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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8)화 (17/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장. 실전 돌입 전 필수 예제 (4)

그녀는 이 무거운 공기에 본인이 일조한 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드언도 딱히 잘못한 게 없는 건 마찬가지가 아닐까? 왜 사과를 하는 걸까.

타티아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가요?”

“화목한 분위기는 아닐 테니까요. 타냐, 난 당신한테 인자한 시어른들은 만들어 주지 못해요.”

“…….”

“당신은 평생 가도 남편의 부모에게 귀여움받는, 그런 평범한 일상은 느낄 수 없을 겁니다.”

너무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현실이 이러하니 앞으로 네가 참고 감수해라, 라고 말했다면 타티아나도 꽤 불쾌했겠지만 기드언은 방금 사과를 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타티아나도 생각하게 된다. 당신이 그것 때문에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현 왕후는 기드언과 스칼렛의 친모가 승하한 뒤, 후비에서 왕후로 책봉됐다.

그녀에게는 기드언보다 5살 어린 바이칼 아인슬러 왕자가 있다.

간과하기는 어려운 존재였고, 왕후와 기드언의 사이가 껄끄러우리란 사실 정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타티아나도 그걸 다 알고 결혼했다.

적어도 사기 결혼을 당한 건 아니란 뜻이었다.

“그래서 제가 전에 사연 많은 집으로는 시집 안 가고 싶…….”

“어쨌든 왔잖아요.”

내 말이.

타티아나는 푸흡 웃었으나, 기드언은 그녀가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건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었다.

타티아나는 비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드언에게 물었다.

“그럼 전 앞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해요? 주의해야 할 게 있으면 알려 줘요.”

기드언과 한패가 되어 싸움닭처럼 왕후에게 달려들 자신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왕후와 손바닥을 맞추며 하하호호 웃을 수도 없지 않나.

그러다간 기드언의 입장이 난처해질지 몰랐다.

타티아나는 기드언과 정치적 온도 정도는 가급적 맞춰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게 결혼의 맹점 중 하나였다.

나의 태도, 발언 하나하나가 배우자의 입장,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운신할 때 생각을 한 번 더 해야 한다고나 할까.

상호 간의 의논이 필요한 경우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입가를 매만지며 곰곰이 생각하던 기드언은 답했다.

“그냥 비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누차 생각해 왔지만, 자신도 안 하는 걸 타티아나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녀를 신하로 맞이한 게 아니었다. 아내로서의 도리랍시고, 타티아나에게 중간 역할을 매끄럽게 해내라며 등 떠밀고 싶지도 않다.

그딴 건 열등한 남자나 하는 짓이었다.

“비가 앞으로 유일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네.”

“독 있는 음식을 피하고…….”

“……네?”

듣고 있던 타티아나는 순간 맹해지고 말았다.

뭐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더니 방금 너무 무서운 걸 요구했잖아.

아랑곳하지 않고 당부를 이어 가던 기드언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타티아나를 보며 피식 웃고는 눈을 맞추었다.

“내가 전에 말했죠. 비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 세 명까지는 처리해 주겠다고. 아무 명분이 없어도 말입니다.”

“…….”

“비는 평소처럼 밥 잘 먹고 온 다음에 왕후가 그 셋에 속하는지 아닌지만 조용히 알려 주면 됩니다.”

기드언은 이 말을 하면서는 아무런 살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목소리는 온화한 나머지 다정하게까지 들렸다.

그런데 타티아나는 이상하게 좀 추웠다.

앞으로 살면서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앞에서는 티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만 또 한 번 하게 됐다.

그녀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 그냥 조용히, 되도록이면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싶어요.”

“뭐예요, 그게. 평화주의잡니까? 검을 한 번 뽑았으면 풀이라도 베어야지. 당신, 블룸이잖아요.”

“그럼 전 차라리 풀을 벨게요.”

“저걸로?”

기드언은 본인이 선물한 명검을 흘긋거렸다.

검은 오늘도 쓸데없이 번쩍거렸다.

역시 풀이나 벌레 따위를 베는 데 쓰기엔 너무 위대해 보이는 검이었다.

“그러게 왜 저렇게 과한 걸 줬어요? 말 나온 김에, 저거…… 처음부터 저 주려고 만든 거죠?”

기드언은 그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그렇지만 타티아나가 계속 바라보자 에둘러 답했다.

“내 아내는 최고만 가져야 돼요.”

최고라.

타티아나는 그 말을 곱씹다가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기드언에 비해서는 ‘알량한’ 근육이다. 검을 들기엔 애로 사항이 많은 조건이었다.

일단 나부터 최고가 아닌데 무기만 최고면 뭐해.

그녀는 좀 씁쓸해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전하, 진짜 최고는 목검을 들어도, 애들 장난감을 들고 있어도 최고인 거예요. 언제든지 그걸 증명할 수 있어야 해요.”

“아아. 그래도 기왕이면 명검을 든 채로 최고가 되도록 해요.”

있는 거 전부 다 끌어서 활용하라고.

넌 구조물도 함부로 안 부순다며.

왜 쉬운 길 놔두고 힘든 길로 가려고 해?

기드언은 타티아나의 말이 별로 와닿지 않았는지 어깃장을 놓듯 말했고, 곰곰이 생각하던 타티아나는 그 또한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 그냥 웃어 버렸다.

* * *

검과 결혼한 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건 농담이고, 타티아나는 초혼이 확실하다.

나이도 스물하나로 아직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하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결혼에 대해 이것저것 주워들은 잡다한 정보가 많았다.

이게 다 뮐러 공작 부인이 엄선한 티 파티 참석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소규모 파티에는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타티아나 또래의 지체 높은 아가씨들이 몰려들곤 했다.

수다의 주제는 그때그때 달랐으나, 나이가 나이인 만큼 가장 자주 오르내린 화제는 연애나 결혼이었다.

타티아나는 친구들의 화려한 신혼 생활과 부부 갈등을 가만히 듣고만 있는 편이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때도 있었으나, 가끔은 유심히 새겨들은 적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전부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본인이 직접 겪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데 옳고 그름이 어디 있나? 그건 그냥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한 마디로 경험담.

다만 그 경험담을 듣고 있다 보면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난 네 남편이 아니라 네가 궁금해. 내가 알고 싶은 건 너야.’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어느 순간 그들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타티아나는 그게 아쉽고, 또 서운할 때가 있었다.

물론 내색은 안 했다.

게다가 그들의 수다가 꼭 소모적이거나 쓸데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 다양한 결혼 사례담을 주워들으며 타티아나 또한 배운 점이 있지 않겠는가?

첫째, 모든 부부는 싸운다.

그 원인을 아주 고상하게 표현한 말이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몇십 년간 자라 온 인격체들이라고. 모든 부분이 다 맞을 순 없고, 그 차이를 하루아침에 다 맞출 수도 없다고.

한마디로 너는 내가 아니라는 거다.

둘째, 부부들은 둘 사이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가족 때문에도 싸운다.

사실은 이것 때문에 더 크게 싸울 때가 많은 듯하다. 기혼자 친구들의 이야기에는 시댁 자랑도 있었지만, 고부 갈등 또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왜,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하지만 타티아나는 의문이 있다.

나와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친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백이면 백, 다 내 마음에 들던가?

너랑 너는 내 친구니까, 너희 둘끼리도 친구가 되어야 해, 이렇게 강요할 건가?

위 아 더 월드야, 뭐야.

마찬가지로, 배우자와 가족이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속한 모든 공동체와 완전히 융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에 기대를 걸고, 때때로 강요를 하니 실망과 마찰 또한 예견된 게 아닐까?

그래서 타티아나는 생각하게 됐다.

혹시라도 자신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파생된 인간관계에 임할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겠다고.

처음부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를 낮춰 놓겠다고.

누군가는 너무 계산적인 태도가 아니냐며 눈살을 찌푸릴지 모른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영악하게 머리를 굴린다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타티아나의 이 관점은 그녀가 운동과 신체에 대해 갖고 있는 소신과 정확히 일치했다.

누구나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다소 부실한 식단으로 식사를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거 평생 유지 못 한다.

언젠가는 폭식을 하게 되고, 우리의 불쌍한 신체는 그 부작용을 몇 배로 떠안아야 한다.

아마 신체는 주인에 대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지.

이 자식이 지 버릇 못 버리고 또 시작했구나. 이제 너 자신을 좀 알라.

그뿐이 아니다.

날이 무더워지고 주변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기 시작할 때면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아…… 아아아, 그 계절이 또, 또 와 버렸구나.

그들은 그간의 게으른 생활을 반성하며 무리한 운동 루틴을 짜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강도로 매일같이 할 수 있을까?

만약 3일이라도 해냈다면 타티아나는 박수 치고 독려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너, 의지가 남다르구나, 하고.

그러니 타티아나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꾸준히 해낼 수 있는 만큼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자신의 몸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성.’

무리하게 잘하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손을 놔 버리면 상대에게선 서운하단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늘 꾹 참던 이가 더 이상 못 참고 빵! 터져 버리면, 화낸 사람만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다치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열고,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만큼만 하되, 참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참을 거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나를 가장하다가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건 싫다.

언젠가 자신이 티 파티의 화자가 되었을 때,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 안에 여전히 존재하기를 바란다.

이상, 여기까지가 타티아나가 결혼 전, 주변 사례를 통해 내린 본인만의 결론이자 철학이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도 같다.

……그러나 사례는 왜 사례에 지나지 않는가?

하나의 사례로 세상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타티아나 주변에는 왕자와 결혼한 친구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왕후인 사람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남편의 친모가 아니거나,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남편이 이복동생과 왕위를 놓고 다투는 상황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타티아나는 왕후에게 가는 내내 본인의 처신을 고심했다.

그러나 왕후궁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는 공손히 인사만 건넸을 뿐이지만, 속으로는 금세 깨닫고 말았다.

이럴 때 쓰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

기드언과 왕후는 융숭한 음식을 사이에 두고 생글생글 웃으며 주거니 받거니, 서로에게 악담을 해 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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