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17화 (117/416)

내 안에 마교있다 117

곧 제갈수광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관도들이 앉아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선배님들도 합류하셨으니 이제 너희들에게도 몇 가지 사항을 전달해 주겠다. 이동 방향을 통해 짐작들은 했겠지만 우리는 해적들을 상대할 것이다.”

우리의 이동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절강의 동남부 해안이다. 나 또한 대강은 예상하고 있었다.

“동부지맹의 전력 다수가 해적들을 퇴치하기 위해 떠났던 게 한참 전의 일이다. 무림맹에서는 본맹, 동부지맹, 남부지맹에서 추가 파견까지 할 정도로 해적들에 강력하게 대응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퇴치가 되지 않은 상태다.”

“해적들의 힘이 그 정도로 강하다는 뜻입니까?”

남군호의 질문에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 몇 년 전에 출몰했던 해적들보다 숫자도 많고, 조직적이며, 전력도 매우 강하다고 한다. 때문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대거 투입되었음에도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해적들의 저항이 그 정도로 거세다면······, 혹여 그 해적들도 지금의 사파 세력과 연관된 겁니까?”

단목강의 질문이었다.

사파 놈들이 산적들, 수적들과도 연관되었는데, 해적들이라고 해서 연관되지 못할 건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줄곧 그 생각을 해오던 차였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던 제갈수광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무림맹 측에서도 사파의 개입 사실에 대해 일찍부터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파의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역으로 추적하기 위해 기밀로 관리해 왔던 것이다. 나 또한 이 작전에 투입되기로 결정된 후에야 보고 받은 사안이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별 대응을 하지 않는 척하며 내부에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거다.

“이후에 무림맹에서는 태화지부 사건 덕분에 추적 면에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장강 사건 덕분에 더 자세한 사안들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갈수광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한 차례 바라봤다.

원래 사파 쪽에서는 두 사건 모두 깔끔하게 처리하고 끝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기에 무림맹 측에 추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셈이다.

그 두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바로 제갈수광과 나였으니, 그런 의미에서 내게 한 차례 시선을 준 것이다.

본맹에서의 만찬 당시, 맹주 운천음이 왜 제갈수광과 내게 고맙고 대견하다고 했는지 잘 알 것 같다.

이번에는 추소륵이 입을 열었다.

“우리 쪽이 잠룡일대고 서부지맹과 남부지맹 잠룡관 쪽이 잠룡이대라고 들었습니다. 잠룡이대는 어떤 작전을 맡는지 여쭤 봐도 됩니까?”

“그들도 해적퇴치 작전을 맡는다. 우리는 절강, 복건, 광동 북부 해안을 주로 맡고, 그쪽은 광동 남부, 광서, 해남도 쪽을 주로 맡게 된다.”

“혹여 무림맹에서 파악한 사파의 본거지가 동부 해안가나 그 부속 도서에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건 특급 기밀이라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갈수광의 저 대답을 듣고 나니 무림맹의 수뇌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약간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잠룡대는 각 잠룡관의 갑을반 관도들로 구성된 만큼, 대부분이 강호에서 주목받는 후기지수들이다.

우리 기동타격조는 임무의 특성상 비밀리에 움직였으나, 일반 잠룡대는 경로를 드러낸 채 절강의 동남부 해안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들었다.

즉, 무림맹에서는 주목도가 높은 이들을 해안가로 보내어, 무림맹이 해적들 쪽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려는 거다.

그러면서 맹의 주 전력은 다른 곳에 있는 사파의 본거지를 치려는 게 아닐까 싶다.

일종의 성동격서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역시 무림맹도 보통은 아니구나 싶다.

이러니 천마신교에서도 무림맹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고.

이번에는 모용리가 물었다.

“교관님, 해적들을 상대한다면 우리도 배를 타고 나가서 해적들과 싸우게 되는 건지요?”

“아마도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해적 소탕 작전은 관부와도 연계되어 있다. 해군력이 대기 중인데, 그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해적의 전력이 너무 많아서 승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목표는 육지로 내려온 해적의 수를 최대한 줄이는 일이다.”

우리가 해적의 머릿수를 줄이면 해군이 해전을 통해 해적을 소탕한다는 얘기다.

이후에도 관도들이 제갈수광에게 궁금한 점들에 대해 질문했고, 제갈수광은 적절한 선에서 대답해줬다.

대강의 질의응답이 끝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며칠 내에 우리의 첫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동료를 믿고 싸우면 된다. 대선배님들과 함께 우리 교관들이 너희들을 도울 것이다.”

관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전장에서 자신의 안위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 그 점을 항상 기억하도록.”

제갈수광의 말에 관도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각오가 담긴 표정이었다.

관도들은 노인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닥불 근처에서 하나둘씩 잠들었다.

우리는 간만에 제대로 쉬고 제대로 수면을 취한 후, 다음날 새벽 일찍부터 길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절강 동남부 해안에서 가까운 영거현이었다.

모두가 죽립을 눌러쓴 채로 신법을 펼쳤다.

달리는 와중에도 노인들의 신법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역시나 절정의 후반다운 경쾌한 신법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전에도 든든한 전력이었는데, 신룡대 출신의 세 노인이 합류해서 그런지 매우 든든해진 느낌이다.

* * *

사흘 후.

오후 무렵, 우리는 영거현 인근의 산자락에 도착했다.

절강 동남부의 해안에서 가까운 곳인데, 해적들에 대항하기 위한 무림맹 측의 임시 주둔지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들어보니 이곳뿐만 아니라 절강 해안가의 곳곳에 이러한 임시 주둔지가 자리 잡고 있어, 각 주둔지가 서로 연락을 취하며 해적들의 출몰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절강의 해안은 동북부, 동부, 동남부로 나뉘는데, 이곳은 절강 동남부 해안의 중간 지점이다. 절강에서는 동남부 해안 쪽이 해적에 의한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다.

숙영지 외곽의 경계는 엄중했다.

우리가 외곽 방책의 정문으로 향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이 곧바로 우리를 막아섰다.

다들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인데, 우리가 하나같이 죽립을 눌러 쓰고 있기 때문이다.

“멈추시오. 대표자는 다가와서 신원을 밝히시오.”

그 말에 제갈수광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들며 무사들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품속에서 꺼낸 건 지름이 두 치쯤 되는 원형 동패다.

제갈수광이 동패를 들어 올리자 책임자로 보이는 매부리코의 무인이 다가오더니 동패를 살폈다.

매부리코 무인의 두 눈이 급격하게 커질 때쯤, 제갈수광이 말했다.

“이곳의 책임자를 뵙고 싶소.”

“드, 들어오십시오. 안내하겠습니다.”

매부리코의 표정과 어조가 급격하게 바뀌어 있었다.

정예 전투조로서 기동타격조의 역할을 맡게 된 만큼, 우리 조원들 전체가 저 동패를 갖고 있다. 우리가 받은 동패에는 용이 승천하는 그림이 양각되어 있다.

무림맹의 특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패는 여러 종류인데, 그 중에서 소위 봉패와 용패가 끗발이 가장 높다.

부맹주급인 문상, 무상, 각 지맹주가 발급하는 패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어 봉패로 불리고, 맹주가 발급하는 패에는 용이 그려져 있어 용패로 불린다. 당연하게도 맹주 직권으로 발급되는 용패 쪽이 더 귀한 대우를 받는다.

참고로 이러한 패들은 해당 역할이나 임무가 끝나면 회수된다. 음각된 일련번호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되는 방식이다.

용패에서 눈여겨볼 건 세 가지다.

첫째는 용의 머리 위에 양각된 별의 개수다.

우리 기동타격조의 관도들이 갖고 있는 용패에는 별 하나가 양각되어 있고, 교관들과 노인들이 갖고 있는 용패에는 별 두 개가 양각되어 있다. 각각 일성용패와 이성용패로 불리는데, 이성용패는 지휘관 급임을 뜻한다.

두 번째로 눈여겨볼 것은 용 주변에 양각되어 있는 구름의 유무다.

구름이 그려져 있으면 기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구름이 그려진 용패는 특별히 운룡패라고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도 운룡패다. 따라서 관도들이 갖고 있는 건 일성운룡패, 교관들과 노인들이 갖고 있는 패는 이성운룡패로 부른다.

세 번째로 눈여겨볼 것은 여의보주의 여부다.

용의 입에 여의보주가 양각되어 있으면 최고 책임자라는 뜻이다. 특별히 운룡보주패라고 한다.

우리 중에서는 제갈수광의 용패에만 여의보주가 양각되어 있다. 때문에 제갈수광의 용패는 이성운룡보주패인 셈이다.

갑작스럽게 그런 걸 보게 되었으니 매부리코의 무인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모든 게 흑풍대 시절부터 알고 있던 정보다.

추가로 신룡대원들은 삼성운룡패를, 신룡대의 부조장 이상은 사성운룡패를 지니고 다닌다고 알고 있다.

매부리코를 따라 여러 막사들을 지나 중앙 쪽으로 이동했다.

가면서 보니 모든 막사가 임시 막사들로, 나무로 기둥을 만들고 천막으로 사방과 천장을 가린 형태였다.

중앙에 대형 막사가 보였는데, 우리가 먼저 향한 곳은 그 옆에 있는 중형 막사였다. 그곳에서 참모로 보이는 자가 최소한의 절차에 따라 제갈수광의 용패에 새겨진 일련번호를 확인했다.

확인을 마친 그가 중앙에 있는 대형 막사로 우리를 이끌었다.

대형 막사로 들어서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나는 이곳 영거현 주둔대를 총괄하고 있는 진욱상이라 하오.”

이후에 그가 지휘 막사에 있던 몇몇 인물들을 내보냈다.

우리가 운룡패를 지니고 있는 만큼, 기밀 취급 자격이 되지 않는 이들을 내보낸 것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잠룡일대의 기동타격조를 맡고 있는 제갈수광입니다. 대표로 저만 정체를 밝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욱상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쪽 전선을 지원하기 위해 왔습니다. 일단 현 시점에서의 전황 및 관련 정보들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진욱상과 참모들이 커다란 지도를 펼쳐놓고 전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해적들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간 이쪽의 전황에 대해 단편적인 소문들만 접했었는데, 이렇듯 전체적인 내용을 듣고 나니 그간 몰랐던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진지 외곽의 독립된 구역을 배정받았다.

독립된 구역에는 소형 막사들이 오밀조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최대 두 명이 함께 쓸 수 있는 형태였다. 우리는 어차피 총원이 열일곱 명밖에 되지 않기에, 한 사람당 소형 막사 한 곳씩을 배정받았다.

숙소용 소형 막사 외에도 간단한 수련을 위한 중형 막사 여러 개와 회의 등을 위한 중대형 막사도 두 개가 있었다.

막사동 앞의 공터에서 제갈수광이 관도들에게 말했다.

“지휘 초소에서 들었겠지만 이곳 주둔지에서도 이미 많은 무인들이 전사했다. 즉, 너희들은 이미 전장에 발을 들인 것이다.”

관도들 몇 명의 목울대를 타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전장인 만큼 너희들은 더 이상 관도가 아니다. 너희들 스스로가 정예 전투 요원임을 확실하게 자각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이 풀어진 모습 따위는 보이지 말도록. 알겠나?”

“예!”

관도들이 낮지만 힘차게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뜩이나 우리는 기동타격조다. 해적이 출몰했다는 첩보가 들려오면 즉시 그쪽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게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고, 이르면 오늘 밤이 될 수도 있다. 즉, 우리는 항상 출동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는 언제나 몸 상태가 최상으로 관리되고 있어야 한다. 이렇듯 휴식이 주어졌을 경우에도 우선적으로 체력과 공력을 회복한 후에 개인 정비를 취하도록 한다. 알겠나?”

“예!”

관도들이 또다시 낮지만 힘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가까운 지역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신법을 펼치며 갈 것이나, 비교적 먼 지역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말을 타고 갈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 탈 줄 모르는 인원 있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의 무인들치고 말 몰 줄 모르는 무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혹여 기마술이 능숙하지 않은 인원이 있다면 교관들에게 말해서 보완할 수 있도록 한다. 이상, 해산.”

* * *

이틀 후, 해시정(오후10시) 무렵.

운기조식을 취하다가 슬슬 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제갈수광의 외침이 들려왔다.

“상황 발생! 전원 전투 집합!”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