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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6화 (36/416)

내 안에 마교있다 36

평화가 지속되면 경계심도 무뎌지는 법이라지만,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갑작스럽게 벌어질 줄이야.

“일단 동부지맹 측과 연계하여 필요한 선제적인 조치는 모두 취해뒀습니다만, 인력이 넉넉지가 않습니다.”

근래의 상황 상 그럴 수밖에 없다.

노양홍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삼청산으로 훈련을 나간 인원들입니다. 막바지라서 거의 다 복귀했으나, 아직 남아 있는 인원들이 소수 있습니다. 두 개 조의 극소수 인원들입니다. 일단 그들을 찾아 인원들을 급파한 상태입니다만······.”

육남춘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무리 인원들을 급파했다 해도 삼청산은 넓고 깊다.

삼청산의 곳곳은 오랫동안 잠룡관의 수련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그렇기에 삼청산의 수많은 곳에 훈련을 위한 용도의 산장, 모옥, 동굴 등이 마련되어 있다. 백 군데도 넘는다.

비까지 거세게 내리고 있으니 거점이 되는 곳들에 전서구를 날려도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호각을 아무리 울려대도 소리 전해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귀령사객과 함께하는 외부 조력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데다가, 절정고수들의 개입 가능성마저 높은 상황이 아닌가.

가뜩이나 귀령사객의 탈주 소식이 늦게 전해진 마당이니, 어디에선가는 이미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여 도주자들이 삼청산으로 숨어들었다면,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관도들과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잠룡관에서 가용한 모든 전력을 열외 없이 삼청산에 투입하게. 관주령일세.”

“예. 곧바로 추가 투입하겠습니다.”

“더하여, 이후의 지휘는 모두 자네에게 맡기겠네. 동부지맹과 협력하여 모든 조치를 취해주시게.”

육남춘의 기색을 확인한 노양홍이 곧바로 물었다.

“서, 설마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나야말로 가용한 최고 전력이 아닌가. 내 관도는 내가 보호해야지. 지휘는 자네만으로도 충분하고.”

육남춘이 의복을 빠르게 갈아입으며 물었다.

“한데 두 개 조의 극소수 인원들이라면······?”

“칠 조의 상위반 관도들 네 명과 사십사 조의 계반 관도들 세 명입니다.”

“어? 잠깐, 사십사 조라면······.”

“예, 제갈수광 교관입니다.”

그 말에 육남춘이 놀라며 물었다.

“거기에서 계반이라면 그 두 아이들이 아닌가?”

“예, 그 두 아이들이 합숙에 참가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보고하러 온 겁니다.”

“아, 알겠네. 가보시게.”

노양홍이 육남춘의 거처를 빠르게 벗어났다.

육남춘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변해갔다.

관주 입장에서 관도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혹시라도 잘못되었을 경우, 가장 큰 파급력을 몰고 올 아이들 두 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걱정이 크다.

걱정이 큰데, 그 와중에도 교관이 제갈수광이라는 점에서 아주 조금은 안심도 된다.

제갈수광은 뛰어난 교관이며, 믿을 수 있는 무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관도들을 지키며 버틸 것이다.

게다가 명문가의 실력 좋은 그 두 아이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보조를 맞춰 줄 것이다.

아무리 실전이 처음이라도, 제갈수광이라면 그 아이들의 힘을 어느 정도는 끌어내 줄 수 있을 테니까.

즉, 생각보다 더 오래 버텨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가야 한다.

어느 조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찾아야 한다.

* * *

일다경(20분가량)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리는 비를 감상하던 제갈수광이 피풍의를 챙겼다.

너무 늦으면 아이들도 걱정할 테니, 슬슬 돌아가야 한다.

쏴아아아아아아-

빗줄기가 좀 더 거세져 있었다.

시원하게도 내린다.

피풍의를 둘러쓰고 막 모퉁이를 돌려던 제갈수광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며 뒤로 다시 몸을 숨겼다.

호흡마저 멈추며 즉시 기척을 죽인 제갈수광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산장 쪽에서 세 번째 산장 쪽으로 조용히 향하고 있는 몇 개의 음영을 확인한 탓이다.

세 번째 산장에는 제자들이 있다.

세 번째 산장을 기준으로 첫 번째 산장 쪽은 이곳에서 반대편이다.

산장 관리인인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럴 리 없다.

그들이 이렇게 비 오는 날, 우산도 안 쓰고 비를 맞으며 저런 식으로 방문할 리가 없다. 그것도 굳이 기척까지 죽인 채로.

제갈수광의 양미간이 좁아졌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기에 이제야 감각이 전해졌는데, 다가오는 자들에게서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언뜻 병장기의 광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둠속에서 제갈수광의 눈이 커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날, 동부지맹의 인근인 이곳 삼청산의 깊은 곳에, 누가 왜 저런 식으로 나타난단 말인가.

지금의 자신에게는 무기가 없다. 당연하다.

이곳이 전장도 아닌데 측간에 가면서 누가 무기를 갖고 나오겠는가.

불청객들은 아이들이 있는 세 번째 산장으로 가고 있다.

총 다섯 명.

육안과 기척을 통해 확인되는 인원은 일단 저 숫자였다.

저 인원이 다이길 바랄 뿐이다.

일단 저들의 주의를 돌려 자신에게 향하게 해야 한다.

몸을 감춘 제갈수광이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그 후, 어른 주먹 크기의 돌멩이 세 개를 피풍의에 담아서 싸매 쥔 후, 작은 돌멩이 몇 개를 다른 손에 쥐었다.

은밀함을 유지하며 잠시 대기하고 있자니, 곧 불청객들이 세 번째 산장 앞에 거의 다다랐다.

그 순간, 제갈수광이 내력을 끌어 올리며 한 손에 들고 있던 피풍의를 산장 쪽으로 강하게 던졌다.

속에 있는 돌들의 힘으로 피풍의가 빠르게 날아갔다.

슈욱-

파라라라라락-

피풍의 자락이 거세게 떨린다.

저게 불청객들에게 타격은 못 입히더라도, 산장의 벽에 강하게 부딪칠 테니 제자들도 경계하게 될 터였다.

즉시 알아채고 대비하기를 바랄 뿐이다.

제갈수광이 멈칫했다.

원래는 피풍의 속에 있던 돌들이 산장의 벽에 부딪치자마자 불청객들을 향해 몸을 날릴 생각이었다.

곧바로 저들을 막아서야 제자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한데 그럴 수가 없었다.

돌들이 산장의 벽에 부딪치기도 전에, 산장 측면의 창문이 확 열렸기 때문이다.

불청객들이 다가오던 방향의 반대편 창문이다.

그곳으로 누군가가 고개를 내민 것이다.

퍼벅!

그제야 피풍의 속에 들어있던 돌들이 산장의 벽에 부딪쳤다.

‘송유겸······?’

그가 창문을 통해 뭔가를 던졌다.

슈슉-

애병인 현운쌍검이 검집 째로 자신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오고 있었다.

제갈수광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떻게······!’

제자들이 즉시 알아채고 대비하기를 바라긴 했지만, 이 정도면 미리 알고 준비했다는 뜻이 아닌가.

착착!

놀란 와중에도 비어있는 오른손으로 쌍검을 모두 낚아챘다.

그러자마자 제갈수광의 양발을 통해 제갈세가의 보법인 신기미리보가 쾌속으로 가동되었다.

빠르게 다가가며 낮게 도약한 제갈수광이 불청객들을 향해 즉시 왼손을 털어냈다.

슈슈슈슈슈슛-

강맹한 기운을 담은 돌멩이들이 불청객들을 향해 어지럽게 날아갔다.

제갈세가의 암기술인 적엽난비였다.

탱탱탱! 티딩! 탱!

막아내는 불청객들의 모습을 확인한 제갈수광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애초에 견제 목적이라 대단한 성과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아내는 수법들이 매우 깔끔하다.

병장기를 이용하여 막아낸 건 주로 두 명이었는데, 적어도 그들의 실력만큼은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 * *

애들은 계속 먹는데 고기 굽던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결국 내가 간이화로의 철망에 놓인 고기들을 열심히 뒤집었다. 어차피 먹을 만큼 먹었다.

사실 얘들도 먹을 만큼 먹었다.

한데 아직도 입속으로 부지런히 쑤셔 넣고 있다.

고기 맛에 처음 개안한 애들처럼.

연신 쫑알거리면서.

한동안 그러고 있던 나는 한 순간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피 튀기는 전장에서 실제로 목숨이 수십 번은 왔다갔다 해봐야만 느낄 수 있는 감 같은 게 있다.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다.

실제로 그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 본 사람만이 어쩔 수 없이 체득하게 되는 감각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 상황이 아닌데도, 기미도 전혀 없고 기척 따위가 따로 전해지는 게 아닌데도, 계속해서 육감을 자극하는 특유의 느낌.

논리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기분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바로 그 느낌.

살기다.

고기를 뒤집다 말고 곧바로 일어서서 방구석으로 향했다.

“송 오라버니······?”

유은무의 목소리였다. 의문이 가득 담겨 있다.

웃으며 고기를 굽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이러는 중이니 저럴 만도 하다.

말없이 비룡검을 챙긴 후, 곧바로 제갈수광의 봇짐 쪽으로 가서 그의 쌍검도 챙겼다.

제갈수광은 측간에 갔다.

네 번째 산장 쪽의 측간으로 향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네 번째 산장이 보이는 창문 쪽으로 향했다.

불편한 느낌이 전해지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이다.

그곳에 가만히 서서 두 소녀를 바라보았다.

장우혜가 미친놈 바라보듯 나를 보며 뭔가 말하려고 한다.

나는 곧바로 눈알에 힘을 주며 검지로 내 입술을 가린 후, 이어서 그 손가락으로 두 소녀의 병장기들을 가리켰다. 조용히 챙기라는 의미로.

전음도 공력을 사용한다.

상대 중에 혹여 고수가 있다면 그 기척을 느낄 것이고, 우리가 대비하고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상황 파악이 아직 안 되었으니 그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알아채게 해야 한다.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그런지 두 소녀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내 지시에 따랐다.

내 눈빛과 기색만으로도 뭔가를 알아챈 것이다.

합숙이 아니었다면 저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터였다.

계속 미친놈 취급이나 하며 놀리고 있었겠지.

“푸하하하!”

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자 두 소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입으로는 웃음을 터트렸지만 표정은 정색이다.

나는 즉시 손가락을 가리켜 두 소녀가 내 곁으로 오게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누이들, 어때? 교관님이 구워준 고기보다 내가 구워준 고기가 더 맛있지?”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물었다.

일부러 과장되게 할 필요가 없다.

“에이, 그래도 교관님이 구워준 게 더 맛있다구요!”

“아냐. 의외로 송 오라버니가 구운 게 더 맛있어, 나는.”

유은무와 장우혜가 알아서 맞춰줬다.

기특한 것들.

역시나 이 또한 합숙의 효과다.

나는 손을 이용해 두 소녀에게 서로 계속 대화하라는 모양새를 취해줬다.

두 소녀가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갈수광에게 신경 쓸 때다.

제갈수광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그가 나처럼 피 튀기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불편한 느낌을 받는 게 나보다 느릴 것이다.

나와 달리 그는 일신의 무공 경지만으로 이걸 느껴야 할 테니까.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는 게 문제다.

이 경우에는 알아채는 게 더 늦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제갈수광은 차분한 사람이다.

약간 늦어도 분명히 알아챌 것이다.

우리를 걱정해서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알아채기만 하면 대처도 신중할 것이다.

나는 그를 믿는다.

순간적으로 공력을 일으키는 기운이 느껴졌다.

제갈수광의 기운이다.

방향은 예상대로 네 번째 산장 쪽.

그 방향에서 이쪽 산장을 향해 뭔가가 날아오는 게 느껴지자마자, 나는 창문을 확 열었다.

동시에 고개를 내밀어 내 존재를 확인시켜준 후, 지체하지 않고 그를 향해 쌍검을 던졌다.

제갈수광의 놀란 표정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쌍검을 낚아채더니 곧바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공력을 일으키는 게 느껴진다.

그러자마자 나는 눈을 감았다.

즉시 집중하며 회회심공을 미세하게 일으켜 주변을 넓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실전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주변의 상황 전반을 면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좀 더 적절한 대처를 할 수가 있다.

「공력을 이용한 기척 감지는 내가 탐색하고 있다는 걸 대상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게 핵심이다. 소란스러운 상황 또는 공력 사용이 난무하는 상황을 이용하는 게 좋다. 그 와중에도 잊지 말아야 할 건, 탐색은 신속 은밀해야 하며 상황마다 운용도 달리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속성인 회회심공은 이런 면에서 매우 큰 장점을 보일 것이다. 적절한 상황에서 미세하게 운용하면, 대상들은 네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대기의 흐름 정도로 느끼겠지.

물론 이 또한 대상과 네 녀석 간의 경지 차이가 심하면 당연히 들킬 수 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뇌리를 스쳐갔다.

밤에는 세상 대부분의 기운이 대지 근처에 깔린다.

비가 오니 그 기운들은 더더욱 대지에 가깝게 깔릴 것이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기운을 바닥으로 퍼트렸다.

밖에 있는 기운은 총 여섯 개.

현재의 내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 내에는 적어도 그 기운들뿐이다.

그 중 하나는 제갈수광의 기운이니, 적도들은 다섯 명인 셈이다.

흑풍대원 시절에 마공을 익히고 있을 당시, 백도인들의 기운이 주는 느낌은 묵직한 불편함이었으며, 사파인들의 기운이 주는 느낌은 잡스러움이 가득 뭉친 불쾌함이었다.

무속성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지금의 입장에서도 그 잡스러운 불쾌함이 가득 느껴지고 있다.

네놈들, 사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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