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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14)화 (104/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장. 너의 방패가 되어 (7)

시녀들은 타티아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인들에게 목욕물을 준비시킨 참이었다.

취향껏 쓰시라며 찬물, 더운물, 다 대령해 놨다.

그러나 신혼부부는 곧바로 함께 목욕을 즐기지는 못했다.

타티아나는 방을 빠져나오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 보니 머리도 온통 부스스해져 산발이었다.

케케묵은 먼지 속을 기어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전하는 이 꼴을 보고…… 잘도 웃음이 나왔나 보네?’

오늘따라 눈빛이 유독 따뜻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다 그녀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드언은 그저 그녀의 꼴이 하도 해괴하여 웃은 게 아닐까?

그만큼 행색이 엉망이었다.

타티아나는 옷소매로 한쪽 뺨의 검댕을 슥, 슥 닦아 내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머리칼에 붙은 먼지도 휙 하고 털었다.

그러나 평복 바지 위에 붙어 있는 다리 많은 벌레를 목격한 순간, 그녀는 눈가를 찡그리고 말았다.

무섭거나 징그러워서가 아니었다.

약간 불길한 가능성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전하랑 같이 욕실에 들어가면…….’

그는 아내 몸에서 땟국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부부가 합심하여 욕탕 위를 떠다니는 벌레의 사체들을 건져 내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생각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타티아나는 일단 욕실에 혼자 들어가 몸을 한 번 헹궈 내기로 했다.

낭만까지는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민망한 상황은 막아야 했다.

발가벗고 그의 앞에서 칼춤을 추면 췄지, 시커먼 땟국물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을 그대로 지나쳐 욕실 문을 열었다.

기드언은 곧장 뒤를 따르려 했으나, 그녀는 그의 가슴을 밀쳐 내며 말했다.

“전하는 잠깐 들어오지 말고 거기 있어 봐요.”

“왜?”

“……그런 게 있어요. 내가 부를 때까지 절대로 들어오면 안 돼요.”

기드언은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의 태도가 너무 단호하여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그녀가 안에서 자신을 불러 주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드언의 얼굴에는 지루하다는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그냥 들어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원래도 아내 방에 출입할 때, 간혹 노크를 생략하곤 했다.

그때마다 본인 나름대로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가 지금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아내와 함께 목욕을 하는 게 처음이라서였다.

그는 결혼한 유부남이긴 하지만, 아내가 남편과 목욕을 하기 전 어떠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사실 짐작조차 못 하겠다.

그러니 혹시라도 풋내 나는 실수를 저질러 아내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걸 피하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더 인내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그의 참을성이 바닥나기 전에 타티아나는 안에서 신호를 보냈다.

“전하! 아직 거기 있어요?”

“네가 있으라며.”

기드언은 픽 웃고는 시녀들에게 나가 보라, 눈짓한 뒤 욕실 문을 열었다.

그러고도 바로 들어가진 않고, 확인하듯 물었다.

“이제 된 거예요?”

“네.”

기드언은 대욕탕에 다소곳이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타티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대체 안에서 뭘 한 걸까?

홀딱 벗은 몸을 탕에 담그고 있다는 것과 구불구불하던 머리칼이 물에 젖어 추욱, 늘어져 있다는 것 외에는 차이점을 모르겠다.

그는 의아함을 뒤로한 채 욕실 문을 닫고는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욕탕 안으로 들어와 타티아나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 외 별다른 동작은 없었으나, 건장한 체격 탓에 탕 안의 물은 크게 출렁거렸다.

가만히 앉아 있다 봉변을 당한 타티아나는 얼른 턱을 치켜들었고, 기드언은 입가에 튀긴 물을 닦아 주며 물었다.

“먼저 와서 뭐 하고 있었어요?”

“……그런 게 있어요. 알면 진짜 큰일 나.”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고작 애벌 샤워나 하기 위해 그를 밖에 세워 뒀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녀도 이 정도는 그냥 솔직하게 말해 주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같이 사는 강아지가 오늘따라 좀 꾀죄죄하다고 해서 진심으로 화를 내거나 정떨어진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도 있나?

대체로는 혀를 차면서도 내심 귀엽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 많이 신이 났었나 보네, 하면서.

물론 아내와 강아지를 동일 선상에 둘 수는 없었으나, 뭘 해도 귀엽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드언은 본인의 궁금증을 끝끝내 해소하지 못했지만, 굳이 캐묻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종종 혼욕을 할 일이 있을 테니, 언젠가는 자연히 알게 되겠지.

그의 아내는 뭘 꽁꽁 감춰 두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괜한 호기심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단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눈앞의 광경을 즐기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는 욕조에 팔 하나를 걸쳐 둔 채 타티아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보랏빛 머리칼 일부는 그녀의 가슴을 교묘히 가리고 있었고, 또 일부는 해초처럼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물 온도가 따뜻하여 몸이 노곤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참 예뻤다.

기드언은 물 위를 떠다니는 그녀의 머리칼을 걷어 내 어깨 뒤로 넘겨 주며 중얼거렸다.

“머리숱 참 많네.”

본인도 늘 인지하고 있던 부분인지라, 타티아나는 한 차례 키득거렸다.

이 풍성한 머리카락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타티아나는 솔직히 관리하기 귀찮다고 느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기드언이 그 부분을 언급하자, 성가시다고 여겨 왔던 머리카락도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딱히 칭찬 같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 이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타티아나는 물을 가르며 그의 앞으로 가서 옮겨 앉았다.

늦은 밤, 그녀의 눈동자가 아직도 초롱초롱한 건 전적으로 기드언 때문이었다.

그가 멋진 근육을 갖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탄탄한 살갗에 물방울이 맺히니 느낌이 또 달랐다.

선정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한쪽 팔뚝에 힘을 주며 여봐란듯이 굽혀 보았다.

기사들이 알통을 자랑할 때 자주 취하는 자세였다.

“전하, 이거 한 번만 해 봐요.”

기드언은 ‘별걸 다…….’ 생각하면서도 오른팔을 들어 올려 대충 반쯤 접어 주었다.

타티아나는 그 무성의함에 입술을 삐죽일 뻔했으나…… 그는 온 힘을 다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졌다.

그녀는 그 다부지면서도 탐스러운 근육을 어루만지다가 장난스레 콕, 콕 찌르며 말했다.

“이두.”

“…….”

“여긴 삼두.”

그녀는 그의 손목을 바깥쪽으로 향하게끔 만들고는 ‘여기가 전완근’ 하며 마무리했다.

기드언은 남의 몸을 가지고 대리 만족 중인 타티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샐쭉 웃으며 물었다.

“나 좀 변태 같아요?”

“원래는 그래야 하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저 얼굴이 사기였다.

그녀는 남의 근육을 조몰락거리며 탐하는 사람치고는 엉큼해 보이지 않았다.

마력석을 처음으로 갖게 된 꼬마 마법사같이 순수하고 해맑을 뿐이었다.

기드언은 저 표정은 물론이거니와 그녀의 손길 또한 마음에 들었기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맡겼다.

“계속 해. 갖고 놀아요.”

“진짜?”

기드언은 대답 대신 조금 더 느슨한 자세로 욕조에 기대앉았다.

타티아나는 곧바로 그에게 달라붙어 쇄골을 길게 더듬었다. 그러고는 등 뒤로 손을 두르며 툭 튀어나온 날개 뼈를 매만졌다.

“이게 견갑골.”

그런데 여긴 좀 갑작스러웠나? 그의 등 근육이 수축하며 움찔하는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척추뼈를 훑으며 생각했다.

‘전하가 원래 등이 좀 예민했었나?’

그러나 그의 표정만 봐서는 전혀 모르겠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욕조 끝을 바라보고 있었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타티아나는 곧 다른 신체 부위에도 공평하게 관심을 주었다.

기드언은 흉곽이 크다.

흔히들 사람의 힘은 이 몸통 크기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아마 옳은 말일 것이다.

무수한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둘레라도 재어 보듯 고목나무처럼 굵고 커다란 그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흡사 체스판처럼 쩍쩍 갈라진 복근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전하는 좌우 복근이 참 균형적이에요. 사실은 이게 이렇게 대칭을 이루면서 발달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

“진짜 멋진 복근이에요.”

타티아나의 칭찬이 너무나 진심이라, 심지어 부러움마저 담겨 있어 기드언은 웃지도 못했다.

그냥 ‘어, 고마워’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먼 곳을 바라보며 내 아내는 가끔 왜 이러는 걸까? 속으로만 생각했다.

한데 타티아나는 복근을 구경하다 말고 갑자기 그에게서 떨어지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앉았다.

이제 겨우 상체 탐구가 끝났을 뿐인데 말이다.

하체 근육에는 별반 흥미가 없나?

기드언은 왜 그러냐고 묻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눈도 마주치려 들지 않아, 그는 결국 소리 내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더 안 해?”

“그냥. 여기까지만 할래요.”

그녀는 왜 갑자기 계면쩍은 표정을 짓는 걸까.

아마도 그의 몸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드언은 픽 하고 웃었다.

그녀는 사람 몸을 그런 식으로 실컷 더듬어 놓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걸까?

남편이 혹시라도 무안해할까 봐 못 본 체해 주는 건가.

배려는 고맙지만, 그는 딱히 쑥스럽지 않았다.

아내와 목욕을 하며 이런 것까지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기드언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타티아나의 앞으로 가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그럼 이제 내가 해 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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