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05화 (105/416)

내 안에 마교있다 105

운천흠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소. 맹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기에, 마음 같아서는 이참에 해당 산채와 수채들을 개미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고 싶었소. 그러나 전면 소탕 작전을 개시할 경우 우리 쪽의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 경우에는 준비도 많이 필요한 데다가 우리 쪽의 움직임 또한 커질 수밖에 없어서, 그 정보를 입수한 적도들이 도주할 우려도 있었소.”

전면 소탕 작전이라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운천흠이 밝힌 이유들 때문이다.

가뜩이나 그런 식으로 씨를 말려버린다 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산채와 수채가 들어서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한 채로 적도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소. 하여 극비리에 해당 산채들과 수채들에 본맹의 소수 정예 전력을 파견했고,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동시 작전을 펼쳤소. 우리 정예들의 임무는 우선적으로 각 채주들을 제거하는 일이었고, 이후에는 안전이 보장되는 선에서, 가능한 만큼 지휘부를 몰살시키는 일이었소.”

저 정도가 현실적인 대처라 할 수 있겠다.

“모든 작전은 기밀을 유지한 채 치밀한 준비를 통해 시행되었으며, 맹에서 추적한 산채와 수채의 채주들은 보시다시피 모두 처단했소. 작전 중에 이들 외에도 전체적으로 삼백 여명의 적도들을 처단했소. 다소 부족한 감은 있으나, 이 정도면 흉수들에 의해 희생당했던 동도들의 넋에도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소.”

짝짝짝짝짝짝!

군중들이 박수를 보냈다.

“약간의 세부 보고를 추가하겠소. 작전에 참가했던 맹의 전력 중 부상자는 총 서른아홉 명이며, 그 중 경상자는 서른세 명, 중상자는 여섯 명이오. 본 맹주가 직접 확인했는데, 중상자들 또한 모두가 치료를 통해 완쾌가 가능한 부상이오. 작전에 투입되었던 맹의 전력들은 모두 복귀했으며, 사망자는 없었음을 여러 동도들께 보고 드리는 바이오. 그들의 공로를 여러분과 함께 치하하고 싶소.”

“오오오오오오오!”

짝짝짝짝짝짝짝!

군중이 환호와 박수를 동시에 보냈다.

운천흠이 말을 이어갔다.

“실종되었던 태화지부 외각의 요원들과, 그들을 찾으러 나섰다가 연이어 실종되고 말았던 태화지부 무각의 무인들에 관련해서도 말씀드리겠소. 일찍이 본맹의 최정예 요원들이 그들의 종적을 찾아 나선 바 있으나, 민감한 사안인 만큼 그 작전은 최고 등급의 보안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진행하였소.”

나로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안이다.

그 작전에 신룡대가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태화지부에서 신룡대원들로 추정되는 최정예 전력에 대해 눈치 채기도 했거니와, 이후에 길초량을 떠서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하기까지 했으니까.

“맹에서는 전원 생환을 바라며 최선을 다해 움직였소. 변명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애초에 적진 속에서 은밀하게 수행하는 수색 및 구출 작전이라, 워낙 고난이도일 수밖에 없었소.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더 나은 결과를 내지 못한 점에 대해, 동도 여러분께 미리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오.”

변명일 수가 없다.

실제로도 적진 속에서의 실종자 수색 임무 및 인질 구출 임무는 난이도가 최상위다. 나도 흑풍대 시절에 여러 차례 그러한 작전을 수행해 봤기에 안다.

“당시에 실종되었던 태화지부의 외각 소속 요원은 일곱 명, 무각 소속 무인은 열네 명이었소. 총 스물한 명의 실종 인원들 중 열세 명은 생환되어 맹의 안가에서 보호되고 있소. 그러면 여덟 명이 남는데, 생환자들의 증언과 작전조의 조사에 따르면 네 명은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었소. 남은 네 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최정예들이 끝까지 그들의 종적을 추적하고 있소.”

다수의 생환자들이 있다고는 하나, 사망자들도 있는 데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박수가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군중 대부분이 성과 자체는 충분히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소문으로 접한 분들도 많겠지만 이번 사건들에는 사파인들이 개입되어 있으며,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오. 맹에서도 당연히 사파 쪽에 대한 조사와 파악을 이어가고 있소. 현재까지 파악한 여러 정보들에 따르면, 그들은 지휘 체계가 통일되어 있으며, 그 지휘 체계 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력의 규모 또한 상당히 크다고 판단하고 있소.”

군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사파에서 연합을 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운천흠이 대꾸했다.

“사파인들이 모여서 연합을 구성했다기 보다는, 강력한 힘이 작용하여 사파인들을 한 데로 끌어 모으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소. 그게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소.”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사파인들은 과거에도 거대 연합을 표방했던 일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파인들의 특성상 매번 유명무실한 상태로 와해되곤 했음을 맹주께서도 아실 겁니다. 무시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번의 양상은 다르다고 보시는 겁니까?”

이번 질문자의 어조에는 믿기 어렵다는 기색이 깔려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폭력성을 내세우는 건 사파나 마교나 같다.

다만 천마신교인들은 아수라님에 대한 신앙으로 결속되어 힘과 지배력을 숭상한다. 힘을 키워 교세를 확장하는 게 주목적이라 틈만 나면 중원을 노리려 하는 것이다.

즉, 천마신교는 단체가 우선이며, 교주를 구심점으로 교리에 따라 단체가 통제된다.

그래서 천마신교가 체계적이며 일사불란한 거고, 그런 성향 때문에 백도에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파인들은 대부분 제멋대로인 극도의 이기주의자들이다. 추악한 욕망에 대한 절제력이 부족하여 성격파탄자들도 많으며, 고수일수록 그 비율도 증가한다.

그러한 성향들 때문에 사파인들은 마음이 맞는 몇몇끼리는 가깝게 지내도, 체계화된 조직에 소속되는 일은 매우 꺼린다. 기본적으로 단체생활 부적격자를 넘어 사회생활 부적격자들이다.

사파 내의 조직이라고 해봐야 각각의 문파 또는 그에 준하는 세력들 정도인데, 그런 세력들조차 규모가 크지 않다. 사파인들 특유의 성향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개별 세력들끼리 서로 가깝게 지내는 일도 많지 않다.

그런 성향들 때문에 대대로 사파 연합을 표방했던 단체들이 금세 유명무실해졌던 건데, 방금 전의 질문자도 그 부분에 대해 물은 것이다.

“그렇소. 이번에는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오. 누군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막강한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준비한 것으로 보이며, 그 구심점이 강압이나 회유 등의 방식으로 기존의 사파인들을 모으고 있다고 보고 있소. 그로 인해 더욱 거대해진 힘이 막후에서 산채와 수채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되오.”

운천흠의 말에 군중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간 마주쳤던 사파의 십대들에 대해 파악한 것도 어느 정도 있었고, 거기에 내가 알고 있었던 정보들까지 더해서 나름대로 짐작을 이어가던 것들도 있었다.

방금 전 운천흠의 발표는 내가 짐작하던 것들과도 여러 면에서 상통하고 있다.

누군가가 물었다.

“막강한 구심점이라고 하셨는데, 혹여 맹에서는 그 구심점이 어떤 인물인지, 또는 세력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등에 대해 밝혀낸 게 있습니까?”

“안타깝지만 구심점도, 그 세력의 규모도, 그들의 본거지도 아직까지는 밝혀내지 못했소. 사파 쪽에서 철저하게 꼬리를 자르고 있기에 조사와 추적이 쉽지가 않소. 그러나 맹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소.”

운천흠의 대꾸였다.

군중들 중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그러한 사파의 움직임으로 인해 많은 동도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맹에서도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응 준비는 당연히 하고 있소. 다만 아직까지는 그쪽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계제가 되지 못하오. 아울러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안상의 이유가 있기에 세세하게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리오.”

또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역사적으로 마교 쪽에서 사파를 움직여 백도를 흔들어 놓는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후에 마교에서 도발해 온 일도 있었습니다. 현 사파 거대 세력의 막후에 마교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천마신교에 대한 백도인들의 평소 경계심이 매우 강하다는 걸 고려할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긴 하다.

그러나 천마신교가 이번 일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운천흠이 대꾸했다.

“그쪽 가능성이 절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맹의 조사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오. 천마신교의 현재 상황 때문이오. 전대 천마 혁련총의 존재감이 매우 컸던 탓에, 아직까지는 새로운 천마인 위지광도 내부 결속을 제대로 다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소. 물론 그렇다 해도 마교는 마교이기에, 그쪽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주시하고 있소.”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천마신교의 중심부에 몸담고 있던 입장에서, 운천흠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 천마신교 측에서 직·간접적으로 사파 쪽을 돕거나 지원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이후에도 운천흠은 군중들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해준 후 발언을 마쳤다.

그렇게 폐회식이 끝났고, 통합 잠룡대전의 공식 일정도 모두 마무리되었다.

본맹 무인들의 안내에 따라 일반 군중들이 무림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교관들을 따라 동련각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아까 맹주 운천흠이 발표하던 모습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운천흠은 산채와 수채를 상대로 펼친 작전에 대해서는 소상하게 밝혔으나, 사파 쪽의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밝히지 않았다. 강력한 구심점으로 인해 사파가 거대 연합화 되고 있다는 정도가 다였다.

모두의 경각심을 높이는 선에서만 발표한 것이다.

천마신교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이런 식의 공표를 수차례 겪어봤는데, 당연하게도 이런 자리에서 중요한 보안 정보들을 밝히는 일은 없다.

수뇌부에서 알고 있는 정보가 백(百)이라면, 만인 앞에서 이런 식으로 공개되는 정보는 십(十) 이쪽저쪽이다.

누구 좋으라고 이런 자리에서 중요 정보들을 소상하게 밝히겠는가. 어차피 그 내용이 사파 측에도 들어갈 텐데.

그렇기에 이런 식의 공표가 있는 경우, 눈여겨봐야 할 건 발표의 내용보다는 발표자의 태도다.

운천흠의 발언 내용 자체에는 전체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미안하다는 기색이 깔려 있었다. 어조도 그랬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군중의 어떠한 질문이나 반응에도 흔들림 없이 또렷했고, 서있는 자세나 얼굴의 표정 또한 차분하면서도 당당했다.

겉으로는 준비가 별로 안 된 것처럼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의 내부 상황은 매우 다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어쩌면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무림맹 차원의 대대적인 작전이 시작될 수도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예측이다.

숙소 건물로 돌아와서 교관들에게 말했다.

“저, 지금부터 소성심단을 복용할까 합니다.”

그러자 둘째 교관 장호산이 대꾸했다.

“그래. 괜히 불안하게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는 바로 복용하는 게 좋겠지. 어차피 만찬 때까지는 시간도 넉넉하고.”

곧바로 양소열이 내게 물었다.

“그 시간동안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뜻이지?”

“하하, 예.”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관도 숙소 구역에 있는 내 방은 여러 관도들이 지나다닐 수 있으니, 아예 교관 숙소 구역에 있는 내 방을 쓰도록. 구석에 있으니 방해받을 일도 적을 거다. 아울러 그쪽으로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끔 조치해 주겠다.”

다른 세 명의 교관들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아, 참. 상패가 들어 있는 목함과 상장은 놓고 가도록. 동부지맹 잠룡관에서는 오랜만의 우승이기도 하고 뜻깊은 우승이기도 해서, 우리 쪽 관계자들이 와서 구경하고 싶어 할 거다.”

고급스러운 목함에는 상패가 두 개 들어 있는데, 각각의 상패는 모양은 같으나 크기가 다른 것들이다. 작은 상패가 내 것이며, 큰 상패는 우리 잠룡관의 관주실에 진열되는 용도다. 물론 상장은 내 거고.

어차피 상장이고 큰 상패고 작은 상패고, 나는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얼마든지요.”

목함과 상장을 건네며 그렇게 대꾸해준 후, 제갈수광에게서 열쇠를 받아 그의 방으로 향했다.

자물쇠를 따고 들어와서 문 안에 있는 걸쇠를 건 후, 곧바로 정좌한 채 정신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준비를 마친 후 천천히 소성심단이 들어 있는 작은 목갑을 열었다.

청아한 느낌의 약향이 코를 자극한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곧바로 소성심단을 복용한 후, 체내에서 반응이 오는 것을 느끼며 회회심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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