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04
이후에도 우리 탁자에서는 내 우승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오갔다.
어느 정도 그 이야기가 정리되자 종금무가 목소리를 낮추며 남궁찬에게 물었다.
“한데 남궁설 소저는 내년에 잠룡관에 입관하는 겁니까?”
그 말에 우리 자리에 있는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하, 뭐, 조만간 보게 되지 않을까?”
남궁찬이 교묘하게 대답을 흘렸다.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덕분에 관도들은 대충 내년에 입관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남궁 소저와 선우 소저는 친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같이 입관할 계획인가 봅니다?”
여길상의 질문이었다.
“하하, 뭐, 둘이 친하긴 친하지.”
이번에도 남궁찬은 교묘하게 대답을 흘렸다. 역시나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아! 우리는 이번에 졸업하는데······!”
목태월의 말이었다.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는데, 다른 육 년차 애들의 표정도 비슷하다.
얘들아, 둘 다 이미 입관해 있단다.
같은 조가 아닌 이상, 너희들 같은 갑반에서는 볼 일이 없을 뿐.
종금무가 농담조로 말했다.
“아까 송 공자한테도 졸업하기가 너무 아쉽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니 더 아쉬워지네요.”
남궁설과 선우린이 잠룡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속으로 웃음만 날 뿐이다.
남궁찬이 단목강의 탁자 쪽으로 이동했고, 육 년차 관도들 중에도 한둘이 다른 탁자로 이동했다.
나는 일어서서 제갈수광이 있는 탁자로 향했다.
제갈수광의 탁자에는 장호산과 주경명이 앉아 있었다.
“오! 어서 오시오, 송 공자.”
주경명이 나를 반길 때쯤, 한 사람이 그쪽 탁자로 합류했다.
“저도 이쪽에 합류해도 될까요?”
남궁설이다.
주경명이 얼른 대꾸했다.
“물론이지요! 어서 오시오, 남궁 소저. 오랜만이오.”
“네. 오랜만에 봬요, 주 공자.”
합비주가도 안휘에 있으니, 두 사람 사이에도 안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궁설이 제갈수광과 장호산에게 인사한 후, 마지막으로 내게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송유겸 선배님. 우승 축하드려요.”
생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데, 본래의 용모를 다시 봐도 예쁘긴 참 예쁘다.
평소 내가 아는 그녀의 모습과 달리 우아하면서도 공손한 어조와 자태다. 누가 봐도 천하제일세가의 금지옥엽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저 모습이 더없이 요망하고 가증스러워 보이기만 한다.
“아하하. 고맙소.”
“동부지맹 잠룡관의 수준이 처진다는 소문이 많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선배님의 활약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게다가 계반 소속으로 우승을 하시니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아하하······.”
“계반이시면 평소에 다른 관도들의 경멸 섞인 시선이나 한심하게 여기는 시선도 많이 접했을 텐데, 그런 부분에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었나요?”
야! 여기에서까지 그놈의 한심 얘기 꺼내기냐?
이 요망한 것이 지금 나를 놀리려고 저러는 거다.
“아하하. 그런 식의 시선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이오.”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이신데도, 자존심 상하는 상황 같은 걸 잘 극복하시는 성격인가 보다. 성격도 되게 좋으시다.”
이게 가증스러운 미소를 보이면서 계속 놀리고 있다.
“저도 선배님 보면서 계반에 대한 급격한 애착이 생겼어요.”
그러자마자 주경명이 남궁설에게 물었다.
“오! 남궁 소저, 설마 내년에 계반으로 입관할 생각이라도 하시는 거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이번에 송유겸 선배님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서요.”
얘도 거짓말은 교묘하게 피해가며 대답하고 있다.
그 오라비나 누이나,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송유겸 선배님도 계속 계반에 계셨으면 좋겠구요.”
얘가 승반할 생각이 없나보다. 그러니 나한테도 승반하지 말자고 말하는 거고.
“아하하. 나는 이미 계반에 완전히 적응이 돼버려서, 이제 와서 딱히 승반하고 싶은 마음은 없소.”
“아하.”
남궁설이 대꾸하자마자 주경명이 곧바로 제갈수광과 장호산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교관님들, 저 내년에는 계반 관도로서 육 년차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하하! 녀석아, 그게 말이 되냐? 잠룡관은 승반은 돼도 강반은 안 된다는 거 몰라?”
장호산이 대꾸하자 주경명이 다시 농담조로 말했다.
“교관님들이 힘 좀 써주시면 안 됩니까? 필요하다면 사고라도 쳐서 제가······.”
“푸하하! 그러면 계반으로 가는 게 아니라 면벽동으로 가서 갇히겠지.”
“아! 그, 그건 곤란한데······.”
주경명이 일부러 자리를 재미있게 만들려고 저러는 걸 알고 모두가 즐겁게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 탁자에 있던 인원들이 측간에 가거나 다른 탁자로 이동했기에, 잠시 제갈수광과 나만 남게 되었다.
[얼핏 보면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마냥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지만은 않군. 남들이 바라마지 않는 게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인데 그 우승을 차지하고도 떨떠름한 표정이라니.]
인간이 하여간 눈치가 빠르다니까.
남들이 들으면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내용이니 전음으로 말한 모양이다.
[송유겸 너는 주목 받기 싫어하는 성향이 이상할 정도로 강하지. 나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너는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녀석이니까.]
제갈수광의 전음이 이어졌다.
[다만 한 가지는 당부하고 싶다. 만만치 않은 이 강호를 너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 때는, 꼭 내게도 얘기해줬으면 한다.]
이 인간이 오늘 왜 이렇게 여러 번 사람을 감동시키는 거야?
가만히 제갈수광의 시선을 응시하다가 대꾸해줬다.
[이제야 제가 애제자라는 걸 교관님의 입으로 직접 시인하시는군요?]
제갈수광의 표정이 구겨졌다.
[애제자 같은 소리 하네. 너는 그냥 웬수야. 비록 싸가지는 없지만 옆에 있으면 덜 심심한데다가 편리하기도 하니까 그냥 데리고 다니는 것뿐이고.]
[네네. 그러믄요. 교관님의 그 깊은 뜻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요?]
제갈수광이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으휴, 진짜 웬수도 이런 웬수······.]
그렇지. 이게 우리 사이의 감정 교류 방식이지.
곧 제갈수광이 피식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나도 그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이며 잔을 부딪쳐줬다.
지금의 내 입장과, 내가 맞닥뜨려야 할 미래를 생각하면 여러 모로 부담과 염려가 크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에 위안과 든든함을 느낀다.
뒤풀이는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이어지다가 끝을 맺었다.
* * *
다음날은 화창했다.
들어보니 오늘은 폐회식과 함께 시상식이 진행되고, 이른 저녁 시간부터는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한 모든 관도들이 어울리는 공식 만찬이 있다고 한다.
그간 서로 열심히 경쟁했으니, 화합의 의미로 친목을 도모하며 마무리한다는 모양이다.
통합 잠룡대전의 전통이라나.
군중들이 대연무장을 빼곡하게 채운 가운데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시상식은 폐회식의 순서 중 하나다.
단체전 시상이 먼저였기에, 준우승인 우리 동부지맹 잠룡관의 관도들도 단상으로 한 차례 올라가야 했다. 단체전 시상자는 무상 백리결이었다.
단체전 시상이 끝나자 개인전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개인전의 시상자는 맹주 운천흠이었다.
진행을 맡은 사마진의 호명에 따라, 사강에 진출했던 단목강과 선의림이 먼저 단상 위로 올라가서 상장을 받았다.
이후에는 추소륵이 호명을 받은 후 상장을 받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자, 마지막으로 우승자를 소개하겠소!”
“우오오오오오!”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서 대파란을 일으키며 계반 신화를 써낸······! 더해서 삼 년차 신화까지 써낸······! 우승자아! 동부지매앵! 소옹, 유우, 겨어엄!”
진행을 맡은 문상 사마진의 외침에, 관중들의 환호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환호는 금세 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로 바뀌어갔다.
“소옹유겸! 송유겸! 송유겸! 송유겸!”
연무장의 앞줄에 앉아 있던 나는 천천히 단상의 하단을 지나 상단으로 올라갔다.
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는 그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지정된 위치에 서자 맹주 운천흠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상을 주기 위해서 다가오는 것뿐인데도, 마치 산이 다가오는 듯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천마신교에서 처음으로 사부님을 직접 뵀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에는 사부님이 아니라 교주님이긴 했다.
그때에 비하면 심적인 압박감은 훨씬 덜했는데, 이는 운천흠의 존재감이 크게 뒤쳐져서가 아니라, 내가 전생을 통해 이런 경험을 해본 덕분이다.
내 앞에 선 운천흠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하는 중이다.
맹주인 본인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일개 관도인 내가 차분한 기색이라 저러는 것이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운천흠이 내게 말했다.
“네가 송유겸이구나. 반갑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내가 예를 취하자 운천흠이 상패와 상장 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함 하나를 차례로 건네더니 말했다.
“우승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당연하게도 목함을 받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
이거 하나 얻겠다고 결국 우승까지 해버린 마당이니까.
제대로 먹어주마.
먹고 빠르게 절정으로 가주마.
운천흠이 말했다.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앞으로도 잘 성장하여, 백도 무림의 믿음직한 일원이 되어주기 바란다.”
“최선을 다하여 정진하겠습니다.”
내가 다시금 예를 취하며 그렇게 대꾸하자 사마진이 외쳤다.
“우승을 차지한 송유겸 관도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부탁드리겠소!”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고, 시상식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맹주 운천흠이 발언하는 것으로 폐회식이 이어졌다.
“통합 잠룡대전 기간 동안 수고해준 관도들에게 큰 감사를 표하고 싶소. 아울러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 명숙들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열렬히 응원해주신 모든 동도 여러분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표하오.”
말을 마친 운천흠이 박수를 치자 군중들도 일제히 박수를 쳤다.
잠시 후 운천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 맹주는 개회식 때, 현 강호에서 벌어지는 뒤숭숭한 사안들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소. 그 일에 관해 여러분께 전할 사항들을 말씀드리겠소. 그에 앞서, 일단 보여드릴 게 있소.”
그렇게 말한 운천흠이 고개를 돌리더니 뒤쪽을 향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네 명의 무인이 기다란 탁자 하나를 가져와서 상단의 정면에 배치했다.
탁자의 위에는 몇 개의 나무 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운천흠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무인들이 상자들의 정면에 있는 가림 막들을 빠르게 열어 젖혔다.
내용물을 확인한 군중이 금세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각 상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내용물들이 모두 수급들이었던 탓이다.
군중의 웅성거림이 계속되는 동안, 운천흠은 조용히 먼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군중이 잠잠해지자 운천흠이 입을 열었다.
“동부지맹 관할인 강서의 태화지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적도들은 사파인들과 산채의 무리들이었소. 장강에서 흉사를 꾸몄던 적도들은 사파인들과 수채의 무리들이었소. 본맹은 그 흉수들에 대해 끊임없이 추적하고 있으며, 앞선 사건에 관여했던 산채와 수채들에 대해서는 일차적인 응징을 마친 상태요. 저 수급들은 해당 산채와 수채를 이끌던 채주들의 수급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