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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첫인사 (72/183)

72. 첫인사2022.01.05.

학원에 도착한 예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곱게 묶었다. 머리는 잘 정리되었지만 수업 내내 예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바둑알로 공기놀이만 하는 도빈에게 예나가 질문을 던졌다.

16551154309915.jpg“너는 돈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갖고 싶어?”

16551154309921.jpg“나는 천 원.”

대답하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도빈은 곧장 대답했다. 사고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나온 대답인 것 같았다.

16551154309915.jpg“왜?”

16551154309921.jpg“천 원보다 더 받으면 엄마한테 뺏겨.”

도빈의 대답이 그럴듯하여 예나는 고개를 잠잠히 끄덕였다. 왜 사람들은 자꾸 나한테 오만 원을 줄까? 어차피 그런 큰돈은 내가 갖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나는 왜 돈을 받는데 기분이 안 좋지? 돈만 있으면 엄마를 졸라서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살 수 있을 텐데.

16551154309915.jpg“왜 사람들은 나한테 오만 원을 주지?”

16551154309921.jpg“오만 원? 누가 줬는데?”

16551154309915.jpg“모르는 사람이.”

16551154309921.jpg“그럼 그건 엄마한테 말해야지.”

16551154309915.jpg“안 받았는데도 말해야 해?”

16551154309921.jpg“나라면 말할래. 오만 원이면 천 원이 오천 개잖아. 엄청 큰돈이야.”

16551154309915.jpg“오천 개 아니고 오십 갠데?”

한껏 우쭐하며 아는 척을 했던 도빈이 예나의 지적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16551154309921.jpg“……그래도 오만 원은 큰돈이니까 말할 거야.”

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16551154309915.jpg“응. 말해야겠다.”

  * 은비는 회사도 가지 못하고 몸져누웠다.

16551154338946.jpg‘그 꼬맹이가 정지헌의 친딸이라니.’

부디, 오빠가 잘못 안 것이기를. 거짓말이기를. 하지만 과거 일을 떠올려볼수록 절망스러웠다. 이정오와 정지헌은 처음부터 내내 이상했다. 지헌은 유전자에 ‘이정오’라는 이름이 새겨진 짐승처럼 이정오에게 본능적으로 집착했고, 정오는 그런 지헌을 피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되바라졌다. 그리고.

16551154338951.jpg“이사님은 제 아빠가 아니라 전남친을 닮은 거였어요.”

  자신과 정지헌이 있는 앞에서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기억을 잃은 지헌에게 호소하는 힌트였던 것이다. 그게 그런 뜻이었다니.

16551154338946.jpg‘이정오. 애를 볼모로 삼아서 정지헌한테 접근한 거야?’

이 모든 것이 이정오의 계략, 이정오의 시나리오였다는 깨달음에 이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도 그 여우짓을 까발릴 수 없는 현실이 원통하고 서러워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울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16551154338962.jpg“여태 그러고 있었어?”

어젯밤. 은비는 남자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참 서러운 날이었다. 애인을 빼앗기고, 회사에서는 없는 사람 취급당하고, 친오빠한테까지 한 대 맞고 나니 세상에 나 혼자란 생각이 들었다. 의지할 데라곤 이 남자밖에 없었다. 남자에게 울면서 하소연하니 남자는 집에까지 찾아와 자신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아침엔 밥을 해주고, 낮에 일하러 나갔다가 다시 은비의 집으로 복귀했다.

16551154338946.jpg“자기야, 나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

은비는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나 어리광부리듯 남자에게 두 팔을 내밀었다. 남자가 다가와 은비를 안아주었다.

16551154338946.jpg“그 애가 내 걸 다 빼앗아갔어. 나는 이제 미래도 없고, 회사에서도 쫓겨날 거야. 이제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

16551154338962.jpg“무슨 소리야. 내가 있잖아.”

남자는 은비를 꼭 끌어안고는 좋은 말로 다독였다.

16551154338962.jpg“다 잘될 거야. 결국엔 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될 거야.”

훌쩍훌쩍.

16551154338962.jpg“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잖아. 이럴 때일수록 마음 단단히 먹고 힘내야지. 응?”

훌쩍훌쩍.

16551154338962.jpg“괜찮아. 걱정 마.”

그래도 남자가 좋은 말을 해주니 거짓말처럼 힘이 났다. 남자는 상담에 재능이 있었다. 겨우 눈물을 닦았을 때, 진동이 울렸다. 은엽의 전화였다.

16551154338946.jpg“오빠 전화야. 어쩌지?”

16551154338962.jpg“받아봐. 사과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잖아.”

은엽이 은비를 때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자가 은비에게 말했다. 은비는 떨리는 가슴으로 전화를 받았다.

16551154338946.jpg“여보세요.”

16551154371437.jpg[뭐야.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오빠의 말투를 들으니 사과는 없겠다 싶어 절망스러웠다. 몰래 한숨을 내뱉는 사이에 은엽의 질문이 이어졌다.

16551154371437.jpg[오늘은 설치고 다니지 않았겠지?]

16551154338946.jpg“무슨 소리야. 회사도 못 갔다고.”

16551154371437.jpg[그래. 차라리 회사를 안 가는 게 낫겠네.]

오빠의 모진 말에 눈가에 남아 있던 눈물도 쏙 들어갔다.

16551154371437.jpg[잘 들어. 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그게 널 위한 거야. 알았어?]

일방적인 충고뿐이었던 통화는 일방적으로 뚝 끊겼다. 잠시 멍해졌으나 은비는 곧 정신이 돌아왔다. 오빠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무척이나 확신에 차 있었다. 분명 오빠에겐 계략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장 여사는 절대 이정오를 받아줄 그릇이 못 되는 사람이다. 이예나라면 모를까. 그러니 은엽이 잔재주를 부려 이예나의 친권과 양육권을 묶어버린다면, 이정오가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면……. 왠지 채은엽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6551154338946.jpg“나…… 오빠한테 기대를 걸어도 될 것 같아.”

그 생각을 하니 서서히 기운이 났다. 전화를 받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

16551154400194.jpg“아, 아, 아.”

지헌은 몇 번 목을 가다듬었다.

16551154400194.jpg“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예나도 안녕?”

그토록 오만했던 정지헌이 허공에 대고 공손해진 광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이사 집무실. 그렇게 몇 번 인사 연습을 한 지헌은 거울 앞에 서서 몸과 얼굴을 비춰 보았다. 긴장한 얼굴은 조금 험악해 보였다. 긴장을 풀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16551154400205.jpg

  똑똑.

16551154400194.jpg“네.”

노크 소리에 지헌이 대답하니 문이 열렸다. 승규가 열린 문틈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지헌은 승규의 얼굴을 알아보고서도 거울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16551154400214.jpg“뭐 하냐?”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어보는 지헌의 모습이 낯설어 승규가 뚱하게 말을 건넸다. 지헌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서 승규에게 물었다.

16551154400194.jpg“내 인상 어때.”

16551154400214.jpg“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누가 또 너보고 무섭대?”

16551154400194.jpg“아니. 그런 게 아니고.”

16551154400214.jpg“…….”

16551154400194.jpg“오늘 지나면 얘기해줄게.”

16551154400214.jpg“뭐야…….”

승규가 작게 구시렁거리고는 소파에 앉았다. 실은 승규도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이었다.

16551154400214.jpg“그 얘기 들었어? 그저께 너네 본부에서 싸움 났다던데.”

16551154400194.jpg“무슨 싸움?”

16551154400214.jpg“못 들었구나?”

16551154400194.jpg“…….”

16551154400214.jpg“화장실에서 이정오 대리랑 채은비 과장이랑 싸웠대. 이정오 대리가 채은비 과장 뺨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던데.”

곱게 지은 지헌의 미소가 풀리고 얼굴이 굳었다. 정오에게 그런 말은 들은 적 없었다. 그저께는 지헌이 예나가 자신의 딸이란 걸 알게 된 날이었다. 밤에 정오를 찾아갔고 오래 같이 있었지만 싸움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헌이 예나에 대해 처음 질문을 던지기 직전에 정오는, 오늘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16551154400214.jpg“이정오 대리한테 들은 거 없어?”

16551154400194.jpg“전혀 없어.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고?”

16551154400214.jpg“채은비 과장이 이정오 대리한테 엄청 심하게 뭐라고 했대. 미혼모라고 모욕했다나 봐. 이정오 대리 어머님 얘기도 하고 아이 얘기도 하고 그랬대. 욕이 좀 심했던 모양이더라고. 다들 채은비 과장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혀를 내두르더라.”

지헌은 허리 아래에서 주먹을 꽈악 쥐었다.

16551154400214.jpg“이정오 대리가 말 안 꺼냈으면 괜히 네가 먼저 아는척하지 마. 본인도 힘들 텐데.”

16551154400194.jpg“이미 들었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지.”

16551154400214.jpg“……그럼 내가 얘기했다고는 말하지 말고.”

승규의 소심한 당부에 지헌은 조금이나마 피식 웃게 되었다. 친구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승규가 아니었다면 또 바보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넘어갈 뻔했다.

16551154400194.jpg“얘기해줘서 고마워.”

16551154400214.jpg“뭘.”

16551154400194.jpg“그리고 너.”

16551154400214.jpg“응?”

16551154400194.jpg“진짜 결혼 잘했어. 그거 알아?”

16551154400214.jpg“그거야 아는데 너한테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은데?”

16551154400194.jpg“그래. 주제넘은 말을 해서 미안하다.”

16551154400214.jpg“뭐야, 정지헌 이사님, 너 오늘 왜 그래?”

지헌의 표정과 행동이 왠지 달라 보여 승규가 미간을 구기고서 물었다.

16551154400194.jpg“뭐가?”

16551154400214.jpg“오늘 무슨 일 있어? 왠지 모를 계략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승규의 질문에 결국 지헌은 간략하게 답했다.

16551154400194.jpg“오늘 이정오 씨 어머니 만나기로 했어.”

승규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16551154400214.jpg“뭐야. 너무 빠르잖아.”

16551154400194.jpg“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오늘 지나고 나서 얘기해줄게.”

16551154400214.jpg“너 설마…….”

16551154400194.jpg“…….”

16551154400214.jpg“애라도 생긴 거야?”

16551154400194.jpg“…….”

16551154400214.jpg“진짜야? 허!”

이제 승규는 두 눈이 쏟아질 듯이 커다래져서는 지헌을 바라보았다. 애가 생긴 게 맞긴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16551154400194.jpg“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16551154400214.jpg“그럼 뭐, 뭔데!”

16551154400194.jpg“아무튼 오늘 지나면 얘기해줄게.”

16551154400214.jpg“야! 죽을래 너? 무슨 얘기를 이래놓고 그만둬! 내일까지 못 기다려!”

승규가 흥분한 얼굴로 따졌다. 지헌은 그런 승규를 두고 먼저 집무실을 떠났다. * 퇴근시간. 정오는 화장실에서 옷차림을 다듬고 화장도 고치고 밖으로 나왔다. 팀 내로 돌아와 마주친 은주가 무감하게, 하지만 조금 시간을 두고서 정오를 쳐다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마찬가지로 정오의 동선을 따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미란에게, 정오가 다가가 말했다.

16551154338951.jpg“팀장님, 저 오늘 일찍 퇴근할게요.”

1655115451411.jpg“어어어, 그래그래. 그래.”

무슨 일인가 싶게 그토록 주시하고 있었으면서, 막상 말을 붙이니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저께부터 미란은 괜스레 넋 놓고 정오를 바라보다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화장실에서의 소동으로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16551154514114.jpg“대리님,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저도 퇴근할 건데.”

기훈도 만만치 않았다. 기훈은 정오를 딱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어제 아침에는 정오에게 청심환을 건넸고 오늘 아침에는 초콜릿을 주었다. 정오가 궂은일을 맡게 되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고 힘내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잘해주니 고맙긴 한데, 내게 연민을 갖지는 말아야 할 텐데.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오히려 배신감을 느낄 텐데. 정오는 조금 찔리는 마음으로 기훈의 호의를 거절했다.

16551154338951.jpg“아니야. 괜찮아. 어디 들를 데가 있어서.”

16551154514114.jpg“어디 들르세요? 거기도 태워다 드릴게요.”

16551154338951.jpg“아니, 정말로 괜찮아. 혼자 갈게.”

픽, 자리에서 고은주 대리가 조용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다 아는 사람처럼. 그저께의 화장실 사건 이후에도 태도가 변하지 않은 사람은 고은주 대리 하나뿐인 것 같았다. 은주는 채은비의 그 끔찍한 언사가 담긴 녹음본을 건네면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였다. 이제는 정오도 적당히 냉소적이고 적당히 의리 있는 고은주 대리가 참 좋았다. 이렇게 알 듯 말듯 혼자서 의미심장하게 웃을 때만 빼고.

16551154338951.jpg“아무튼 고마워. 내일 보자.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정오는 재빨리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회사 건너편에서 지헌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헌의 차를 발견한 정오는 우다다다 달려가 지헌의 차에 올랐다.

16551154338951.jpg“보는 사람 없지? 없지?”

16551154400194.jpg“없었어.”

정오의 요란스러운 고갯짓에 지헌이 침착하게 답했다. 향긋하고 새콤한 냄새가 차 안에 가득 퍼져 있었다. 향기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뒷좌석이 가득 차 있는 게 보였다. 하나는 큼지막한 꽃다발, 또 하나는 더 큼지막한 과일 바구니. 예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듯한 과일 바구니의 규모에 정오의 입이 벌어졌다.

16551154338951.jpg“뭐 저렇게 커다란 걸 샀어?”

16551154400194.jpg“예나랑 어머님이 좋아하신다며.”

뜨끔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오에게 지헌이 물었다.

16551154400194.jpg“그저께 채은비랑 무슨 일 있었어?”

16551154338951.jpg“아아…….”

또다시 뜨끔했다. 말해주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 일을 숨기면 그가 더 마음이 상할 수도 있겠단 판단에 정오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16551154338951.jpg“채은비가 친구들을 데리고 엄마 식당에 갔었나 봐.”

16551154400194.jpg“…….”

차가 출발하고 한참이 지나도록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지헌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가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16551154338951.jpg“채은비는 오늘도 회사에 안 나왔더라. 이러다가 그만두려는 건가 싶어.”

16551154400194.jpg“동료들 볼 낯이 없겠지. 진면모를 다 들켜버렸으니.”

16551154338951.jpg“어쨌든 오빠는 가만히 있어.”

16551154400194.jpg“또 가만히 있으라고?”

16551154338951.jpg“응. 일단은 가만히 있어. 오늘은 우리 엄마랑 예나 생각만 하자.”

그가 채은비 일로 괜히 흥분할까 싶어 정오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16551154338951.jpg“오늘 말이야. 혹시 우리 엄마한테 모진 말을 듣더라도 너무 상처받지 마.”

16551154400194.jpg“…….”

16551154338951.jpg“우리 엄마가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거든. 그래도, 우리 엄마 진짜로 무서운 사람은 아니야.”

지헌은 이번엔 숨을 꾹 삼켰다. 채은비의 얘기를 하느라 잠시 잊고 있던 긴장감이 되살아났다. 정오의 당부와 위안에도 어깨가 뻣뻣해졌다. * 국순은 내내 분주했다. 오늘은 특별히 식당 문도 일찍 닫고 집에 돌아와 열심히 음식 준비를 했는데, 너무 욕심을 부려서인지 시간이 부족했다.

16551154570517.jpg“에구. 이를 어째. 떡을 안 찾아왔다. 이제 거의 올 때 됐는데 어쩌나?”

16551154309915.jpg“할머니, 누가 오는데?”

16551154570517.jpg“오는 길에 들르라고 할까? 그냥 빼고 있는 것들만 먹을까?”

16551154309915.jpg“할머니, 누가 오냐고.”

16551154570517.jpg“보면 알아.”

호들갑스럽게 준비하느라 정신은 반쯤 나갔지만 국순은 예나를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하지만 예나는 국순이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 오만 원 얘기도 해야 하는데. 할머니는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거실로 나간 예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손님이 대체 누굴까? 왠지 아저씨일 것 같았지만, 아닐 것 같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알 수 있겠지. 손님이 누군지는. 예나는 잠자코 손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보다 엄마가 먼저 온 것이다. 예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51154338951.jpg“예나 공주!”

16551154309915.jpg“엄…….”

하지만 엄마를 부르며 뛰어나가려던 예나는 금세 발이 묶였다. 엄마의 뒤편에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엄마가 손님과 함께 온 것이다. 손님은 역시나 아저씨였다. 예상이 딱 맞았는데 희한하게도, 두 사람이 같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예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마 짝꿍은 난데. 내가 엄마 짝꿍인데. 왠지 짝꿍을 빼앗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가만히 서 있는 예나에게 지헌이 먼저 인사했다.

16551154400194.jpg“예나 안녕.”

지헌은 예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찌르르했다. 아침에 어린이집 버스 타러 가는 예나를 배웅하러 잠깐 들렀다가 몇 시간 만에 다시 만났다. 몇 시간 사이에 아이가 더 예뻐진 것 같았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잘 누른 지헌은 주방에서 나온 국순에게도 공손하게 인사했다.

16551154400194.jpg“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정지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국순 또한 지헌에게 인사하려는 그 찰나에.

16551154309915.jpg“아저씨, 근데 우리 할머니가 아저씨 엄마예요?”

유심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암팡지게 따졌다.

16551154309915.jpg“왜 우리 할머니한테 어머니라고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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