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장. 너의 방패가 되어 (8)
타티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뭘?”
글쎄.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인체 놀이? 근육 탐구?
기드언은 적절한 명칭을 찾지 못해 고심했다.
그사이 내 차례라는 건가? 싶었던 타티아나는 팔을 들어 올려 어깨 쪽을 향해 힘주어 접었다.
그러자 제법 야무지긴 하나, 어딘가 알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알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드언은 입가를 매만지며 큭큭거리다 그녀의 팔을 살포시 물 밑으로 내려 주었다.
그러고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으며 타티아나의 눈꺼풀을 검지로 슬쩍 들어 올렸다.
“눈.”
조금만 울어도 다음 날 퉁퉁 붓곤 하는 눈꺼풀은 유독 살갗이 얇았다.
기드언은 행여 주름이라도 질까 봐 금세 손을 떼고는 그녀의 콧잔등을 비틀었다.
“코.”
“…….”
“입술.”
도톰한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손가락은 턱과 목선을 타고 물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
타티아나는 눈을 댕그랗게 떴고, 기드언은 바로 손을 놓았다.
그가 뒤로 물러나자 욕실 안에는 참방거리는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드언은 욕조 귀퉁이로 시선을 돌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아내한테 이런 장난질이나 치고 있는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져서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참 유치했다. 어떤 면에서는 바보 같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순간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기만 했다.
그가 멋쩍은 이유는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행복하기 때문이었다.
타티아나는 그런 기드언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눈웃음이 평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게 그녀에게는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타티아나는 물을 가르듯 나아가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고, 기드언은 곧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속삭였다.
“그만 나갈까?”
“……응.”
타티아나는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사실은 그도 그녀도 씻은 지 오래였다. 혼욕은 여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부가 동시에 또 다른 놀이를 시작하고픈 마음을 느끼고 말았으니, 자리를 옮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기드언은 ‘그래, 그러자’ 중얼거리고는 그녀를 안은 채로 욕조에서 일어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타티아나는 물기에 젖어 이마 위에서 흔들리는 그의 백금발을 쓸어 넘기며 생각했다.
역시 흉곽이 큰 사람들이 힘을 잘 쓴다고.
기드언은 욕실 문을 열고 나선 후에야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수건을 집어 들고 서로의 몸을 사이좋게 닦아 주었다.
수발을 들어 줄 이들을 모두 내보낸 결과였다.
그는 여인의 긴 머리칼을 말려 본 경험이 없을 텐데도 능숙해 보였다.
다소 털털한 손길로 그의 몸을 스윽, 한 번 닦고 마는 타티아나와는 달랐다.
꼼꼼한 성미가 이런 데에서까지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마치 뿌리 끝까지 잘 말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 같아, 타티아나는 그게 좀 웃겼다.
게다가 기드언은 꽤 즐거운 기색이었다.
커다란 수건으로 타티아나의 몸을 감싼 뒤, 선물을 포장하듯 매듭을 짓는 눈동자가 은근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기드언은 다시금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린 채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본인이 직접 포장한 선물을 내려놓더니, 이번에는 손수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타티아나는 포장지 속의 알맹이가 되어 침대 위에 누운 채로 비시시 웃었다.
새하얀 피부가 눈부시게 빛났다. 뜨거운 물에 푹 익어 상기된 뺨이 참 고왔다.
세상에 이처럼 황홀한 선물이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어딘가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이래도 되는 건가, 뒤늦게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갑자기 좀 죄책감이 드네.”
“뭐가요?”
“안 피곤하겠어요? 정말 해도 되냐고.”
기드언은 양심은 희박한 편이었으나, 상식은 바로잡혀 있었다.
타티아나를 좋아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차고 넘칠 만큼 있었다.
그의 안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감정들은 대부분, 그녀와 관련된 일에 할당되어 있었다.
한데 오늘처럼 그녀가 무리한 날, 잠자리를 갖는 건 혹시 자신만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도 정말 하고 싶은 게 맞나?
약간은 의심이 들었고, 그 부분을 조금 더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이 갑자기 감찰관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울상을 지었다.
아까까지 몰랑몰랑한 분위기였는데, 내 남편은 또 왜 이러는 걸까?
뭐 하나 어어어? 하며 그냥 넘어가 주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내어 놓았다.
“하고 싶어.”
“진짜죠? 나 맞춰 준답시고 이런 걸로 거짓말하면 그게 남편을 정말로 우습게 만드는 겁니다.”
“…….”
타티아나는 애당초 이런 문제를 놓고 그를 속일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하도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자,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디 노트에다 적어 놓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잠자리 컨디션에 대해 남편에게는 늘 솔직하게 말하기, 라고.
“나는 내가 오늘 푹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응.”
“솔직히 지금 별로 잠이 안 와요. 너무 또렷해.”
“아아.”
기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녀도 오늘 밤 긴장하여 온몸의 근육이 다 깨어나고, 신경이 곤두서 버린 거다.
한 번 격양된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아서다.
그럴 때 구태여 억지로 잠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날이 밝아 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둘이 함께.
기드언은 솔직한 대답, 아주 잘 들었다는 듯 입을 쪽 맞추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자 기분 좋은 향이 훅, 하고 코끝을 파고들었다.
함께 목욕을 했으니, 그에게서도 아마 같은 향이 나고 있을 것이다.
별것도 아닌 그 사실이 이상한 만족감을 준다.
타티아나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을 때보다 더한 노곤함이 자신을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너무 부드럽고 뜨거워 온몸이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입술이 지나간 자리가 간지러워서 몸을 배배 꼬게 된다.
그렇지만 결합의 순간은 언제나 미약한 통증을 동반했다.
그녀는 기드언의 어깨를 꽉 그러쥔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느끼는 이물감만큼이나, 그 역시도 압박감을 느끼는지 잘생긴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가 저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저 찌푸린 눈썹이 참 야한데 동시에 매력적이라서다.
하지만 자신의 표정은 지금 그다지 예쁘지 않을 것 같아서. 사실은 그의 새파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표정이 아직도 낯설고 이상해서.
타티아나는 고개를 돌리며 베개에 뺨을 파묻었다.
기드언은 얼굴을 감추려 드는 타티아나의 턱을 움켜쥔 채 다시금 시선을 빼앗아 왔다.
“날 봐야지.”
“싫어. 지금 못생겨졌어.”
“……누가? 나?”
“아니이, 나.”
기드언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어쩌다 생각이 거기로 흘러간 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생리적 아픔 때문에 작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는 그녀의 눈가를 닦아 내고는 그 자리에 입을 맞추었다.
“……예뻐.”
타티아나는 입을 비죽이며 픽, 웃어 버렸다.
코웃음을 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말을 새겨듣기는커녕 공치사라고 여기는 눈치라, 기드언은 생각지도 못하게 억울해지고 말았다.
그는 잠자리라고 해서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쁘다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거짓으로 고했던 적은 없다.
그걸 아내인 타티아나마저 몰라준다면 어떡하란 말인가.
기드언은 몸을 움직이려다 말고, 다시 한 번 제대로 말하고 싶어서 이마를 맞대었다.
“티티.”
“……응.”
“내가 너…… 정말 많이 좋아해.”
타티아나는 그 말에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고, 내심 기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기드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혼을 한 이후, 언제부턴가 그 사실이 순간순간마다 느껴졌다.
그가 본인의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도무지 의심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해 주니 기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화답이라도 하듯 그의 귀에 대고 장난스레 속삭였다.
“사실 나도 너 좋아해.”
몰랐지? 깜빡 속았지?
불쑥 튀어나온 반말에 기드언은 웃음을 터뜨렸다.
타티아나는 같이 웃다가 이제 빨리하라는 듯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자꾸 이러면 나, 아주 무서운 개구리가 되어 버릴 거예요, 엄포를 놓기도 했다.
기드언은 눈치 좋게도 그 말을 바로 알아듣고는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몸을 뒤집었다.
그의 위에 자리 잡은 타티아나는 이제 와서 부끄럼이라도 타는지 얼굴을 가렸고, 기드언은 또 그 손을 열심히 끌어 내렸다.
그러다 조금 전, 욕탕 안에서 잠시 움켜쥐었다가 놓아주었던 그녀의 아름다운 곡선을 덧그렸다. 그의 손길은 그 언덕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아래로. 더 아래로.
그녀는 그의 복근이 어째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더라.
기드언은 서로가 연결된 지점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나도 티티, 어디가 예쁘고 멋진지 말해 줄까요?”
“…….”
그도 그녀의 모든 신체 부위에 이름을 붙이고 소리 내어 부르며, 거기가 왜 예쁜지 하나하나 이유를 댈 수 있었다.
밤을 새워도 모자랐다.
그런데 그거 정말 듣고 있을 수 있겠어? 내 시선은 너와 상당히 다를 텐데, 안 부끄러워할 자신 있냐고.
어때? 이제 네가 남편한테 얼마나 무서운 장난을 걸었는지 잘 알겠지? 이 귀여운 개구리야.
타티아나는 상기된 얼굴을 숙이며 입술로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기드언은 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몸을 뒤집으며 움직였다. 그러다 그녀가 익숙해질 만하면 금세 또 자세를 바꾸었다.
불규칙한 박자감, 내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 그들을 비추는 창가의 달빛.
정신없이 흔들리는 머리칼을 등 뒤로 넘기며 타티아나는 생각했다.
오늘 잠을 자기는 정말로 틀린 것 같다고.
하지만 괜찮다. 이 긴긴 겨울밤을 같이 지새워 줄 사람이 있으니.
그와 함께 있으면 어떤 시간을 보내더라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혹시라도 그가 먼저 잠이 들면, 그 평온한 얼굴을 보고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가 무슨 꿈을 꿀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