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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2화 (2/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2화

제네비브는 잠시 인상을 쓰곤 남자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었다.

“으악!”

그녀는 앓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남자를 자신에게서 떨어트렸다.

“오웬, 얜 에드워드야. 에드워드, 얘가 오웬 블라이스.”

그녀는 엄살 부리는 오웬을 무시하고는 짧은 통성명을 도왔다. 오웬이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우리가 빌린 <군주의 책임감> 말이야. 에드워드도 필요하대서 같이 쓰는 중이야.”

“감사합니다.”

에드워드는 겨우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말씀을~.”

오웬은 넉살 좋게 받아 줬다.

“그래서, 너는 헤더스 교수님 과제 할 거야?”

“……안 하고 싶으면 어떡해?”

제네비브의 질문에 오웬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야……! 그럼 왜 책을 오늘까지 안 준 건데!”

제네비브가 오웬의 팔을 있는 힘껏 때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 보면 친하기는커녕 앙숙 같았지만, 둘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필요한 걸 자연스럽게 챙겨 줬다.

“진짜 오늘 일은 내가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후배님, 모르는 거 있으면 제네비브한테 물어보면 돼. 얘가 머리 하나만큼은 진짜 좋거든! 3학년 차석이라니까?”

오웬이 엄지손가락을 들며 제네비브를 추켜세웠다.

“어이, 오웬! 스피드 체스 한판 어때?”

“나야 좋지~ 제네비브, 너 혼자 과제의 늪에 두고 가서 미안해. 이 오라버니 마음, 잘 알지?”

“동갑이 오라버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같은 오빠, 둔 적 없거든?”

발이 넓은 오웬이 제네비브에게서 벗어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웬이 폭풍처럼 오고 간 자리는 그가 사라지니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미안. 오웬이 과제 하는 걸 싫어해서.”

“아니에요.”

“보아하니 절대 안 할 생각인 것 같은데, 책 편하게 써. 나는 제출 기간이 금요일까지라 여유롭거든.”

“알겠습니다.”

에드워드는 과제에 다시 집중했다.

이틀을 꼬박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이 무색하게도 에드워드는 세 시간 만에 과제 절반을 끝냈다. 예상외로 빠르게 진행된 덕분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저기…… 에드워드?”

“네.”

“지금 식사 시간이야.”

제네비브가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은 어느새 ‘6’을 가리키고 있었다. 식사를 걸러선 안 된다는 세인트 존 칼리지의 교칙에 걸맞게 휴게실은 식사 시간에 맞춰 문을 닫았다.

“돌아와서 다시 할까? 나도 이제 슬슬 그 책을 써야 해서.”

제네비브가 <군주의 책임감> 쪽을 턱짓하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해요.”

“아. 그럼, 저녁 같이 먹을래? 어차피 가는 길도 똑같은데!”

“……괜찮아요. 여덟 시에 뵙겠습니다.”

제네비브는 가볍게 동석을 권했지만,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호의는 낯설고 불편했다. 그는 뻣뻣한 표정으로 먼저 휴게실을 나섰다.

* * *

다이닝 홀의 자리는 지정석이 아니지만,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학생들은 학년을 구분 지어 앉았다. 대부분 어울리는 무리와 선호하는 자리가 있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서로의 구역은 침범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식사 시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꺼리는 쪽에 가까웠다. 교칙만 아니었다면 식당에 발도 들이지 않았을 테다.

세인트 존 칼리지는 ‘미래 지도자들의 사교 모임’을 내세우며 학생들의 친목을 독려했다. 정확히는 귀족 학생들의 친목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문의 이름 아래에서 친목을 도모하고, 견제하는 건 자주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래 봤자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10대들이었기에 저들 딴엔 고급스럽게 돌려 말해도 자세히 뜯어보면 무의미하고 유치한 기 싸움에 불과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어떤 형태의 싸움이든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저는 언제나 귀족 간 싸움에 낀 새우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틀린 말 했어?”

“이게 진짜! 여자라고 때릴 수도 없고……!”

“넌 사람을 때리라고 배웠니?”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찰스 콜린스와 아비게일 리트먼이 말다툼의 주인공이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말솜씨가 부족한 찰스가 한 방 먹은 모양이다.

사감과 교수의 부재로 싸움은 평화롭게 끝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음식을 나르던 직원들은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신분제가 굳건한 사회에서 일개 학교 직원이 어떻게 귀족 자제들의 싸움을 막는가. 당연한 선택이었다.

불안함을 감지한 에드워드는 접시 위의 음식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빨리 이곳을 나가야 했다. 찰스가 애용하는 화풀이 상대가 본인이란 걸, 에드워드는 잘 알았다.

“에드너드!”

아니나 다를까,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에드워드의 멸칭을 입에 담았다. 에드워드는 애써 그를 무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먹었어?”

찰스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지만, 에드워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 새끼가……!”

찰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이게 나를 무시해?”

그러고는 큰 보폭으로 걸어와 에드워드의 목덜미를 잡았다.

폭력적인 상황에 놀랄 법도 하지만, 2학년들에겐 흔한 풍경이었다. 강의실이 식당으로 바뀐 것 말고는 달라진 점은 없었다.

마치 쇼를 관람하듯 보는 학생이 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학생이 반이었다. 반면, 1학년과 3학년은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웅성거림이 심해졌으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에드너드, 에드너드. 우리 장학생 정신이 단단히 나갔구나.”

찰스가 에드워드의 뒤통수를 세게 눌렀다.

“콜린스, 나는 에드너드가 아니라 에드워드야. 문학 시험에 낙제한 너라면 헷갈리는 게 당연하겠지만…….”

에드워드는 그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후,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는 발음 없이 정확하고 공간 끝까지 닿는 발성은 귀족의 것 그 자체였다. 귀족 특유의 돌려 까기와 거리가 먼 원초적인 문장은 ‘사람 이름도 못 외우는 멍청한 머저리 새끼야’와 비견될 정도였다.

이에 2학년 구역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난도가 쉬운 편인 문학 시험을 낙제해서 찰스가 여름 방학 동안 보충 수업을 들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이게……!”

퍽!

찰스가 창피함에 얼굴이 붉게 물들인 채로 에드워드의 볼을 세게 후려쳤다. 그가 휘두른 주먹 한 번에 에드워드는 크게 휘청거리며 앞으로 넘어졌다.

쿵!

다시금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머리가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힌 바람에 테이블 위에 남은 잔반이 에드워드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안경마저 떨어져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에드워드는 테이블을 더듬거리며 제 안경을 찾으려고 했다.

“…….”

하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끈적한 스튜만이 머리 위에서 뚝뚝 떨어졌다.

“너, 지금 식당 혼자 쓰니?”

에드워드가 쭈그려 앉아 안경을 찾는 사이, 제삼자의 목소리가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에드워드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시야 너머 금색 인영이 들어왔다. 선명히 보이진 않았지만, 에드워드는 그 사람이 제네비브라는 걸 알았다.

“누가……!”

찰스는 이 상황을 지적하는 사람이 한 학년 위임을 알아차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분풀이는 혼자서 해. 애먼 사람 잡지 말고.”

제네비브가 한숨을 내쉬며 한심하단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다른 사람들 식사 분위기도 그만 망치고. 창피하지도 않아?”

“…….”

찰스는 반박하거나 따지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의자에 앉는 소리 뒤로는 왜 끼어들고 난리냐며, 이상한 선배라며 비난하는 찰스 무리의 ‘찰스 기 살려 주기’가 들렸다.

“…….”

얼굴이 화끈거렸다.

에드워드는 도망치듯 기숙사로 향했다.

* * *

결국, 안경은 못 찾았다. 다니엘이 나가는 그에게 안경을 잘 찾아보라고 말했던 걸 봐서는 또 어딘가에 숨겼을 거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세인트 존 칼리지의 모든 학생은 1인실을 배정 받는다.

듣기로는 이전엔 장학생은 귀족들과 다른 건물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장학생 출신 장관의 항의로 인해 몇 해 전부터 장학생도 다른 귀족 학생들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게 되었다.

대체 그 장관이 어떤 학교생활을 그렸는지 모르겠으나, 덕분에 에드워드로서는 세인트 존 칼리지 모든 곳이 지뢰밭이었다. 언제 어디서 괴롭힘을 받을지 모르니까.

“…….”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선 후, 에드워드는 불을 켰다.

에드워드의 방은 배정 받은 첫날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했다. 10평 남짓한 방엔 고급 마호가니 책상과 책장이 있었다. 침대와 옷장이 방 면적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른 학생들은 취향대로 그림을 걸거나 가구를 바꾸었지만, 에드워드의 방은 처음처럼 허전한 회색빛 벽지였다. 인적을 알리는 건 책장에 가득 꽂힌 책뿐이었다.

에드워드는 서랍장을 열었다.

오늘 같은 일 때문에 안경이 부러지는 게 일상이니만큼 그가 예비 안경을 준비해 두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있던 것마저도 다 부러졌는지 멀쩡한 안경이 없었다. 전부 다리 하나가 부러지거나 알이 깨져 있었다.

“하…….”

되는 일이 없었다.

인상을 찌푸린 에드워드는 고심 끝에 가장 멀쩡한 안경을 골랐다. 안경알에 가로로 금이 나 있는 안경이었다.

안경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한 후, 에드워드는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도 다쳤네.”

에드워드는 눈썹 위의 상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친 곳이 물에 닿자 쓰라렸지만, 치료할 시간은 없었다. 제네비브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30분 남짓 남았다.

에드워드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필요한 것을 챙겼다. 절반가량 끝낸 통치학 과제, 일주일 동안 작성한 구상안, 펜과 여분의 종이.

에드워드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뒷문을 향해 걸었다. 식사가 끝났는지 정문 쪽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남들이 들어오기 전에 나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한숨을 돌리며 휴게실 문 앞에 서 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네비브였다.

그녀는 오후와 다르게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땋아 내린 그녀는 오후와 다르게 에드워드의 존재를 바로 알아차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에드워드는 건조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내가 일찍 온 건데, 괜찮…….”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괜찮아요.”

에드워드는 그녀에게서 다친 뺨을 숨기려고 고개를 숙였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안경도…….”

고운 미간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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