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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57화 (57/416)

내 안에 마교있다 57

우리 조는 원래 태화지부에서 동부지맹으로 복귀한 후, 이곳에서 일주일가량 평상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태화지부에서의 일정이 길어진 탓에, 동부지맹에서는 이박삼일만 머무는 일정으로 바뀌었다.

첫 날에는 휴식과 정비를 취했다.

평상 임무를 수행한 건 이틀째의 하루뿐이었다. 옥산현을 중심으로 인접한 현들만 한 차례씩 순찰했다.

사흘 차에는 우리가 머물던 막사를 대청소한 후 동부지맹을 벗어났다.

잠룡관의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관주전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우리 조원 전체를 관주실로 이끌었다.

관주 육남춘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우리 조원들 모두의 손을 한 차례씩 붙잡아 주었고, 부상이 컸던 내게는 각별한 사과와 위로를 전했다.

육남춘의 과오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닌데도 나는 벌써 그의 사과를 두 번째 듣고 있다. 평화로운 시기라면 모를까, 이런 시기의 잠룡관주 역할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육남춘은 우리 조의 공로를 치하했고, 모두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며 다음 학기 장학금 지급을 약속했다.

관주전을 벗어난 후, 제갈수광이 그 앞 공터의 초지에 우리 조원들을 집합시켰다.

“둥글게, 둥글게.”

조원 전체가 첫 대면을 했을 당시에는 모두가 저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제는 되묻는 조원이 없다.

모두가 알아서 제갈수광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앉았다.

짝짝짝짝짝짝짝!

제갈수광이 천천히 빙글 돌며 조원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너희들에게 보내는 박수다. 모두가 큰 위기를 극복해낸 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칭찬을 했다. 지금 내가 칭찬하고 싶은 건, 여러 일들을 겪으며 너희들의 동료의식이 더 끈끈해진 부분에 대해서다. 초반에 비해 후반에는 훨씬 더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말대로다.

이제 우리 조에는 더 이상 분위기를 모르고 까부는 애들이 없다. 그랬던 애들은 모두 우리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오는 길에는 동료들의 무거운 짐들을 교대로 지고 오며 서로를 챙기는 모습들이 이어졌다. 초반에 비해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너희들이 매우 자랑스럽다. 교관으로서 훌륭한 제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몇몇 아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단목강이 제갈수광을 향해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들이야말로 최고의 교관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조원들이 동시에 제갈수광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에잉 쯧. 이런 낯간지러운 상황은 별론데.

하지만 나도 동참하며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제갈수광이 말했다.

“이것으로 사십사 조의 일차 파견 임무를 모두 마친다. 다 함께 박수.”

짝짝짝짝짝짝!

“오늘과 내일은 휴식이고, 모레부터는 정상적인 잠룡관 생활을 이어가면 된다. 승반 심사까지 삼 주 남짓이다. 심사를 치를 인원들은 준비 잘 하도록. 이차 파견을 위해 모일 때에는 다들 승반한 걸 자랑하며 모였으면 좋겠다.”

제갈수광의 덕담에 모두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의 합숙이 끝났던 게 삼월 초순이었고, 극초반 투입조들이 파견되기 시작한 게 삼월 중순쯤부터였다.

원래 극초반 투입조였던 우리 조는 극후반 투입조로 바뀌어, 사월 중순이 되어서야 동부지맹으로 향했었다.

동부지맹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태화지부에 다녀오기까지 총 오십 일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경우에는 중간에 큰일을 겪었기에 다른 조에 비해 사오 일 가량 일정이 더 길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유월이 막 시작된 시점이다.

유월 하순에 승반 심사가 있다.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이번에 실전을 겪었기에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도 더 잘 알 것이다. 그 부분을 보완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결과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심사를 준비함에 있어 따로 도움 받고 싶은 게 있으면 계반 구역의 교관실에 있는 나를 찾아와도 된다. 알겠지?”

“예!”

조원들이 당장에라도 찾아갈 듯 우렁차게 대꾸했다.

당연히 저럴 수밖에 없다. 이번에 제갈수광의 빼어난 무공을 모두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모두 수고 많았다. 그럼 모두 해산.”

그 말이 떨어지자 모든 조원들이 일어나서 각각 제갈수광에게 목례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

귀찮은 일이 한 차례 끝났으니 일단은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한데 이 홀가분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활약한 일에 대해 남궁찬과 제갈수광이 어느 정도는 입단속을 시킨 모양이나, 그런 일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 경우에 대비하여 단목강이 조원들을 모아놓고 따로 회의도 한 모양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 일에 대해 듣고 질문해 오면, 조원들은 내가 의외로 암기술이 뛰어나더라는 정도로만 대꾸하기로 결론을 내렸단다.

물론 매우 고맙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는 언제든 그때의 활약상이 밝혀질 걸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그걸 갖고 조마조마할 일은 아니다.

다만 염려되는 건, 그게 밝혀진 후에 벌어질 온갖 귀찮은 상황들일 뿐이다.

「송유겸, 혹여 곤란하면 뭐든 내 핑계를 대도 좋다.」

그나마도 제갈수광이 해준 저 말이 있으니 어떻게든 둘러댈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겉보기에는 한심한 장년 술꾼이지만, 종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며, 항상 최고로 든든한 교관이다.

* * *

오랜만에 거처에 돌아왔다.

예상은 했는데 역시나 방안이 깨끗하다. 먼지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삼십 조는 우리보다 먼저 동부지맹에 투입되었으니 복귀도 빨랐을 것이다. 우리 조가 약간 늦어진 면도 있고.

즉,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가 된 상태는 당연히 송유하의 손길일 수밖에 없다.

고마운 마음이 가득 든다.

이런 식이니 나 또한 송유하에게는 잘해줄 수밖에 없다.

저절로 이런 마음이 들게 만드니까.

봇짐을 정리한 후, 빨아야 할 의복들을 따로 챙겼을 때였다.

“오라버니!”

송유하다.

“어, 누이, 들어와.”

송유하가 즉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송유하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젖살도 조금 더 빠진 것 같고, 그래서인지 더 예뻐 보인다.

“누이, 잘 지냈지?”

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도 송유하는 내 물음에 대꾸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나를 살핀다. 염려가 가득한 얼굴이다.

“오라버니 또 크게 다쳤었다면서요······.”

“아, 응. 그랬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어.”

“정말······, 왜 그렇게······, 다치시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송유하가 울기 시작한 탓이다.

야야야! 자, 잠깐만!

“아니, 지, 지금은 완쾌됐고······.”

“흐흑. 흑······.”

서무욱 인생에 여동생이란 없었으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진심 당황스럽다.

“아니, 그······.”

한 번도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저 우는 모습을 잠시 보고 있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 것 같다.

왜 우는지 아니까.

송유하에게 다가가서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후, 손바닥으로 최대한 살살 그녀의 등을 토닥여줬다.

“누이, 걱정 많이 했구나. 걱정 끼쳐서 미안해.”

“흐윽, 오라버니가 왜 미안해해요······. 흐흑, 저는 그냥 그 얘기를 들으니까······, 이러다가 오라버니한테 정말로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나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흐으윽, 그러다가 오라버니가 제 옆에서 영영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스읍, 흑흑.”

얘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이렇듯 이 아이가 우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항상 어른스러웠던 아이다.

그런 모습 때문에 종종 의식이 덜 되긴 하는데, 얘는 아직 소녀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해도, 아직은 마음이 여리고 여린 시기인 것이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에 없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극단적인 상상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런 상상만으로도 모든 게 두려워질, 그런 여린 나이다.

“누이, 다음부터는 내가 더 조심할게. 그리고 누이 허락 받지 않고는 어디든 절대 안 사라질 테니까, 앞으로는 그런 걱정 하지 마. 알았지?”

송유하가 내 품에서 흐느끼는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진다.

잠시 더 등을 토닥여주고 있자니, 송유하의 흐느낌도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송유하에게서 떨어진 후에 말했다.

“누이, 잠깐 가만히 있어 봐.”

나는 곧바로 소맷자락을 내려 손가락으로 잡은 후, 그걸로 송유하의 눈자위를 부드럽게 찍어가며 닦아주었다.

“응. 이제 됐어.”

내가 허리를 편 후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자, 송유하도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들이 봤을 땐 희미한 미소일 것이나, 나는 저 미소가 환한 미소라는 걸 알고 있다.

눈에 물기가 많은 상태에서 짓는 저 미소가 너무도 예쁘다.

저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서 보관하고 싶을 만큼.

괜찮다고 하는데도 송유하는 기어이 내 빨래를 도왔다.

빨래를 하는 와중에 송유하가 본인의 조별 파견 임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는 빨래가 끝난 후에도 이어져, 우리는 처마 아래의 그늘에 나란히 앉아서 계속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본적으로 말수가 많은 아이가 아닌데,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경험이어서 그런지 여러 이야기들을 해줬다.

들어보니 삼십 조의 조장인 소충광이 송유하를 알아서 잘 챙겨준 것 같고, 길초량 또한 많은 배려들을 해준 것 같다.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 외의 남자 조원들도 송유하에게 잘 대해줬다는 모양이다.

잠룡삼화라서 그럴 것이다.

참고로 작년의 잠룡오화가 올해는 잠룡삼화다.

신입 여관도들 중에 아직까지는 그 위치에 오를 만한 미인이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내 경우에는 유은무와 장우혜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여전히 속으로는 잠룡오화라는 느낌이지만.

여자 조원들과는 초반에 약간 서먹서먹했는데, 이후에는 무난하게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얘가 미모를 타고나서 그렇지, 원래는 송가장에서 온갖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신세다. 여자 조원들의 눈치를 모를 리 없으니 알아서 잘 처신한 모양이다.

송유하가 해주는 이야기들도 흥미로웠지만, 내가 더 흥미를 느낀 건 그녀의 분위기 변화다.

분위기의 변화라는 건, 기도 변화다.

무공 늘었구나, 너?

송유하의 삼십 조가 먼저 투입되었고 우리 조가 더 늦게 복귀했기에, 실상 내가 얘를 보는 건 두 달 남짓 만이다.

송유하는 공력이 늘자마자 떠났었기에,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다.

한데 얘가 늘어난 공력을 활용하며 수련하다보니 무공 전반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올라간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전까지는 공력 부족으로 인해 시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어느 정도 구사하게 되면서, 무공에 대한 이해도 또한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형태다.

그래서인지 무인으로서의 기도 자체가 두 달 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느낌이다.

혼자서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아이이니 늘기야 느는 게 당연한데, 내 예상보다 더 는 것 같다.

나름 자랑하고 싶을 텐데 자랑도 안 한다.

하여간 기특해.

* * *

저녁에 오랜만에 송유하와 함께 구보를 한 후, 씻고 돌아와서 서탁 앞에 앉았다.

낮에 잠시 제삼서고에 들러서 대여해 온 무공서를 대충 펼쳐 놓고는 실제로는 연승휴의 풍우비룡무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그러고 있자니 밖에서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길초량이었다.

풍우비룡무를 얼른 이불 밑에 숨기고는, 서탁 위에 펼쳐두었던 무공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송 형! 계시오?”

“아, 들어오시오.”

곧 길초량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길초량 또한 두 달 남짓 만에 다시 보는 얼굴이다.

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여어! 계반의 특급 고인물이신 우리 길 형, 오랜만이오!”

“트, 특급 고인물이라닛! 저번에는 적폐라고 하시더니!”

길초량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서탁의 반대편에 앉았다.

“하하. 그때 적폐라는 말은 좀 심했지만 특급 고인물인 건 맞는 얘기잖소.”

“아니, 송 형은 다음에 나 만나면 무슨 표현으로 놀려줄까 하고 미리 준비라도 하시는 것이오?”

“하핫.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오.”

그렇듯 우리는 일단, 서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 자식이 발걸음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이 클 것이다.

시일이 상당히 지났으니 길초량도 태화지부 사건에 대한 정보는 제법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장에 있었던 나를 통해 더욱 생생한 정보를 듣고 싶은 것이다.

당시의 정보를 많이 안다면 내 활약에 대해서도 일정 이상은 알 것이고, 그렇다면 나를 통해 듣는 정보가 요긴하리라는 사실도 알 테니까.

게다가 길초량은 산장 사건을 통해 내가 알려주는 정보가 요긴하다는 걸 이미 경험하기도 했다.

이번이 두 번째니까 내 방식은 잘 알지, 길초량?

공짜로 꿀꺽할 생각은 애초에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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