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98
관중석에 앉은 제갈수광은 비무대를 걸어 내려가는 송유겸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사실 저 싸가지 없는 제자는 마음만 먹으면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쯤은 우습게 할 수 있는 실력자다. 절정고수를 혼자서 때려잡는 실력이니까.
저 실력에 당연한 결과이긴 하나, 막상 결승에 진출한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송유겸! 송유겸! 송유겸!”
관중들이 제자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관중들의 눈에는 송유겸이 약자고 선의림이 강자로 보일 테니, 더더욱 극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가뜩이나 무당과 화산 출신의 우승 후보 두 명을 연속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한 마당이니까.
송유겸의 성격이라면 관중들의 반응 따위 일절 신경 쓰지 않을 텐데, 그런 그조차도 이런 반응에는 놀란 느낌이다.
[와아! 설마 했는데 진짜배기였네요? 유겸이.]
옆에 앉아 있던 윤단영이 보낸 전음이다.
윤단영은 놀람과 감탄이 공존하는 표정이었다.
선의림은 서부지맹의 관도이기 이전에 화산의 제자이기도 하다. 같은 화산파의 윤단영한테는 사질이다.
그리고 송유겸은 제갈수광 자신이 아끼는 제자다.
나름 의미 깊은 상황이라 둘이 함께 사강전을 관전했던 것이다.
윤단영의 전음이 이어졌다.
[결국 유겸이 한 명한테 우리 애들 세 명이 졌네요. 그것도 우리 지맹이 내세우는 최강자 두 명이 연속으로 당했구요. 가뜩이나 실제로는 세학이보다 의림이의 실력이 더 낫기도 했는데.]
아쉽다는 기색이 살짝 엿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제갈수광이 윤단영에게 물었다.
[영 매의 반응이 좀 이상한데? 제자들이 모두 졌는데도 표정이 썩 나빠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아쉽긴 한데,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잠룡관도 수준에서 유겸이 같은 괴물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나쁜 의미의 괴물이라는 뜻이 아님을 알기에 제갈수광이 피식 웃어 보였다.
사실 송유겸은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서 원래 가진 실력의 반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같이 여러 차례 실전을 겪어 봤기에 송유겸의 본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특유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는 그 무공은 쓰지도 않았으며, 가장 잘 쓰는 무기인 검 또한 쥔 적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윤단영이 약간은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제 와서 선배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실은 저, 우리 애들보다는 유겸이를 응원했어요.]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무리 나와의 관계가 있어도 그렇지, 다른 지맹의 관도를 응원하다니.]
[서부지맹 잠룡관 말이에요. 근 몇 년간 성적이 계속 좋았잖아요. 우승도 대부분 우리 쪽에서 나왔었구요. 그래서인지 애들이 전체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어요. 자신감이 아니에요. 자만이죠.]
강호의 유명 세력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게 서부지맹이라, 가만히 있어도 자만심이 생길 법은 하다. 자신도 서부지맹의 잠룡관에 다녀봤기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보면, 실제로 작년에 우승하고 사강에 가고 했던 건 모두 쟤들의 선배들이었단 말이죠. 지금 출전한 관도들 중에는 작년에 사강 안에 들어갔던 애들이 없었어요. 정작 본인들 또한 엄밀히 도전자의 입장인데도, 늘 그랬듯 당연히 성적이 좋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거죠.]
윤단영이 전음을 이었다.
[애초에 우리 애들은 의림이와 세학이가 사강에 나란히 진출해서, 둘 중 한 명이 무조건 결승에 올라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더해서 걔들은, 단체전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우승이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 통합 잠룡대전을.]
윤단영의 전음이 이어졌다.
[통합 잠룡대전도 작은 강호예요. 이 작은 강호조차 결코 녹록치 않아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은 항상 존재하죠. 그리고 관성에 절어서 이 강호를 쉽게 여기던 이들은 대체로 그런 변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요. 무슨 말인지 알죠?]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였고 윤단영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통합 잠룡대전에서 충격적인 성적이라도 받아 보지 않는 한, 쉽게 고쳐질 만한 태도들이 아니었어요. 가뜩이나 강호에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마당이니 그런 식의 관성적인 태도는 더더욱 위험하잖아요. 저는 교관으로서 우리 애들의 그런 정신 상태를 바로잡아주고 싶었어요. 그게 성적을 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교관으로서의 진정한 역할일 테니까.]
결국 서부지맹의 입장에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성적으로 개인전이 마무리되었다.
우승 후보를 두 명이나 보유하고 있던 서부지맹이 결승 진출자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송유겸 때문이다.
[즉, 송유겸이 변수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응원했다는 뜻이군.]
[네. 선배가 그렇게까지 아끼는 아이라면, 유겸이에게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유겸이는 확실한 변수가 되어주었고, 세학이와 의림이를 꺾은 걸 넘어 또 다른 변수까지 만들었어요. 그래서 유겸이에게 더 고마운 마음이에요.]
제갈수광이 곧바로 고개를 갸웃하며 전음으로 물었다.
[또 다른 변수?]
[그건 이따가 보면 알게 될 거예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꾸한 윤단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우리 사질 좀 챙기러 가봐야겠어요. 오후에는 단체전 예선도 있는데, 당장의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니까.”
선의림 얘기다.
“그래. 나도 슬슬 단체전 조 추첨하러 가봐야겠군.”
“대회 끝나기 전까지는 바쁘니까, 그 후에 이삼 일 머물 동안에 하루 잡아서 술 한잔 해요.”
“그러지.”
눈인사를 마친 두 사람이 이윽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비무대 주변의 제한 구역을 벗어나자 동부지맹의 교관들과 관도들이 내게 달려왔다.
“송유겸, 이 짜식! 결승이라니!”
이번에도 장호산은 나를 끌어안은 채로 들어 올렸고, 나는 그 상태로 교관들과 관도들의 축하를 받아야 했다. 대연무장에서 시합이 펼쳐져서 그런지 천막 지킴이인 양소열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가 마치 자신이 결승에 진출한 것처럼 감격하며 기뻐하고 있다.
동부지맹 잠룡관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결승 진출자가 나온 상황이다. 다들 저럴 만도 하다.
안 보이는 건 두 명으로, 제갈수광과 단목강이었다.
개인전 사강이 끝난 후에 단체전 조 추첨이 있다고 했으니, 책임 교관인 제갈수광은 그곳에 갔을 것이다.
한데 나보다 앞서서 시합을 치렀던 단목강이 안 보이는 게 약간 의아했다. 내 시합이라면 항상 챙겨 봤던 그이기 때문이다.
“단목 공자는······.”
내 말에 강하령이 대꾸했다.
“아! 아까 사강전이 끝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갔어요. 오후의 단체전 준비하려면 곧바로 운기조식부터 취해야 한다면서.”
“아······.”
역시나 믿음직한 사람이다.
교관들, 관도들과 더불어 모두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대연무장 옆 공터에 있는 동부지맹의 천막에서였다. 동련각 측에서 미리 준비해준 식사였다.
식사 내내 분위기가 좋았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식사를 마쳐갈 때쯤 천막 안으로 제갈수광이 들어섰다.
둘째 교관 장호산이 즉시 물었다.
“추첨 결과, 나왔습니까?”
제갈수광이 특유의 사무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이(二) 시합이오. 상대는 남부지맹이오.”
“오오오오오오!”
모두의 표정이 환해졌다.
점심 식사를 할 때도 모두가 남부지맹과 대결하게 되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남부지맹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는 서부지맹과 북부지맹보다야 훨씬 나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해볼 만한 상대라고 할까.
“우와! 교관님은 어떻게 그렇게 추첨도 잘 해오셨습니까?”
양소열이 묻자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아, 딱히 내가 추첨을 잘한 게 아니오. 첫 추첨자인 북부지맹이 일 시합을 뽑더니, 두 번째 추첨자인 서부지맹이 곧바로 또다시 일 시합을 뽑아버려서.”
그러니 남은 남부지맹과 동부지맹이 자연스럽게 두 번째 시합에 배치되었다는 뜻이다.
뭐, 우리 쪽에서도 좋아하고 있지만 남부지맹 쪽은 환호를 지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개 지맹 모두, 첫 시합에서 우리와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을 테니까.
단체전은 기본적으로 일 대 일로 치러진다.
각 지맹에서 총 일곱 명이 출전하는데, 승자가 남아서 다음 상대와 연속으로 대결하는 방식이다.
단, 대결이 끝나면 쉬었다가 다음 대결을 치르는 게 아니라, 바로 이어서 다음 대결이 시작되는 방식이다.
주심이 시합 종료를 외치면 부심이 즉시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는 모양이다. 스물을 센다고 들었다.
그동안 승자는 그대로 비무대 위에 있어야 하고, 패배한 쪽은 곧바로 다음 대전자를 올려 보내야한다. 부심이 스물을 다 세기 전에.
일정한 시간 동안 쉬었다가 대결을 펼치면 강자 한 명이 혼자서 꿋꿋이 버티며 여러 명을 쓰러트릴 수가 있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대결을 치르면 공력과 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다음 상대와 싸우게 된다.
아무리 강자라도 체력이나 공력 면에서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상대 지맹의 일곱 명을 먼저 제압한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순서를 적은 명단 등을 미리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적절한 출전자를 결정하여 내보내는 방식이다.
때문에 비무대에 남아 있는 상대의 체력과 공력 등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고, 무기의 상성 등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무대의 면적 또한 개인전에 비해 매우 좁아진다.
그래서 어설프게 물러나며 싸우다가는 장외패를 당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설령 장외패가 아니더라도 둘 중 한 명은 금세 구석에 몰리게 될 테니, 어쩔 수 없이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매우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치열하게 맞부딪쳐서 승부를 내라는 건데, 당연하게도 시합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에 대비한 조치다.
양소열이 말했다.
“제가 가서 단목강한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오겠습니다. 두 번째 시합이라면 단목강도 굳이 빨리 올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이에 나는 곧바로 나서서 양소열에게 말했다.
“아, 그냥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이번 단체전 출전 명단에서 나는 일단 제외된 상태라고 들었다. 혹시 모를 상황이 아니면 최대한 출전시키지 않을 방침이란다. 다른 관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데, 당연히 내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관도들은 단체전 막바지 준비로 바쁠 테고, 교관들도 출전자들을 관리하느라 바쁠 것이다. 그래서 나선 것이다.
“아, 그래주겠니? 고맙다.”
동련각으로 돌아와서 단목강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 밖에서 살짝 기척을 감지해 보니, 방 안에서 기운이 고요하게 맴돌고 있음이 느껴졌다.
단목강이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문에 기대고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다가, 운기조식이 끝난 틈에 문을 두드렸다.
“조장님, 송유겸입니다.”
“아! 송 공자, 들어오시오.”
방으로 들어서자 단목강이 나를 탁자 쪽의 의자로 이끌었다.
단목강이 작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하하, 송 공자가 내 방에 온 건 처음인데 대접할 게 식은 차밖에 없구려.”
“하하. 이 정도만으로도 융숭합니다.”
곧 단목강이 자리에 앉더니 말했다.
“결승 진출 축하드리오.”
“누군가한테 결과를 들으셨던 겁니까?”
“아니오. 송 공자라면 당연히 진출했을 테니 하는 말이오.”
“하하······. 감사합니다. 어쨌든 조장님의 경우에는 살짝 아쉽게 되었습니다.”
단목강이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일에 대한 위로였다.
“사강의 결과는 전혀 아쉽지 않소. 엄밀히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성적이기도 하고, 솔직히 지금의 내 실력이 추소륵 공자를 이기기에는 살짝 부족한 실력이기도 했고.”
단목강이 바로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근래 얻은 깨달음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오늘의 결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게 좀 아쉽소. 아까 추 공자를 상대할 때 내가 살짝 실수한 부분도 있어서, 그것도 약간은 아쉽고.”
빙그레 웃으며 단목강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줬다.
단목강과 추소륵의 사강전은 한 끗 차이였다.
단목강으로서도 아주 닿지 못할 차이가 아니었기에, 그 부분이 다소 아쉽다는 뜻이다.
단목강에게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사강에서 탈락하자마자 곧바로 뒤도 안 돌아보고 숙소에 와서 단체전을 준비하시다니.”
“단체전에는 내 힘도 필요할 텐데, 그런 상황에서 깜냥도 못해내며 폐 끼치고 싶지 않았소. 한데 단체전 조 추첨 결과는 나왔소? 아마 그걸 알려주려고 오신 것 같은데.”
“우리는 두 번째 시합이고, 상대는 남부지맹입니다.”
“음······.”
다른 관도들이 기뻐했던 반응과 달리 차분한 모습이다.
남부지맹의 강자들을 떠올리고 있겠지.
“정오가 넘었으니 지금쯤이면 북부지맹과 서부지맹의 시합이 시작됐겠군요. 우리의 시합은 신시초(오후3시)로 예정되어 있으니 조장님도 한식경(30분) 전까지는 오셔야 합니다.”
“알겠소. 늦지 않게 가리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단목강이 물었다.
“역시나 서부지맹이 올라가겠지요?”
전체적인 수준 자체가 서부지맹이 높으니 그리 묻는 것이다.
누구나 저렇게 예상할 테고.
“북부지맹이 올라갈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단목강이 놀라며 되물었다.
“무슨 이유로 그리 예상하시오?”
“풍세학 공자는 아마도 싸울 만한 상태가 아닐 겁니다. 좌수검이라도 익히지 않은 이상.”
내 말에 단목강이 눈매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 뭔가를 떠올렸다는 듯 내게 물었다.
“설마 어제 송 공자와 대결하던 마지막 순간에······?”
“예. 풍 공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자세 자체는 높이 삽니다만, 그 탓에 저 또한 그의 손목을 더 강하게 비틀며 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하루 만에 나을 수 있는 상처는 아닐 겁니다.”
“기억나오. 그게 검을 쥐는 쪽의 손목이었지요.”
“예. 만약 고집을 부려서 출전한다 해도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닐 겁니다. 물론 그 전에 당연히 그쪽 교관들이 말릴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풍세학 공자가 출전하지 못한다면 확실히 북부지맹의 승산이 더 높아지겠구려.”
“게다가 서부지맹은 운도 좀 없는 편입니다. 풍세학 공자가 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선의림 공자가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선 공자는 저와 사강에서 제법 장기전을 펼쳤습니다. 그 후에 곧바로 단체전에도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죠.”
“하긴, 그 또한 서부지맹에는 약점으로 작용되겠구려. 나 또한 사강을 치렀으나, 내 경우에는 준비할 시간도 제법 있었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단목강이 말했다.
“알았소. 그러면 이따 봅시다.”
“저도 방에서 잠시 운기조식 좀 취하다가 갈 겁니다. 이따가 대연무장에 갈 때 함께 가시죠.”
“그리 합시다.”
시간이 되어 단목강과 함께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관중들의 함성이 들려오고 있다.
우리는 곧바로 대연무장 안에 있는 출전자 대기 구역으로 향했다.
가면서 보니 비무대 위에서 두 사람이 치열하게 얽히고 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작은 비무대라서 그런지 더 치열한 느낌이다. 한 번 수세에 몰리면 외곽으로 밀리니 저럴 수밖에 없는 거다.
얽히고 있는 두 사람은 화산의 선의림과 소림의 추소륵이었다. 각자의 지맹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저 두 사람이 나온 걸 보면 두 지맹 간의 대전도 거의 막바지가 아닐까 싶다.
개인전의 우승 후보로 평가되던 관도들 간의 대결이기도 해서, 관중들의 호응 또한 상당했다.
양소열의 옆에 가서 인사한 후, 상황을 물었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북부지맹 쪽이 불리하게 흘러갔어. 서부지맹이 네 명 남았을 때 북부지맹은 두 명 남은 상황까지 몰렸으니까. 그때 북부지맹의 여섯 번째 대전자로 황보세가의 황보충이 나왔지.”
양소열이 바로 말을 이었다.
“황보충은 공동파의 등조균을 어렵지 않게 제압했어. 등조균은 그전에 싸우고 있었던 터라 약간 지쳐 있었거든. 이후에 서부지맹의 다섯 번째 대전자로 올라온 게 신창양가의 양벽종이었는데, 황보충은 양벽종마저도 제압했어. 그러자 서부지맹에서도 여섯 번째 대전자인 제갈건이 나왔지. 한데 황보충이 그런 제갈건마저도 매우 지치게 만들어 놓고 내려간 거야. 아까의 황보충은 정말 대단했어. 관중들도 열광했고.”
역시 황보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활약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내 기분도 좋았다. 그와 제법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황보충은 북부 예선에서 이 위를 차지한 실력자다.
한데 안타깝게도 개인전에서는 십육강에서 탈락했었다. 하필이면 십육강 상대가 화산의 선의림이었던 탓이다.
개인전 결과만 놓고 보면 황보충의 입장에서도 다소 아쉬웠을 텐데, 단체전에서의 활약 덕분에 그 아쉬움도 많이 해소되었을 것 같다.
혼자서 이 인분 이상을 한 셈이니까.
양소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북부지맹의 마지막 대전자로 추소륵이 나왔던 거야. 제갈건은 체력과 공력 소모가 상당했던 터라, 추소륵이 금세 제갈건을 내려 보냈지. 그러자 곧바로 서부지맹에서도 마지막 대전자인 선의림이 올라온 거야. 이후에 두 사람의 대결이 한참 계속된 건데, 딱 봐도 선의림이 더 빨리 지쳐가고 있는 모양새지?”
양소열의 말마따나 둘 중에서 눈에 띠게 지쳐 보이는 쪽은 선의림이었다.
추소륵은 단목강을 상대로 개인전 사강의 첫 경기를 치렀고, 선의림은 나를 상대로 사강의 두 번째 경기를 치렀다. 사강의 일 경기와 이 경기 모두 장기전이기도 했다.
둘 중에서는 추소륵이 더 강하기도 하며, 체력과 공력을 회복할 시간도 추소륵 쪽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추소륵이 여러모로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혹시 풍세학 공자는······.”
“풍세학은 출전하지 않았어. 어제 너와의 대결 당시에 부상을 입은 탓이 아닐까?”
“아하하······.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러자 옆에 있던 단목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북부지맹 모두가 송 공자에게 고마워해야겠구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양소열이 다시금 비무대 쪽에 시선을 두더니 말했다.
“그런데 비무대가 좁아지니까 확실히 시합이 빨리 끝나긴 한다. 더 치열한 느낌이기도 하고. 기획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치고 이런 식의 단체전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러는 사이 대결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결국 추소륵의 검이 선의림의 가슴께를 겨누는 것으로 양 지맹간의 대전이 마무리되었다.
“단체전 예선 일 시합 종료! 북부지맹,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