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74
단목강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의 시선에 담겨 있는 감정들이 적어도 호감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뭐, 애들의 저런 시선 따위는 딱히 상관없다.
다만 제갈수광의 의도 자체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제갈수광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관주 육남춘의 재가가 있었을 것이다.
안전을 위해 내 힘이 필요했을 수는 있다.
그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면 엄상평과 함께 다른 갑반 관도 한 명을 예비 명단에 넣고, 나는 그냥 수행 부관 역할로만 끼워 넣어도 될 일이었다.
한데 왜 굳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여 분란의 소지를 만들었단 말인가.
이러면 제갈수광 본인도, 관주 육남춘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텐데.
“어떻게 계반 관도인 송유겸 공자가 예비 명단에 포함될 수 있었던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까의 그 관도가 다시금 그렇게 말하자 제갈수광이 그를 향해 대꾸했다.
“주경명의 의문제기가 합당하다고 판단되니 그 이유를 설명해주겠다.”
제갈수광에게 질문한 관도의 이름이 주경명이다.
갑반에 오 년차이며, 안휘에 있는 합비주가의 직계다.
천마신교의 정보에도 나와 있는 관도이며, 제일서고의 관도명부에도 나와 있었다.
참고로 잘 생겼다. 선이 고운 미남이다.
“예비 명단에 포함되는 관도의 선발 원칙은 첫 번째가 지역별 형평의 원칙이다. 이번에 정식으로 선발된 너희들은 모두 안휘, 절강, 복건의 세 지역 출신이다. 따라서 예비 인원은 지역별 형평의 원칙에 따라 광동과 강서 출신의 관도가 우선이었다.”
엄상평은 광동 출신이며 나는 강서 출신이다.
일단 제갈수광이 말한 지역별 형평의 원칙에는 맞는 셈이다.
“둘째로 고려되는 요소는 동부 예선의 성적이다. 십육강 안에 든 관도가 우선인데, 광동 출신의 엄상평은 그 요건에 부합되어 곧바로 차출된 것이다. 그러나 강서 출신 중에는 십육강에 든 관도가 없었고 심지어는 삼십이강 안에 든 관도도 없었다. 예선에서 차출 대상으로 고려되는 순위는 삼십이강까지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강서 무림 출신 중에서는 십육강은커녕 삼십이강에 든 관도조차 없었다.
왠지 내가 다 창피해진다.
강서 꼴이 이게 뭐냐.
“이런 경우가 많지 않기에 다들 잘 모르는 규정이 있는데, 그 경우에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요소는 반의 서열이 아니라 잠룡대전에서의 성과다. 즉, 동부 예선에서의 성적 다음으로 고려되는 건 소규모 비무대회에서의 성과라는 뜻이다.”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어떤 소규모 비무대회든 우승자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며, 우승자가 없을 경우에는 준우승자와 삼사 위까지로 내려간다. 우승자가 여럿일 경우에는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비무대회의 우승자가 우선권을 갖는다. 참고로 이번에 열린 여러 소규모 비무대회들 중에 강서 출신의 우승자는 송유겸뿐이었다. 이쯤이면 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예, 답이 되었습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교관님.”
주경명이 깔끔하게 인정하듯 대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딱히 예비 명단에 계반 관도가 포함된 것을 문제 삼으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합당한 이유로 포함된 건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말에 관도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수광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주경명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송유겸 공자도 들어서 알겠지만 계반이라고 무시할 의도로 꺼낸 말이 아니었소.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소.”
“오해 같은 거 없소.”
주경명과 내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제갈수광이 모든 관도들을 한 차례 둘러보며 말했다.
“또 궁금한 게 있는 사람은 질문하도록. 되도록 내가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이기를 바란다.”
딱히 입을 여는 관도가 없었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다. 모두들 실력이 뛰어나니 신법 펼치는 속도도 빠를 것이다. 이동 중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즉시 내게 얘기해 주도록.”
곧 모두가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 * *
우리의 일행 구성은 총 스무 명이다.
인솔 교관은 제갈수광을 포함해서 네 명이다. 모두가 일류의 중후반 내지는 후반이며, 제갈수광은 절정이다.
거기에 동부지맹의 정예인 동검대 소속의 무인들 여섯 명이 지원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가 일류의 초중반 이상이다.
관도는 나를 포함해서 열 명이다.
나만 계반이고 나머지 아홉 명은 갑반이다.
갑반 밭이다. 잠룡관에서 깨어난 후로 이렇게 많은 수의 갑반 관도들과 어울려보기는 처음이다.
본선에 진출한 인원들인 만큼 이들은 갑반 관도들 중에서도 최상위의 실력자들이다.
모두가 일류의 중반 이상이며, 나와 함께 예비 명단에 포함된 엄상평은 일류의 중반에 살짝 못 미치는 경지로 보인다.
일행들 모두가 그런 경지들이니 다 함께 신법을 펼치는데도 속도가 매우 빨랐다.
우리 조원들과 함께 신법을 펼칠 때보다 두 배 이상 빠른 것 같다.
단목강은 나와 함께 후미에서 달리며 전음으로 관도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중이다.
모두가 동부지맹 잠룡관의 내로라하는 관도들인 만큼, 나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과 비교하며 듣고 있다.
앞으로 한동안 함께 해야 할 일행들이기도 하니 이왕이면 자세히 알아둘 필요도 있다.
[엄상평 공자는 육 년차요. 광동의 매주에 있는 엄가장 출신인데, 어렸을 때 광동의 정호문의 제자로 들어갔다고 하오. 정호문은 남천검문과 나름의 경쟁관계에 있는 중대 규모의 문파요. 엄 공자는 도법을 익혔소.]
경쟁 관계에 있다는 남천검문은 소충광이 장문제자로 있는 문파다.
엄상평은 다부진 체격에 피부가 약간 검은 편이다.
[엄 공자의 옆에서 달리고 있는 여길상 공자도 육 년차고 안휘에 있는 여씨세가의 장남이오. 이번 예선에서 팔 위를 차지했소. 여 공자도 도법을 익혔소.]
여길상은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
비무대회에서 도법 펼치는 걸 봤는데, 덩치가 큰 만큼 힘이 느껴지는 도법이었다.
[그 앞줄에서 달리고 있는 형가섭 공자도 육 년차고, 복건의 무이문 출신이오. 이번 예선에서 육 위를 차지했소.]
형가섭은 키가 크고 손발도 길다. 얼굴도 길다.
비무대회 때 봤는데 보통의 장검보다 더 긴 장검을 썼다.
팔의 길이와 검의 길이를 잘 이용하는 검법을 구사했다.
참고로 팔강에 든 인원들 중에서 사강에 오르지 못한 인원들도 모두 순위 결정전을 치렀다. 그 순위 결정전 후에 삼사위전, 결승전이 치러졌었다.
그래서 단목강이 순위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형 공자의 옆에서 달리고 있는 인물은 목태월 공자로, 절강목가의 장남이오. 그도 육 년차며, 이번 예선에서는 사 위였소.]
목태월은 키가 평균보다 작고 약간 뚱뚱한 편이다.
비무대회 때 봤는데 변칙적인 수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검법을 썼다. 실전 감각과 응용력이 제법인 느낌이었다.
[그 앞에서 달리고 있는 인물은 아까 교관님께 질문을 했던 주경명 공자요. 안휘 쪽에서 두뇌가 좋기로 유명한 합비주가 출신이오. 뛰어난 분석력과 상황 판단력으로 정교한 검법을 구사하오. 오 년차며, 이번 예선에서 삼 위를 차지했소.]
주경명은 동검대의 무사와 함께 달리는 중이다.
[주 공자는 잘생겨서 여관도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소. 물론 나는 송 공자가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하하. 뭘 또 그런 말씀을. 조장님이야말로 훤칠한 미남 아니십니까.]
단목강이 민망하다는 듯 웃더니 전음을 이어갔다.
[나란히 달리고 있는 여관도들 두 명 중에서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쪽이 사옥연 소저요. 안휘의 사가장 출신이오. 오 년차며, 이번 예선에서 칠 위를 차지했소.]
두 여인 중에 상대적으로 키가 작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보통은 된다. 옆의 여인이 살짝 큰 편일 뿐이다.
잠룡삼화에 들 정도는 아니나 내가 보기에 사옥연도 충분히 미인이었다.
안휘의 사가장에 대해서는 나 또한 천마신교 시절에 접했던 정보가 있다.
사가장은 세력 확장에 욕심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항상 일정 이상의 고수들을 배출해온 가문이다. 사가장 출신의 무인들은 특별한 수련법으로 다방면의 무기술에 능통하다고 한다.
[사 소저의 경우에는 검과 편을 잘 다룬다는 것으로 알고 있소. 비무대회에서는 편은 쓰지 않고 검만 썼소. 내 팔강전 상대이기도 했는데, 중원의 일반적인 검법과는 약간 달라서 여러모로 까다로운 상대였소.]
편은 채찍이다.
나도 비무대회에서 사옥연의 검법을 봤다.
단목강의 말마따나 중원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무예와는 궤가 약간 달랐다.
무공의 본류를 알기가 좀 어렵긴 한데, 천마신교의 정보에 따르면 군부의 무예가 섞였다고 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고, 무공 자체가 실전에 가까운 무공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옥연 소저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 소저가 바로 그 유명한 강하령 소저요. 사 년차며, 이번 예선에서는 오 위를 차지했소. 아시다시피 사옥연 소저와 함께 우리 잠룡관의 이봉으로 통하고 있으며, 우리의 누이들과 함께 잠룡삼화의 일인이지요.]
이봉이라는 건 우리 잠룡관에서 무공이 가장 강한 두 명의 여관도라는 뜻이며, 잠룡삼화라는 건 우리 잠룡관에서 미모가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여관도라는 뜻이다.
강하령은 우리 잠룡관에서 그 교집합에 속한 유일한 여관도다.
비무대회 때 강하령을 멀리에서 보긴 했으나, 이렇듯 가까운 곳에서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과연 잠룡삼화다.
단목지와 송유하처럼 오로지 미모에서만 전해지는 특유의 신비로운 존재감 같은 게 있다.
단목지는 따뜻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이며 송유하는 무뚝뚝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보니 강하령은 차가우면서 신비로운 느낌이다.
강하령은 불교의 사대 명산인 보타산 출신이다.
보타산에는 수많은 사찰이 존재하는데, 그 안에는 유명한 무림세력도 한 곳 있다.
보타문이다.
소림처럼 승려들로 구성된 문파이나, 특이하게도 하나의 무력 조직만큼은 승려가 아닌 이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다.
검각이다.
게다가 검각의 구성원은 거의 여인들이다.
그 검각을 따로 남해검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해검각의 대표고수는 검각주로 불리며, 그 진전 또한 대를 이어 여인에게 전승된다.
그녀들의 검술이 매우 뛰어나기에 대대로 검각주들은 검후라는 별호로도 불린다.
강하령은 현 검후의 제자다.
성격은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적어도 미모와 실력과 배경까지 두루두루 갖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나저나 미모와 실력과 배경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은무와 장우혜가 떠오른다.
걔들 또한 그 삼박자를 두루 갖춘 애들인데, 생각해 보니 매우 친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걔들의 본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보여 달라고 부탁하면 결국 보여 주긴 할 텐데, 하도 요망한 것들이라 때는 이때다 하고 나를 열심히 놀려대겠지?
부탁하지 말자.
언젠가는 보게 되겠지, 뭐.
단목강의 전음이 이어졌다.
[관도들 중에서 맨 앞에서 달리고 있는 인물 또한 워낙 유명 인이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우승한 황산파의 종금무 공자요.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작년에 십육강에서 그를 만나서 팔강에도 못 오른 채로 탈락했었소. 올해에는 결승에서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하하.]
단목강을 향해 빙그레 웃어줬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나는 단목강이 이번 예선전에서 실력을 감췄음을 알고 있다. 그의 비무를 모두 관전했기에 아는 것이다.
태화지부의 사건을 겪으며 단목강은 한 차례 더 성장했었다.
이후에 정가장에서 합숙을 하면서 그는 태화지부에서의 경험을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한데 결승전에서 종금무를 상대하면서도 그 성장치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미 통합 잠룡대전의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라서 그랬을 것이다. 즉, 본선인 통합 잠룡대전을 위해 정보를 최대한 감추려 한 것이다.
물론 상대인 종금무 또한 실력을 적절히 감추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볼 때 단목강만큼 감춘 느낌은 아니었다.
가만 보면 단목강 얘도 보통이 아니란 말이지.
가뜩이나 종금무는 육 년차인데 단목강은 사 년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실력차가 커 보이지 않았으니, 단목강의 잠재력이 더 많다고 봐야 한다.
* * *
일행은 점심 식사를 위해 객잔에 도착하기 전까지 단 한 차례의 휴식만 잠시 취했다.
그 정도로 모두의 신법이 뛰어났다. 보아하니 다들 호흡 관리나 공력 조절도 능숙했다.
점심 식사 후에는 한식경(30분가량) 정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한데 그 와중에도 쓸데없이 서성거리거나 잡다한 대화를 나누는 관도들이 없었다.
측간 등에 빠르게 다녀온 후, 모두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알아서 운기를 취하는 모습이었다.
다들 뛰어난 애들이라 그런지 척척 알아서 한다.
다시 출발하여 한 시진 남짓 달려서 나루터에 도착했다.
강서의 동부지맹에서 호북의 무창에 있는 본맹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포양호를 통해 구강현을 지나 장강을 이용하는 수로가 있고, 포양호의 서쪽까지만 뱃길을 이용했다가 영수현에서 북서부로 향하여 산맥을 넘는 육로가 있다.
두 경로 모두 약간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수로로 가면 수로맹의 수적들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고, 육로로 가면 산맥을 넘을 때 산채들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다.
어느 경로를 이용하든 운이 좋으면 탈 없이 무창에 도착할 수 있고, 운이 나쁘면 도적들과 조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무림맹의 권고대로 수로를 이용하여 무창으로 향한다는 모양이다. 무림맹에서는 보다 안전한 쪽이 수로라고 판단한 것이다.
* * *
동부지맹에서 준비한 배를 타고 삼박사일간 이동하여 포양호 최북단의 호구현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구현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무림맹 본맹에서 보내준 배를 타고 장강을 통해 다시 이동하게 된다.
삼박사일간 배 안에서 함께 생활했음에도 나는 아직 관도들과 서먹서먹한 상태다.
애들이 딱히 나를 왕따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애들 자체가 여럿이 모여서 왁자지껄 친목을 나누는 모습이 없었다. 그저 필요하면 두세 명씩 모여서 잠깐씩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흩어져서 각자의 할 일을 하는 식이었다.
배 안에서 마주치는 경우에도 다들 내가 계반이라고 무시하는 기색이 없었다.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딱히 그런 기색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원래 다들 저런 성향인 건지, 아니면 내가 태화지부에서 활약했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아이들까지 겪어보니 백도의 애새끼들에 대해 대충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실력이 어설픈 애들일수록 철없이 까부는 빈도가 증가하고, 실력이 갖춰진 애들일수록 그러는 빈도가 확 줄어든다.
적어도 동부지맹에서 지금껏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