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07화
제네비브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내보인 에드워드를 보았다. 그가 시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감이 안 잡힌다.
‘뭐랄까. 조금 더…….’
솔직히 에드워드가 시온에게 더 흥미를 느낄 줄 알았다. 소설의 주축을 담당하는 두 인물이니, 비록 여자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상대에게 관심을 가질 줄 알았다.
‘그래, 싫어하는 것보단 무시하는 게 낫지.’
각오하던 반응이 아니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시온을 싫어하는 것보단 나았다.
에드워드가 시온을 싫어하게 된 원인을 고작 자신이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다는 걸 터득한 제네비브는 굳이 이유를 알아내려 하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이 나오면서 싫어진 거겠지. 제네비브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색하네.’
제네비브는 침묵을 지키는 에드워드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했다.
저를 부드럽게 이끄는 에드워드는 이제 완벽한 황태자의 모습이었다. 크게는 입고 있는 옷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는 그린 듯이 반듯한 자세까지. 마치 처음부터 그런 성질을 갖고 태어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난 날 식당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긴 했었지’
잠시 감상에 젖어 과거를 회상하던 제네비브는 곧 현실로 돌아왔다. 얼마 없을 그와의 대화 기회를 이렇게 딴생각으로 날려선 안 되었다.
“헤이븐 군이 그러는데, 여기선 보통 약혼자와 첫 춤을 춘다고 하더라.”
서먹한 분위기를 깨트리기 위해서 한 말이었지만, 제네비브는 내뱉자마자 크게 후회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꺼낸 이야기인가. 다방면으로 부적절했다. 대화의 주체가 시온이었고, 시온과 저는 서로의 첫 춤 상대였으며, 지금 에드워드의 첫 번째 춤 상대는 자신이었다.
말 한마디로 치정극을 만드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에드워드와 친해서 망정이지. 제네비브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레 나온 말에 에드워드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달아오르는 그의 표정을 보며 제네비브는 자신이 괜한 소리를 했음을 깨달았다.
“아, 아무튼……! 내가 네 첫 번째 상대여서 좋다는 뜻이야. 그만큼 친하다는 거니까…….”
제네비브는 뒤늦게나마 수습하려고 했지만,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입을 다물고 싶어졌다.
“……괜한 소리를 했네.”
제네비브는 웅얼거리며 자책했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도무지 에드워드의 얼굴을 못 보겠다.
“제네비브 선배는 제게 특별한 사람이 맞는걸요.”
그 순간,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네비브는 시선을 다시 위로 올렸다.
“…….”
손가락 한 마디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에드워드가 있었다.
이마가 서로 닿을 듯 말 듯 했다. 덤덤한 연갈색 눈동자가 그녀를 침착하게 바라보았다. 조용히 들리는 숨소리는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음을 빨리 접기로 다짐했는데, 누구로부터 나온 건지 모를 심장 소리가 들렸다.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아. 그리고, 또.”
그만 긴장하고, 이야기 주제를 돌려야 한다. 목표를 정한 제네비브는 방금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성인이 된 걸 축하해.”
오늘은 그가 성인이 된 날이기도 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성인이 된 걸로 축하를 받은 첫 번째 황족이 되었네요.”
에드워드는 미소와 함께 농담했다. 황족은 갓난아기 때부터 성인으로 인정되니, 너무나 당연한 일로 축하를 받을 리 없었다.
“선물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지네…….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
“저는 제네비브 선배가―.”
“내가 여기에 와 준 것만으로도 좋다는 얘기 말고. 네가 해 준 게 많아서, 뭐라도 해 주고 싶단 말이야.”
제네비브가 말했다. 기실 제 수중엔 천문학적인 금액은 없으나, 그래도 황태자에게 선물할 정도의 재력은 있었다.
정말 제네비브가 예상한 답안을 말하려고 했던 모양인지, 에드워드는 잠시 뜸을 들이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까지 고민할 거리인가?’
살아오며 갖고 싶은 물건이 한두 개 정돈 있었을 텐데. 제네비브는 의아한 눈으로 에드워드를 보았다.
“아! 그리고, 미리 말하자면 국보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
하여, 제네비브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 농담에 에드워드는 듣기 좋은 중저음의 웃음소리를 들려줬다.
예술 작품이나 책 같은 걸 바랄까. 제네비브는 저 나름대로 그가 원할 선물을 추측했다.
“……조금 더 생각해 봐도 돼요?”
하지만, 간신히 나온 말은 답이 아니었다.
“그래, 천천히 생각하고 말해 줘.”
제네비브가 대답했다.
“책봉식은 어땠어? 행진에서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책봉식이 그렇게까지 빨리 끝날 줄 몰랐고…… 행진에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많이 올 줄 몰랐거든요.”
에드워드는 대답하며 제 허리를 잡은 채 제네비브를 한 바퀴 돌렸다.
그의 말대로 책봉식의 주인공이 등장한 시간만 계산한다면 행사는 십 분을 겨우 넘겼다. 에드워드는 마차로 수도를 한 바퀴 돌았다고 이야기했다.
“긴장하지 않았어?”
“조금요. 실은, 그제야 실감이 됐어요.”
이 권력에 따르는 책임감이.
에드워드는 황태자다운 복잡 미묘한 그의 심경을 들려주었다. 무어라 함부로 말을 얹기가 어려웠다. 한 나라를 통치한다는 건 제네비브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두 번째 춤도 조금 지나자, 끝이 보였다. 황태자와의 춤이 끝나는 동시에 많은 관심이 제네비브에게 쏠렸다.
오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은 그녀의 신상이 돌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그들은 제네비브에게 친근하게 아는 체를 해 왔다. 지금껏 받던 것과 다른 결의 관심을 받게 된 제네비브는 그들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친절하게 상대했다.
한편, 에드워드는 제네비브보다 훨씬 심했다. 그의 첫 번째 댄스 파트너가 되지 못했다면 두 번째라도 되어야겠노라 생각한 이들이 에드워드에게 몰려든 탓이다.
제네비브는 각 가문의 수장이 제 딸과 누이를 에드워드에게 소개하는 광경을 보며, 자신이 에드워드의 첫 춤 상대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다시금 노력했다.
“로센 공국의 알렉세이 바실예프입니다.”
이후, 제네비브는 처음 보는 남자 몇 명과 춤을 췄다. 그리 인상 깊은 파트너는 없었다.
“소프, 미안하지만 내 여동생이 이제 지쳐서 말이야.”
무한으로 증식하는 파트너 신청을 잘라 준 건 휴고였다.
“고마워.”
제네비브는 벽 부근에 마련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하도 돌고 움직였다 보니 다리가 아팠다.
“오웬은 못 되지만, 열심히 해 볼게.”
“휴고 오빠. 오웬이었으면 재미있었다고 놔뒀을 거 알고 있잖아.”
제네비브는 소파에 늘어지고 싶다는 욕구를 참으며 대답했다. 당장이라도 다리를 주무르고 싶었다. 아쉬운 대로 치마 아래서 구두를 벗은 제네비브는 자유로워진 발가락을 움직였다.
그녀는 “틀린 말이라곤 못 하겠네.”라고 말하는 휴고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잊고 있던 위화감의 기원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아예 사라졌는지, 아까와 비슷한 광경을 보고 있음에도 뾰족하게 떠오르는 건 없었다.
“오웬은 뭐 해?”
반 즈음 고정이었던 춤 상대가 눈에 안 보이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제임스가 불렀어.”
“……그렇구나.”
제임스의 이름을 듣자 예상대로 위화감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누군가 휴고를 부르자, 그녀의 사촌 오빠는 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제네비브는 멀어지는 휴고를 보며 긴장을 풀었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말을 거는 사람은 없겠지.’
제게 주는 관심이라면 고마웠겠지만, 저를 통해 에드워드와 친해지려는 수작이 훤히 보여서인지 조금 껄끄러웠다.
“제네비브, 달링.”
하지만, 그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린 제네비브는 조금 놀랐다.
“……훌리에타 양? 「여긴 어쩐 일……」 아, 공용어를 못 하시지.”
어여쁘게 차려입은 훌리에타 가르시아였다. 마이언에서 본 사람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제네비브는 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곧 언어의 장벽이 떠올랐다. 통역해 줄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오래간만입니다.”
하지만, 훌리에타의 입에서 나온 건 의외의 언어였다. 그녀는 어눌하지만 분명한 제국어로 인사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제국식으로 발음했지.’
제네비브는 짧은 시간 안에 언어를 습득한 훌리에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도 오랜만이에요, 훌리에타 양.”
제네비브는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지만,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말했다. 어설픈 칭찬은 안 하는 게 나았다.
“나, 당신과 말하고 싶어소.”
훌리에타가 말끝을 흐렸다. ‘배워’라는 말이 어렴풋이 들린 것으로 보아, 제국어를 배웠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저와요?”
제네비브가 되묻자, 훌리에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고 싶어. 존하가 그때 했던 말, 궁금했자나.”
이어 훌리에타는 서툴게 말했지만, 그 의미만큼은 충분히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