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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126화 (126/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126화

에드워드는 왜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태도로 대답했고, 실제로도 그런 의문을 장착하고 있었다.

왜 나에게, 궁금하지도 않은 후배 칭찬을 하는 거지?

에드워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제네비브가 그토록 강조하던 ‘친구 사이’에서 흔한 대화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조금 껄끄러웠다.

예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에드워드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다니듯 좋아졌다가 땅에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했다.

제네비브와의 시간을 누군가의 개입 없이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그녀가 선을 긋는 듯한 말을 할 때 상심하게 되는 건 역시 그녀를 향한 감정 때문일 터.

하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이 고작 그런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말에서 사람이 선한 게 느껴져.”

가령, 지금처럼 제 반응을 살피며 아쉐트의 칭찬을 하는 게 기분이 나빠진 이유일 거다.

제네비브의 속내—서브 남주의 반응을 보려는—를 알 리 없는 에드워드는, 일순 그녀가 제 딸과 혼약을 추진하려는 중앙 귀족과 겹쳐 보였다.

마치 중매를 서는 듯한 제네비브를 보며, 에드워드는 방학 동안 시달렸던 기억이 문득 피어났다.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거절한 게 무슨 이유에서였는데.

제네비브의 의도를 직감적으로 눈치챈 에드워드는 자신이 그녀에게 오해의 여지를 줄 만한 행동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에드워드는 방금 부드럽게 아쉐트에 관해 물었던 것과 아쉐트를 처음 만난 날 제네비브에게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관심이 있는, 아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이름 모를 후배가 아니라 제네비브인데.

애석하게도 그런 에드워드의 심경을 알 리 없는 제네비브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심성이 곱다, 착하다, 똑똑하다, 등……. 제네비브는 온갖 미사여구와 문장으로 아쉐트를 표현했다. 그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아쉐트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귀엔 아쉐트를 서술하는 게 아니라, 제네비브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에드워드는 그녀가 하는 말에 주체를 아쉐트에서 제네비브로 바꿔, 최대한 동조하는 반응을 내려고 노력했다. 좋다는 사람 앞에서 ‘관심이 없음’을 티 낼 순 없었다.

하지만 ‘아쉐트’가 반복적으로 언급된 탓에 이조차 점차 집중력이 흐려졌다.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하기란 어려웠다.

제네비브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었지만— 그만 듣고 싶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호감을 품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고, 그간 관심 없던 학생들에게 시달린 게 누적되어서 그런가, 에드워드는 조금 예민해졌다.

“지금 없는 사람 얘기를 굳이 말해야 하나요?”

—때문에, 말은 조금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에드워드는 따지듯이 나온 제 목소리를 들으며 곧장 후회했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논문을 찾을 때까지 아쉐트 이야기를 듣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목소리 톤은 역시 실수였는지, 그 말을 들은 제네비브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미안해. 네가 당연히 관심을 가질 줄 알았나 봐.”

아니나 다를까, 제네비브는 곧장 사과했다.

“아뇨…… 제가 오해하게 만들었어요.”

한순간에 끊긴 대화는 한동안 재개되지 않았다.

논문에 집중하고 있다기에는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에드워드는 재빨리 대화 주제를 생각했다. 아쉐트에 대해 말하기 전에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더라?

“그래서, 클럽은 언제 개설될 거 같아요?”

어색한 침묵에서 제 잘못만을 찾은 에드워드는 낮은 태도로 물었다. 그는 무난한 주제를 선정한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며, 부디 대화가 멀쩡하게 흘러가기를 빌었다.

“그건 잘 모르겠네. 아직 최소 부원도 못 채웠거든. 네 명을 모아야 하는데, 아직 세 명만 있어서……. 아쉐트가 나머지 한 명도 찾으면 알려 준다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다른 한 명은 누구예요?”

에드워드는 미지의 한 사람이 문득 궁금해졌다.

<더 칼리지>와 비슷한 소식지 클럽이라 그런가, 에드워드의 머릿속에는 블랑카 같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요즘 제네비브와 어울리는 학생을 머릿속에 나열해 보았다.

“……시온 헤이븐이야.”

저 나름대로 추측을 이어 가던 에드워드는 조금 지나자 자신이 헛발질하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칼리지 투어 해 주면서 내가 가입했는데, 본인도 하고 싶다고 해서……!”

제네비브가 변명하듯 길게 설명했다.

그녀가 시온에게 관심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

‘거슬려.’

시온이 계속 제네비브 주변에 맴도는 게 짜증 났다.

왜 계속 제네비브 주변에 있는 거지? 상대가 제네비브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기엔 그의 행동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에드워드는 논문 분류로 분풀이를 했다. 차곡차곡 쌓이는 서류를 다른 이가 본다면, 필시 그 속도에 놀랄 정도였다.

“…….”

하지만 정리되는 논문과 대비되게, 에드워드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정말 시온 헤이븐이 제네비브를 좋아하는 거라면. 그게 아니면, 제네비브가 시온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논문에 시선을 뗀 에드워드는 제네비브를 보았다.

시온 헤이븐과 교류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가 제네비브 주변에 그만 나타나기를 바랐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핑계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만큼 유치한 짓도 없었고, 제아무리 황제더라도 타인의 인간관계를 막을 권리 따위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에드워드는 자꾸만 치졸한 생각이 들었다.

‘주제 파악을 해.’

에드워드는 조급해지는 자기 자신을 비난했다.

꺼낸 논문을 반절 가까이 정리하던 에드워드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내일 뭐 해요?”

“그냥 뭐…… 기숙사에만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왜?”

고심하듯 잠깐 말끝을 늘리던 제네비브는 뒤늦게 답을 했다.

“궁금해서요.”

고민한 것치고는 싱거운 대답이라는 생각과 함께, 에드워드는 다가오는 주말을 기대하기로 했다.

주말은 그래도 다가오는 사람이 적지 않을까. 부디 많은 학생이 수도나 빌젠가의 타운하우스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에드워드는 그런 소망을 품으며, 제네비브와 어떤 주말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의 답을 들은 제네비브는 조용히 논문을 읽어 갔다.

“…….”

새삼스럽게도 에드워드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제네비브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소한 궁금증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과연 이대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맞는 건가? 질문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자신이 제네비브를 생각하듯, 제네비브가 자신을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에드워드는 논문을 연도별로 구분하며 고민했다.

‘만약에 제네비브가 거절한다면.’

상상만 해도 심장이 무거워진다.

아마 지금처럼 이런 관계조차 못 되겠지. 차라리 제네비브의 말마따나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황태자’라는 작위는 자신을 제네비브와 같은 선상에 끌어올려 주는 데 성공했지만, 황태자가 된 이상 에드워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책임감은 컸다.

평민이었던 자신이 귀족인 제네비브와의 미래를 감히 꿈꾸지 못했던 것처럼, 황족인 자신의 옆에 제네비브가 있는 건 선뜻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만약에 마음이 통한다면…….

“…….”

여기까지 생각한 에드워드의 귓가는 익어 가듯 타들어 갔다. 제가 미친 게 분명했다.

당황한 에드워드는 논문 뒤로 얼굴을 숨겼다. 제네비브를 상대로 이런 상상을 했다는 건…… 하늘이 반으로 갈라져도 들켜선 안 되었다.

* * *

에드워드가 아직까지 아쉐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에 놀라며, 되레 아쉐트 칭찬을 이어 갔던 게 화근이었을까.

‘아직 관심 없는 사람에 대해 계속 듣는 것도 짜증 나지.’

제네비브는 제 패착을 후회하며, 에드워드의 못마땅한 반응을 이해했다.

계속 이런 무관심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제네비브는 헛된 생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잡념을 지운 제네비브는 제가 실수한 부분을 점검했다.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은 시온과 같은 클럽에 가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불필요했고, 주말 일정을 똑바로 답하지 못한 것도 실수였다.

행방을 묘연하게 만드는 게 본래 목적이었다. 제 거취를 물어보면 그 누구도 답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에드워드는 일정을 물었고, 제네비브는 칼리지에 있을 거라는 답변을 내놓았으니, 주말 동안 안 보인다면 필시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그렇다면 안 보여도 이상할 게 없도록 만들어야지.’

제네비브는 손에 들린 논문을 읽는 체하며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았다.

안 보이더라도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적당한 핑계를 생각한 제네비브는, 이내 학교를 나가는 제 계획을 점검했다.

더 정확히는 오웬의 계획이었다.

전문적으로 무단 외출을 감행하던 사촌을 둔 덕분에 제네비브는 들키지 않고 칼리지를 나가는 방법을 서너 개 정도 알고 있었다. 아침 식사마다 귀 떨어지게 들은 모험담을 그대로 시행하기만 하면 되니.

후보 논문을 얼추 고른 제네비브와 에드워드는 참고 서적 몇 권과 함께 책을 빌렸다.

도서관을 나오며, 에드워드는 조용한 저녁 식사가 그립다고 말했다. 제네비브는 그럴 거라는 격려를 해 줬지만, 두 사람 모두 이루어질 리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는 에드워드가 걱정하던 그대로 실현되었다. 친구들과 멀리서, 일주일 내내 시달리는 에드워드를 지켜본 제네비브는 그의 안녕을 빌었다.

파스타를 먹던 제네비브는, 지금 이 순간이 알리바이를 꺼내기에 완벽한 순간임을 자각했다.

“……나, 속이 안 좋아.”

제네비브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에게 말했다.

주말 동안 얼굴을 안 비쳐도 이해 가능한 사유였다. 누군가 제네비브의 행방을 물어보면 아파서 기숙사에 쉬고 있다는 답을 하겠지.

“어디가 아파요?”

“으응. 체한 것 같네…….”

제네비브는 실제로도 그럴듯한 열연을 펼쳤다.

친구들의 걱정을 받은 그녀는 병동에서 약을 받아 오겠다고 말하고는 다이닝 홀을 떠났다.

그렇게 제네비브는 그다음 날, 외출 계획을 진행했다. 역에 도착한 집념으로 허점을 알아낸 오웬에게 감사도 전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시온이 제네비브에게 리스톨행 표를 한 개 건넸다.

이제, 밀포드가 누군지 알아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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