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62
사실 뱀을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다.
흑풍대 수습 시절에 한계 상황 적응 훈련을 할 때였다.
한계 상황에서 아사 직전이라 먹었지, 뱀 고기 따위를 좋아할 리는 없다.
노인네가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별채의······?”
물론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예. 연주상단 남창지점 양 총관님의 소개로······.”
“알고 있네. 동부지맹 잠룡관도들이라고 하던데.”
“예, 어르신.”
“한데 그곳에서 뭘 하고 계셨는가? 그 뱀은 또 뭐고?”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다.
이미 어떠한 심증을 품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고민이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둘러대야 하나.
양운필이 말하길, 정가장주는 성품이 강직하고 성실한 인물이라고 했다.
무공 경지를 떠나, 느껴지는 기도를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저런 삶을 저 나이까지 살아온 인생의 대선배를 상대로, 내가 어설프게 둘러대 봐야 어디까지 둘러댈 수 있을까? 또한 그런다고 해서 속아 넘어가기나 할까?
결론은 간단하게 나왔다.
“소화시킬 겸 장원을 산책 중이었습니다. 어제 와 보니 이쪽 절벽에서 쐬는 바람이 시원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와 본 건데 마침 어르신께서 수련 중이셨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수련하는 모습에 우연히 시선이 갔는데, 멋진 창술이라서 저도 모르게 계속 구경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던 중에 이놈의 뱀이 나타나서······.”
노인이 내가 들고 있는 뱀에 잠시 시선을 두더니 말했다.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 먹기는 무슨. 징그럽게 뭐 하러 계속 들고 있는가? 이미 죽은 거면 어서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게.”
“예.”
즉시 절벽 쪽으로 다가가서 팔을 빙글 휘둘러 뱀의 사체를 절벽 아래로 던졌다.
이후에 몸을 돌려 노인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의도치 않게 어르신의 수련을 엿봤습니다.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으니 넓은 아량으로······.”
“어떻던가?”
내 말을 끊으며 노인이 불쑥 물었다.
이에 나는 눈알을 살짝 굴리다가 대꾸했다.
“창법의 기세가 훌륭했습니다. 이 넓은 포양호의 기상을 가득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노인의 노안에 미소가 담겼다.
“허허, 그래 보이던가?”
“예. 한데 창술의 여러 부분에 쓸데없는 사족들이 섞여 있더군요. 그 부분들로 인해 원래의 기상이 제대로 뿜어져 나오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노인의 양미간이 급격하게 좁아졌다.
노인에게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용히 나를 쏘아볼 뿐이었다.
노한 상태임을 내가 모를 리 없다.
내가 원래 초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정가장에 흥미가 생겼기에 억지로 한 것이다.
“공자가 지금······, 선조들로부터 대대로 전해져온 우리 가문의 가전 무예를 감히 폄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에 나는 진지한 눈동자로 노인의 시선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폄하로 들리셨다니 아쉽습니다. 저는 어르신이 창술을 펼치는 모습에서 모종의 간절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말씀드렸던 것뿐입니다.”
노인을 향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께서 노하셨다면 원인 제공자인 제가 응당 사과드려야겠지요. 송구합니다. 노여움을 푸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이쪽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고 별채 쪽에서만 자숙하며 지내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허리를 공손하게 숙였다.
뒤탈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중하면서도 절제된 모양새를 충분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실례 많았습니다.”
허리를 펴고 나서 그렇게 말한 후, 나는 천천히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노인은 모르겠지.
알아서 다가왔던 기연의 손을, 본인의 그 알량한 자부심이 뿌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쉬울 건 없다.
본인 복이고 본인 팔자다.
우연히 맞이한 운이라도 송유하처럼 어떻게든 붙들고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 정가장주처럼 애초에 배제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상황의 차이도 있겠지만 마음 자세의 차이가 더 클 것이다.
차후의 결과는 그 차이를 고려해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걷고 있을 때였다.
“공자! 잠깐!”
천천히 뒤돌아서자 노인이 말했다.
“쓸데없이 섞인 사족들로 인해 창술의 기상이 제대로 뿜어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던 그 말······,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에 나는 다시금 노인 쪽으로 돌아가서 몇 보를 격한 채 걸음을 멈췄다. 이후에 노인에게 말했다.
“제가 무공 연구가 취미라서 느낀 건데, 아까 어르신이 펼친 초식은 크게 초반, 중반, 종반의 세 단계로 구분 되며, 세세하게는 열다섯 단계로 구분이 되는 것 같더군요.”
“그, 그걸 어떻게······!”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노인장, 내 말을 더 귀 기울여 들으시면 앞으로 훨씬 더 놀라실 거요.
창 또한 주요 무기 중 하나이기에, 흑풍대원들은 창술도 일정 수준 이상 익혀야 한다. 게다가 나는 천마신교의 창마槍魔 장로로부터 강제 소양 교육까지 마친 몸이다.
더 중요한 건, 천마신교의 모든 장로들 중에 나와 가장 친했던 인물이 바로 창마 장로였다는 사실이다.
서로 틈만 나면 비무를 하던 관계라, 창마 장로의 창술을 지켜본 경험도 매우 많다. 그를 통해 상승 창술에 대한 이야기 또한 수도 없이 접했다.
“아까 어르신의 창술이 포양호의 기상을 담은 느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에 빗대자면, 그 창술은 강맹할 때는 폭풍 치는 호수와 같은 사나움을 담고, 부드러울 땐 잔잔한 수면처럼 안정감을 담아야 합니다. 그게 어르신의 창술이 가진 장점이며 매력입니다.”
노인을 향해 곧바로 말을 이었다.
“한데 세부 열다섯 단계 중, 여섯 단계 정도가 그 장점과 매력에 오히려 해가 되고 있습니다. 강유상겸(강함과 부드러움이 자유롭게 변환됨)의 이론 자체에만 너무 치중하여, 간결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더 중요한 가치를 잃게 된 겁니다.”
노인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좀 어려웠나?
“자연스럽게 발산되어야 할 강맹함이 그 부분들 때문에 괜히 억눌리고 있습니다. 또는 안정감을 줘야 할 시점에 간결함을 잃게 하여 괜한 불안정을 자초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 여섯 단계를 펼칠 때는 분명히 공력 운용도 자연스럽지 않으실 겁니다.”
그제야 노인은 내 말을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다시 한 번 펼쳐볼 테니 그 부분이 어디어디인지 짚어줄 수 있겠는가?”
내가 열다섯 개의 세부 단계를 구분한 것만으로도, 나를 보는 노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 상태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노인 또한 내가 말한 문제에 대해 일정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저러는 거겠지.
곧바로 노인을 향해 말했다.
“삼, 오, 육, 구, 십이, 십삼. 그 부분들이 바로, 굳이 들어가 있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단계들입니다.”
노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 내가 이미 그 단계들을 모두 파악했을 거라고 어찌 예상했겠는가.
눈치를 보아하니 노인이 모종의 불편함을 느꼈던 단계들 또한 내가 말했던 단계들과 비슷한 모양이다.
“따라서 큰 세 단계를 재정리하면 각각 이렇습니다. 초반 단계는 일, 이, 사. 중반 단계는 칠, 팔, 십. 종반 단계는 십일, 십사, 십오. 이런 식이 됩니다.”
노인을 향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일단 초반 단계만이라도 한 번 펼쳐보시면 제가 드린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단, 초반에서 빠진 삼 단계의 연결 부분이 살짝 빌 텐데, 그 부분은 약간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임시로 창의 기세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며 바로 사 단계로 넘겨보십시오.”
저 창술의 초반 단계는 탐색을 하듯 간결하고 부드럽게 시작된다. 공수와 진퇴의 조화가 중요하다.
잔잔하던 물결이 너울이 되어가며 중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 너울의 힘을 제대로 간직한 채로.
초반의 일이 단계는 그러한 묘리를 잘 담아내고 있다.
한데 삼 단계에서 괜히 숨이 한 번 죽는다.
그러니 사 단계에서 더 무리해서 힘을 끌어 올려야 한다.
이후에 오 단계에서는 과하게 힘을 발산한다.
그래서 초반 단계에서는 삼 단계와 오 단계를 뺀 것이다.
노인이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이 단계를 지난 후, 삼 단계의 빈 부분은 적절히 대처하며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 창술을 수련해 온 노련함이 돋보였다.
노인이 사 단계의 초식을 마쳐갈 무렵, 그를 향해 외쳤다.
“좋습니다! 그대로 기세를 담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오륙 단계를 건너뛰십시오. 그리고 곧바로 칠팔 단계까지 가보십시오!”
노인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지는 게 보였다.
내 의도대로 할 작정이다.
중반 단계는 강맹한 힘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한데 이전에는 오 단계에서 과하게 힘을 발산하는 바람에 육 단계에서 무리하게 힘을 끌어 올려야만 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 단계에서 힘을 소진하지 않았으니, 힘을 끌어올려야할 육 단계가 필요 없다. 그래서 육 단계를 뺀 것이다.
이윽고 칠 단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창의 기세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강맹한 기세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팔 단계에 이르자 기세는 더욱 강렬해졌다.
강맹한 기세로는 팔 단계가 절정이기도 하다.
강맹함도 너무 과하면 절제력을 잃는다.
한데 원래의 구 단계는 과한 강맹함을 쏟아낸다.
그러니 십 단계의 절제도 의미가 반감된다. 즉, 절제를 통한 안정감 또한 반감되는 것이다.
팔 단계가 펼쳐지는 와중에 나는 자연스럽게 십 단계로 넘어가라고 외칠 계획이었다.
한데 그럴 수 없었다.
우르르릉!
분명히 들었다.
미세했지만 우레 소리였다.
창이 마지막 강맹함을 쏟아내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놀랄 일이다.
아까보다 위력이 훨씬 강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헛······!”
노인 또한 놀란 음성을 토해내며 초식 시전을 중지했다.
“이, 이럴 수가······!”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을 쥔 그의 손이 떨리고 있다. 아니, 실은 그의 몸 전체가 떨리는 중이었다.
노인이 그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여전히 놀란 상태라, 멍하니 노인의 시선을 응시했다.
“세상에······!”
재차 본인의 창을 바라보는 노인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는 한동안 침묵만 흘렀다.
이윽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공자, 솔직히 답해 주시오. 이전부터 우리 가문의 창술을 알고 계셨소?”
말투가 공손하게 바뀌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면 아까 내가 초식 수련하는 걸 몇 번 보셨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건 두 번입니다.”
“두 번 만에 그 모든 걸 정확하게 간파했단 말이오? 그걸 어찌 믿으라는······!”
“못 믿으시겠다니 소생은 그럼 이만······.”
내가 돌아서자 뒤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아니, 아니, 아니! 정말로 못 믿는다는 뜻이 아니오. 다만 너무 놀라워서······.”
이에 나는 미소 띤 얼굴로 다시 노인 쪽으로 돌아섰다.
“하면 공자는 혹시 창술 고수시오?”
“창술에도 관심이 많긴 하나, 창술 고수는 아닙니다.”
“공자는 대체 정체가 뭐요? 창술 고수도 아니면서 어떻게······.”
“무공 연구와 무학 이론 연구를 좋아하는, 잠룡관의 일개 계반 관도일 뿐입니다.”
“계반······?”
“예. 잠룡관의 바로 그 꼴찌 반입니다.”
노인의 눈동자가 또다시 커졌다.
나는 빙그레 웃어 보이기만 했다.
절벽 위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