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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3화 (13/416)

내 안에 마교있다 13

“아, 사흘 후에 보자고 했던 것 같은데, 나만 모르게 벌써 사흘이 지난 건가 싶어서.”

“이틀 지난 거 맞아요.”

방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웬 일이야, 이른 아침부터?”

“오라버니에게 부탁 좀 드리려구요.”

“부탁······?”

송유하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 건 처음이라, 살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진시초(오전 7시)에 가면 우리 쪽 거주 구역에 있는 실내 연무장을 잡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같은 시각에 갔는데도 못 잡았어요. 그렇다고 밖에서 수련하기에는 상당히 추운 날씨라서.”

승반 심사가 점점 가까워지니 실내 연무장을 선점하는 경쟁도 치열해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 구보를 해보니 오늘은 날씨도 쌀쌀했다. 송유하 수준의 내공으로 밖에서 장시간 수련을 하기에는 한기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즉, 계반의 실내 연무장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이다.

“알았어.”

흔쾌히 대꾸해줬다.

“감사해요······.”

“나도 잘 됐지, 뭐. 사실 그저께 했던 거, 오늘 오후쯤엔 또 할 준비가 될 것 같거든.”

그 말에 송유하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내일쯤이나 돼야 회복되실 것 같다고······.”

“말했잖아. 나 맷집 좋다고.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내 맷집이 더 좋은 모양이야.”

여전히 놀라 있는 송유하에게 다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아마 앞으로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해도 될 것 같아. 누이의 수련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바, 방해는 전혀 되지 않아요. 어제도 계속 생각했는데, 오히려 저한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다만 오라버니의 몸 상태가 걱정될 뿐······.”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리다 싶으면 내가 알아서 조절할 테니까.”

“한데 오라버니의 그 실험은 정말 성공한 거예요?”

“응. 아주 성공적인 것 같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단다.

사부님을 상대로 회회심공을 수련할 당시, 초반에서는 수련 간격도 길었었다.

그러다가 내가 절정고수가 되고 나서 어느 정도 지난 시점부터는 사흘 반의 간격까지 줄일 수 있었다. 즉 일주일에 두 번이었고, 그게 최단 간격이었다.

한데 지금은 계산상 꼬박 이틀 간격으로 이 수련을 할 수 있게 됐으니, 송유하의 시간만 받쳐준다면 나는 노난 셈이다.

내가 이미 회회심공의 묘리에 밝은 상태고, 송유하의 구타는 사부님에 비해 덜 아프며, 회회심공의 치유력은 더 좋기 때문이다.

거기에 체내에 잠력이 쌓이는 효율까지 매우 좋으니, 이 이상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송유하가 한계치까지 잠력을 쌓아 주면 회복에 필요한 시간도 약간 더 늘어날 테지만, 그래도 과거를 생각하면 잠력이 쌓이는 효율이 최고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내 경지가 발전하면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밖에 없다. 잠력이 쌓이는 효율도, 회복력도.

* * *

계반 구역의 실내 연무장에 도착했다.

“승반 시험 준비는 잘 되고 있는 거지?”

“그런 건 평소 실력으로 보는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자신감을 가지는 건 좋아.

하지만 엊그제 보니까 네 평소 실력이라는 것도 좀 의심스러워져서 말이지.

“나는 오전 내내 운기조식만 할 거야. 그러니 누이는 알아서 누이의 수련을 해.”

“네. 되도록 조용히 할 게요.”

“별 상관없으니 평소에 하던 대로 편하게 해도 돼. 기합도 질러도 되고.”

“네.”

“오후의 일을 생각해서 공력은 적당히 아끼고.”

“운기조식으로 회복할 수 있는 선에서 할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송유하가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이전보다 훨씬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체력 안배도. 공력 조절도.”

그전에는 나를 때리다가 본인이 먼저 지쳐 떨어졌으니, 오늘은 더 오래 버티며 때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래. 오늘은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나를 때릴 사람을 응원해줘야 하는 이 마음, 누가 알까.

그래도 잘한다, 잘한다 해주자.

원래 애들은 그래야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법이니까.

오전에는 부지런히 회회심공을 운기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잠깐씩 송유하가 수련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곤 했다.

송유하를 성장시키려고 마음먹었으니, 일단 수련하는 모습을 눈에 담아 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 한 때가 되자 예상대로 몸 상태가 회회심공을 수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회복되었다.

회회심공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본인이 했던 말마따나, 송유하는 체력 안배와 공력 조절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보다 느긋하게 나를 상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전처럼 무작정 권각술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같은 강도의 타격을 가해도 본인 나름대로 조절을 해가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효율을 내려는 모습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놀라운 발전이었다.

지난 이틀간 송유하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될 정도였다.

무인은 경지가 상승할수록 계속 벽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 벽을 남이 깨줄 수가 없다.

조언을 들을 수는 있지만, 그걸 듣는다고 해서 자신의 앞에 놓인 수많은 벽들이 딱딱 깨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고수가 되려면 스스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질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답습하는 방식으로만 무공을 익히는 자들이 지니는 한계도 여기에 있다.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답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성장이 급속도로 더뎌지는 것이다.

스스로 헤쳐 나가려는 기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부님이 경계하신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어떤 무공도 완벽한 무공은 없다.

같은 무공이라도 자신에게 맞게끔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유하의 저 기질이 마음에 든다.

어쩌면 이 아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성이 뛰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송유하의 호흡이 매우 거칠어지자 나는 적당한 순간에 신형을 뒤로 뺐다.

“오늘은 여기까지.”

“허억, 헉! 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 대꾸한 송유하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첫날에 비하면 두 배까지는 아니고, 한 배 반 이상은 지속한 것 같다.

첫날에 비해 타격의 강도는 비슷한 상태에서 타격 횟수는 훨씬 더 많으니, 그야말로 송유하도 큰 발전을 보인 것이다.

얼핏 느끼기에도 체내에 쌓인 잠력이 첫날에 비해 더 많다.

호흡을 고르고 있는 송유하에게 말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저께에 비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더라고. 대단하네.”

송유하의 표정이 환해졌다.

평소 표정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기쁜 모양이었다.

호흡을 고른 그녀가 말했다.

“몸 상태는······, 괜찮으신 거예요?”

“응.”

“제 입장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가 죄송스럽긴 한데······, 중간쯤부터는 뭐랄까, 느낌이 달랐어요.”

“어떤 느낌이었는데?”

“손에 달라붙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요.”

이 수련을 시작한 건 오늘로 두 번째에 불과하지만, 그러는 동안 송유하가 나를 때린 건 수백 대였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저런 느낌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송유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번 해보니까 확실히 알 것 같아요. 제 수련에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정말이지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족한 부분들을 알게 돼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이러다가 저, 폭력에 맛들일 것 같아요.”

음. 내가 볼 땐 이미 맛을 들였어, 넌.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송유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인가? 하루 종일 이러고 있어도 돼?”

“승반 심사 기간의 사 주 전부터는 자율 수련이에요. 자율 수련은 개인 수련을 하다가 교관님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거예요. 이틀 전부터 시작됐어요.”

어쨌거나 승반 심사까지 한 달도 안 남았다는 뜻이었다.

“아침에 얘기하는 걸 보니 이 시기에는 실내 연무장 맡기가 어려운 모양이던데.”

“네. 아무래도······.”

“승반 심사 전까지는 맘 편하게 이쪽에서 하면 어때? 내가 매일 오면 되는 거잖아. 아침에 같이 오지 뭐.”

송유하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기껏해야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유하다. 그녀가 그간 내게 잘해준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배려는 해줄 수 있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대부분 운기조식 정도니, 실제로도 내게 딱히 피해가 될 것도 없다.

게다가 이러면 당분간은 회회심공 수련에 차질이 생길 일도 없고, 그녀의 성취에 도움을 주기도 쉽다.

“그렇게 하자고.”

그 말을 남기고 연무장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어차피 송유하나, 나나, 이 시간부터 할 일이라고는 운기조식밖에 없다. 그럴 거면 각자 거처에 가서 하는 게 낫다.

송유하가 재빨리 일어나서 내 뒤를 따랐다.

“정말 감사해요, 오라버니.”

다음 날부터 송유하와 함께 수련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송유하는 새벽 구보와 저녁 구보에까지 동참했다. 물론 나처럼 공력을 사용하지 않고 달렸다.

덕분에 그녀 또한 단목세가의 사촌 남매와도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남매와 그쪽 사촌 남매 사이에서는 점점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침 그들의 수련 장소가 우리 구보 경로의 딱 중간쯤에 있어서 잠시 숨을 고르고 가기에도 적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틀마다 회회심공의 수련이 계속되었고, 내 공력도 빠른 속도로 축적되어 갔다.

* * *

바야흐로 승반 심사 당일.

대부분의 관도들이 승반 심사를 치르고 있는 시각임에도 나는 한가롭게 제삼서고에서 하루를 보냈다.

근 한 달간 송유하와 함께 실내 연무장에만 머물렀던 터라, 이렇듯 서고에서 홀로 종일 머무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물론 이삼 일 간격으로 잠깐씩 와서, 읽지도 않을 책들을 꾸준히 대여해 가긴 했지만.

근래 계속 붙어 있었던 탓인지 송유하 생각이 난다.

아마도 그녀는 이번에 무난하게 승반할 것이다. 승반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간 내가 신경을 좀 써줬기 때문이다.

실내 연무장에서 하루 종일 함께 있다 보니 송유하의 문제점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게 중심 이동 방식과 내공 운용 및 내공 발현 방식 등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해줬었다. 내가 보기에 부자연스러웠던 부분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게끔.

잘 모르는 척,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운용하면 어떨지를 제안하는 식으로.

한 번 시도나 해 보라는 식으로.

물론 내가 제안한 방식으로 해보고 불편하다면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여줬다.

내 제안대로 해 본 송유하도 그쪽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더니 악착같이 내 제안대로 고치려 노력했고, 며칠 후에는 완전히 내가 제안한 방식에 익숙해졌다.

이후에도 혹시 더 고칠 부분은 없는지, 현 상태에서 어떤 식의 수련이 필요할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런 식의 수련이 계속되자 당연히 그녀의 상태도 이전에 비해 훨씬 좋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송유하는 더더욱 나를 천재 비슷한 족속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냥 조언이 잘 맞아떨어진 것에 불과하니, 괜히 다른 이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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