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44화 (44/416)

내 안에 마교있다 44

이윽고 제갈수광이 나타났다.

역시나 어제도 술을 제법 마신 모양이다.

그는 두 명의 관도들을 대동하고 왔다.

두 사람도 내게는 초면이었으나, 그 중 한 명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내 앞으로 집합.”

제갈수광의 말에 모두가 그 앞의 풀밭으로 모여들었다.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둥글게.”

“······예?”

누군가의 물음에 제갈수광이 곧바로 대꾸했다.

“원형으로 앉는다.”

모두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원형으로 앉았다.

내 왼쪽과 오른쪽에는 유은무와 장우혜가 앉았다. 지들이 알아서 그렇게 앉았다.

제갈수광이 중앙에 서서 말했다.

“이게 우리 조의 전체 인원들이다. 이제 와서 모두에게 처음으로 밝히는 건데 우리 조는 사십사 조다. 사십사. 느낌도 좋고 기억하기도 쉽지?”

원형으로 둘러 앉아 있기에 아이들의 표정 확인도 어렵지 않았는데, 모두의 눈매가 좁아지고 있다.

“사, 사십사 조요······?”

“느, 느낌이 좋을 리가······.”

“아니, 어쩔 수 없이 사십 번대 조라고 해도, 이왕이면 사십팔도 있고, 사십구도 있고, 사십육도 있는데 왜 하필 사십사······.”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는 팔, 구, 육 정도다.

싫어하는 숫자는 사(四).

죽음이라는 의미의 글자 사(死)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우리 조는 사가 두 개 겹쳐 있으니 저리 말하는 것이다.

왠지 저 제갈수광이라면 다른 교관들이 번호 선점을 할 때에도 귀찮다며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다. 마지막에 남은 게 사십사 번일 테니 결국 그 번호를 받은 거고.

제갈수광이 말했다.

“숫자에 그런 식의 의미를 담는 건 미신에 불과하다.”

“한데 교관님, 제가 얼핏 들어서 아는데 그 숫자는 우리뿐만 아니라 고려 사람들도 꺼려한다던데요? 그쪽도 숫자 사와 죽을 사가 발음이 같은 모양이라······.”

누군가의 말에 제갈수광이 곧바로 대꾸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결국 이유는 우리와 같지 않나. 고로 미신이다. 그러니 우리 조의 번호를 가지고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왈가왈부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그, 그래도······.”

“더 왈가왈부하는 조원은 본 교관에 대한 반항으로 알고 벌하겠다.”

아이들이 입을 꾹 닫는다.

물론 불만들이 완전히 가신 표정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조의 번호 갖고도 이런 식이어서 이거, 우리 조 괜찮은 거지?

“나는 지금껏 너희들을 수준별로 따로 교육시켰다. 갑을병정반 따로, 무기경반 따로, 신임반 따로, 계반 따로. 물론 합숙 이후부터 무기경신임반은 함께 모여서 훈련해왔고.”

아, 그래서 아까 몇 놈들이 모여 있는 분위기가 제법 익숙해 보였던 거구나?

“우리 조에 누가 속했는지 따로 알아본 조원들도 있겠지만, 정식 대면은 처음이다. 아예 모르는 조원들도 있을 테니 한 사람씩 일어서서 각자 자기소개를 한다. 반, 연차, 이름, 출신은 기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전에 먼저, 한 사람은 내가 소개하지.”

이어서 제갈수광이 한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시선을 받은 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실 그는 계속해서 모든 조원들의 이목을 끌고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일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조원들이 수군거렸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교관인 내가 특별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 사십사 조의 조장이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다들 알지? 너희들 사이에서는 몇 명의 뛰어난 관도들을 육룡이봉이라고 부른다던데, 그 육룡 중 한 명이니까.”

조원들을 향해 그렇게 말한 제갈수광이 일어선 관도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직접 소개하도록.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인사말 겸해서 해도 되고.”

그러자 일어선 관도가 제갈수광을 향해 짧게 목례해 보이더니 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갑반, 사 년차, 단목강이며 단목세가 출신입니다.”

그랬다.

그가 바로 단목세가의 소가주이며, 내가 아는 단목지의 오라비이자, 단목홍신의 사촌형이다.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 역시 단목강 공자였어.”

“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우리 조장이 단목강 공자시라니······!”

“갑반 관도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처음인데, 이 처음이 육룡 중의 단목강 공자라니······.”

나 또한 단목세가의 사촌남매와 친한 입장임에도 여태 단목강과 마주칠 계제는 없었다.

이렇게 보니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다.

하긴 뭐, 그 예쁜 단목지와 같은 뱃속에서 나왔을 텐데, 그 혈통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어?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인상도 좋다.

게다가 딱 봐도 일류의 중간 이상이라는 걸 알겠다.

육룡의 일인이라더니, 충분히 ‘용(龍)’소리 들을만하다.

앞으로 더 지켜 볼 일이지만, 저 모습만 봐서는 단목세가주가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 단목강에 그 단목지라니. 단목세가주 부부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단목강만 봐도 다음 세대의 단목세가의 서열이 위로 쭉 올라갈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단목강은 올해 스물한 살이 된 것으로 안다.

길초량보다 한 살 어리다.

고개를 살짝 양 옆으로 돌려보니 유은무와 장우혜도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단목강이 입을 열었다.

“갑반인데다가 육룡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는 입장이라 여러분들은 저를 대단하다 여기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상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며, 여러 모로 허술한 면도 많습니다. 조장이 대단한 지위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야만 어찌어찌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반듯하다.

겸손하다.

이미 여자 조원들의 눈동자는 무장해제 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유은무와 장우혜만이 여전히 흥미롭다는 눈빛일 뿐이었다.

참고로 여자 조원은 다섯 명이다.

박수가 한 차례 나왔고, 단목강이 자리에 앉았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자 다음은 상위 반부터 차례로 일어나서 소개한다.”

아이들이 차례로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했고, 나중에는 계반인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이에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아이들의 분위기는 내가 일어서기 전부터 이미 좋지 않았었다. 조원들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점점 그렇게 되어 왔던 거다.

그 시점에 계반인 내가 일어서자 아이들의 분위기는 더욱 안 좋아졌다.

“계반, 삼 년차, 송유겸입니다. 이 근처 광풍현에 있는 송가장 출신입니다.”

최대한 짧게 내 소개를 한 후에 자리에 앉았다. 가타부타 말을 덧붙여야할 의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쯧. 딱딱하고 재미도 없군.”

후훗. 그걸 노린 겁니다, 교관님.

“다음.”

제갈수광의 말에 이번에는 유은무가 일어섰다.

“계반, 초 년차, 유은무예요. 호북의 나전현에서 왔어요.”

선우세가는 호북 중북부의 수주현에 있다.

유은무가 말한 나전현은 호북의 동부다. 안휘와의 경계에서 멀지 않다. 호북 땅 자체가 가로로 길기에, 수주와 나전은 거리가 상당히 멀다.

나전에 선우세가의 별장이나 시설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유은무가 말을 이었다.

“저, 계반이라도 열심히 할게요! 헤헷. 그니까 예쁘게 안 봐주면 미워할고얏!”

저! 저! 저, 요망하고 가증스러운 것.

나는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수가 나왔다.

짝짝짝짝!

유은무가 마지막에 귀여운 척까지 해줘서 그런 모양이다.

분위기가 그나마 약간은 좋아진 셈이다.

그런데 얘들아, 너희들이 지금 속 편하게 박수나 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미워할 거라는 저 말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냥 미워하는 정도로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유은무가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장우혜가 일어섰다.

“계반, 초 년차, 장우혜라고 해요. 저는 호북의 영산현에서 왔어요.”

남궁세가는 안휘의 천주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인근의 황산과 여산에 가려져서 그렇지, 천주산도 명산이다. 산의 이름이 괜히 하늘의 기둥[天柱]이라는 이름이겠는가.

장우혜가 말한 호북의 영산현은 안휘와 호북의 경계에 위치에 있다. 호북의 동부로, 유은무가 말한 나전현과 붙어 있다.

행정구역은 다르나, 영산현은 안휘의 남궁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쪽에도 남궁세가의 별장이나 시설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장우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여러분과 자아아알 지내고 싶은 마음인데, 아무리 돌이켜 봐도 저는 성격이 썩 좋지가 않아요. 그런 와중에도 자존심은 강해서, 간혹 저도 모르게 안 좋은 성격이 드러날 수도 있어요.”

그녀가 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 저도 여러분과 잘 지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거예요. 그래도 이렇듯 미리 털어놔야 조별 활동 중에 오해가 덜할 것 같아서 밝히는 거예요.”

야! 너, 그딴 소리를 인사말이랍시고 한 거냐?

유은무로 인해 잠시 좋아졌던 분위기가 역시나 차갑게 식었다.

계반 주제에 뭘 저리 까칠하게 구는가 싶은 거다.

그래. 나도 너희들의 현재 심정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얘들아, 저거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니야.

새겨들어야 해. 이참에 아예 뼈에 새기는 것도 좋아.

소개가 모두 끝나자 누군가가 말했다.

“교관님, 우리 조의 편성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다른 조들의 편성도 들어봤는데 우리 조의 경우에만 전력이 너무 약합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상위반은 고작 두 명뿐인데 하위반이 여섯 명이나 된다는 건 좀······.”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저들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사십사 조의 조원들은 총 열세 명.

그중 남자가 여덟 명이고 여자가 다섯 명이다.

구성은 이러했다.

상위반은 갑반 한 명, 정반 한 명.

중위반은 무반 두 명, 기반 두 명, 경반 한 명.

하위반은 신반 두 명, 임반 한 명, 계반 세 명.

길초량과 송유하가 속한 삼십 조의 면면을 들어봐서 알고 있는데, 일견하기에 그쪽에 비해도 전력이 매우 약해 보인다.

그러나 관주 육남춘은 이런 식으로 불공평하게 전력을 배분할 사람이 아니다.

참고로 우리 조에서 유은무와 장우혜를 상위반에 놓을 경우, 전력 배분이 삼십 조에 거의 근접한다.

즉, 이 조의 전력은 애초에 유은무와 장우혜의 실력을 감안하고 편성한 것이다. 거기에 교관인 제갈수광의 실력까지도 감안했을 테고.

단목강은 상징적인 의미일 것이다.

겉보기에는 전력이 너무 약해 보이니, 그나마도 조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안배 느낌이랄까.

아이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모르기에 저런 식의 반응들을 보일 수밖에 없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왜들 그래? 육룡 중의 일인인 우리 조장이 있잖아?”

“무, 물론 단목강 공자가 뛰어나시다는 건 압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인 전력 면은······.”

“전체적인 전력 같은 소리. 어차피 고수 한 명이 여러 목숨들을 책임지는 게 강호의 생리다. 게다가 조의 전력에는 교관의 무공 실력도 감안되었다. 너희들도 내 실력에 대해서는 대강 들었을 것으로 안다.”

산장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제갈수광은 관주인 육남춘이 오기 전까지 사파의 고수들 다섯 명을 상대로 버티며 우리 세 사람을 지켰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짜낸 이야기가 알려진 거다.

이쯤 되니 조의 전력에 대한 불만도 많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한 명이 말했다.

“하지만 계반이 세 명이나 되는 것도 의아합니다. 다른 조들의 경우에는 한두 명뿐이던데요.”

“그렇게 된 건 교관인 나 때문이다. 내가 원래 계반 담당 교관이기도 하거든. 알다시피 각 조의 정원은 열두 명이거나 열세 명이다. 우리 조는 원래 총원이 열두 명이었고 계반도 두 명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계반 담당 교관으로서 계반 관도 한 명을 추가해서 맡은 것에 불과하다.”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그 계반 관도 한 명은 교관인 나를 수행하는 부관 겸 전령으로 쓰려고 일부러 뽑은 것이다.”

그 말에 조원들의 시선에 내 쪽으로 집중되었다.

유은무와 장우혜는 여자들인데다가 초 년차이니, 남자에 삼 년차인 내가 그 역할일 거라고 짐작하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처음 듣는 얘기인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 추론이긴 하다.

교관의 수행 부관 겸 전령이라고 하니 뭔가 중요한 직책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와 제갈수광을 번갈아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계반인 내가 중요 직책을 맡았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그래. 지금 너희들이 보고 있는 그 송유겸이다.”

이보쇼, 교관님!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오!

계반인 나를 그런 식으로 중용한다고 선포해버리면, 나는 처음부터 미운털이 박힌 채로 시작하게 되잖소!

당신, 이렇게까지 대놓고 편애하고 그러는 사람 아니잖소!

제갈수광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임무에 나가면 우리는 모두 한동안 동부지맹에서 지내게 된다. 교관인 나는 여러 모로 바쁘기에 심부름할 사람이 꼭 필요하다. 고로 수행 부관인 송유겸은 내 심부름을 전담하고, 교관인 내 방의 청소, 빨래 및 내 무기 정비를 도맡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불만 가득했던 아이들의 표정에 점점 웃음이 담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그러면 수행 부관이라는 건 교관님의······.”

“따, 따까리라는 거잖아?”

“푸흐흐!”

대놓고 못 웃을 뿐이지, 아이들은 이미 빵 터졌다.

내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유은무와 장우혜까지 숨죽여 웃고 있다.

나는 황당함을 그대로 눈에 담아 제갈수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잇······! 이보쇼오!

내가 왜 당신 따까리 역할이어야 하냐고!

그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 우리 사십사 조의 임무개시 날짜도 점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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