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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 스트리머가 게임을 잘함-1화 (1/110)

001화. 프롤로그

“미안하게 됐네.”

사장의 씁쓸한 목소리를 들으며 김지호는 생각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지난 3년간 몸담은 회사생활의 끝이었지만, 딱히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막상 진짜로 망하니까 착잡하긴 하지만…….’

다행히 준비는 대강 해둔 상태다.

일단 퇴직금이 나올 테고.

그가 원한 실직이 아니니,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급한 생활비는 해결.

게다가 돈도 꽤 모아뒀으니 재취업할 때까지 버티기에는 충분하겠지.

미리 예견된 사태에.

그에 따른 대비도 충분한 상황.

물론 지호도 회사를 떠나는 것은 씁쓸하지만.

굳이 그까지 우울해질 필요는 없을 터다.

“아닙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미안하네…….”

지호의 차분한 대답에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장.

사실 그도 사장도 알고 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랜 불황으로 회사가 문을 닫는 상황인데 뭘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됐건, 끝을 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리라.

이를 대강이나마 짐작하기에.

지호가 너스레를 떨며 다시 인사했다.

“에이, 사장님.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인데 미적거릴 필요는 없다.

그럴수록 기분만 울적해질 뿐이니.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

평소 모든 인연에 이 문장을 적용해오던 그였기에.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문을 나섰다.

* * *

틱! 틱!

“후…….”

아예 짐까지 싸서 회사 밖으로 나온 김지호.

그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

“여보세요?”

신호음이 두어 번도 채 울리기 전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래된 친구, 박준영의 목소리다.

지호가 반갑게 말했다.

“어, 나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누구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왜긴. 저번에 말했잖아.”

“드디어 짤렸냐?”

낄낄거리는 준영의 웃음소리.

착잡할 그를 위로하기 위한 농담임을 알기에, 지호 또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짤리긴 누가 짤려. 망한 거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표정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휴가라 생각하고 며칠만 쉬어야겠다. 그리고 다시 일자리 알아봐야지.”

조금 씁쓸했던 기분이 나아진 거다.

그 차이를 느낀 걸까.

수화기 건너편의 준영이 화제를 돌렸다.

“잘 생각했다야. 일단 나 이제 다시 작업 들어가야 하니까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 저녁에 시간 괜찮냐?”

“괜찮지, 이제 남는 게 시간인데. 일 끝나면 연락해. 간만에 낮잠이나 자고 있을라니까.”

“심심하면 나 영상 편집하는 동안 내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던가.”

“게임?”

오랜만에 입 밖으로 꺼내보는 단어. 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게임을 끊은 게 벌서 10년 전이던가?’

고3이 되면서였으니, 얼추 그 정도는 지났을 것 같다.

지호도 어릴 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다.

살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들로 게임을 멀리하게 됐지만…….

‘다 핑계지 뭐.’

사실 그사이에도 게임을 접할 기회는 많았다.

특히나 고3 때 친해진 저놈!

지금처럼 걸핏하면 게임이나 하자고 꼬셔대던 터라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지호가 게임을 멀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번 시작하면 얼마나 빠져들지 알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번에도 익숙하게 거절했다.

“됐다. 애도 아니고 뭔 게임이야. 피곤하니까 잠이나 잘란다.”

평소였으면 이 정도로 끝났을 터.

하지만 친구 녀석이 오늘따라 끈질겼다.

“하, 새끼……. 너 공부 시작하기 전에는 게임 좋아했다며. 잘하기도 했고.”

그렇다.

준영의 말처럼 지호는 게임을 좋아하고, 잘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잘.

플레이하는 게임마다 아마추어 온라인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간 일하느라 바빴던 건 이해하는데. 어차피 지금은 며칠 휴가라고 생각한다며, 게임도 해보고 좀 편하게 쉬어도 되지 않겠냐.”

휴가라니.

속 보이는 얄팍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솔깃하게 되는 건, 지호도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그렇지….”

살짝 떨떠름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심장은 쿵! 쿵! 뛰고 있었다.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는 말이 새어 나왔다.

“흠, 그럼 너 퇴근할 때까지 맛만 볼까? 가상현실게임이 어떤지 궁금하긴 했으니까.”

“그래! 잘 생각했다! 어지간한 인기 게임은 다 사뒀으니까 아무거나 골라서 해봐.”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 준영의 기분을 짐작케 했다.

“어딘지는 알지? 얼마 전에 비번 바꿨으니까 보내둘게. 나 집중하면 밖에 안 나가니까 알아서 게임 하고 있어. 그럼 끊는다, 이따 보자.”

“엉.”

뚜!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이내.

띠링!

[77077 - 준영]

지호가 피식 웃었다.

친구 녀석의 성격답게 간단한 문자였기에.

치이익-!

어느새 담배도 끝까지 타들어 갔다.

이제 가야 할 시간.

마지막으로 그는 정들었던 회사 건물을 지긋이 응시했다.

그간의 추억을 떠올리는 걸까.

눈빛에 아련한 감정이 깃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됐다. 미련 버리고 가자.”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몇 시간 후.

지호는 집에 들러 잽싸게 짐을 풀어놓고는, 곧바로 친구인 준영의 집으로 향했다.

“와. 이게 캡슐이야?”

친구가 알려준 방문을 열자 입이 떡 벌어졌다.

그곳에는 작은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캡슐이 있었으니까.

지호도 들어는 봤다.

몇 년 전부터 널리 상용화된 새로운 게임 방식.

‘가상현실게임…….’

본래는 눈으로만 즐기던 게임을.

실제로 게임 속에 들어가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황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미친놈이네. 어떻게 이걸 집에 들여놓을 생각을 하지?”

아무리 게임과 거리를 뒀다지만 듣는 귀나 보는 눈은 열려있다.

저게 최소 4,000만 원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는 말이다.

“하긴 내가 보탠 것도 아니고. 여유가 되니까 샀겠지만.”

그래도 황당한 건 매한가지다.

뭐, 덕분에 이렇게 해볼 수 있으니 이득인 건가?

캡슐로 들어가기에 앞서.

그가 잠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현재 시간은 오후 3시 40분. 아직 여유로웠다.

곧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보냈다.

[게임 조금 해보고 있을 테니까 도착하면 알려줘.]

[ㅇㅋ]

마침 쉬는 시간이었는지 답장이 즉시 돌아왔다.

“그럼 잠깐 맛만 볼까?”

아무도 없는 빈집이지만, 지호는 확인이라도 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지켜왔던 나 자신과의 약속이 깨지는 느낌이랄까?

물론 여기까지 와놓고 안 할 생각은 없다.

‘나와의 약속은 깨는 게 또 맛이지. 그래야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극적으로 스스로와의 타협을 끝낸 그는, 마음이 바뀔세라 잽싸게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 * *

“오오…….”

캡슐 속에 누운 후, 실행 버튼을 누른 김지호.

그가 연거푸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야에 펼쳐진 은하수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우윳빛 은하수가 넓게 펼쳐진 어두운 공간.

아무도 없는 그곳에 그 혼자 서있었다.

“와, 미쳤다 진짜.”

지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 그는 캡슐 속에 누워 있었다.

작은 방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캡슐이었으나, 막상 내부는 살짝 갑갑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좁았었다.

한데, 지금 보이는 이 드넓은 공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게…… 가상현실?”

어찌나 실감 나는지 그냥 현실이라 해도 전혀 이상치 않을 것 같다.

‘진짜 신기하다.’

그는 빛나는 눈으로 계속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사실, 캡슐 속에 들어오고 벌어진 모든 과정이 다 신기했다.

실행 버튼을 누르자 저절로 닫히는 캡슐이야 그렇다 쳐도.

곧바로 무중력 상태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시트나, 수면 마취에 빠질 때처럼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시야.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정면에 보이는 은하수까지.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멍하니 은하수를 감상하고 있던 찰나.

정면에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등록 사용자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메시지였다.

그러나 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네.”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알아본 터라,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등록을 시작합니다.]

지잉-

메시지가 바뀌며 따뜻한 빛이 전신을 스캔하듯 내려갔다.

“오오…….”

동심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걸까?

지호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지호의 앞에 그와 똑같이 생긴 형체가 나타났다.

“미친! 똑같아!”

그는 또다시 감탄을 내뱉었다.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거울은 한 면만 보이지만, 이건 전신이 다 보인다는 것.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고 신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신나는데, 진짜 게임을 시작한다면?

그는 묘한 기대감을 느끼며 명령어를 읊었다.

“게임 목록.”

[구매된 게임 목록을 로드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은하수.

우윳빛을 이루고 있던 입자들이 하나둘씩 공중에 떠올랐다.

이내 시야와 비슷한 높이까지 떠오른 입자들은, 각각의 게임 타이틀로 바뀌어 갔다.

“미친.”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관을 보고 있자니.

그의 입에서 또다시 친구를 향한 욕이 흘러나왔다.

아니, 이건 욕이 아니라 감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펼쳐진 게임 수가, 적어도 수백 개는 넘어 보였기에.

분명 친구놈이 말하기는 했다.

어지간한 게임은 다 사뒀으니까 아무거나 골라서 해봐. 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너무 많지 않은가.

“진짜 대단한 놈이라니까.”

다시 감탄한 지호는 천천히 게임들을 살펴보았다.

‘그것도 사뒀으려나? 설마 이 정도로 많은 데 없지는 않겠지?’

인터넷으로 알아봤던 것들 중에는 초보자를 위한 추천 게임도 있었다.

그가 지금 찾는 건, 그중에서도 유난히 끌렸던 게임이다.

그리고 역시나, 친구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수없이 떠오른 타이틀들을 조금 뒤적거리자 그가 찾던 게임이 나왔다.

[좀비 아파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좀비물인 게임이다.

공포 게임인데 초보자 추천이라니.

조금 아이러니했지만. 시대가 그만큼 바뀌었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지 않은가.

‘그만큼 난이도가 쉽다는 거겠지.’

게다가 얼마 전 좀비가 나오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던 터라.

마침 잘됐다 싶었다.

“게임 실행.”

은하수가 사라지고 그의 몸이 게임 타이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게임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후…….”

은근한 기대감이 지호의 전신을 감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잠시 후, 게임이 시작됩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되고,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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