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10
잠룡관에 도착하니 환영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많은 관도들이 모여 있었는데,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모인 관도들은 전체 관도의 삼분의 일 정도였다.
조별 파견 임무로 인해 많은 관도들이 잠룡관을 벗어나 있는 상태인 탓이다.
곧, 총교관 노양홍의 진행으로 우리는 단상 위에 올랐다.
교관들과 관도들이 모두 단상 위에 오른 상태에서 관주 육남춘이 우리에게 표창장을 먼저 수여했다. 일전에 맹주 운천흠이 말했던 그 표창창이다.
이후에는 단체전 준우승에 대한 축하가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내 우승에 대한 축하가 이어졌다.
단상 아래에 있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축하를 보내는 와중에도 어리둥절한 표정들이 많았다.
같은 잠룡관에 있는데도 나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기에 저런 반응인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계반 관도가 덜컥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왔으니 저럴 만도 하다.
나를 아는 소수의 관도들은 놀람과 감격스러움이 공존해 있는 표정들이었다.
모여 있는 관도들을 훑어봤는데 송유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조인 길초량과 소충광도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지금 조별 파견 임무에 나가 있는 모양이다. 하긴, 그들보다 순번이 뒤쪽인 우리 조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송유하가 안 보인다는 게 아쉽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싶었고, 놀라며 기뻐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그 아이라면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며 뿌듯해 했을 텐데.
대신 꼴 보기 싫은 얼굴 몇 개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위지광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가장 꼴 보기 싫은 얼굴도 보인다.
송유상이다.
놈은 아예 충격에 휩싸인 표정이다.
푸흐흐! 등신 새끼.
저놈의 표정을 보니 이 우승의 의미가 조금은 더 생기는 것 같다.
우리가 단상에 서있는 상태에서 관주 육남춘의 훈화가 시작되었다.
육남춘은 신 난 목소리였다.
지난 몇 년간의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이런 식의 환영 행사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내 기회가 생겼으니 관주 입장에서 신이 날 만도 하다.
형식은 훈화지만 통합 잠룡대전 내내 본인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풀어 놓은 이야기들이었다.
우리가 단체전에서 준우승한 과정, 개인전에서 팔강 이내에 든 종금무와 단목강과 나의 대진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야기가 제법 길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관도들은 모두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육남춘의 말을 경청하는 중이다.
우리의 대진 상대들이 매우 유명한 후기지수들이었기에 더욱 흥미로워하는 분위기였다.
이후에 육남춘은 우리가 표창장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리가 장강에서 북부지맹의 인원들과 승객들을 구한 일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다 아는 내용들이라 금세 지루함이 몰려왔다.
속으로 언제 끝나나 하며 멍하니 있던 한 순간, 나는 급격하게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환영식이 벌어지고 있는 연무장의 저 멀리로 두 사람이 등장했는데, 다름 아닌 송가장주 송천광과 총관 이청오였기 때문이다.
급하게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두 사람이 왜 잠룡관에 온 건지는 빤하다.
달려온 송천광의 심정은 이해하나, 정말로 반갑지가 않다.
환영 행사가 끝나자마자, 멀리에서 이쪽을 보고 있던 송천광과 이청오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출발했다.
그래도 아버지라는 존재가 왔으니 가서 인사는 해야지.
송유상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놈에게도 아버지이니 저럴 수밖에 없긴 하다.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와중에 놈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나는 놈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무시하며 지나쳤다.
주춤주춤 내 뒤를 따라오는 놈의 발걸음이 느껴진다.
에잇, 저 똥파리 같은 놈하고 같은 공기 마시게 생겼네.
“너, 너······, 이, 이게 어찌된······.”
나를 바라보는 송천광의 표정에는 놀람과 어리둥절함이 공존해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기쁘기에 앞서 저런 반응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게 나는 거의 포기 상태에 있던 자식이다.
삼 년차에도 꼴찌반인 계반을 못 벗어나던 자식이니까.
내가 승반만 해도 기뻐했을 사람인데, 그런 내가 중간 과정을 완전히 무시한 채로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온 것이다. 그로서는 현실감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아버지.”
내가 인사했지만 송천광은 입만 뻐끔거릴 뿐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청오가 말했다.
“유, 유겸아······!”
“총관 어른도 안녕하셨는지요.”
“아, 안녕이야 했다만, 이게 대체······.”
당황한 이청오가 그렇게 대꾸했을 때쯤 송천광이 말했다.
“부, 분명히 방금 전에 내 귀로 듣기는 했다만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네, 네가 통합 잠룡대전 우승이라니······!”
내가 엷은 미소만 지어 보이자 이번에는 이청오가 말했다.
“그, 그거, 들고 있는 것 좀 보자.”
내가 들고 있는 건 둥글고 길쭉한 나무통 두 개와 작은 목함 하나다.
길쭉한 나무통 두 개에는 각각 표창장과 우승 상장이 들어있고, 작은 목함에는 상패가 들어 있다.
내가 그것들을 내밀자 이청오가 두 개의 나무통을 받아 들었고, 송천광은 목함을 받아들었다.
조심스럽게 목함을 열어 상패를 꺼내 든 송천광이 말했다.
“세, 세상에······!”
그의 손이 떨리고 있다.
이청오 또한 조심스럽게 상장과 표창장을 꺼내어 확인하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를 모두 눈에 담고 있는 느낌이다. 그 또한 손을 덜덜 떨고 있다.
상장과 표창장의 맨 마지막에 적혀 있는 수여자의 직함과 이름 때문이다.
<백도 무림맹주 운천흠.>
저 부분은 운천흠의 친필로 적혀 있다.
이청오가 말했다.
“매, 맹주님의 필적이 참으로 웅혼하구나······!”
일반인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강호에서, 그것도 백도에서, 무림맹주라는 칭호가 주는 위엄이 원래는 저렇다.
두 사람은 들고 있던 것들을 교환해서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송천광 또한 덜덜 떨면서 상장과 표창장을 확인하고 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내용물들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내생에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우리 집안에서, 내 새끼가,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을 하다니! 세상에!”
“잘했다! 정말 잘했어! 어떻게 이럴 수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구나!”
각각 송천광과 이청오의 말이었다.
이제야 현실 인식이 끝났는지, 둘 다 환호하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가만 놔두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 같았던 두 사람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자세도 공손해지고 있다.
왜 저러는지 알 것 같다.
뒤에서 관주 육남춘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
“과과과, 관주님······!”
참으로 없어 보이게도, 말을 너무 더듬고 있다.
인맥 지상주의자인 송천광이니, 우리 관주 육남춘과 직접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극도로 긴장되는 모양이다.
창피해도 어쩔 수 없다.
일단은 내 부친이니까.
어쨌거나 송천광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잠룡관주 또한 매우 높은 존재다. 가뜩이나 육남춘은 유명한 항주육가의 가주이기도 하고.
“허허. 유겸이와 유상이의 부친이시면 송 장주시겠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부족하나마 관주를 맡고 있는 육남춘입니다.”
말을 마친 육남춘이 송천광을 향해 짧고 절도 있게 포권해 보였다. 관도의 부친이라서 그런지 말도 높이고 있다.
“아이고오. 이렇듯 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이 아이들의 아비인 송천광이라 합니다.”
송천광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포권해 보였다.
허리와 고개를 지나치게 많이 숙인 점에 대해서는 굳이 폄하하지 말자.
학부모로서 선생에게 자식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저럴 수도 있는 거니까.
“송가장에서 총관을 맡고 있는 이청오라 합니다. 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총관이시구려. 반갑소.”
이청오에게도 인사를 건넨 육남춘이 송천광을 향해 말했다.
“유겸이 소식을 듣고 직접 오셨나보군요. 처음 뵙는 만큼 관주실로 모셔서 차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이 되실는지요?”
육남춘의 말에 송천광이 반색하며 대꾸했다.
“아이고오, 시간이 왜 없겠습니까. 영광입니다.”
송천광이 굽실거리며 대꾸했다.
우리가 관주실에 들어선 직후, 노양홍과 제갈수광이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잠룡관의 노양홍 총교관과 제갈수광 교관입니다. 참고로 제갈 교관은 이번 통합 잠룡대전의 인솔 책임 교관이었으며, 유겸이가 속한 조의 담당 교관이기도 합니다.”
육남춘이 소개하자 노양홍과 제갈수광이 송천광을 향해 차례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송 장주님.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송천광이 얼른 대꾸했다.
“아이고. 총교관님과 담당교관님이셨군요! 제가 유겸이 애빕니다. 부족한 제 자식 놈을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자식 놈들도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이청오도 곧바로 인사를 건넸다.
“총관 이청오라 합니다. 두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청오의 경우에는 특히 제갈수광을 향한 눈빛에 흥미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나자 노양홍이 말했다.
“저도 유겸이가 이렇게나 대견한데, 부친인 송 가주께서는 얼마나 대견스럽고 든든하시겠습니까.”
“아이고, 이게 다 관주님, 총교관님, 담당 교관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 아니겠습니까.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허허. 유겸이의 경우에는 저희들이 잘 이끌었다고 하기 보다는 혼자 알아서 잘한 겁니다.”
“아이고, 제 부족한 자식 놈을 그렇게까지 칭찬해주시니 아비인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실은 이 아이가 제 앞에서는 속을 잘 내비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이런 엄청난 성과를 내리라는 것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 점은 아비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허허. 아비와 아들 간의 관계라는 게 대부분 그렇지요.”
송천상이 계면쩍은 미소를 보이자 노양홍이 다시 말했다.
“참고로 동부지맹주께서도 매우 유겸이를 자랑스러워하고 계십니다.”
“아이고, 아이고. 동부지맹주께서······!”
쯧. 오늘 저 ‘아이고’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이번에는 육남춘이 입을 열었다.
“어디 동부지맹주님뿐이겠습니까. 본맹에서는 맹주님께서도 유겸이를 매우 대견스러워하셨습니다.”
“매매매매, 맹주님께서······!”
맹주라는 호칭만 나와도 뇌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말을 격하게 더듬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도 심하게 떨리고 있다.
“예, 실상 통합 잠룡대전은 수십 년 동안 명문 출신 관도들이 우승을 차지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매우 오랜만에 비 명문 출신 관도가 우승을 차지한 겁니다. 그래서 맹주님과 무림맹 측에서도 유겸이의 우승을 의미 깊게 여기는 겁니다. 가뜩이나 계반 소속 관도로서도, 삼 년차 관도로서도 최초입니다.”
“허어······!”
“우승자인 유겸이가 만찬에서 가장 먼저 맹주님 식탁에서 식사도 하고, 술도 가장 먼저 받았습니다. 유겸이 덕분에 저와 제갈 교관도 같이 영광을 누렸지요.”
“허어! 맹주님의 첫 잔을······.”
송천광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동공이 요란하게 떨리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눈빛이다.
송천광의 입장에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대박이니, 계속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다.
송천광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너무나도 기쁜 것과 별개로,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이 아이는 계반이라 무공 쪽으로는 아예 가망이 없는 건가 싶었는데, 어떻게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된 건지······.”
담당 교관이라고 하니 제갈수광에게 말한 것이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송유······. 음, 유겸이는······.”
평소처럼 사무적인 투로 나를 ‘송유겸’이라고 부르려다가, 내 부친의 앞이니 갑작스럽게 이름으로 고쳐 부르는 모습이다.
저 사람한테서 갑자기 ‘유겸이’라고 불리니 뭔가 어색하다.
“유겸이는 괜히 저런 실력을 갖추게 된 게 아닙니다. 유겸이는 제가 이곳 잠룡관에서 오랫동안 봐 온 수많은 관도들 중에 가장 열심히 노력한 관도였습니다. 신체 단련, 무공 수련, 무공 연구 등, 모든 면에서 다른 관도들의 노력을 압도할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켜보는 제가 다 놀랄 정도였습니다.”
“허어······!”
“대부분의 관도들도 열심히 노력합니다만, 보통은 다른 관도들과의 교류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씁니다. 하지만 유겸이는 그런 것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계반에서 홀로 묵묵히 수련만 했습니다. 그 결과로 얻은 실력입니다.”
이에 나는 곧바로 말을 보탰다.
“올해부터 제갈 교관님께서 우리 조의 담당 교관이 되셨는데, 그때부터는 교관님께서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덕분이기도 합니다.”
필요하면 써먹으라고 했으니, 이런 때 언급해 주자.
관주와 총교관 앞에서 제갈수광을 띄워주기도 할 겸.
그러자 송천광이 제갈수광을 향해 굽실거리며 말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갈 교관님. 교관님이야 말로 은사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사는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유겸이가 매우 열심히 한 결과입니다. 유겸이는 조별 파견 임무에서도 큰 활약을 했고, 조원들 또한 모두가 유겸이를 크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허허. 허허허허······!”
송천광은 아주 신이 났다.
이후에도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송천광은 내내 굽실거렸고, 이청오는 차분한 모습으로 그런 송천광을 보좌했다.
가족이라 얼떨결에 낀 송유상은 한 마디도 못한 채 찌그러져 있기만 했다.
반 시진 정도 계속되던 담소가 끝나자 육남춘이 우리 네 사람을 위해 관주전에 있는 대기실을 내어주었다. 그것도 귀빈을 위한 대기실이었다.
내가 머무는 계반 숙소의 시설이 좋지 않기에 배려한 것이다.
대기실에 들어와서 앉자마자 송천광이 말했다.
“내 생에 가장 기쁜 날이다! 다시없을 기쁜 날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내 새끼!”
내가 쑥스러움 가득한 미소만 지어 보이자 송천광이 물었다.
“기쁜 건 기쁜 건데······,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제갈 교관한테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무공 실력이 상승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냐. 하면 여태 무공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뜻이냐? 가뜩이나 기억까지 잃었던 녀석이······. 참! 이전의 기억은 아직 안 돌아온 거지?”
질문에 두서가 없다.
송천광의 심리 상태를 알 것 같다.
그를 향해 대꾸했다.
“일단, 기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송천광과 이청오를 향해 말을 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제가 매우 한심한 삶을 살았다는 걸 듣고, 이제부터는 다른 삶을 살겠노라 각오했었습니다. 이건 가족 모임 때도 말씀드린 바 있었지요.”
“그, 그랬지.”
“여러 모로 노력을 해보니 생각보다 무공을 익히는 게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수련한 것뿐입니다. 무공서적도 많이 읽었는데, 머리도 맑은 느낌이라 이해도 잘 되더군요.”
내가 대충 둘러대자 이번에는 이청오가 물었다.
“여러 부분들이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겠으나, 내공 쪽은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이청오다운 예리한 질문이다.
기연이라는 식으로 간단한 핑계를 대봐야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울 분위기였다. 가족이니 꼬치꼬치 캐물을 수가 있고, 그러면 어차피 구구절절 대답해야 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적당히 지어내야겠다.
“아, 그게······. 큰 행운이 있었습니다. 수개월 전에 어쩌다가 옥산현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매우 연세가 많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떨고 계시더군요. 그 분의 배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크게 났고요.”
“그래서?”
“매우 연로하셨으나 분위기는 범상치 않은 분이시라, 따뜻한 식사라도 사드시라고 돈을 좀 쥐어드렸습니다. 마침 제일서고에서 근무했던 일로 사례비가 들어온 게 있어서, 며칠의 끼니는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떼어 드렸죠. 그랬더니 고맙다며 작은 목갑을 하나 내미시더군요. 본인은 이제 오늘내일할 만큼 늙었기에 필요 없다면서요.”
두 사람을 향해 바로 말을 이었다.
“열어보니 모종의 약으로 보였습니다. 무슨 약인지 알 수 없어 꺼림칙했기에, 일단은 받아 놓기만 하고 그냥 벽장에 내팽개쳐 두었습니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노인께서 굳이 제게 이상한 약을 줄 필요는 없겠다 싶은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노인의 분위기 또한 범상치 않았고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먹어봤는데 그게······.”
“허어······.”
송천광과 이청오가 동시에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그래도 표정 자체는 대강 납득한 분위기였다.
뭐, 적당히 잘 지어낸 것 같다.
이후에는 송천광과 이청오가 통합 잠룡대전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많은 걸 물었다.
귀찮아 죽겠지만 성실히 대꾸해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고 나자 송천광이 말했다.
“장원에서 대대적으로 잔치를 벌일 것이다. 여러 날 동안 계속할 것이다.”
“그,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내가 대꾸하자 송천광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슨 소리냐? 이게 지금 보통 경사냐? 아마도 우리 집안 대대로 이 정도 대단한 경사는 처음일 것이다. 당연히 큰 잔치를 벌여야지!”
에휴.
더 말려봐야 소용없을 일이다. 송천광의 입장에서는 저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번에는 이청오가 말했다.
“이 상장과 표창장도 편액으로 만들어 걸어둬야겠지요. 오래 보관될 수 있도록 약품 처리도 제대로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응접실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게. 상패는 내 집무실 진열장의 한가운데에 놓을 걸세.”
“알겠습니다.”
“상장과 표창장은 필사본도 따로 준비하게. 전체적으로 크기를 키워서 본채로 들어서는 현관의 처마 아래에도 편액으로 걸게.”
“허허헛. 그리하겠습니다.”
아닛! 쫌! 쪽팔리게 진짯!
송천광이 내게 물었다.
“너는 언제쯤 장원에 들를 수 있느냐? 학기 중에도 쉬는 날이 있잖으냐. 며칠간의 잔치 중에 하루쯤은 당사자인 네가 장원에 들러서 손님들을 맞는 것도 좋을 듯싶은데.”
“그게······, 당분간은 어려울 겁니다. 잠룡관은 아직 학기 중인 데다가, 가뜩이나 제가 속한 조는 현재 외부 파견 임무 중입니다. 오늘 쉬고 내일이나 모레 곧바로 그쪽으로 합류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이기도 하다. 천만 다행이다.
“아니, 무창까지 먼 길을 다녀왔는데 뭘 벌써······.”
“동부지맹과 잠룡관의 방침이니 그건 제가 어찌할 수가······.”
“이 애비가 관주님께 한 번 건의를 해 볼까?”
“그게 관주님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관주님께서는 규정에 철저하시고 모든 관도들을 공평하게 대하시기로 유명합니다. 그런 관주님 눈에는 우리가 우승자라고 유세 떨며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모양새로 비춰지지나 않을지······.”
송천광은 인맥 지상주의자인 만큼, 절대로 육남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의도를 갖고 던진 말이다.
“어이쿠! 그래선 안 되겠지.”
푸히히! 역시나.
잠시 후에 송천광이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이번 겨울 방학 때는 이전처럼 다른 일 하지 말고 장원으로 오거라. 알겠느냐?”
엄숙한 어조였다.
사실, 이번 겨울 방할 때도 송가장에 갈 일이 없을 것 같긴 하다.
맹주 운천흠이 얘기했던 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파인들과의 전투에 자원할 생각이니까.
물론 그 사실을 송천광에게 말할 필요는 없으니, 일단은 순순히 대꾸해주자.
“알겠습니다.”
송천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나는 송천광을 향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래. 뭐든 좋으니 편하게 말해 보거라.”
송천광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줄 기세였다.
“저, 독립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