jpg“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애가 없어졌다는 말에 회사를 뛰쳐나왔거든요.”

16551138363347.jpg“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요, 예나 어머니.”

긴한 얘기라는 듯 진서가 잠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16551138363347.jpg“바둑학원 끝나면 제가 데려가면 어떨까요? 아니, 아예 도빈이 어린이집 끝나고 픽업하면서 예나도 데려가면 좋을 것 같은데. 꾀꼬리 어린이집이랑 소나무 어린이집 가깝잖아요.”

16551138363342.jpg“아…….”

16551138363347.jpg“그러고 저희 집에서 우리 도빈이랑 도윤이랑 놀다가 어머니 식당 일 끝나시면 데려다주면 될 것 같은데.”

16551138363342.jpg“…….”

16551138363347.jpg”밥도 먹이고 중간중간 사진도 찍어서 보낼게요. 실은 제가 영양사 출신이에요. 애들 영양가 골고루 챙길 자신 있고요.”

정오가 재차 어물거리자 진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16551138363347.jpg“뭘 바라고 그러는 건 아니고요. ……사실 도빈이가 예나를 좋아해서요. 예나 얘기만 꺼내면 애가 의젓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사이좋게 지내면서 책도 읽고 놀이도 하게 해주고 싶어서요. 너무 속보여서 죄송한데, 예나를 보고 도빈이가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진서는 허심탄회하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16551138363347.jpg“오늘 그런 일이 있어서, 바로 사람을 믿기는 좀 어려운 거 이해해요. 게다가 아들도 아니고 딸인데…….”

16551138363342.jpg“아뇨. 아니에요. 예나도 도빈이 얘기했었어요. 믿어요. 못 믿는 게 아니에요. 힘드실까 봐 그러는 건데…….”

16551138363347.jpg“아녜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정오가 진서를 염려하니 진서는 두 손을 마구 저었다.

16551138363347.jpg“그럼 이건 어때요? 일단 하루만 제 부탁대로 해보는 거. 하루만요.”

그리고 다시 눈을 빛냈다. 붙임성 있는 목소리가 왠지 애절하게 들렸다.

16551138363347.jpg“둘이 안 싸우게, 제가 잘 지켜볼게요. 예나 서운하지 않게 노력할게요.”

정오는 가슴이 찡했다.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천사라니.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 또 있을까? * 다음 날 아침. 정오가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아침이었다. 어제 그런 큰일이 있었으니 오늘이야 어린이집 선생님과 바둑학원 선생님이 조금 더 신경을 써주겠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하며, 정오는 몇 번이나 예나에게 당부했다.

16551138363342.jpg“예나야, 아무하고나 얘기하면 안 돼. 알았지?”

16551138363351.jpg“응!”

예나의 대답은 자신만만했다. 그래도 엄마는 쉽게 안심할 수가 없었다.

16551138363342.jpg“누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돼. 알지?”

16551138363351.jpg“응!”

16551138363342.jpg“싫은 건 싫다고 해야 하는 거고. 잘할 수 있지?”

16551138363351.jpg“응!”

16551138363342.jpg“알았다고 하고 또 말 안 들을 거지?”

16551138363351.jpg“응! 아니아니!”

역시 기계적인 대답이었군.

16551138363342.jpg“예나야, 모르는 어른이 와서 지금 팔이 아파서 그러는데 짐 좀 들어달라고, 도와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16551138363351.jpg“도와줄 거야!”

역시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온갖 간계를 쓰는 어른이 나쁜 마음을 먹고 아이를 꾀어내면 아이는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어른들도 세상의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이런 순박한 아이들이 오죽하겠는가. 그저 잘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 엄마는 이렇게나 근심하는 와중에, 할머니를 달달 볶아 얼음 하나를 획득한 예나는 정오의 귀에 대고 아드득 얼음을 깨물었다.

16551138363342.jpg“이예나, 뭐 하는 거야.”

16551138363351.jpg“ASMR.”

예나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들려주는 소리였다. 정오는 예나를 앞으로 끌어와 앉혀놓고서 타일렀다.

16551138363342.jpg“예나야. 어린이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어른은 잘못된 거야. 모르는 어른은 네가 안 도와줘도 돼. 알았지?”

16551138363351.jpg“응!”

16551138363342.jpg“엄마 말, 알아듣기는 했어?”

16551138363351.jpg“응!”

어제 그렇게나 놀랐으면서, 오늘의 딸아이는 참으로 씩씩하다. 이 대책 없는 해맑음을 지켜주고 싶다. 정오의 진심은 사실 그랬다. * 어제는 갑자기 예고없이 조퇴를 해버렸으니 오늘은 더욱 열심히 일해야 했다. 일찍 출근한 정오는 짐을 내려놓고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 지헌의 비서를 발견했다. 비서가 먼저 정오에게 인사했다.

16551138546208.jpg“대리님, 안녕하세요.”

16551138363342.jpg“네. 애라 씨, 안녕하세요.”

16551138546208.jpg“이사님께는 가보셨나요?”

16551138363342.jpg“네?”

16551138546208.jpg“제가 메모 남겼었는데. 못 보셨어요?”

16551138363342.jpg“아…… 못 봤어요. 죄송합니다.”

16551138546208.jpg“아니에요. 어제부터 정지헌 이사님이 찾으셨어요. 지금 한번 가보세요. 집무실에 계세요.”

16551138363342.jpg“네. 감사합니다.”

비서와 인사를 하고서야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지헌에 대한 상념을 뒤로 미루었다. 딸 걱정을 하느라. 예나에 대한 걱정이 결국 지헌과 이어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며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았다. 그가 집무실에서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실도 잊어버렸었고.

16551138363342.jpg‘오래 기다렸다면 화났겠네.’

미안한 일이긴 했다. 죄인 같은 표정을 짓지는 못하겠지만. 정오는 곧장 지헌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똑똑,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정오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16551138363342.jpg“이…….”

눈치를 보는 척 하려고 조용히 불렀으나 바로 입을 닫았다. 지헌은 자고 있었다. 그것도 소파에 길게 누워서. 정오는 곧바로 다시 나갈까 하다가 멈칫,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그 앞으로 갔다. 일이 많은가? 많이 피곤했나? 모든 것이 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잠든 모습은 그대로였다. 짙은 눈썹, 휨 없이 날렵한 콧대, 선명한 인중과 반듯한 입매. 무엇보다도 독하게 쏘아대는 말과 날카로운 눈빛이 없으니 그가 매정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딱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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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뭘 잃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너무나도 딱한 사람. 예쁘게 큰 예나를 생각하니 그 세월을 지켜보지 못한 그가 더욱 안타까웠다.

16551138363342.jpg‘당신에게 우리 예나를 보여줄 수는 있을까?’

당신은 이렇게나 변했는데? 이제 새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데?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만에 하나의 위험을 생각하면 완전히 마음을 닫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누가 내 딸을 위협하는지만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16551138363342.jpg‘당신의 배후에는 당신의 어머니가 있는 걸까?’

당신의 어머니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예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 당신의 측근들은 과연 믿을 만한 사람들일까? 이 남자의 측근들. 그들을 파헤쳐보아야 한다. 이 남자에 대해서도……. 순하게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이 약해졌다. 이곳저곳을 건드려보고 싶은 유혹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하지만, 이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나의 욕심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깰 수는 없지. 그래도 예나를 만나게는 해주고 싶다.

16551138363342.jpg‘정지헌 씨. 우리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범인을 알게 될 때까지. 그의 주변을 파악하고, 예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모든 것은 그다음에.

16551138363342.jpg‘언젠가 우리 예나, 꼭 만나게 해줄게.’

단단하게 굳은 다짐을 했지만 이미 물러진 마음은 액체가 되었다. 눈물 한 방울이 그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정오는 깜짝 놀라며 뒤늦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울지 마. 이정오. 아무도 네 눈물을 닦아줄 수 없어. 네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 비장하게 일어난 정오는 심지 굳은 표정으로 뒤돌았다. 그런데.

16551138575413.jpg“어디 가.”

묵직한 목소리가 족쇄처럼 정오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16551138575413.jpg“어딜 가, 이래 놓고.”

그는 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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