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56
제갈수광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눈매를 찡그리며 대꾸했다.
“하여튼 제자라는 놈이 선생한테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어으으으으······.”
푸히히! 좋다.
애초에 저 반응을 기대했었다.
“그건 그렇고 송유겸 너, 그때 내 등 한복판으로 쇠구슬 날린 거, 그거 일부러 그런 거 맞지? 때는 이때다 하고 나 골탕 먹이려고 그런 거 맞지?”
“실수였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선생님이 제자를 이렇게까지 의심해도 되는 겁니까?”
내가 묻는 말에 대꾸는 하지 않고 제갈수광이 곰방대를 한 차례 빨더니 연기를 품어냈다. 그러더니 말했다.
“너 인마, 선생 골탕 먹이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나중에 벌 받아. 어으으으으······, 죽겄다.”
“맨날 괴로워하실 거면서 뭔 술을 그렇게까지 드십니까.”
“맹랑한 놈이 말 돌리며 잔소리까지 해대기는. 저게 제자는 무슨, 웬수지. 으휴.”
제갈수광이 포기했다는 듯 돌아누웠을 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또 한 사람이 들어섰다.
남궁찬이었다.
저 인간은 눈동자가 완전히 풀려 있고, 주향은 더 심하다.
둘이 함께 마셨냐!
제갈수광은 그래도 덜 취했는데, 이 인간은 딱 봐도 만취 상태다.
아주 온 방이 술 냄새 천지다.
“유겸아아아아아.”
남궁찬이 누워있는 내게로 곧장 다가왔다.
이, 이봐! 설마, 아니지?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우려하던 상황이 기어이 벌어졌다.
남궁찬이 누워있는 내 몸 위에 자신의 상체를 그대로 포개며 나를 끌어안은 것이다.
“유겸아아아아아아아······.”
“끄윽! 아닛! 아, 알겠으니까, 쫌······.”
하지만 만취상태의 남궁찬은 나를 더 꼭 끌어안을 뿐이었다.
“유겸아, 유겸아아······.”
“진짯! 쫌! 무거우니까 떨어지시······!”
내가 기어이 밀어내자 남궁찬이 그대로 침상 옆의 바닥으로 쓰러졌다.
철퍼덕!
그러더니 바닥에 자빠진 채로 곧장 골아 떨어졌다.
곧 두 인간의 코 고는 소리가 온 방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이 인간들아!
술을 처먹을 거면 곱게 처먹으라고오!
백도의 알 만한 인간들이 왜 죄다 이따위냐고오오!
* * *
제갈수광과 남궁찬이 계속 드르렁거리며 잠에 빠져 있었기에 나는 그동안 구결을 읊으며 체내에 잠력을 쌓았다.
최대치까지 잠력을 쌓은 후, 운기조식을 통해 공력으로 변환시키지 않은 채로 그냥 두었다.
제갈수광과 남궁찬 모두 고수들이기에 내 공력의 움직임을 느끼면 자다가 깰 것 같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건 많다.
누운 채로 일단은 지난밤의 전투를 복기했다.
지난밤에는 수많은 상황들에 처했었기에, 그걸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이후에는 천섬무의 내용을 떠올리며 그 묘리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 지난밤에 갑작스럽게 비마 장로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성과를 본 바 있었다.
그렇기에 당시의 상황을 차분히 되돌아본 후, 그게 천섬무의 묘리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에 대한 파악을 이어갔다.
성취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수련도 필요하고 꾸준한 축기도 필요하지만, 내가 익히고 있는 무공의 묘리를 조금이라도 더 깨우치려 노력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법이다.
* * *
저녁 시간쯤 된 것 같다.
제갈수광과 남궁찬은 여전히 퍼질러 자고 있다.
그 즈음 문이 열리더니 장우혜와 유은무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두 소녀는 각각 소반을 들고 있었다. 장우혜의 소반은 크고 유은무의 소반은 작다.
장우혜의 소반은 국밥 두 그릇에 이인분의 상차림이었고, 유은무의 소반은 국밥 한 그릇에 일인분의 상차림이었다.
환자인 내 식사를 챙겨오는 김에 저 두 한심한 장년들의 식사까지 챙겨온 모양이다.
“송 오라버니, 좀 쉬셨어요?”
유은무의 말에 장우혜가 대꾸했다.
“이래서 제대로 쉴 수나 있었겠어? 에휴, 술 냄새 진짜.”
방 안을 쓱 한 번 훑어본 것만으로도 두 소녀는 상황 파악이 끝난 모양이다.
특히 장우혜는 매우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신의 큰 오라비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제갈수광이 간이 침상 옆에 놔 둔 술병을 집어 들었다.
치우려고 저러는가 싶었는데, 그 직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마개를 열더니 병째로 술을 들이켠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워보여서, 나는 순간적으로 말리는 것조차 잊었다.
“크으.”
내가 놀라 있는 사이 장우혜가 짧게 소리를 내더니 술병을 유은무 쪽으로 건넸다.
“누, 누이들······?”
내가 개입했음에도 두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 유은무 또한 자연스럽게 술병을 받아 들더니 술병을 입에 대고 들이켰다.
“크으. 좋다.”
유은무가 짜릿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속삭이자, 장우혜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속삭이며 대꾸했다.
“그치?”
유은무의 경우에는 아예 병을 거꾸로 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안으로 털어넣고 있다. 혀를 내민 채로.
유은무가 곧 마개를 닫더니 술병을 내 침상 아래쪽에 내려놓았다.
내가 뭔가를 언급할 새도 없이 두 소녀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짝!
“자! 자! 일어나세요!”
“저녁 식사 시간이에요!”
그러자 제갈수광과 남궁찬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장우혜는 본인이 들고 온 소반을 제갈수광과 남궁찬의 사이에 두었고, 유은무는 작은 소반을 내 침상에 올려 두었다.
“맛있게 드세요, 송 오라버니.”
“어? 어······. 고마워.”
내가 유은무에게 대꾸하자 장우혜가 두 한심한 장년을 향해 말했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들 드신 거예요? 얼른 물들 드시고, 식사들 하세요.”
“어으, 죽겄다. 그래, 고맙다.”
“어으으으······. 그, 그래, 잘 먹을게.”
숙취 때문에 두 장년이 여전히 오만상을 찌푸린 채로 그렇게 대꾸했다.
남궁찬의 경우에는 머리에 떡이 졌는데, 인상을 찌푸린 채 머리를 벅벅 긁는 중이다.
저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저렇게까지 못생겨질 수도 있는 거구나.
지금의 모습을 보고 누가 저 인간을 백도 최고의 차세대 고수라고 여기겠는가. 그저 영락없는 철딱서니 백수 장년의 모습일 뿐이다.
서무욱 시절에 저 인간을 넘어서 보겠다며 열심히 노력했던 나 자신이 한심해질 지경이다.
두 장년이 국물을 한 수저씩 떠먹더니 말했다.
“어으으, 좋다.”
“어으, 속 풀린다.”
제갈수광이 아직도 초점이 없는 눈으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내 침상 아래의 술병에서 멈췄다.
“유은무, 그 술병 좀 줘봐. 해장술 한 모금 해야겠으니까.”
“네! 교관님.”
유은무가 자신 있게 대꾸하더니 술병을 집어서 제갈수광 쪽으로 건넸다.
지들이 한 짓이 있는데도 자신 있게 행동하는 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뭐야? 비었잖아? 분명히 남아 있었는데?”
제갈수광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렇게 말하자 장우혜가 홱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에요, 송 오라버니? 교관님 술 드신 거예요? 나빴다.”
“환자가 술 드시고 그러면 안 되죠, 송 오라버니.”
유은무도 말을 보탰다.
야! 야! 야, 이것들아!
“그럼 맛있게들 드세요.”
“다 드시면 밖에 내놔주세요.”
두 소녀가 그렇게 말하더니 얼른 방을 벗어났다.
제갈수광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송유겸 너, 제자라는 놈이 선생 술을······.”
아뇨? 제자라는 놈이 아니고 제자라는 년들이거든요?
남궁찬이 음식을 씹으며 말했다.
“요즘 교권 실추가 이게 심각한 문제예요. 저 잠룡관 다닐 때는 교관님들 그림자도 안 밟았어요. 감히 교관 술을 마시다니, 유겸이가 확실히 맹랑한 면이 있네요.”
아니거든! 당신 여동생이 마신 거거든!
게다가 당신들 지금, 다 알면서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잖아!
에휴, 짜고 치는 노름이니 대꾸할 의미도 없다.
밥이나 먹자.
식사 중에 남궁찬이 내게 물었다.
“유겸이, 몸은 괜찮고?”
“네, 뭐······.”
당신이 아까 나를 덮치지만 않았어도 더 괜찮았겠지.
“이번에도 무림맹과 동부지맹의 불찰이야. 그래서 그렇게 다친 거니 내가 너무 미안하네.”
“아닙니다. 태화지부가 대놓고 적습을 받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전투 전에도, 전투 중에도 여러 모로 설아를 잘 이끌어줬다고 들었어. 그것도 고마워.”
“아닙니다. 저는 그냥 조심하라고 당부한 것 외에는 딱히······.”
내 말에 남궁찬이 미소만 지어 보였다.
잠시 말없이 밥을 먹다가 말했다.
“부당주님, 어제 그 무음시를 날리던 궁수 말입니다만, 단목 조장이 그러는데 전각 위에서 죽었다고······.”
당시에 나 스스로도 파악을 했었지만, 들어서 아는 척 그렇게 말을 꺼냈다.
“응.”
“지니고 있던 활도 성능이 좋은 거였겠죠?”
절정고수의 힘을 버티려면 활의 성능도 상급은 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응. 아까 적들의 소지품을 보관해둔 곳에서 확인해봤는데 괜찮은 활이더라고.”
“아.”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물었다.
“왜, 송유겸. 그 활 갖고 싶어서 그러나?”
“아, 예. 좀 관심이 있어서요. 무림맹이 전리품을 어떤 식으로 취급하거나 분배하는지는 전혀 몰라서, 그냥 한 번 여쭤본 것뿐입니다. 욕심나고 그런 것 까진 아닙니다.”
제갈수광이 다시 물었다.
“궁술도 좀 하나?”
“저는 궁술에는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습니다. 제 누이가 궁술에 재능이 제법 있어 보여서요. 어차피 활이라는 무기가 그렇게 인기가 높은 무기도 아니니, 혹시나 해서 여쭤보기라도 하는 겁니다.”
“아, 송유하가 궁술에 소질이 많나?”
“저는 잘 모르겠는데 궁술 교관님이 소질이 많다고 하셨답니다. 누이도 궁술 수업만큼은 최고점을 받는 것 같고요.”
“그래?”
제갈수광의 눈동자에 이채가 담겼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남궁찬이 말했다.
“하면 형님이 좀 가르쳐 주십쇼. 궁술하면 또 형님 아닙니까.”
이에 나는 놀라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교관님, 궁술도 잘하십니까?”
“그냥 어려서부터 꾸준히 쏴 온 수준에 불과해.”
제갈수광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대꾸하자 남궁찬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형님의 주특기 교과가 아마 궁술, 신법, 전술 이론 쪽일 걸? 게다가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이분이 호북 제일 명궁수에, 동부지맹 삼대 명궁수 중 한 명이야. 알 만한 사람들만 알지.”
“이 사람이, 민망하게.”
제갈수광은 핀잔을 주듯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국밥을 먹던 남궁찬이 말했다.
“전리품은 일단 정밀 감식 과정을 거쳐야 해. 적들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캐내기 위함이지. 딱히 무림맹에서 보관해야 할 물품이 아니면 이후에 전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지급돼. 사기 진작 차원이지. 전공이 높았던 사람들부터 선택의 우선권이 있고.”
“아.”
“전공 서열은 많은 상황들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따져서 매기는데, 대충 들어봐도 유겸이 너는 충분히 최상위 서열이야. 네 위에서 그 활을 선택하지 않으면 네가 고를 수 있을 거야. 상황에 따라 전리품 분배 과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고.”
“아, 그런 체계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밥을 다 먹은 남궁찬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항상 업무에만 치여 살다 보니 이 자유가 이렇게나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마침 형님도 계시니 복귀전까지는 형님과 함께 술이나 실컷 마셔야겠습니다. 가서 한 잔, 어떠십니까?”
“좋지. 이렇게 서로 시간 있을 때 실컷 마셔야지. 가자고.”
두 사람이 각각 소반 하나씩을 들고 일어섰다.
뭐? 또 마신다고?
이, 미친 술꾼들 같으니!
내 속내가 표정에 그대로 담겼는지, 제갈수광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저거 제자라는 놈이 선생한테 짓는 표정 좀 봐라, 저거. 제자가 아니라 시어머니야, 저거 완전.”
남궁찬이 문을 열며 말했다.
“요즘 교권의 상태가 이게, 에휴.”
트집 잡기도 귀찮소. 썩 나가기나 하시오.
* * *
내 상처 때문에 우리의 동부지맹 복귀 일정은 늦춰졌다.
먼 거리다보니 내가 완전히 회복하고 나서 이동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태화지부는 빠르게 복구 작업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 복구 작업에 우리 조원들도 투입되었다.
두 소녀는 잠룡관도를 노동력 취급한다며 한 번씩 툴툴거렸지만, 들어보니 둘 다 가장 열심히 작업하는 인원들로 꼽히는 모양이다.
둘 다 내공 경지도 제법 높으니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그동안 부상자인 나는 아주 편하게 휴식을 취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나 빼고 모두가 고생하는 걸 보니 더욱 달콤한 휴식이었다. 그냥 침만 삼켜도 꿀을 삼키는 것 같았다.
아, 참!
나 외에도 태화지부에서 꿀을 빨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남궁찬이다.
당분간 태화지부의 안전을 보장해야한다는 이유로 최대한 동부지맹 복귀를 늦추고 있는 모양이다. 한 번 파견을 나온 김에 아주 그냥 뽕을 뽑을 기세다.
한데 실제로도 태화지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남궁찬은 태화지부의 가장 높은 망루에 올라가서 혼자 경계를 섰는데, 그게 수십 명의 무인이 경계를 서는 것보다 훨씬 든든할 수밖에 없었다. 남궁찬이니까.
그래서 경계 전력들도 모두 복구 작업에 투입되었다.
환자인 내가 바람도 좀 쐬어야 한다는 이유로, 남궁찬은 한 번씩 나를 망루 위쪽으로 데려가곤 했다.
그래서 나도 종종 망루 위에서 남궁찬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남궁찬 정도 되는 사람과 함께 꿀을 빨아서 그런지, 그 시간 또한 더없이 상쾌했다. 그 시간 덕분에 남궁찬과 더 친해지기도 했다.
내가 부상을 당한 후로 아흐레쯤 지났을 때 무림맹 본맹에서 지원 전력이 도착했다.
그래서 열흘째 되는 날 우리 조는 다시금 동부지맹을 향해 출발했다.
남궁찬도 함께였다.
이동하는 동안 남궁찬은 다른 조원들과도 친근하게 어울리며 잠룡관의 선배이자 강호의 선배 노릇을 톡톡히 했다.
무림맹에 대한 질문 또는 무공에 대한 질문 등에 성심껏 답변해주니, 조원들은 감격하며 다들 좋아했다.
물론 나는 눈치껏 그런 자리는 피해주었다.
그렇게 우리 조는 동부지맹으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