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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66화 (66/416)

내 안에 마교있다 66

천마신교에서의 마지막 시절, 나는 돈이 매우 많았다.

일단 흑풍대 시절부터 모아둔 돈이 적지 않았다.

기본급여 외에도 생명수당 및 위험수당, 임무 성공수당, 높은 상여금 등이 더해져서 전체 급여가 상당히 많았다. 강호 최강으로 꼽히는 소수 최정예 기밀조직다운 대우였다.

적당히 쓸 만큼 써도 돈은 계속 쌓여만 갔다.

사부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흑풍대 시절 이상의 급여를 받았다.

기본적으로 천마의 제자들에게는 품위 유지비 명목으로 용돈이 나온다. 당연히 적지 않은 금액이다.

거기에 성인이면 상당한 수준의 급료까지 추가된다. 천마신교의 주요 전력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가진 돈만으로도 적당히 한 평생 놀고먹을 만큼은 되었다.

한데 차후에 엄청난 돈이 더해졌다.

가정을 꾸리는 대신 천하제일인의 길을 택한 사부님께서, 어느 순간 본인의 사재까지 내 몫으로 넘겨주신 덕분이었다.

천마신교의 수뇌부들은 절대로 천마신교와 연관된 전장에 목돈을 맡기지 않는다.

그들 또한 비자금 같은 게 많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돈을 천마신교와 연관된 전장에 맡길 리가 없는 것이다. 조사하면 금방 다 탄로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륙의 곳곳에 지점을 둔 거대 전장에 주로 맡긴다. 그런 전장일수록 안정성도 높고,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는 경우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면 그 돈을 맨얼굴과 본명을 써가며 맡길까?

당연히 그럴 일이 없다. 이 경우 또한 조사가 들어가면 어느 정도는 탄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피면구와 차명을 쓴다.

거대 전장일수록 그런 쪽으로의 비밀 유지 체계도 잘 되어 있다.

거대 전장을 통해 대륙 어디에서나 금전 출납을 이용하고 싶다면, 보안 단계별로 구분된 똑같은 암호 서류들을 서른 부 가까이 친필로 작성해야 한다.

그것들을 각각 밀봉한 후 건네면 각각의 밀봉 서류들이 모든 지점으로 보내진다. 나머지는 지점이 늘어날 걸 대비하여 본점에서 보관한다.

이후에 돈을 찾으려면 암호들에 대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암호들은 여러 등급별로 설정되어 있어, 고액을 찾을수록 답안을 작성해야 할 암호의 단계도 더 많아지는 식이다.

꼭 본인이 아니더라도, 그 여러 단계의 암호들에 대해 답안만 작성할 수 있으면 누구나 돈을 찾을 수 있다.

무인으로 사는 이상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 경우에는 암호를 알려줘서 자식이나 양도 대상이 그 돈을 찾을 수 있게끔 미리 조치를 해두는 것이다.

수많은 암호 서류를 작성하는 일은 상당히 피곤한 작업인데, 한 번 해놓으면 편리하기에 다들 그렇게 한다.

나는 사부님과 함께 가서 그 작업을 했었다.

전장은 대륙에서 가장 큰 천하전장이었으며, 당연히 둘 다 신분을 감추고 차명을 썼었다.

그때 보니 사부님은 천하전장의 특급 고객 중 한 명이셨다.

본래의 정체가 다름 아닌 천마인데 사재가 좀 많았겠는가?

당시에 천하전장의 최고위 인사가 거의 버선발로 튀어나오다시피 하여 사부님과 나를 극진하게 대우했었다.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사부님은 천하전장에 맡겨뒀던 본인의 모든 사재를 내게 양도하셨다.

어차피 사부님은 천마신교 쪽 전장에도 소량의 재산을 맡겨두셔서, 여생 동안 그것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덕분에 천하전장 특급 고객의 지위도 내게 이양되었다.

특급 고객의 경우에는 본점이든 지점이든 특별히 거래할 수 있는 보안 경로가 따로 존재한다.

애초에 내가 송가장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 재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연승휴의 동굴 덕에 어마어마한 재산이 더 추가된 상태이기도 하지만.

* * *

흑풍대원들에게 있어 역용술은 필수 소양이며, 역용술의 기본은 면구 제작술이다.

환마 장로로부터 강제 주입식 소양교육까지 받았던 나는 당연히 더 높은 수준의 면구 제작술을 익혔다.

이곳저곳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사온 후, 정우립의 허락을 받아 본채 근처의 창고에서 인조면구를 제작했다.

일행들에게는 어쩌다가 정가장의 가전 무예 보완을 돕게 되어 한동안 본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내가 무공 연구를 좋아하고 무학 지식이 밝다는 걸 송유하가 알고 있기에, 핑계를 대기에도 참 좋았다.

참고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송유하의 수련은 단목강이 돕기로 했다. 단목강에게 실전 대비 위주로 수련을 도와달라고 부탁해뒀다.

설렘과, 기쁨과, 모종의 긴장감마저 가득했던 단목강 녀석의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그러다가 둘이 눈이나 안 맞을지 모르겠는데, 그 둘이라면 혹여 눈이 맞아도 걱정할 일이 없다.

둘이 서로를 좋아하는 사이가 되면 응원해주면 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면구는 두 개를 제작했다.

하나는 천하전장의 남창지점에 갈 때 쓸 용도다.

천마신교 시절에 천하전장에 갈 때 썼던 면구와 거의 똑같게 제작할 수 있었다. 당시의 면구도 내 손으로 직접 제작했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마지막 방문 이후에 시간이 삼 년 가까이 흘렀으니, 미세한 차이 정도는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된 것처럼 넘길만하다. 중요한 건 특징이니까.

당시에도 공력을 통해 음성을 변조했었으니, 그 목소리를 다시 내기 위해 연습도 했다.

다른 하나의 면구는 돈을 갚으러 가는 정우립을 따라갈 때 쓸 용도다. 큰 의미가 있는 면구는 아니니 적당한 선에서 대충 만들었다.

* * *

정우립의 부탁에 따라 전표는 세 장으로 나눠서 준비했다.

하나는 흑도 세력에 갚을 금액이고, 또 하나는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 갚을 금액이며, 마지막 하나는 매매금의 나머지 액수에 대한 전표였다.

적잖은 금액을 찾았는데도 여전히 많은 액수가 남아 있어, 나는 앞으로도 특급 고객이다. 사부님이 남겨주신 어마어마한 액수의 사재 덕이다.

참고로 내가 신탁해 놓은 재산이 많았던지라, 삼 년 만에 가보니 이자 수입도 상당히 늘어 있었다. 신탁한 액수도 액수지만, 특급 고객이기에 우대 금리가 적용된 것이다.

차후에 적절한 시점을 봐서 연승휴의 석함에 있는 금은들도 적절히 나눠서 가져다가 맡겨야겠다.

지금은 어차피 면구까지 만들어 천하전장의 남창지점과도 거래를 터놓은 상황이니까.

이자 욕심에 무리해서 보화들까지 싹 다 처분하여 맡길 필요는 없겠지. 그건 무공이 더 강해지고 나서, 더 안전할 때 실행에 옮겨도 될 테니까.

* * *

계약서 작성을 완전히 마무리한 후 정우립에게 전표들을 내밀었다.

내가 내민 전표들을 받아 든 정우립이 손을 덜덜 떨었다.

“이 늙은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이런 큰 금액을 직접 손에 쥐어보기는 처음이라······.”

그를 향해 미소 지어 보인 후에 물었다.

“전에 왔던 자들 쪽에 원금 돌려주러 가셔야 할 테니, 저도 별채에 갔다가 채비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아, 알겠소.”

“반 시진쯤 후에 본채의 창고 안에서 뵙지요.”

“창고 안······?”

“예. 출발 전에 말씀드릴 게 있어서 그럽니다. 장주님께서 변장한 제 모습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실 거고요.”

“알겠소. 그럽시다.”

일행들은 수련 중이라 별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밀봉한 계약서를 봇짐 속에 숨겨 넣은 후, 서둘러 변장을 시작했다.

변장을 완벽하게 마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소요되었다.

비룡검과 소비도, 쇠구슬 등의 무기는 전혀 챙기지 않은 채로 별채를 나서서 본채의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정우립은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창을 챙겨든 정우립이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그가 깜짝 놀란다.

“서, 설마 송 공자······?”

“하하, 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완전히 달라지실 수가 있소? 송 공자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도 전혀 알아볼 수가 없구려······!”

정우립으로서는 당연히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통통한 몸집에, 얼굴도 그에 맞춰 통통하게 바뀐 상태다. 게다가 챙이 넓은 죽립까지 썼다.

“와! 재주도 많으시오.”

내가 변장 하루 이틀 해본 게 아니거든요.

정우립을 향해 웃어 보인 후 말했다.

“며칠간 지켜보니, 정가장의 장원 앞에 감시꾼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에에에?”

정우립이 깜짝 놀랐다.

본인 생각으로는 정가장이 감시받을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 여겼기에 저런 반응이겠지.

“행인인 척하고 있었으나 감시꾼들이 확실합니다. 이인일조로 낮 동안 한 차례 교대하는 느낌이었는데, 대단한 감시는 아니고 장원의 정문으로 누가 출입하는지를 대강 살피는 목적 정도로 보였습니다.”

“아니, 누가, 어째서······!”

“안심하십시오. 대단한 자들도 아니며, 위협이 될 만한 자들도 아닙니다. 보이는 행태로 추정컨대, 동네 건달 똘마니들 정도로 보였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정가장 생활 사흘째부터 알았다.

그래서 그간 정가장을 혼자서 출입하는 경우에는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쪽의 담장을 넘어 다녔다. 그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정황상 정가장의 대지를 노리는 흑도 세력 쪽의 감시꾼들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채무 관계였기에 그들 또한 정가장의 재정 상황을 빤히 알고 있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사정이 어려운 정우립이 혹시 땅을 팔고자하는 움직임은 없는지, 그 일로 그쪽의 관계자들이 드나들지는 않는지를 감시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기미가 보이면 바로 개입하여 본인들이 먼저 매입에 나설 목적으로.

나는 그걸 눈치 챘으니 들키지 않은 채로 매매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거다.

정우립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은 건, 그나 정가장의 식구들이 알게 되면 지나치게 의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자들이 아니니, 오히려 그 상황을 역이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 얘기를 들려주자 정우립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 쓰레기 같은 작자들이 감히!”

“노여우시겠지만 참으십시오. 언제나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이후의 대처입니다.”

“그, 그렇기야 하겠지만······.”

“저들의 감시가 있으니, 제가 이 모습이라도 장주님과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행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몰래 빠져나가서 모르는 사람인 척 장주님의 뒤를 쫓아가겠습니다.”

“어떤 계획이신지······.”

“먼저 장주님이 알고 계시는 그곳의 위치와, 규모와, 책임자와, 중요 인물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려주십시오.”

이후에 나는 정우립이 알려주는 정보들을 들은 후, 내 계획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나는 정우립이 시야에 보이지 않는데도 멀리에서 그의 뒤를 쫓아가는 중이다.

감시하던 두 똘마니 중 하나가 정우립의 뒤를 미행하고 있고, 나는 그 똘마니를 멀리에서 미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흑풍대 출신의 미행실력이니 저런 똘마니 따위가 알아챌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식으로 한동안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파양현의 읍내였다.

정가장에서는 가장 가까운 읍내이며, 속보로 걸었을 때 반 시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나도 이전에 면구 제작을 위한 재료들을 사기 위해 와본 적이 있었다.

번화가의 이면골목 중에서도 뒷골목으로 들어선 정우립이 한산한 거리의 일층 건물로 들어갔다.

<철심 흥신소>

현판명이 그러했다.

철심은 철과 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문짝에는 문구가 적힌 종이 두 개가 붙어 있었다.

‘곤란한 일 해결해 드립니다.’

‘금전 문제 상담 환영.’

문밖에 두 놈이 앉아서 껄렁대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리저리 침을 탁탁, 아니 찍찍 쏘아가며.

나는 길가다 쉬는 행인처럼 근처의 적당한 곳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척했다.

그러면서 정우립이 들어선 건물 쪽으로 청력을 집중했다.

안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이 있으면 역정을 내는 듯하며 큰 소리를 내라고 했었다.

방음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에 일단 그렇게 주문한 거였다.

역시나 방음이 일정 수준은 되어 있는지, 내가 청력을 집중했는데도 평상적인 성량의 대화 소리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우립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내가 직접 원금을 갚겠다고 왔는데 모레 다시 오라니!”

정우립의 고함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금액이 커서 여기 소장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한데 그 소장이 지금 자리를 비워서 처리가 곤란하다고?”

“하면 모레 다시 왔을 때는 그만큼 이자도 더 늘어 있을 게 아닌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냔 말일세!”

상황은 대강 알 것 같다.

웃음이 난다.

어느 동네든 하여간 양아치 새끼들은 하는 짓거리가 다 거기서 그 수준이구나. 하긴 그러니 양아치지.

나는 철심 흥신소장이 저 안에 있을 가능성이 구 할 이상이라고 본다. 보고를 받은 후 없는 척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왠지 이럴 것 같아서 정우립을 따라 나서겠다고 했던 것이고, 변장한 채로 정우립과 모르는 사이인 척 꾸미기까지 한 것이다.

흐흐. 귀여운 새끼들 같으니.

이제부터 이 몸께서 개입할 텐데, 부디 적당히 하자, 얘들아.

내가 피와 폭력을 좋아하긴 해도, 그건 싸울만한 상대와 싸울 때나 좋은 거야.

너희 같은 잔챙이들 혼쭐내주는 일로는 눈곱만큼도 성취감 같은 게 없어.

너희들은 내게 있어 그냥 날벌레 같은 존재거든.

잡아 죽이자니 귀찮고 냅두자니 짜증나는, 그런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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