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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42화 (42/416)

내 안에 마교있다 42

길초량은 이후에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혼자 남은 나는 귀령사객의 조력자들을 떠올렸다.

넷 다 십대인데 셋은 일류의 최고 수준에, 하나는 절정이었다.

그들은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약간 어려 보였다.

최고의 혈통으로 태어나 최고 가문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란 남궁설조차도, 전체적인 실력에서 그쪽 일류고수들에게 못 미친다. 천재성마저 엿보이는 그녀인데도.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없다.

전투가 끝나고 산장에 있을 때부터 그 생각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천마신교에서부터 알고 있었던 여러 정보들을 떠올리며 이번 일과 연관 지어 보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과거에 알고 있던 하나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과거에 여러 지역에서 아이들이 납치된 일이 있었다.

주로 중원보다는 변방에 치우쳤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이런 시대에 아이들이 유괴나 납치 등으로 행방불명되는 일은 허다하게 벌어진다.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수많은 정보들이 집결되는 천마신교라지만, 행방불명된 아이들의 신원이 대단치 않은 이상 그리 중시되는 정보는 아니다. 천마신교와 연관된 쪽의 아이들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흔하게 발생되는 일인 탓이다.

한데 그런 일도 발생 빈도가 갑자기 잦아지면 천마신교에서도 의심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또는 어딘가의 불온한 의도가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당시의 조사를 통해 천마신교에서 알아낸 건, 주로 열 살 전의 아이들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이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납치되기도 했지만, 고아나 버려진 아이들도 사라졌다.

더 조사해보니 이 땅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몽골, 요동뿐만 아니라, 서장(티베트), 안남(베트남), 면전(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방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

그렇듯, 사건 발생 지역들은 하나같이 천마신교와 백도 무림맹의 주된 영역이 아닌 곳들이었다.

조사 결과, 그 당시를 기준으로 최소 이삼 년 전부터 그런 일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당시의 천마신교에서 조사한 숫자만 해도 삼천 명 가까이 됐었다.

아무리 천마신교에서 조사했다고 해도 모든 걸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즉, 그전부터 벌어지던 일이었을지도 모르며, 피해 사례도 더 많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그 정보를 사부님의 제자가 된 후에 접했다.

아까 봤던 사파 놈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얼추 계산상으로는 맞는다.

그러나 아직은 표본이 네 명뿐이다.

때문에 그 일과 연관 짓는 건 너무 억지스러울 수 있다.

그냥 비슷한 또래의 네 명이 어려서부터 사파 고수에게 키워졌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이렇듯 억측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왜 그 일이 마음에 걸리는 걸까.

그래서 아까 길초량을 통해 어떻게든 정보를 더 알아내려 했던 것이다.

동부지맹 측에서는 귀령사객의 탈주에 관여한 조력자가 더 있는 것으로 추측하는 모양이다. 적잖은 흔적이 무이산맥 쪽으로 이어져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적들의 작전이 대강 무엇이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쉬운 건, 다른 조력자들의 모습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쪽 조력자들의 대다수도 십대라면, 내 추측을 더 이상 억측으로만 생각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주시할 일이다.

그래서 길초량에게도 꾸준히 그 일에 대한 정보를 물어볼 계획이다.

하면 아까 귀령사객의 무리들은 그냥 도주나 할 것이지 왜 우리를 습격했을까.

이유는 굳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귀령사객 그 늙은이가 워낙 또라이기 때문이다.

셋 중 하나다.

도주 중에 고기 냄새를 맡고 배가 고팠거나, 안에 있는 두 소녀로 인해 음심이 발동했거나, 둘 다 취하려 했거나.

그 늙은이가 괜히 정마공적이었던 게 아니다.

그 따위니까 정마공적이었던 거다.

어차피 그 때는 제갈수광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산장 안에는 두 소녀와 나밖에 없었다.

매우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가뜩이나 내 내공 경지는 밖으로 거의 드러나지도 않으니까.

어쨌거나 오늘의 일을 겪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든다.

설마 동부지맹의 인근인 삼청산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귀령사객을 호송하던 무인들 오십 명 가량이 동부지맹 인근에서 궤멸까지 당한 마당이다.

이 인근은 당연히 안전할 줄 알고 놔뒀는데, 이런 식이면 앞으로는 피독주를 챙겨서 다녀야겠다.

아까 산장에서 출발하기 전에 운기조식을 취했던 건 두 번뿐이었다. 그래서 체내에 아직 잠력이 남아 있다.

누운 채로 회회심공을 운기하여 그 잠력을 모두 흡수한 후에야 잠에 들었다.

* * *

다음 날에는 통증 때문에 깼다.

아직 사위가 어두웠다.

아무리 의원의 전문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이런 상처를 입었는데 통증이 금방 가실 리 없다.

회회심공의 자연 치유력이 좋다고는 하나, 배에 칼 맞은 걸 금방 낫게 해줄 수는 없다.

통각을 느끼자마자 반사적으로 구결을 읊었다.

어느 정도 잠력을 쌓은 후, 누운 채로 회회심공을 몇 차례 운기했다. 그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고 있자니 어느 순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올 사람은 송유하밖에 없다.

“오라버니, 혹시 일어나셨어요?”

밖에서 묻는 목소리.

환자인 내가 깨어있지 않을 경우를 생각한 조용한 목소리다.

“어. 왔어? 깬지 얼마 안 됐어.”

송유하가 조용히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새벽 구보 가기 전에 잠시 들렀어요. 오라버니 상태 점검도 할 겸.”

내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송유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과 시작하기 전까지 그냥 계속 돌봐드리고 싶지만, 그런다고 구보 빼먹으면 오라버니가 싫어하실 것 같아서.”

“잘 아네.”

내 대꾸에 송유하가 미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본 체력 관리와 신체 단련은 쉬지 마. 이번 일을 겪어보니까 그 중요성을 더 절실하게 알겠더라고.”

“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하여간 말을 참 잘 들어.

저러니 더더욱 예뻐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래. 어서 구보하러 가.”

“네. 얼른 두 바퀴 돌고, 씻고 나서 다시 올게요. 일과 시작되기 전까지는 여기에 있다가 가려구요.”

“굳이 안 그래도 된다니까. 누이 불편하게······.”

송유하의 입술이 점점 튀어나오고 있다.

저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다.

“알았어, 알았어. 얼른 구보 다녀와서, 실컷 있다가 가.”

튀어나오던 송유하의 입술이 도로 들어갔다.

“네.”

방을 나서는 송유하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 * *

오전 내내 많은 이들이 내 거처에 찾아왔다.

가장 먼저 찾아온 건 단목홍신과 단목지였다.

그 사촌남매는 일과시간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와서 송유하와 함께 있다가 갔다.

두 사람의 진심어린 염려와 위로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떠나기 전에 단목지가 했던 말은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런 식으로 아파서 누워만 계셔서 빚은 언제 갚으시려구요. 그러니 얼른얼른 나으세요, 송 공자님.」

빚 얘기를 빙자한 쾌유 기원임을 내가 모를 리 없다.

단목세가의 사촌남매가 내 거처를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의원이 찾아온 탓이었다.

의원과 함께 관주 육남춘도 내 거처를 찾았다.

육남춘은 내게 괜찮은지를 물은 후 이번에도 의원이 치료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의 기색을 보니 피곤에 절어 있는 모습이었다.

어제의 일 때문에 이래저래 고생하며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

오시초(오전11시)쯤에는 제갈수광이 찾아왔다.

“어으으, 죽겄다. 골이 빠개질 것 같네. 어으으으.”

“어서 오십시오, 교관님.”

방으로 들어선 저 인간의 몸에서 주향이 풀풀 난다.

딱 내가 알던 한심한 장년의 그 모습이다.

평소에 주로 보이는 모습이 저 모습이니, 누가 저 사람을 절정고수라고 생각하겠는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에게 말했다.

“아니, 아무리 술이 드시고 싶었대도 그렇지, 깊은 상처들도 있는데 뭘 그렇게까지 많이 드십니까. 그 정도면 약주가 아니라 독줍니다.”

이해는 한다.

제갈수광이야말로 어제 가장 고생한 사람이다.

싸우면서 사선도 여러 차례 넘나들었을 테고, 마음고생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여러모로 술 생각이 간절했겠지.

저 인간이 합숙 기간 동안 술을 참은 것만으로도 용한 거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거, 제자라는 놈이 선생한테 잔소리는. 쯧. 어으으으, 죽겄다.”

이보쇼! 아픈 제자 살피러온 선생이 술에 꼴아갖고 온 건 괜찮은 거고요?

잠시 후 제갈수광은 아예 서탁의 반대편에 누워버렸다.

‘아이고, 아이고’ 하며 앓는 소리를 해가면서다.

이보쇼! 훈련시킬 때랑 싸울 때 말고는 선생이라는 자각 따위, 쥐 눈물만큼도 없는 거요?

“이참에 요까지 깔아 드려요?”

“아니. 네가 베고 있는 베개나 좀 줘봐. 골이 너무 아파서 이대론 안 되겠으니까. 어으으.”

아픈 제자가 베고 있는 베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달라고 하다니.

역시 저 인간은 추측불능이다.

나는 어차피 두툼한 요를 깔고 있기에 상관은 없다.

베개를 방바닥으로 쭉 밀었더니, 제갈수광이 그대로 받아서 본인이 벴다.

“어으으으으······.”

제갈수광은 계속 끙끙대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을 때 제갈수광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제게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십니까?”

“네 실력에 대한 것 말인가?”

“예.”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게다가, 어으으으······.”

제갈수광이 말을 하다 말고 끙끙대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내 쪽에서는 반대쪽으로 돌아누운 것이다.

제갈수광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 제자가 나에게 그런 걸로 부담감 느끼게 만들고 싶지도 않아.”

가만 보면 한 번씩 참 멋져.

그 후로 제갈수광은 아무 말도 없이 누워있기만 했다. 나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일각 정도를 그러고 있던 중, 제갈수광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베개를 내 쪽으로 쭉 밀었다.

“가시렵니까?”

“어으으으. 이제 점심이니 해장이나 하러 가야지. 해장하는 김에 해장술도 한 잔 때리고.”

“교관이시면서 일과시간에 막 술 드시고 그래도 됩니까?”

“나도 환자야. 지금 병가 상태라고.”

에휴, 뭐, 트집 잡기도 귀찮소. 알아서 하쇼.

“유은무, 장우혜와는 잘 정리했나?”

“예.”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쉬도록.”

그러더니 곧바로 내 방을 벗어났다.

몸 상태에 대해 묻지도 않고, 빨리 나으라고 기원해주지도 않고, 그냥 저렇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 간 제갈수광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저게 제갈수광 식의 병문안일 테니까.

점심때는 소충광, 황성락, 진운령, 우문직 등, 섣달그믐날의 인원들이 병문안을 다녀갔다.

오후에는 선우린과 남궁설이 와서 한참이나 재잘거리다가 갔다. 내가 심심할까봐 일부러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간 것이다.

저녁때쯤 송유하는 제이서고에서 책을 대여해오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대여해올 모양이다.

오늘 이렇듯 수많은 이들의 병문안을 받고 보니, 문득 내가 송유겸의 몸으로 깨어났던 때의 일이 떠오른다.

물론 사안의 경중 차이가 크긴 하나, 그때 내 거처를 찾아준 사람이라고는 길초량과 송유하밖에 없었다.

억지로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닌데도, 반년 만에 많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는 생각은 든다.

감회가 새롭다고 할까.

* * *

비슷한 일상이 계속되며 내 상처도 호전되어 갔다.

통각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체내에 잠력을 쌓고 회회심공 운용하기를 반복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자 의원의 치료가 굳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어, 내복약만 복용해도 된다는 처방을 받았다.

의원은 내 회복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라며 놀라워했는데, 사실은 그조차도 내가 회회심공을 적당히 운용했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게 회복하면 의원이 완전히 놀랄 거고, 당연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테니까. 그래서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한 것이다.

그 즈음의 상황을 들어보니, 이번에 나뉜 조들이 하나둘씩 동부지맹의 일에 투입되기 시작했다는 것 같다.

각 조별로 동부지맹 측의 무인들이 몇 명씩 붙어서, 그들의 지도를 받으며 관도들이 각종 임무들을 수행하는 모양이다.

모든 조가 일제히 투입되어 항상 근무하는 방식이 아니다.

일정 기간을 두고 순환하며 투입되는 식이라서, 적정 수는 잠룡관에 남아 교육을 받는다.

즉, 일찍 투입된 조들은 그만큼 일찍 잠룡관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원래는 우리 조도 극초반 투입조 중 하나였다던데, 나와 제갈수광이 다치는 바람에 극후반 투입으로 미뤄졌다고 한다.

슬슬 귀찮아질 건 확실한데, 덜 귀찮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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