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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17)화 (107/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장. 너의 방패가 되어 (10)

그녀들이 속살거리며 떠드는 동안에도 기드언의 부관은 계속 옆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타티아나는 편지를 다시 봉투 안에 고이 넣어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

“전하께서는 뭐라셨어?”

“딱히 다른 전언은 없으셨습니다.”

“그래?”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쁠 텐데 그만 가 보라 손짓했다.

나도 전할 말은 없노라고.

그러고는 소파에 몸을 푹 파묻었다.

기드언의 부관이 자리를 뜨자, 그녀의 입에서는 아까와 달리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스칼렛이 회임을 했다는 건 너무나 기쁘고 축하받아 마땅한 소식이나, 사실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국은 한없이 불안정하고, 기드언은 얼른 내란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사사건건 왕후의 신경을 긁고 있다.

마치 작심을 한 사람 같은 태도였다.

여러모로 임부가 안정을 취하거나 태교에 집중할 만한 주변 환경은 아니었다.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당사자인 스칼렛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회임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마탑 사람들이었다.

마력의 응집체나 다름없는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는 누구나 의례적인 검사를 거쳐야 한다.

촉진을 하며 기본적인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다.

스칼렛과 시녀들이 그때까지도 복중 태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건 아직 임신 극 초기라는 뜻이었다.

타티아나는 이후 마탑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졌는지, 무슨 대화가 오고 갔을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마법사들 중에는 마력이 장기적으로 사람의 인체에 해악을 끼친다는 가설을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이 가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마법사들의 보잘것없는 평균 수명이 아주 크게 기여했다.

비록 현 마탑주가 살아 숨 쉬는 반례가 되어 그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는 있으나, 요절한 마법사들이 무수하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타티아나의 모친 또한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타티아나는 그게 꼭 마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보았을 때 마법사들 대부분은 건강해지려야 건강해질 수 없는 생활 패턴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라 이런 말을 하기가 참 뭐하긴 하지만, 그 생활상, 아니, 그 참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딸의 솔직한 심정은…….

‘아주 엉망진창이었지.’

타티아나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며, 늘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건 어머니를 보며 느낀 게 있어서다.

그들은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데, 연구실에 들어가면 밥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곤 했다.

운동이야 당연히 안 했고 신경도 예민했다.

건강하다면 그게 바로 신의 축복이며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타티아나의 지레짐작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마탑은 아마도 스칼렛 공주에게 이렇게 고했을 것이다.

마탑의 게이트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고.

왕손의 안위가 달려 있으니 그들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지.

한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산모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산모라 해도 그러할 텐데, 브라우닝 경의 편지에는 또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풀만에 있을 때, 아내가 유산을 한 적이 있다고.

스칼렛은 결국 사절단과 떨어져 발터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마탑의 게이트에 발을 디디는 게 부담스러웠던 거다.

타티아나는 아기 앞에 한없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공주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녀가 아이를 바라며 왜 그토록 아련한 눈빛을 했는지도.

‘어쩌면 북부로 함께 가야 할 수도 있겠네.’

곱게 자라 온 스칼렛에게는 꽤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이건 마차를 타고 떠나는 소풍이나 여행이 아니었으니까.

3일 밤낮을 꼬박 새워 달려야만 북부에 도착할 수 있다.

비전투 인원을 최소화해야 하는 기드언 일행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타티아나는 그 언젠가 자신이 스칼렛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마 학교 설립 문제로 빈민가에 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제가요. 나중에 스칼렛 전하를 도울 일이 있으면…… 정말로 진심을 다할게요.’

그 약속을 한 게 채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건 돕는 것도 아니고, 사실 너무 당연한 거였다.

스칼렛은 기드언이 혈육 중에 유일하게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친구니까.

아기를 가지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러운 일이 많아진다고 했다.

산모한테 혹여라도 내가 이 일행의 짐이 된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건 정말로 너무한 처사다.

타티아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경험이 없긴 하지만,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그 난감함과 조마조마함을 머리로는 알 것 같았다.

그러니 서글픈 일 없게 옆에 딱 붙어서 잘 보살펴야지.

브라우닝 경의 구구절절한 서신에도 그에 대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타티아나는 대충 생각을 정리하며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하나 약간은 심란한 마음을 떨쳐 낼 수 없어 케이를 바라보았다.

이런 기분이 들 때 그녀가 택하는 방법은 대체로 한두 가지 내외였다.

검을 들 거나, 있는 힘껏 주문을 외치거나.

“어떻게, 안 바쁘면 한 판 할래?”

케이는 거절하지 않았다.

기꺼이 응하겠다는 듯 검집에서 검을 반쯤 뽑아 보였다.

그러다 나중에는 넌지시 물어왔다.

“비전하, 혹시 마법도 쓰실 겁니까?”

“왜? 쓰면 안 돼?”

그럴 생각까진 없었지만, 굳이 묻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대련 중에 마법을 쓰는 건 혹시 너무 반칙 같으려나?

그런데 타티아나는 솔직히 좀 의문이었다.

내가 그 근육 내려놓고 싸워 달라고 부탁하면 그래 줄 건가?

실제 전투에서 체급과 상대를 가려 가며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한데 마법사한테 마법을 쓰지 말아달라니.

전쟁터에 나가서도 마법사는 마법사끼리, 기사는 기사끼리, 살수는 살수끼리 싸우라고 하지, 왜?

뭐, 그래도 정 요청한다면 까칠하게 굴며 따져 물을 생각은 없었다.

이게 실제 전투가 아니란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케이는 고개를 저으며 도리어 이렇게 청해 왔다.

“괜찮으시다면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전하께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입니다.”

“…….”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케이는 마법사는 상대해 보았으나 마검사와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잘 모른다.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발터에 검과 마법을 왕자비처럼 조화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경험해 둬서 나쁠 건 없었다.

어쩌면 실력 향상에 크나큰 밑거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반드시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타티아나는 케이의 말에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고 말았다.

역시 최고는 마음가짐부터 다른 법이었다.

상대의 장점을 자신에게 불리하다 하여 피해 가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으려 하지 않나.

타티아나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심장이 막 뜨거워질 뻔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너 오늘 진짜 제대로 상대해 주겠다고.

그녀는 따라 나오라며 케이에게 검지를 까딱였다.

그리고 코니는 이날 참 무서운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해야만 했다.

후원에서 뭐가 막 펑펑 터지고 있었다.

그녀는 화염구를 엄청난 정확도로 던져 대는 왕자비와 그걸 귀신같이 피하는 케이 중에 누가 더 대단한 건지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격돌하는 와중에 애먼 나무들만 뿌리째 뽑혀 나가고 있었다.

‘사람 두 명이서 3분 만에 정원을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거야?’

그런데 이보다 더 희한한 건 어느새 슬금슬금 밖으로 나와 눈을 빛내고 있는 살수들이었다.

자신들의 우두머리와 왕자비가 겨루는 모습이 그들에게도 몹시 흥미진진한 듯했다.

그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왕자비에게 다가갔다.

“저…… 무례한 청인 줄은 아오나, 저도 대련을 한 번만 부탁드려도…….”

코니는 살수들이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데 타티아나는 그걸 또 대수롭지 않게 받아 주었다.

“어? 그럴까? 하지, 뭐.”

“감사합니다.”

살수들은 선수를 친 동료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말없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대련은 그 뒤로 한참 계속되었다.

타티아나는 실력으로는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나, 살수들의 독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뭐 얻어 낼 기술이 없나, 탐색하는 눈빛으로 쉴 틈을 주지 않고 덤벼들었다.

머릿수에서 열세였던 타티아나는 결국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는 혀를 내둘렀다.

“와, 너희 좀 지친다. 의외로 질척거리는 성격들이었네.”

살수들은 본인들이 생각해도 너무 집요하게 엉겨 붙었다 싶었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타티아나는 풀썩 잔디밭에 주저앉았고, 코니는 눈치껏 요깃거리를 내어 왔다.

왕자비는 운동 전후에는 뭘 잘 먹지 않았지만, 코니도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을 쓴 후에는 영양 보충이 필수라고.

타티아나는 생명수라도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을 짓다가 곁에 있는 케이에게 예의상 한 번 권해 보았다.

“힘들지. 너도 먹을래?”

그녀는 정중한 거절을 예상했으나 케이는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왕자비인 타티아나보다 먼저 맛보았다.

타티아나는 그게 참 희한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웬일이야?”

“보좌진에 공백이 생겨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해 봤습니다.”

돌려 돌려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 독이라도 들었을까 봐 먹어 봤다는 뜻이었다.

타티아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네가 죽으면 어떡하게. 네 목숨은 아깝지 않은 거야?”

“전 국내에 풀린 독들엔 거의 다 내성이 있습니다. 혀가 아리거나 복통 정도로 끝납니다.”

타티아나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공감대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너도? 나도!

내가 어릴 때 엄마의 약재 창고에서 다 조금씩 먹어 봤지.

타티아나는 케이는 살수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고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코니에게도 음식을 권해 보았다.

“너도 앉아서 같이 먹을래?”

“……아뇨, 먹기 싫어졌어요.”

“왜? 안전하다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 하아.”

코니는 식욕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욕구가 사라진 표정이었다.

그녀는 이 살벌한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았다.

지금쯤 마탑에 가 있을 자신의 동료들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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