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79
아까 얼핏 보기에도 그녀의 창술은 실전에 매우 특화된 군부의 창술이었다.
군부에 연원을 둔 창술은 양가창법과 악가창법이 유명하다.
악미조라는 여인은 내 또래의 여인임에도 창술의 고수인데다가 북부지맹의 대표로 선발된 관도다. 그렇기에 그 두 가문의 후예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겠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성이 악씨라면 산동악가일 수밖에 없다.
“창술의 수준이 높다 싶었더니 역시나 악가였군.”
달리는 와중에 제갈수광이 그렇게 말하자 악미조가 대꾸했다.
“네.”
무신으로 추앙받는 악비 장군의 후예를 자처하는 세가가 바로 산동의 악가다.
군부의 무예를 대표하는 게 창술이기에 산동악가도 창술로 일가를 이루었다. 창술 외에 권법도 유명하다.
앞에서 달리며 제갈수광이 말했다.
“나는 동부지맹의 교관인 제갈수광이다.”
악미조가 살짝 놀란 듯 대꾸했다.
“성이 제갈이시면······.”
제갈이라는 성을 쓰면서 저 정도의 고수라면 당연히 제갈세가의 후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 유명한 제갈세가의 후예를 만날 줄은 몰랐을 테니 놀란 것이고.
제갈수광이 짧게 대꾸했다.
“방계야.”
악미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옆에서 달리고 있는 나를 바라봤다.
그녀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동부지맹의 잠룡관도인 송유겸이라 하오. 출신은 보잘것없어서 말씀을 드려도 모를 것이오.”
내 소개를 들은 악미조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강탄술과 비도술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움직임 자체가 보통이 아니시던데······.”
그 정도면 제대로 배운 움직임 같은데 출신이 보잘것없다고 하니 놀란 것이다.
“잠룡관에 들어와서 열심히 배우고 익히다 보니.”
그 정도만 말해주고 대충 미소로 때웠다.
물론 악미조의 표정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었지만.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아까 말씀드린 일행들은 선실에서 승객들을 지키다가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선실의 후면부에는 이미 불이 붙은 상태에요. 선원들이 이용하는 이쪽 통로를 이용하는 게 안전할 거예요.”
악미조가 가리키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자 좁은 통로가 나왔다. 통로에는 연기가 조금 차 있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악미조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달려, 이윽고 하나의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안쪽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등이 들려오는 중이다.
우리는 문 앞까지 조용히 다가간 후, 그 앞에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이윽고 제갈수광이 나를 향해 손짓하기에 나는 문짝을 발로 강하게 찼다.
콰곽!
문짝이 떨어져나가며 틈이 벌어지자마자 제갈수광이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 뒤를 악미조가 따랐다.
나 또한 안으로 들어서서 빠르게 안쪽을 살폈다.
널찍한 공간에 열댓 명 남짓의 복면인들이 보였다.
두 사람이 다른 선실로 통하는 입구 쪽에 선 채로 복면인들과 대적하는 중이었다. 장년인 한 명과 청년 한 명이었다.
그들의 먼 뒤쪽에는 승객으로 보이는 일반인들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승객들의 뒤쪽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들어오고 있어, 몇 사람은 계속 기침을 하는 중이었다.
승객들의 바로 앞에는 부상을 당한 미소녀 한 명이 통로의 벽에 기댄 채 한손을 옆구리에 대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검을 쥔 채였다.
제갈수광이 쌍검을 휘두르며 후방에서 복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즉시 쇠구슬을 튕기며 그를 지원했다.
그 와중에도 악미조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장창의 중간 부분을 잡고 내력을 주입하는 모습이었는데, 뭘 하려는 건지 의아했다.
한데 그 직후, ‘찰칵’하고 장창의 중간 부분이 분리되는 게 아닌가.
장창이 단창 하나와 단봉 하나로 분리된 것이다.
허어! 그게 그렇게 분리해서도 쓸 수 있는 무기였어?
이곳은 실내이고 천장도 높지 않기에 장창을 쓰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분리한 모양이다.
곧바로 악미조도 단창과 단봉을 휘두르며 전투에 가세했다.
우리의 가세로 인해 그곳에 있던 복면인들은 오래지 않아 정리되었다.
정리가 되자마자 악미조가 빠르게 필요한 소개를 했다.
“이분은 동부지맹의 제갈수광 교관님이세요. 그리고 이분은 우리 북부지맹의 차우기 교관님이세요.”
차우기는 선실의 입구에 서서 복면인들과 대적하던 두 사람 중 장년인이었다. 북검대의 복장이 아니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북부지맹의 교관이었던 것이다.
그는 여기저기 잔 상처들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다행히 중상은 없어 보였다.
“지금은 여러모로 다급한 상황이니 인사는 나중에 나눕시다. 일단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우리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중요하오.”
제갈수광의 말에 차우기가 얼른 대꾸했다.
“알겠소.”
제갈수광이 선두에서 승객들을 안내했다.
제갈수광과 함께 선봉에 선 인물은 차우기와 함께 싸우던 청년이었다.
나는 제갈수광의 부탁에 따라 승객들의 후미를 맡았다.
후미에는 북부지맹의 교관인 차우기, 악미조, 나 그리고 부상당한 미소녀가 위치했다.
악미조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부상당한 미소녀를 향해 물었다.
“모용 소저, 괜찮은 거예요? 생각보다 깊게 베인 것 같은데.”
“네, 버틸만해요. 대충이나마 응급처치를 해서.”
아, 이 소녀는 모용세가였구나.
강호의 내로라하는 문파나 세가들이 많이 포함된 지맹은 서부지맹과 북부지맹이다.
그런 북부지맹 잠룡관에서 선발된 관도들이다보니 내가 그 유명한 산동악가 후손에, 더 유명한 모용세가의 후손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모용세가는 오대세가에도 자주 들고, 그렇지 않은 시기에도 최소 팔대세가 안에는 무조건 드는 유력 세가다. 그런 만큼 천마신교에서도 공들여 정보를 수집하는 세가이기도 하다.
모용세가의 후손 중에 나보다 약간 어린 나이의 미소녀라면, 그녀가 아마도 모용리가 아닐까 싶다.
일행의 맨 뒤에서 달리고 있는 게 나와 악미조였다.
달리던 중에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악 소저, 내게는 우리 교관님께서 따로 내려준 임무가 있소. 그 임무를 수행하고 가야 하니 지금 조용히 이탈하겠소.]
이런 식의 전투 중에 아무 말 없이 이탈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하니 악미조에게 말한 것이다.
[네에? 송 공자님 혼자서요?]
[그렇소. 길게 설명은 못 드리오. 내가 단독으로 수행하는 특수 임무요.]
놀람과 염려가 가득한 표정이긴 했으나, 악미조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범상치 않은 실력이시니 단독 임무도 이해는 돼요. 그래도 모쪼록 조심하세요.]
후미에서 빠져 구석진 곳의 어둠속에 몸을 숨겼다.
그 후, 천에 감싼 채로 등에 메고 있던 작살을 풀었다.
은룡삭으로 줄을 교체해뒀던 바로 그 작살이다.
언제든 작살을 발사할 수 있게끔 장착하여 왼 손에 들고는 오른손에는 분수자를 들었다.
한 차례 주변의 기척을 감지한 후, 은밀하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로채의 수적들이 까다로운 이유는 그들이 뛰어난 잠수 능력을 바탕으로 빼어난 수중전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훨씬 잘 싸우는 자들이기에 그들은 굳이 선상전만 고집하지 않는다. 선상전이 불리할 것 같으면 곧바로 수중전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배를 침몰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수적들은 배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이다.
어느 부분을 해체시키거나 파손시키는 게 적절한지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배가 침몰하면 수중전 훈련을 따로 받지 않은 이상 일류고수도 힘을 제대로 못 쓴다.
한데 무인들이 따로 수중전 훈련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반대로 수적들은 수중전에 특화되어 있다.
그렇기에 물속에서는 상대적인 전투력의 우열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수적들이 이토록 까다롭기에 장강을 오가는 대부분의 배들이 통행세를 내고 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어두운 물속이라서 어느 정도 근접한 거리가 아니면 기척을 감지하기가 어렵다.
나는 안력을 최대한으로 돋운 채 어두운 물속을 조용히 헤엄쳐 무림맹의 범선 쪽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범선의 선미 바닥 쪽에 붙어 있는 몇 개의 인영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수적들이 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놈들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라, 잠시 수면으로 얼굴만 내밀어서 한 차례 호흡을 했다.
이후에는 작정하고 그들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놈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신형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수적들이 한손에는 작업 도구를 들고 있고, 한 손에는 분수도나 분수자 등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다가오는 나를 향해 수적들 중 한 놈이 작살을 발사했다.
나는 몸을 비틀어 그 작살을 피함과 동시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분수자에 내공을 주입하여 작살의 줄을 끊어버렸다.
놈들의 눈동자가 살짝 커지는 게 보인다.
내 깔끔한 대응을 확인하고는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이다.
조금 더 근접하자 놈들 중에서 세 놈이 동시에 나를 에워싸려는 듯 움직였다.
수중에서 수적들에게 에워싸이는 건 위험하다.
나는 에워싸이기 전에 한 놈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우측에서 다가오는 놈이었다.
내 목표가 된 놈이 분수도를 휘둘렀다.
놈의 분수도를 막은 후, 곧바로 내가 쥐고 있는 분수자를 놈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놈의 눈동자가 부릅떠지는 게 보인다.
아무리 내가 분수자를 사용하고 있어도 물속에서 이렇게 빠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게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당연히 이해가 안 가겠지.
순간적으로 천섬무를 운용하여 찔러넣은 거니까.
놈의 가슴에서 핏물이 물감처럼 번져나왔다.
놈이 그대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후방과 좌측 후방에서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신형을 틀었다.
놈들 중 한 명은 작살을 들고 있었는데, 아까의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섣불리 발사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둘 중에서 작살을 들고 있는 놈에게 먼저 다가갔다.
놈이 나를 향해 분수자를 찔러오기에 나도 분수자를 이용하여 공격을 쳐냈다. 그러자마자 놈이 내 정면을 향해 작살을 발사했다.
분수자로 막기에는 늦었다.
게다가 근접한 거리다.
왼손에 들고 있던 작살대를 이용하여 놈의 작살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천섬무까지 펼쳤다.
툭!
상대의 작살을 쳐냄과 동시에 나도 작살을 발사했다.
애초에 내 작살을 발사하기에 용이하게끔 상대의 작살을 최소한만 쳐낸 덕분이기도 했다.
은룡삭의 강한 탄성에 의해 작살이 매우 빠르게 튕겨졌다.
작살이 놈의 오른쪽 가슴께를 순식간에 관통했다.
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내 작살의 성능 때문에 놀란 것이다.
나는 작살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놈의 가슴께를 발로 강하게 밀어냈다.
발바닥으로 밀어내는 그 순간에 천섬무를 운용하니, 그 반동에 의해 다른 수적에게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약간의 거리가 있었음에도 내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터라, 놈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뒤늦게 분수도를 휘둘러오고 있지만, 나는 이미 놈의 품안으로 파고든 후였다.
그대로 내 분수자를 놈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
이후에는 곧바로 놈의 한쪽 어깨를 밟으며 수면 쪽으로 부상했다.
“푸허! 허억! 허억!”
숨이 매우 가빴지만 최대한 호흡 소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스읍!”
이후에 곧바로 얼굴을 물속으로 집어넣으며 강물 안쪽의 상황을 확인했다.
상대는 수적들이다.
내 이러한 틈을 놓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작살 하나가 날아오고 있다.
곧바로 분수자를 이용하여 그 작살을 쳐내고는 연속된 동작으로 작살의 줄을 끊었다.
이후에 또다시 물속을 한 차례 확인하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후우! 후우우! 스으읍!”
호흡을 고른 후 다시금 물속으로 잠수하여 수적들이 있는 곳으로 헤엄쳐갔다. 그 와중에도 작살을 다시 장착하는 걸 잊지 않았다.
물속에서 천섬무를 사용해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물의 압력은 대기와는 완전히 다르기에 어느 정도는 무리가 올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그래서 천섬무를 부분적으로 최소한만 사용했는데도 내 예상보다 더 무리가 오고 있다.
천섬무의 속도로 인해 영향을 받은 부위의 피부와 근육이 타박상을 입은 것처럼 아프다. 물의 압력 때문이다.
웬만하면 운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이나, 물속에서의 상황이라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최대한 조심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다시금 선미 아래쪽으로 가보니 아직도 네 놈이 남아 있었다.
두 놈을 처치하고 나자, 나머지 두 놈은 하류 쪽으로 헤엄쳐서 빠르게 도망쳤다.
선미에 있던 수적들을 정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우리가 타고 온 범선이 제법 큰 규모이기에, 이제부터는 선체의 중간 부분과 선수 쪽도 확인해야 한다.
오랜만에 수중전을 하려니 힘들어 죽겠다.
한 차례 떠올라서 호흡을 충분히 고른 후, 다시금 잠수하여 선체의 중간으로 이동했다.
나는 분수자와 작살을 한 손에 모두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소비도를 하나 빼든 상태다.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그 소비도를 선체에 적절히 박아 넣으며 나아가는 중이다.
한데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상류 쪽에서 수적의 시체가 떠내려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 구뿐이었지만, 이어서 네 구가 더 떠내려 왔다.
누군가가 선수 쪽에서 작업하던 수적들을 죽인 것이다.
계속 나아가다 보니 다섯 개의 인영이 보였다.
수적들이 아니었다.
익숙한 인영들이었다.
제갈수광, 단목강, 주경명, 강하령, 사옥연이었다.
나를 발견하자 제갈수광이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일단 수면 위로 올라가자는 뜻이다.
나를 포함해서 여섯 개의 머리가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
“헉! 허억! 헉!”
여기저기에서 가쁘게 호흡 고르는 소리들이 들리는 가운데,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려왔다.
[선미 쪽에는 수적들이 없던가?]
[네, 딱히.]
내가 곧바로 대꾸했음에도 제갈수광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