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97화 (97/416)

내 안에 마교있다 97

“그렇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주심이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저, 정말 계반이란 말인가? 아니, 통합 잠룡대전의 사강에까지 진출한데다가, 심지어는 강력한 우승 후보까지 꺾고 올라온 자네가 계반이라고?”

믿기 어렵다는 투다.

나는 씩 웃으며 주심을 향해 당당하게 대꾸해줬다.

“확실합니다. 저는 동부지맹의 자랑스러운 계반입니다.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푸하하하하하!”

내 목소리를 들은 근처의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들 재미있다는 분위기다.

반의 개념은 각 지맹이 모두 같기에, 관중들 또한 계반이 어떤 반인지를 모를 리 없는 것이다.

“허허허! 자랑스러운 계반이라니.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니. 허허허헛!”

주심도 웃었다.

어이는 없지만 흥미롭다는 느낌의 웃음이다.

이윽고 주심이 고개를 들더니 관중들을 향해 외쳤다.

“에······, 확인을 마쳤소! 송유겸 공자는 정말로 계반이오! 동부지맹의 자랑스러운 계반이라고 밝혔소!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하오!”

멀리에 있는 관중들은 내 말을 제대로 못 들었을 테니, 공력을 실어 외쳐서 확실하게 알린 것이다.

“푸하하하하하하!”

관중석 전체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에는 여러 외침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푸핫! 통합 잠룡대전의 사강 실력자가 계반이라니!”

“원래 갑반에 있었는데 징계 같은 걸로 계반으로 내려 보낸 거 아냐?”

“아니면 동부지맹 잠룡관은 갑반부터 계반까지 뺑뺑이라도 돌려서 나누는 거야?”

“그거야말로 공평한 교육권 보장이네? 푸하하!”

“동부지맹 잠룡관은 해명하라!”

“푸하하하! 해명하라!”

다들 농담으로 외치는 소리들이다.

주심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런 소리들도 잦아들었다.

주심이 다시 외쳤다.

“어쨌거나 소개를 이어가겠소! 아마도 계반 관도 최초로 통합 잠룡대전의 사강에 진출한 게 확실한, 동부지맹의 삼 년차, 송유겸 공자요! 응원의 박수, 부탁드리겠소!”

계반에 소속된 관도 중에는 최초라는 뜻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선의림을 소개한 직후의 환호성과 비슷한 크기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방을 향해 차례로 포권을 해보인 후, 선의림과 마주서서 상호 예를 취했다.

우리가 각자의 시작 지점에 서자, 주심이 곧바로 외쳤다.

“선의림 대 송유겸! 사강 두 번째 시합, 시작!”

* * *

상대인 송유겸의 시합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삼십이강부터 대진표를 보니 어차피 자신은 팔강에서 또 다른 우승 후보인 당효광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당효광은 만만치 않은 실력자라, 일단 그와의 팔강전에만 모든 초점을 맞췄었다.

그리고 결국 어제, 장기전 끝에 당효광에게 승리했다.

다음 시합인 풍세학과 송유겸의 대결은 보지 않았었다.

송유겸이 십육강까지 돌풍을 일으켰다고는 하나, 어차피 풍세학이 이길 게 빤하기 때문이었다. 즉, 자신의 사강 상대는 풍세학일 수밖에 없었다.

풍세학과의 사강에 대비하기 위해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서 운기조식을 취해 공력을 회복하고, 휴식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했었다.

틈틈이 머릿속으로 풍세학과의 가상 대결 또한 수도 없이 펼쳤다.

풍세학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서부 예선의 결승에서도 만난 사이니까.

그렇듯 계속 풍세학에 대한 대비만 하고 있었는데 웬 걸, 송유겸이 풍세학을 꺾었다는 거다.

그 얘길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즉시 송유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랑 붙을 때는 매우 평범한 수준의 권법만 썼소. 체력이 강하더구려. 한데 풍세학 공자와 대결하는 걸 보니, 나를 상대할 때는 실력을 감추려고 그랬던 모양이오.」

십육강에서 송유겸과 붙었던 곤륜 제자 상평운의 평가였다.

이후에 풍세학을 찾아가려 했으나 다른 관도들이 말렸다. 풍세학은 충격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있는데,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단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기에 방해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력 분석을 맡은 교관들한테서 정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오늘 아침, 풍세학이 찾아와서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나 또한 수많은 이들과 비무를 해봤으나, 그런 식으로 싸우는 상대는 처음이었소. 그래서 당황했고, 한 번 당황한 후부터는 뭔가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최소한의 대처만 하다가 순식간에 졌소. 물론 처음에 약간 방심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겠고.」

「뭐라고 해야 할까, 싸우는 방식이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느낌과는 궤가 달랐소. 눈으로 보고 감탄할 만큼 대단한 면모 같은 건 없는데, 실제로 대처해 보면 상당히 불편하오.」

「우리처럼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느낌이라기보다는, 길거리 싸움꾼이 무공을 펼치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게 무시하는 의미의 말이 아니오. 싸움을 매우 잘하는 느낌이라,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요. 그는 결코 무시할 상대가 아니오. 한 번 기세를 내주고 나면 대처하기도 어렵고 헤어 나오기도 어렵소. 그때의 압박감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오.」

「참! 그리고 한 수, 한 수를 펼칠 때마다 초속과 종속이 매우 다른 느낌이었소. 가령 권을 뻗는 경우에도 뻗기 시작한 순간에는 그다지 빨라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 대처하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고 할까? 가속도가 상당한 것 같소.」

풍세학이 해줬던 말들을 되새기며 상대인 송유겸을 바라보았다.

같은 남자가 봐도 얼굴은 참 잘 생겼다. 부러울 정도다.

한데 확실히 강하다는 느낌 같은 건 없다.

‘저런 느낌인데도 풍 공자를 순식간에 꺾었다니······.’

솔직히, 자신이 팔강에서 송유겸을 만났다고 해도 풍세학처럼 어느 정도는 방심했을 것 같다.

‘심지어는 계반이라고?’

동부지맹은 대체 뭐하는 곳이란 말인가.

물론 실력이 중요하지 반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도 통합 잠룡대전의 사강에 올라올만한 실력자를 계반에 계속 둔 건 너무했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송유겸은 팔과 다리에 목비도가 꽂힌 가죽 띠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데 저 목비도들을 쓴 일은 거의 없었다는 모양이다.

상평운과의 대결에서 주심의 눈치를 보다가 딱 한 번 썼다나?

당시에는 대놓고 천천히 비도를 날린 것이라, 대단한 비도술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종잡을 수 없는 상대임은 분명하다.

섣불리 간격을 주지 말고, 혹여 간격이 가까워져도 즉시 벌리며, 최대한 신중하게 상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조건 신중하게.’

* * *

선의림의 양쪽 눈알에 한 글자씩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신. 중.

표정도 그렇다.

마치 ‘신중’이라는 두 글자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것 같다.

풍세학한테서 들은 게 있다는 거겠지.

예상했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선의림을 향해 짓쳐들었다.

녀석이 목검을 이용해 적절히 견제하며 몸을 빼고 있다.

나는 또다시 달라붙었다.

물론 적당한 속도감을 유지하면서였다.

선의림은 이번에도 견제하며 몸을 뺐다.

나는 한동안 계속 달라붙었고, 선의림도 그때마다 견제하며 몸을 뺐다.

야, 그 정도면 너무 과하게 신중한 거 아니냐?

선의림은 비무대의 외곽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적절히 방향을 바꾸며 몸을 빼는 모습이었다.

마침 비무대의 중앙 부분이었기에, 나는 그대로 모든 동작을 멈춘 채 뒷짐을 지고 섰다.

선의림은 나를 중심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 뿐, 달려들지 않았다.

“우우우우우!”

“선의림, 뭐하는 거냐!”

“하루 종일 피해 다니기만 할 셈이냐!”

관중석에서 야유가 들려오고 있다.

시합 시작 후로 한동안 내가 계속 달려드는 모습만 보인 데 반해, 선의림은 그때마다 싸움을 피하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명문의 후예는 여러 모로 좋은 점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면도 있다.

문파의 평판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만큼, 이런 식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표정을 보니 역시나 관중들의 분위기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의도한 대로 됐기에 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내 주변을 천천히 돌던 선의림이 결국 간격을 좁혀왔다.

이대로 있으면 주심의 주의를 받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거지.

관중 눈치도 봐야 하고.

공세로 바뀌긴 했으나, 선의림은 여전히 간격에 많이 신경 쓰는 모양새였다.

웬만해서는 간격을 주지 않고 있다.

나도 적당한 수준에서만 대처했다.

적당한 속도로, 틈이 보이면 파고들 것 같은 기세만 취해 주면서.

내가 그런 기세를 취할 때마다 선의림은 잔뜩 경계했다.

신중해도 너무 신중한 느낌이긴 한데, 이해는 된다.

좋은 자세기도 하다.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절대로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대결을 이끌어가고 싶은 거다.

지면 너무도 안타까운, 사강 탈락이니까.

시간이 일각(15분)을 훌쩍 넘어가자 선의림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화산파의 화운검법이 펼쳐지고 있는데, 나도 그에 맞추어 최소한으로만 속도를 높였다.

상대가 매우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으니 내 쪽에서도 일부러 무리해서 빨리 끝내려 할 필요가 없다.

다음 상대가 추소륵이고, 그 또한 이 시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도 정보를 최대한 감출 필요가 있다.

그렇듯 우리가 적당한 속도로만 대결을 펼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이각이 지난 시점부터는 선의림의 속도도 더 빨라졌고, 나 또한 그 속도에 맞췄다.

그리고 시간은 이제 삼각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그동안 우리의 대결은 누구의 우세라고 할 것도 없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내가 그 수준으로만 맞춰서 상대했기 때문이다.

선의림의 호흡은 어느 정도 거칠어져 있는 상태다.

아무리 적당한 수준에서만 대결을 펼쳤어도 체력과 공력의 소모는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쯤 되자 선의림의 공격이 맹렬해지기 시작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어 더 지치면, 본인에게도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 확실히 섰겠지.

투명한 느낌의 분홍빛 검기가 현란하면서도 촘촘하게 일대를 수놓고 있다.

화산파의 절학인 천류매화검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화산의 검법이 제대로 펼쳐지면 시각적으로 매화의 모양이 보인다고 한다.

선의림의 경우 매화가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희미하게는 보이고 있다.

천마신교의 정보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신기하다.

어쨌거나 저 나이에 저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거다.

관중석에서도 탄성이 흐르고 있다.

완벽한 무공은 없다.

사부님의 지론이기도 했고, 지금은 내 지론이기도 하다.

천류매화검법은 분명히 대단한 무공이나, 그럼에도 틈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선의림처럼 성취가 완벽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틈도 더 넓을 수밖에 없다.

천류매화검법이 절정으로 치닫던 찰나, 나는 검세의 중심부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최대한의 속도였다.

틈은 의외로 무공의 흐름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에 더 벌어지기도 하는데, 지금이 딱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선의림의 눈동자가 부릅떠지는 게 보인다.

내가 이 순간에 파고들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당황했구나?

오른손으로 선의림의 오른손을 노렸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이라, 선의림이 즉시 검을 회수하며 우에서 좌하단 방향으로 베어왔다.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견제인데, 이런 상황에서 물러설 내가 아니다.

상체를 급격하게 비틀어 선의림의 검을 흘려보내며, 즉시 그의 우측으로 파고들었다.

선의림이 몸을 틀며 검을 안에서 밖으로 베어왔다.

나는 접근하는 와중에도 급격하게 자세를 낮추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내 코 위를 스쳐 지나가는 선의림의 목검이 보인다.

자세를 낮춤과 동시에 왼 발을 축으로 빠르게 회전했기에, 빙글 돌아 나온 내 오른발의 뒤꿈치가 선의림의 발목을 노렸다.

선의림이 가볍게 도약하며 검을 아래로 뻗어 나를 견제했지만, 그 순간에는 이미 내 오른손에서 두 자루의 목비도가 발출된 상태다. 그 직후에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왼손에 들고 있던 목비도 두 자루까지 털어냈다.

허공에 떠있는 선의림을 향해, 회전력이 담긴 네 자루의 목비도가 빠르게 날아갔다.

선의림의 눈동자가 또다시 부릅떠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전에 회전할 때, 선의림한테서 등을 돌렸던 그 짧은 순간에 꺼내든 목비도들이다.

양팔을 모은 채로 회전했기에, 선의림은 내가 목비도를 꺼내들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선의림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공격인 셈이다.

선의림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소비도를 쳐내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곧바로 선의림의 착지 지점으로 이동하자, 목비도들을 겨우 쳐낸 그가 내려서며 나를 향해 검을 베어 왔다.

저 상태에서 휘두른 검에 힘이 제대로 담겼을 수가 없다.

따악!

오른손 권갑의 손등 부분을 이용해 검면을 강하게 쳐낸 후, 즉시 선의림의 한 팔을 잡으며 그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각법을 펼치며 저항해왔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오른팔의 하박에서 목비도를 꺼냈었기에, 곧바로 그걸 선의림의 등에 댔다.

선의림이 고개를 떨궜다.

“시합 종료! 동부지맹 송유겸, 승!”

외침이 들리자마자 관중석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선의림에게 짧게 포권해 보이고 주심에게도 정중하게 포권해 보인 후, 비무대를 내려가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소옹유겸! 송유겸! 송유겸!”

관중들이 입을 맞춰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고, 그 외침이 계속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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