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5화 (35/416)

내 안에 마교있다 35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갈수광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우와! 우와! 진짜, 진짜 맛있어요!”

“우리가 캔 나물들과 함께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어요!”

유은무와 장우혜는 나물들과 고기를 입 안으로 열심히 집어넣으며 호들갑을 떠는 중이었다.

나물들은 여러 종류였는데, 씻어서 양념을 버무린 것도 있었고, 살짝 데쳐서 양념한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맛있나? 고기는 삼 일차 점심부터 먹었잖아.”

“그것도 맛있었지만 그건 다 반찬으로 조금씩 나온 고기볶음이었잖아요. 자고로 고기는 이렇게 직화로 구워서 먹는 맛이 최고라구요!”

고기가 입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상태에서도 유은무가 얼른 대꾸했다.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장우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소금 정도만 찍어서, 고기 본연의 맛 위주로.”

제갈수광이 보니, 그간 식탐을 잘 드러내지 않던 송유겸도 고기와 나물들을 꾸준히 입 안에 집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제갈수광이 간이화로 위의 철판에 오른 고기들을 부지런히 뒤집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열심히 구워줄 테니 많이들 먹도록.”

소중한 제자들과의 흐뭇한 시간이다.

오늘은 오전 수련만으로 훈련을 종료했다.

내일 아침에 하산할 계획이었고, 애초에 오늘의 오후 수련 시간은 봉우리 왕복 대신 다른 걸 할 계획이었다.

삼청산은 예로부터 영기가 가득하다고 여겨져 수많은 도인들이 수련하던 곳이다.

이 세 사람의 수련 기간이 마침 초봄이니, 초봄의 산나물들을 캐서 합숙의 마지막 저녁에 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영산의 정기를 받은 산나물들을 먹고, 제자들도 그 정기를 받으라는 의미에서.

그간 매우 잘 따라와 준 제자들이 아닌가.

해서, 오후 시간에는 산을 돌아다니며 봄나물을 캐고 다녔던 것이다.

오후의 어느 시점부터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에, 나물들도 적당히 캔 후에 합숙소로 복귀했다.

씻고 나서 다 함께 그 나물들을 요리한 후, 미리 재워서 준비해뒀던 고기와 함께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송 오라버니, 아아.”

송유겸의 오른쪽에 앉은 유은무가 젓가락으로 고기와 나물을 집어 송유겸의 입 쪽으로 내밀고 있다.

“아! 괜찮아, 괜찮아. 유 매 먹어.”

“아아.”

“아니, 아니. 나, 누가 먹여주고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러니 알아서들 먹자고.”

송유겸은 진심으로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다.

하여간 특이한 아이다.

서로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분위기도 좋으니, 저 나이 때 사내라면 저런 걸 딱히 싫어하지 않을 텐데.

“아아아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은무 또한 보통은 아니어서, 애교로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다. 지내면서 보니 유은무는 애교가 많다.

“아닛! 진짯······! 괜찮다니깟······!”

송유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기를 입으로 받아먹었다.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을 확 풍기면서도, 받아 줄 건 또 받아 주는 송유겸이다.

저 모습을 보니 속으로 웃음이 난다.

송유겸은 알까?

저 유은무의 정체를 알게 되면, 잠룡관의 모든 남자 관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저 젓가락 앞으로 달려들 거란 사실을.

그러자 이번에는 송유겸의 왼쪽에 앉은 장우혜가 젓가락으로 고기와 나물을 집어 송유겸의 입 쪽으로 내밀었다.

말없이 내미는데, 그걸 확인하자마자 송유겸이 손바닥을 펼쳐서 단호하게 제지했다. 입안의 고기를 씹으면서다.

“아니, 장 매, 진짜 괜찮아.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러자 장우혜가 가자미눈을 하고 송유겸에게 말했다.

“아하, 은무랑 나랑 대놓고 차별을 하시겠다?”

“그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먹는 게 편하잖아. 그래서······.”

“이런 식으로 거리 구분을 하시겠다?”

지내면서 보니 장우혜는 애교는 거의 없지만, 다른 식으로 압박을 가하는 능력이 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알았어, 알았어. 먹을게. 잘 먹을게.”

송유겸이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장우혜가 내민 젓가락의 고기를 입으로 받아먹었다.

역시나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에도 웃음이 나온다.

송유겸은 알까?

저 장우혜의 정체를 알게 되면, 잠룡관의 남자 관도들은 피를 튀기며 싸워서라도 저 젓가락을 쟁취하려 들 거라는 사실을.

고기를 씹고 있는 송유겸을 향해 장우혜가 말했다.

“송 오라버니한테 고마워서 그래요, 우리가.”

“그러게. 우리가 챙겨주려는 마음도 모르고 무조건 거절부터 하고. 흥.”

유은무도 송유겸을 흘겨보며 맞장구를 친다.

기실, 두 소녀는 송유겸에게 고마워할 수밖에 없다.

송유겸은 그간 든든한 선배이자 동료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고, 많은 것을 보여줬다. 두 소녀도 배운 게 많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둘 다 송유겸을 매우 잘 따르기도 한다.

송유겸을 이 조에 넣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이들만 따로 합숙시킨 일도 그렇다.

이 세 사람은 사십사 조의 중심 역할을 할 인원들이다.

모순되게도 다들 계반이지만.

두 소녀는 이후에 교관인 자신에게도 ‘아’하며 젓가락으로 고기를 먹여 주었다.

어쩔 수 없이 챙긴다는 분위기인데, 그 모습들이 귀엽긴 해서 받아 먹어줬다.

송유겸이 두 소녀에게 말했다.

“그래. 누이들, 만약에 훈련 중에 내게 고마운 게 있었다면 방금 전 걸로 퉁치자. 사실 내가 한 일들은 동료라면 다들 할 만한 일들이었어. 즉, 내가 도와준 상황들에 대해 굳이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아니야, 송유겸. 그건 다시 생각해.

이 두 애들은 좋게 엮이면 앞으로 네 인생이 창창해질 만큼 대박인 아이들이야.

그냥 대박이 아니야. 초초초대박이라고.

사실, 저 송유겸이라면 두 소녀의 정체를 알게 된다 해도 딱히 아랑곳하지 않을 느낌이긴 하다.

저건 뭘 믿고 저러는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아쉬울 게 없다는 식의 분위기니까.

저래서 두 소녀가 더 따르는 건가 싶기도 하다.

뭐, 결정적으로 얼굴 잘 생긴 이유도 크겠지만.

그 즈음, 유은무가 송유겸에게 말했다.

“아닌데요? 그건 고마움을 갚으려고 한 게 아닌데요? 그냥 정으로 한 건데요?”

장우혜도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고마운 마음을 이런 식으로 쉽게 퉁치는 사람들로밖에 안 보이나 봐요? 송 오라버니한테는?”

송유겸이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을 본 두 소녀는 서로를 향해 만족스럽다는 듯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고 있다.

송유겸에게 어떻게든 장난을 치려고 저러는 거다.

그만큼 친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후후. 청춘이군.’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단다.

청춘을 만끽해라 제자들아.

훗날 돌아봤을 때 아쉬움이 덜 하도록.

“측간에 잠시 다녀올 테니, 알아서들 먹고 있도록.”

“네에!”

두 소녀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쏴아아아아-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안에서 제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거의 안 들릴 정도로.

제갈수광이 측간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젖는 걸 방지하기 위해 둘러쓰고 나온 피풍의를, 제법 강력한 빗방울들이 마구 때리고 있다.

세 번째 산장과 네 번째 산장은 규모가 작은 편이라 두 산장이 측간 구역을 같이 쓴다. 네 번째 산장을 지나서 좀 더 가야 측간 구역이 나온다.

볼일을 본 후 측간을 나와서 이동하던 제갈수광이 네 번째 산장의 측면 처마 아래에 멈춰 섰다.

그 후, 고개를 들어 조용히 비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 사이의 분위기라는 것도 있으니, 이런 때는 교관인 자신이 자리를 좀 더 오래 비워주는 것도 좋다.

비도 오고 기분도 좋으니 술 생각이 난다.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교관 입장이라 해도, 장소가 잠룡관이었으면 이미 한 잔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데 여기에서는 책임자가 자신뿐이다.

아이들이 잠룡관에 도착할 때까지는 참는 게 옳다.

* * *

동부지맹 잠룡관주 육남춘은 거처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차를 마시며 내리는 비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봄비 치고는 거센 비다.

어느 순간 그가 찻잔을 내려놓고 창문을 닫았다.

대충 해시정(밤 10시) 가까이 된 듯하다. 취침할 시간이다.

유등까지 끄고는 침상에 누웠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똑똑똑!

“관주님! 관주님! 주무십니까?”

문 두드리는 소리도 그렇고, 부르는 소리도 그렇고, 상당히 급해 보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동부지맹 잠룡관의 총교관인 노양홍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육남춘이 얼른 가서 방문을 열자 노양홍이 말했다.

“늦은 시간에 송구합니다. 꼭 보고해야 할 일이 있어서······.”

육남춘이 화섭자를 들고 유등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급한 일인가 보군? 일단 들어와서 앉으시게.”

노양홍이 얼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는가?”

“귀령사객을 아실 겁니다.”

“알다마다. 맹에서 오랜 세월 추적한 끝에 사파의 그 잔악한 늙은이를 사로잡았다는 것도 알고, 그 일에 동부지맹의 동검대가 큰 공을 세웠다는 것도 알지. 복건에서 붙잡아서 이곳 동부지맹으로 호송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노양홍의 표정이 심각했기에, 육남춘도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내로 그 자의 호송이 도착할 것 같다고도 들었네만······.”

“그 자가 탈주했답니다.”

육남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럴 리가! 경로도 최대한 안전하게 설정하여 절강 쪽으로 우회했던 데다가, 동검대의 두 개 조가 직접 호송에 만전을 기했다고······.”

말을 하던 중에 뭔가를 떠올린 육남춘의 눈동자가 더욱 커져갔다.

동검대는 동부지맹의 정예 무력조직이다.

그들이 만전을 기하며 지금껏 호송했던 건 맞다.

한데 엊그제 동부지맹에서 듣기로, 동검대가 호송을 동위단에 인수인계한다고 했었다.

동위단은 동부지맹의 일반 무력편제다.

정예인 동검대 또는 그 외의 특수 조직에 차출되지 못한 무사들은 대부분 동위단에 속한다. 즉, 동부지맹의 대다수 일반무사들이 동위단 소속이다.

인수인계의 이유 또한 들어서 알고 있다.

호송을 맡고 있던 동검대의 그 두 개조도 추가적으로 해적 퇴치를 위해 파견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귀령사객 호송이 동부지맹에 매우 가까워진 상태라서, 누가 봐도 딱히 문제될 건 없는 인수인계였다.

동검대만한 정예는 아니라고 하나, 인수인계를 받은 동위단의 제일대 또한 결코 허술한 전력은 아니니까. 동검대의 소수 인원들이 남기도 했었고.

“외부 조력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호송을 인수인계 받아서 오던 인원들이 궤멸당한 것 같습니다. 비까지 와서 인적마저 드물어 발견이 늦어졌고, 그래서 소식도 늦게 전해진 모양입니다.”

육남춘의 눈동자가 커졌다.

호송을 인수인계 받은 건 동위단 제일대의 세 개 조라고 했다. 세 개 조만으로도 사십오 명이 넘고, 남아서 호송을 지휘하던 동검대원도 댓 명은 될 터였다.

즉 오십 명은 되는 전력이었다.

한데 그들이 궤멸 당했다니.

“생존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조사 결과는 어떻다던가? 외부 조력자가 많았다던가?”

“현재 초동 조사를 진행하며 파악 중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안을 볼 때 만만치 않은 자들임은 확실하며, 정황상 절정고수들의 개입 가능성도 높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탈주자와 흉수들의 행적은?”

“일단 동부지맹 남쪽의 무이산맥 쪽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만, 어두운데다가 비도 많이 내리고 있어 추적에도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신할 수 있는 게 없기에, 동부지맹 측에서는 양동일 가능성도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양동?”

“외부 조력자들 일부가 무이산맥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정작 중요한 자들은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이산맥은 남서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으니 누구라도 도주 경로를 그쪽으로 예상할 만하다. 그러니 그걸 노리고 양동을 펼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육남춘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잠깐, 그 호송 경로에서 다른 쪽이라면······!”

노양홍이 심각한 눈동자로 대꾸했다.

“예, 정작 귀령사객과 그를 돕는 소수 인원들은 삼청산으로 숨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라서 아직 위험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설령 혹시 모를 가능성이라 해도, 잠룡관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대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