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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너라서 재미난 이야기 (59/183)

59. 너라서 재미난 이야기2021.11.20.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그리고 생일. 아이에게 이날들은 1년 365일 중 가장 특별한 날이다. 그중 생일이 으뜸인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내 생일을 망친 게 이 아저씨였다니. 예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눈을 치떴다.

1655115089022.jpg“엄마. 회사 바꿔.”

지헌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몰랐어! 정말 몰랐다고! 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할 말이 없었다. 그날 정오가 야근을 한 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조시내 대리의 계략이었다. 게다가 그날 정오는 몇 번이나 지헌에게 사정사정을 했었다. 하지만 지헌이 무슨 이유로 집에 빨리 가려고 하느냐 물었는데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의 존재를 숨겼으니 당연히 대답하지 못하였던 거겠지. 지헌은 괜한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그녀를 붙잡아두었다. 왜 인간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당장 집으로 가서 딸 생일을 축하해주라고 말할 텐데. 지헌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정오를 쳐다보았다. 정오는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딸은 눈을 부라리고 그 엄마는 그윽하게 미소짓고 있으니 더욱 아뜩했다. 두 여자가 자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서 이렇게 요리할까 저렇게 요리할까 재는 것 같았다. 지헌은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정오에게 나 좀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눈빛을 읽은 정오가 예나를 설득했다.

16551150890226.jpg“예나야. 엄마가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어. 엄마도 돈 벌어야지.”

1655115089022.jpg“그럼 다음 예나 생일 오기 전에 바꿔.”

그러나 예나의 고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6551150890226.jpg“그렇다는군요.”

정오가 미소 지으며 지헌에게 말했다. 더는 예나를 설득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지헌은 그녀의 미소가 야속하게 여겨졌다. 나는 심장이 벌렁벌렁한데. 어떻게 시작한 관계인데, 그 딸의 반대에 부딪히게 될 줄은 몰랐다.

16551150890241.jpg“예나야, 여기서 기다려. 아저씨가 차 끌고 올게.”

1655115089022.jpg“엄마, 우리 그냥 걸어가자.”

지헌의 말엔 들은 척도 않고, 엄마의 손을 꽉 붙잡은 예나가 말했다. 예나를 막아설 수가 없어서 지헌은 주차장에 차를 놔두고 예나를 졸졸 따라 걸어가게 되었다.

16551150890241.jpg“예나야. 아저씨가 잘못했어.”

1655115089022.jpg“거짓말. 또 그럴 거잖아요.”

16551150890241.jpg“아니야. 다시는 안 그럴 거야.”

1655115089022.jpg“그럼 앞으로 우리 엄마 야근 안 시킬 거예요?”

16551150890241.jpg“……적어도 내가 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 예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가라고 할 거고.”

1655115089022.jpg“…….”

16551150890241.jpg“……예나야. 아저씨랑 같이 바둑 둘래?”

예나는 입을 꽉 다물고서 고개를 지헌의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아이는 이정오보다 더 어려웠다. 화난 아이를 달래본 적은, 아니, 아이와 이토록 긴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이번엔 정오가 나섰다.

16551150890226.jpg“예나야. 아저씨가 선물도 사주셨잖아.”

그러나 예나는 가방 안에 넣어둔 코알라 인형을 돌려줄 기세로 엄마를 노려보았다. 예나의 표정이 비장하여 정오도 마른침을 삼켰다. 이 정도의 똥고집은 정지헌의 유전자겠지? 정오는 얼른 말을 바꾸어 예나를 달랬다.

16551150890226.jpg“아저씨가 몰라서 그랬던 거야. 알았으면 엄마 일찍 보내줬을 거야. 우리 예나가 이해해줘. 응?”

1655115089022.jpg“그치만 예나 일곱 살 생일은 한 번밖에 없잖아.”

예나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1655115089022.jpg“왜 엄마는 아저씨 편만 들어. 엄마 딸은 아저씨 아니고 예난데 왜 예나한테만 뭐라 그래.”

으아아앙! 서러움에 북받친 예나가 또 눈물을 쏟아냈다. 정오와 지헌 모두 난감해졌다. 지헌은 어쩔 줄 모르는 채로 굳어버렸고, 정오는 팔을 뻗어 예나를 끌어안았다. 바둑은 그렇게 천재적으로 잘 둔다는데, 이럴 땐 영락없는 일곱 살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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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인어른, 장모님이 오셨다고 하여 승규도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 왔다. 현관문을 여니 가장 먼저 도빈이 달려 나와 승규를 끌어안았다.

16551150918461.jpg“아빠아!”

어제는 아빠와 연을 끊을 것처럼 그렇게도 성을 내더니, 하루 만에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다.

16551150918465.jpg“도빈이 바둑 잘 갔다 왔어?”

16551150918461.jpg“응!”

16551150918465.jpg“오늘은 뭐 배웠어?”

16551150918461.jpg“바둑!”

그래. 일곱 살에게 큰 걸 바라면 안 되지.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뭐. 잠시 후 진서도 주방에서 나왔다. 집안이 생각보다 조용하여 승규가 물었다.

16551150918465.jpg“어머님 아버님은?”

16551150951457.jpg“도윤이 데리고 장난감 사러 가셨대.”

도윤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장난감 갖고 싶다고 얼마나 떼를 썼을지 알 것 같아 승규는 폭 한숨을 쉬었다. 진서의 표정은 마냥 밝았다. 진서가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는 승규를 쫓아왔다. 입이 근질근질한 얼굴로. 승규는 진서의 표정이 왜 그리 좋은지 알 것 같아 먼저 말문을 열어 주었다.

16551150918465.jpg“지헌이랑 이정오 대리 봤겠네.”

16551150951457.jpg“응. 봤지. 근데 두 사람 이상해.”

16551150918465.jpg“왜? 뭐가?”

16551150951457.jpg“너무 잘 어울려. 이상해.”

부인은 벌써 두 사람을 결혼식장에 보낸 얼굴이었다. 진서의 충만한 미소에 승규도 픽 웃었다.

16551150918465.jpg“잘 어울리면 뭐해. 예나가 싫다는데.”

16551150951457.jpg“응? 예나도 지헌 씨 좋아하는 것 같던데?”

16551150918465.jpg“자기 떠난 다음에, 예나가 지헌이한테 다신 안 보겠다고 했대.”

승규는 최신 업데이트 정보를 전했다. 진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6551150951457.jpg“왜? 무슨 일 있었어?”

16551150918465.jpg“예전에 지헌이가 이정오 대리 야근시킨 적이 있었거든.”

16551150951457.jpg“야근은 자주 하잖아.”

16551150918465.jpg“그날이 예나 생일이었대.”

16551150951457.jpg“아아아!”

진서가 입을 크게 벌리며 박수를 짝 쳤다. 진서 역시 똑똑히 기억하는 날이었다.

16551150951457.jpg“그럴 만하네. 그날 예나 엄청 울었잖아. 엄마가 안 와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진서는 지헌이 딱했다.

16551150951457.jpg“에그. 지헌 씨 왜 그랬대.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자기도 조심해. 사람 일 어떻게 될지, 어떤 인연이 찾아올지 모르는 거야. 사람들한테 두루두루 잘하라고.”

16551150918465.jpg“아무튼 얘기하길 잘했어. 두 사람이 알아서 할 테니 후련하기도 하고. 지헌이 전전긍긍하는 거 의외로 재밌네.”

16551150951457.jpg“그것 봐. 잘했다니까.”

하루 만에 금슬을 회복한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 예나는 국순백반에 들어설 때까지 두 눈이 붉었다. 국순이 그런 예나를 보고서 달려왔다.

16551151010486.jpg“우리 강아지 왜 그래. 엄마한테 혼났어?”

1655115089022.jpg“할머니이.”

국순이 알아봐주니 예나는 더욱 서러운 얼굴로 할머니에게 가 안겼다. 국순이 몇 번 토닥거린 후에야 예나는 마음을 풀고서 밥을 먹었다. 가게 문을 닫고 설거지를 하며 정오가 국순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16551150890226.jpg“예나가 도빈이네 집에 갔을 때 같이 바둑 둔 아저씨 있었잖아.”

16551151010486.jpg“그랬지. 그 잘생긴 총각.”

16551150890226.jpg“응. 그 총각이 우리 회사 이사님이야.”

16551151010486.jpg“그래?”

지헌을 얼마나 좋게 본 건지, 국순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돌았다.

16551151010486.jpg“근데 왜. 예나는 왜 울었어?”

16551150890226.jpg“그 이사님이 나 야근시켰다고. 예나 생일에까지 야근시켰다고 삐쳤어.”

16551151010486.jpg“아. 그 이사님이 그 이사님이야?”

그제야 국순의 얼굴빛이 가라앉았다. 국순은 픽 콧방귀를 뀌고서 냉하게 말했다.

16551151010486.jpg“예의 바르고 잘생겨서 좋게 봤더니. 그럼 나도 싫다. 내 딸 괴롭히는 놈은.”

정오는 국순의 눈치를 보았다. 정지헌 씨, 어쩌나. 우리 엄마를 만나기도 전에 미운털이 박혔네. 이래서 사람은 마음을 곱게 쓰고 살아야 한다.

16551150890226.jpg“일 때문에 그런 건데 뭐. 어쩔 수 없지. 엄마, 그건 그렇고, 우리 예나가 바둑 영재래.”

지헌을 슬쩍 대변해준 정오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 다음 날. 지헌은 출근하자마자 정오에게 호출했다.

16551150890241.jpg“예나는 화 풀렸어요?”

16551150890226.jpg“풉.”

해외 출장 관련 자료를 찾는 줄 알고 이것저것 챙겨 들고 지헌의 집무실을 방문한 정오는 그의 첫마디에 웃고 말았다.

16551150890241.jpg“웃지 말고.”

지헌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지난밤. 지헌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일 밤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놓던 여자는 이정오였는데, 어제는 이예나가 되었다. 어제 예나는 길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급기야 아저씨 저리 가버리라고 하는 바람에 지헌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이를 더 울릴 수는 없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좋아하는 여자의 딸에게 미움받는 남자가 되어버렸다. 예나와 친해져서 이정오를 꼼짝도 못 하게 하는 이상적인 장면을 꿈꾸었는데, 예나에게 알리기 전으로 돌아가는 게 나은 꼴이 되어버렸다. 정오가 남 얘기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16551150890226.jpg“어쩔 수 없네요. 우린 못 만나겠네.”

16551150890241.jpg“그렇게 얘기하지도 말고.”

왠지 정오가 확 나가버릴까 불안한 마음에 지헌은 그녀를 더 안쪽으로 데려와 기어이 소파에 앉혔다.

16551150890226.jpg“5분만 앉아 있다 갈게요.”

그녀가 그에게 5분을 하사하겠다는, 아량을 베푼다는 투로 미소 지었다. 지헌은 저도 모르게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들 포기하면 그만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토록 쉬운 인생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이토록 갈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정오는 완벽한 내 것처럼 내게 딱 맞는데. 아니, 내게 맞는 것 이상으로 끊임없이 내게 자극을 주는 여자인데. 나는 당신의 눈빛, 목소리, 몸짓, 손짓 하나에도 이렇게 몸이 반응하는데, 당신에겐 나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있다. 꼬맹이에게 질투를 하게 되는 마음이 우스웠다. 이정오와 똑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꼬맹이를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16551150890241.jpg“아직도 예나가, 회사 바꾸라고 해요?”

정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헌이 한숨을 푹 쉬며 소파에 털썩 몸을 기댔다. 정오는 지헌의 귀여운 면을 발견한 것 같아 즐거웠다.

16551150890226.jpg“우리 예나 예쁘죠?”

16551150890241.jpg“예쁘죠. 그렇게 예쁜 아이는 본 적도 없죠. 그건 그런데…….”

16551150890226.jpg“누굴 닮았는지 고집이 상당하죠? 똥고집은 내가 물려준 게 아닌데.”

그의 속마음을 읽은 정오가 눈치껏 그의 말끝에 이어질 살을 붙였다. 지헌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으름장을 놓았다.

16551150890241.jpg“그놈 얘기할 생각이면 안 하는 게 나을 거예요.”

그놈. 정지헌이 그놈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이정오의 전남친. 예나의 생물학적 아빠. 정오는 헛헛한 마음을 숨기고서 더 말을 이었다. 당신이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또 다른 시작이 되겠지. 억센 운명과 마주하게 되겠지. 그래도 부디.

16551150890226.jpg“어디서든 어떻게든. 꽃도 피지 않을 것 같은 불모지에도 예쁜 꽃이 필 수 있어요.”

16551150890241.jpg“…….”

16551150890226.jpg“그 사람하고 내가 그렇게 보잘것없는 사이였어도 그래도 빛나는 게 나올 수도 있더라고요.”

기억해줘. 우리 예나 너무 예쁘잖아.

16551150890241.jpg“너무 예쁘게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그는 불평만 할 뿐이었다.

16551150890241.jpg“그리고, 그 사람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놈이라고 해요. 무슨 사람씩이나.”

그놈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사람 취급도 하기 싫다는 것이다. 우린 갈 길이 멀구나, 정지헌 씨. 정오가 낙담하고 있을 때 지헌은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그녀가 혹, 마음에 가둬둔 게 많아서 얘기를 하고 싶은 거라면, 도저히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아 그러는 거라면, 자신에게 모두 쏟아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16551150890241.jpg“그렇게 그놈 얘기를 하고 싶으면 좋은 얘기 하지 말고 욕을 좀 하고.”

모두 쏟아내고 그놈을 깡그리 잊었으면. 그렇게 지헌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당부를 덧붙였다. 풉. 하지만 그녀는 또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지헌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16551150890226.jpg“그놈.”

그나마 그제야 그녀가 지헌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 사람’ 대신 ‘그놈’이라는 말을 써 주었다. 부글부글하던 속이 좀 괜찮아지는 듯했다.

16551150890226.jpg“지금 생각해보니까 약간 변태 같았어요.”

16551150890241.jpg“미친놈. 그럴 줄 알았어.”

16551150890226.jpg“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마요. 우리 예나 아빤데.”

16551150890241.jpg“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놈이라면 말 다 했죠.”

풉. 왜 자꾸 웃어. 채찍과 당근을 함께 주는 그녀의 도발에 지헌은 조금 어지러워졌다.

16551150890241.jpg“그놈이 찾아오거든 언제든 꼭 연락해요.”

16551150890226.jpg“왜요?”

16551150890241.jpg“왜긴. 손 좀 봐줘야지.”

16551150890226.jpg“어떻게 손봐줄 건데요?”

16551150890241.jpg“다시는 못 찾아오게 만들어줘야죠.”

16551150890226.jpg“…….”

16551150890241.jpg“보이는 데는 다 분질러버려도 돼요?”

16551150890226.jpg“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16551150890241.jpg“허락한 걸로 칠게요.”

16551150890226.jpg“근데 그 사람 힘세요.”

16551150890241.jpg“내가 더 세요.”

그래. 너랑 너랑 싸워봐라. 볼만하겠네. 정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 걸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16551150890226.jpg“그래도 나는 고맙게 생각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예나를 만들어줬잖아요.”

16551150890241.jpg“예나 만들어준 거 빼고, 그 자식이 아빠로서 한 게 뭐가 있는데.”

16551150890226.jpg“그게 전부죠. 제일 중요한 건데.”

그녀의 담담한 말에 그의 속은 먹먹하게 젖어들어갔다. 한 사람을 마음에 꽉 채웠는데 어딘가 헛헛했다. 당신은 나에게 전부이나, 나는 당신의 일부밖에 되지 못할 것만 같은, 한 여자를 평생 짝사랑하게 될 것만 같은 서러움. 대체 왜 난 이런 모진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이 되는 걸까. 성큼 그녀에게로 바짝 다가간 그는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입술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조금은 괴로운 듯, 벌어진 틈 사이로 따끔한 한숨이 빠져나갔다. 설탕 몇 스푼을 꿀떡 넘긴 것처럼 입안은 달고 머리는 저릿했다. 질투심이 낳은 욕망은 꽤 뒤끝이 길어서 금세 5분이 지나버렸다. 아니, 10분.

16551150890241.jpg“이제 좀 알았네.”

그가 입술을 떼고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16551150890241.jpg“일부러 그러는구나? 내가 이럴 거라는 거 알고.”

16551150890226.jpg“아뇨. 아닌데.”

얼굴 전체가 붉은색이 된 그녀가 반질반질해진 입술로 말했다.

16551150890241.jpg“아니긴. 난 분명히 말했는데요. 그 자식 얘기하면 괴롭힐 거라고.”

괴롭히는 것만은 자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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