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18화 (118/416)

내 안에 마교있다 118

빠르게 상하의를 갈아입은 후, 쇠구슬 주머니를 허리띠에 결속하고 소비도가 꽂혀 있는 가죽 띠들을 착용했다.

암기들은 제갈수광의 도움을 받아 이곳 주둔지의 무기고에서 미리 챙겨둔 것들이다.

이후에는 신속하게 행장을 정리하여 숙소 막사의 가운데에 두었다.

행장을 챙겨가지 않고 이렇듯 정리해서 두는 이유는, 전투 후에 우리가 다른 주둔지로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는 이쪽에서 우리의 행장들을 챙겨 그쪽 주둔지로 옮겨준다고 한다.

우리는 전투 장구만 챙겨서 싸우러 가면 되는 셈인데, 운룡패를 지니고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전이라고 하겠다.

신발을 신고 비룡검을 챙겨서 신속히 밖으로 향했다.

반달 모양에서 배가 살짝 불러온 상현달이 구름에 살짝 가려져있는 밤이다.

모두가 집합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해적 출몰지는 서안현 쪽이다. 온주읍 너머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고, 이후부터는 신법으로 접근할 것이다. 전원 구사로 이동.”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모든 인원들이 마구간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막 발걸음을 떼려는데 제갈수광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송유겸.”

내가 돌아보자 제갈수광이 턱짓으로 자신의 옆에 있는 짐을 가리켰다.

두꺼운 천으로 제작된 길쭉한 자루였는데, 바닥 부분에는 가죽이 덧대어져 있다. 등에 멜 수 있게끔 두 개의 끈도 달려 있었다.

뭐가 들어있는지 알 것 같다.

제갈수광이 현재 어깨에 활과 전통(화살통)을 메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저 큼지막한 자루에는 여분의 화살이 들어 있다는 거지.

“한 단에 화살이 스무 대 가량씩 묶여 있다. 전투 중에 내가 달라고 하면 한 단씩 건네도록.”

전통에 쉽게 넣을 수 있는 양을 기준으로 화살을 한 단씩 묶어둔 모양이다.

“예.”

군말 없이 짧게 대꾸해 준 후, 자루를 얼른 등에 멨다.

다른 관도들이 고개를 돌려 약간은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 차례씩 바라봤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 사람이 활 쏘는 모습은 멋져서 의외로 구경하는 맛이 있거든.

게다가 제갈수광이 활을 쏘고 있는 한, 나는 굳이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다. 그의 옆에서 농땡이를 피우며 전체적인 상황 파악이나 하고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이 기동타격조는 전력이 강하다. 잘들 싸우는지 구경이나 하고 있는 거지, 뭐.

곧 스무 필의 말이 주둔지를 출발했다.

우리 인원 열일곱 명에 군마 관리자 세 명이 더해진 수다.

온주읍을 지나 얕은 산지를 한동안 달리던 중에, 선두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제갈수광이 멈췄다.

“지금부터는 신법을 펼치며 이동한다.”

이에 모두가 말에서 내리자, 우리를 따라온 군마 관리자들 중에서 한 명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일다경(20분) 전쯤에 지나쳐온 얕은 물줄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저희들이 위험해지지 않는 한, 일단 내일 미시정(오후2시) 무렵까지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군마 관리자 세 사람은 말에 간단한 취사도구와 음식물 등을 결속하고 왔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윽고 군마 관리자들이 우리가 타고 온 말들을 이끌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말들이 떠나고 난 후, 잠깐의 휴식이 주어진 상황에서 제갈수광이 말했다.

“이미 서안현 주둔지의 무림맹 전력이 요격전에 나섰을 것이다. 우리는 적도들의 후방으로 은밀하게 접근할 것이다. 이번 작전에서 우리의 일차 목표는 정박되어 있는 해적선 파괴다.”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상황을 살핀 후 신속하게 진입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닻감개를 파괴한 후, 돛과 돛대, 조타 장치 등의 파괴를 다음 목표로 삼는다. 이후에는 내 지시에 따라 각자가 차고 있는 가죽주머니를 풀어,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를 것이다.”

이번 해적들도 해적선을 통해 치고 빠지는 전술을 매우 잘 쓴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아예 해적선을 파괴하여 적의 퇴로부터 차단하는 작전을 펼치려는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해적들의 머릿수를 줄이는 일이다.

퇴로를 차단한 채 섬멸전을 펼치면 그 목적에도 부합되며, 해적선을 줄이면 관부의 해군이 해전을 펼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적선을 지키고 있는 적도들이 적지 않을 것이고, 그 중에는 고수들도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작전이 아니다. 따라서 적도들의 저항이 너무 거세어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퇴각할 수 있음을 명심하도록.”

관도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처의 평양현 주둔지에서도 전력이 합류 중일 테고, 알다시피 우리가 있었던 영거현 주둔지에서도 전력이 출발했을 것이다. 우리가 해적선에서 벗어났을 즈음에는 그 전력들이 합류했을 테니, 그 시점부터 우리는 적진의 후방을 교란하며 섬멸전에 동참한다. 전할 말은 이상이다. 그럼 출발한다.”

우리는 해안가의 숲 지대를 따라 신법을 펼쳤다.

참으로 오랜만에 바다 냄새를 맡아보는 것 같다.

멀리로 검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게 보인다.

하늘에는 아까보다 구름이 더 많이 덮여 있는데, 비를 쏟아낼 것 같은 구름은 아니다.

한동안 이동하다 보니 멀리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 비명 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동함에 따라 그런 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신법 펼치는 속도를 줄이며, 은폐할 수 있는 지형들을 이용하여 서서히 나아갔다.

이윽고 저 멀리 해안가 근처에 정박해 있는 시커먼 배 두 척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갈수광이 다수가 은폐할 수 있는 적당한 지점에서 조원들을 멈추게 한 후, 뒤돌아서 몇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교관 차우기와 노인 원을태가 제갈수광 쪽으로 나설 때쯤, 내게도 전음이 들려왔다.

[송유겸, 너도 따라오도록.]

이에 나도 앞으로 나섰는데, 더 이상은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까지 네 명을 정찰조로 삼은 모양이다.

이윽고 우리 네 사람은 은폐물들을 이용하며 해적선 근처로 접근해갔다.

해변의 바위 지형 뒤쪽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해적선 쪽을 살폈다.

“얼핏 느끼기에도 두 척 합해서 수백 명은 되겠군. 물론 저들 중에는 무인이 아니라 선원의 역할을 하는 자들도 다수가 끼어 있겠지만.”

묵묵히 해적선들을 바라보던 원을태의 말이었다.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해적선 두 척을 모두 파괴하려는 건 욕심일 수 있습니다. 일단 큰 해적선을 확실하게 파괴하는 쪽으로 목표를 잡고, 그 후의 상황이 받쳐주는 경우에만 다른 해적선도 노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제갈수광의 말에 원을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동의하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지. 우리 아이들이 실전에서 어느 정도로 잘해주는지에 따라 계획이 달라지겠군.”

그러자 차우기가 말했다.

“장강 사건을 통해 실전 경험들은 어느 정도 했으나, 아직은 어설픈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가뜩이나 우리 기동타격조의 첫 전투인 만큼, 두 분의 말씀처럼 무리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이후에도 세 사람은 꾸준히 해적선 쪽을 관찰하며 진입 시점을 의논했다.

일정 시점이 되자 제갈수광이 내게 말했다.

“송유겸, 가서 우리 인원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알리도록. 적도들의 정찰에 걸릴 수도 있으니 이인일조나 삼인일조를 이루어 차례로, 은밀하게 움직이라고 일러.”

“예.”

이윽고 기동타격조 전원이 정찰조가 있는 장소에 다다랐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출발 지시가 떨어지면 최대한의 속도로 신법을 펼쳐 큰 해적선 쪽으로 달린다. 노선배님들께서 먼저 진입한 후에 교관들이 진입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 후에 미리 정해준 순번대로 배에 오르도록. 그 과정에서 내가 엄호를 하겠지만, 배에 완전히 오르기 전까지는 모두 적의 원거리 공격에 주의한다.”

조원들 모두가 절도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일전에 도적들을 상대해봐서 어느 정도는 알겠지만, 적도들이 휘두르는 도에 담긴 힘은 의외로 강력하다. 게다가 쾌속한 도법을 구사하는 적도들도 많다. 항시 주의하도록 한다.”

조원들 모두가 다시 한 번 절도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수광이 모든 조원들을 한차례씩 천천히 눈에 담더니, 이윽고 짧은 지시를 내렸다.

“작전, 개시.”

모든 조원들이 미끄러지듯 신법을 펼치며 해적선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갈수광과 나는 대열의 후미였다.

갑판 위에서 여러 개의 그림자가 동요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러 개의 그림자는 곧 수십 개의 그림자로 변했고, 해적선의 갑판 위는 금세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려가던 중에 제갈수광이 적당한 거리에서 신법을 멈췄다. 나도 즉시 신법을 멈췄다.

노인들을 앞세운 우리 조원들은 계속해서 쾌속하게 신법을 펼치며 해적선 쪽으로 다가가는 중이다.

제갈수광이 화살을 시위에 메기며 자세를 잡았다.

우리 인원들이 다가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인지, 갑판 위에서는 우왕좌왕하며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처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순간, 내 옆에 있던 제갈수광의 활시위가 가벼운 소리를 내뱉었다.

퉁!

슈욱-

소성심단을 먹고 공력이 절정에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이 어둠 속에서도 해적선이 있는 곳까지는 시야가 나름 밝다.

덕분에 화살이 날아가는 궤적도 잘 보였다.

푹!

갑판 위의 난간 가까운 곳에 있던 적도 한 명이 그대로 고꾸라질 때쯤, 또다시 제갈수광의 시위가 경쾌한 소리를 냈다.

퉁!

이번에는 방금 전에 날아간 화살이 갑판 위의 다른 그림자에 박히기도 전에, 또다시 시위가 튕겨졌다.

퉁!

다음 화살이 시위를 벗어난 후에야 이전에 날렸던 화살이 적도의 머리통에 박히고 있다.

키야!

하여간 이 인간의 궁술은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갈수광의 궁술은 원래도 연사 속도가 빠르다. 한데 지금은 화살을 가볍게 쏘아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 연사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등에 메고 있던 자루를 풀어 화살 두 묶음을 꺼냈다.

그 중에서 한 단의 끈을 풀고는 그걸 언제든 제갈수광에게 건네줄 수 있도록 손에 쥐었다.

이후에는 우리 측의 선봉에 선 노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신룡대 출신이었다고는 하나, 노인들은 퇴역한지가 최소 삼십 년씩은 된 사람들이다. 무공이 고강하다고는 해도 실전 감각은 약간이나마 녹슬었을 수도 있다.

노인들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발이 바닷물 속으로 진입하기 직전, 선두에서 달리던 노인들 세 명이 거의 동시에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들의 손에서 뭔가가 발출되는 게 보였다.

슈슈슈슈슈슈슉-

타다다다다다닥!

노인들의 손에서 거의 동시에 날아간 단검들이 배의 측면에 박히는 소리였다.

안력을 돋워 보니 모든 단검들이 손잡이까지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박힌 위치들이 기가 막히다.

조원들이 단검의 손잡이들을 밟고 뛰어오르기에 매우 편리하게끔, 매우 적절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셋이 거의 동시에 던졌는데도 저런 배치라니.

확실히 신룡대 출신은 신룡대 출신이다.

그 와중에도 제갈수광의 활시위는 계속 튕겨지는 중이고, 그럴 때마다 갑판 위의 그림자들이 꼬박꼬박 하나씩 고꾸라졌다.

접근하고 있는 우리 인원들을 적도들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제갈수광 덕분이었다.

참고로 나는 벌써 화살 두 묶음 째를 풀어서 그에게 건네줄 준비를 해둔 상태다.

체격 좋은 노인 원을태가 가장 먼저 단검의 손잡이들을 밟고 뛰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탁! 탁! 탁!

한데 원을태는 의아하게도 난간을 넘을 정도로 높이 뛰어오르지는 않았다.

머리가 난간의 상단에 살짝 못 미친 상태에서, 원을태가 난간을 향해 대도를 크게 휘둘렀다.

콰과광!

순간적으로 뇌성이 울렸다.

그 직후, 나는 눈을 부릅떠야 했다.

일대의 난간이 완전히 박살나있었기 때문이다.

박살난 나무 조각들이 이리저리 비산한 상태에서 원을태가 공중제비를 돌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 순간에 하나의 왜소한 인영이 박살난 난간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노인, 촉홍결이다.

순식간에 난간위로 올라선 촉홍결이 근처의 적도들을 향해 쾌속한 검법을 한 차례 펼쳐냈다.

그 순간에 또 다른 노인 탕유심이 촉홍결의 뒤쪽으로 올라섰다.

이후에는 탕유심 또한 도법을 펼치며 매우 안정적으로 인근의 적도들을 정리해갔다.

세 노인의 활약을 보고 나니, 아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약간의 염려가 괜한 염려였다는 생각이 든다.

무공을 펼치는 모습들도 대단하지만, 기본적으로 셋이서 손발이 착착 맞는 모습이다.

마치, 한 번 신룡대는 영원한 신룡대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애들도 보면서 배울 게 많을 것 같고.

차우기, 장호산, 이세옥이 뛰어올랐고, 원을태가 그 뒤를 이어 다시금 뛰어 올랐다.

이후에는 관도들이 차례로 올라갔다.

“우리도 가지.”

화살을 날리는 일에만 집중하던 제갈수광의 말이었다.

제갈수광은 그 짧은 시간동안 벌써 여분의 화살을 두 묶음 째 가져갔다.

그야말로 미친 연사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백발백중이기까지 했으니, 제갈수광 혼자서 벌써 쉰 명가량의 적도들을 처리한 것이다.

이윽고 제갈수광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손에 활과 화살을 쥔 채였다.

딱 보니 그가 계속 활을 사용할 모양이라, 나 또한 한 손에는 화살 한 묶음을 들고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해적선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제갈수광은 한 차례씩 높게 도약하며 화살을 날리곤 했다.

그런 식으로 날리는 화살들마저도 적도들에게 적중하는 모습이었다.

저 궁술만큼은 정말이지 신기에 가까운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두 사람마저 배 위에 오르자, 우리 조의 선봉이 선수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작전대로 닻감개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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