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19화 (119/416)

내 안에 마교있다 119

선봉에 선 건 원을태와 탕유심이다.

두 노인은 각각 대도와 도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전진하고 있는데, 단목강이 두 사람을 보좌하고 있다.

보아하니 단목강은 장강에서보다 실전 실력이 더 상승한 것 같다.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그러냐. 하여간 천재들이란.

후미를 맡은 건 노인 촉홍결과 차우기이며, 추소륵이 두 사람을 보좌하는 중이다.

추소륵도 통합 잠룡대전 때보다 실력이 더 원숙해진 느낌이다.

그 대단한 소림이 괜히 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쟤도 천재과라는 걸 알기에 그러는 것이다.

다른 관도들도 중진에 위치하여 부지런히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며 나아가고 있다. 장호산과 이세옥이 중진에 배치되어 관도들을 살피며 싸우는 중이다.

중진에서 싸우는 관도들도 전체적으로 장강 사건 당시에 비해 움직임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중진에서 인상적인 관도는 세 명이다.

한 명은 모용리다.

그녀는 근처의 적들에게 가차 없이 검을 쑤셔 넣고 있는데, 눈빛과 표정에서 일말의 자비도 느껴지지 않고 있다. 장강에서 크게 다쳤던 만큼, 각오를 독하게 다진 모양이다.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쟤에게서도 만만치 않은 천재성이 느껴진다.

내가 자꾸 여기저기에 천재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두 곳의 잠룡관에서 가장 뛰어난 관도들 다섯 명씩을 모아 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명은 황보충이다.

그가 지금 양 손에 끼고 있는 철수투는 장강에서 봤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였는데, 손등 부분에서 협봉검(볼이 좁은 검) 형태의 뾰족한 칼날이 수평으로 솟아 나와 있었다.

정권을 찔러 넣으면 저 칼날이 상대방을 찌르게 되는 형태인데, 칼날은 길지 않았다. 예닐곱 치쯤 되어 보인다.

어설프게 끈 같은 걸로 동여맨 게 아니라, 애초에 철수투에 칼날을 장착할 수 있게끔 제작된 모양이다.

권법으로 유명한 황보세가이니, 실전에서 살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개발된 게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양 주먹에 길이가 약 한 자쯤 되어 보이는 철막대를 쥐고 있다. 아미자라고 하는 무기인데, 철막대의 양쪽 끝이 송곳의 형태로 되어 있는 단병이다. 역시나 살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마지막 한 명은 길초량이다.

일단 이 자식은 다른 애들과 크게 대비될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으니, 여유에 관해서는 말 다 한 거다.

얼핏 보면 어슬렁어슬렁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놈은 남들의 동선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

놈이 전투의 전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며, 이런 식의 단체전을 많이 치러봤다는 뜻이다.

길초량도 나처럼 몸의 이곳저곳에 가죽 띠를 착용했다.

하지만 그 가죽 띠에 꽂혀 있는 내용물은 다르다. 그의 가죽 띠에는 철비정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철비정은 쉽게 말하면 쇠못으로, 당연하게도 암기다.

길이는 중지 길이 남짓으로, 내가 차고 있는 소비도의 도신 길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두께는 대못 두께 정도밖에 안 된다. 당연히 내가 차고 있는 소비도보다 훨씬 많이 지닐 수 있다.

뾰족한 앞부분은 두께가 살짝 두툼하고 뒷부분은 넓적하게 펼쳐져 있어, 반듯하게 날아갈 수 있게끔 제작되어 있다.

그렇다 해도 전체적으로는 무게가 가볍기에 내가 갖고 있는 소비도에 비해 사거리는 짧다.

그러나 유효 사거리 안에서만큼은 철비정이 소비도보다 더 은밀하게 적을 살상할 수 있다. 물론 사거리는 숙련자거나 고수일수록 길어질 수가 있다.

길초량은 종종 철비정을 한두 개씩 날리며 아군을 지원하는 중인데, 매우 쾌속하고 정확한 암기술이었다.

역시나 이 자식은 제대로 훈련받은 전투 기술자인 거다.

참고로 철비정이 길초량의 주 무기는 아니다.

놈은 무기로 보이는 무언가를 천으로 둘둘 말아서 감은 채로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

지금껏 그 천을 푼 적은 없다.

길이는 일반적인 검이나 도의 길이인데, 천이 감싸진 모양을 보면 검집이나 도집은 아니다.

곤으로 보여서 물어봤더니 그렇다는 대답을 들은 바 있다. 곤은 쉽게 말하면 방망이다.

두께만 따지면 평범한 규격의 봉보다 한 배 반 이상 더 두꺼운 것 같다.

날붙이에 비해 살상력이 떨어지기에, 요즘은 실전에서 쓸 용도로 곤을 들고 다니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애초에 수련용도가 아니면 곤술 자체를 잘 익히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을 들고 다닌다는 건, 수련 목적이 아니라 실전에서 쓸 목적으로 곤술을 익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여간 특이한 놈이 아닐 수 없다.

나와 제갈수광도 대다수의 인원들과 함께 중진에 포진한 상태다.

제갈수광은 틈틈이 직사로 화살을 날리며 아군을 지원하는 중이다.

어차피 노인들과 다른 교관들도 있는 데다가 관도들의 실력도 좋다. 그렇다 보니 굳이 쌍검을 휘두르며 적을 상대하는 대신, 중앙에서 전황을 살피며 적절한 지원만 해도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덕분에 나는 화살 한 묶음을 쥔 채로 그의 주변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다들 잘 싸우고 있으니 할 일이 없다.

선상에 올라오자마자 쇠구슬 두 개를 꺼내 든 상태인데, 아직까지도 그것들을 날릴 일이 없었을 정도다. 그래서 그냥 한 손에 쥔 채로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아군이 잘 싸우고 있어서 내가 할 일이 없어졌을 때는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상황만 잘 살피고 있어도 된다.

게다가 어차피 오늘의 목표는 이 해적선을 파괴하는 일만이 아니다.

저쪽 옆에 있는 다른 해적선을 노릴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적들의 후방을 교란하며 제법 오래 전투를 치러야 한다.

힘도 비축하고 좋지, 뭐.

닻감개를 파괴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습격한 우리의 전력이 워낙 강한 데다가, 해적들이 초반에는 우왕좌왕한 탓이었다.

이후에 우리는 돛대와 조타장치를 파괴하기 위해 다시금 갑판의 중앙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부터는 해적들이 모조리 튀어나왔기에 이동하기가 이전보다는 만만치 않았다.

그러자 제갈수광이 이리저리 전음을 보냈다.

곧 후미를 맡고 있던 촉홍결이 선봉을 지원하기 위해 튀어 나갔고, 중진에 있었던 황보충이 후미로 빠졌다. 제갈수광의 지시대로 움직인 모양이다.

적의 수가 많아지자 길초량의 움직임도 바빠진 모습이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손을 털어내는데, 은밀하게 날아간 철비정들이 소리 없이 적들을 쓰러트리고 있다.

어떤 적들은 이마에 철비정이 꽂힌 채로 죽었고, 어떤 적들은 심장 부위에 철비정이 꽂힌 채로 죽었다.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통증을 느낀 후에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풀썩 쓰러지는 적들도 많았다.

밤중에 저런 소형 암기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침 길초량의 등짝이 해적 한 놈과의 경로에 겹쳐 있다.

기회가 왔으니 간만에 손가락 좀 풀자.

길초량의 어깻죽지 뒤쪽을 향해 적당한 속도로 쇠구슬 한 알을 튕겨냈다.

슈욱-!

길초량 놈도 뒤에서 날아드는 쇠구슬의 존재를 느낀 모양인지,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푸히히! 저 움찔하는 뒷모습들만 보면 왜 이렇게 웃긴지.

곧 길초량 놈이 부드럽게 상체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반응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역시나 이 자식은 전투 경험이 많은 고수다.

길초량을 스쳐간 내 쇠구슬이 해적 한 명의 가슴팍에 그대로 적중했다.

퍼억!

“커헉!”

그러자마자 검 하나가 그 해적의 목을 갈랐다.

“크악!”

강하령의 검이었다.

내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빨랐다.

장강에서 내 강탄술을 잠깐이나마 봐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친하다는 묘옥련에게 뭔가를 들어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잘했다.

길초량의 고개가 내 쪽으로 홱 돌고 있다.

[소, 송 형! 날 죽일 작정이시오? 아니, 내 쪽으로 날릴 거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란 말이오! 나라고 해서 안 보고도 그 모든 걸 피할 수는······.]

안 보고도 쉽게 피했으면서, 신룡대 놈이 앓는 소리는.

놈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나는 자세를 낮춘 채로 그의 가슴 위쪽을 향해 다시금 쇠구슬을 튕겨냈다.

슉!

방금 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튕겨낸 쇠구슬이다.

[아닛!]

길초량이 그렇게 외치며 급격하게 상체를 횡으로 비틀었다.

갑작스럽게 반응하는 그 찰나에도 내 쇠구슬을 끝까지 눈으로 쫓고 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쇠구슬을 흘려보내는 모습이었다.

멋진 모습이긴 한데, 순간적으로 의아함이 들었다.

상체를 횡으로 비틀었으니 다시금 원위치 시키면 되는데, 놈이 아예 횡으로 회전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놈이 회전력을 담아서 철비정 하나를 털어낸 것이다.

내가 쇠구슬을 날린 방향이다.

그 직후, 길초량을 지나쳤던 내 쇠구슬이 그대로 해적 한 놈의 이마를 강타했다.

퍼억!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나며 해적 한 놈의 몸이 뒤로 넘어갈 때쯤, 그 해적의 목옆을 스쳐간 철비정이 뒤에 있던 다른 해적의 목에 박혔다.

오호? 이 자식 좀 보소?

반응도 좋은데다가 훌륭한 임기응변까지 보였다.

역시 신룡대라는 거지.

든든하다.

앞으로도 써먹을 데가 많겠다.

길초량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전음으로 대꾸해줬다.

[내가 길 형을 죽일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이런 속도로 튕겨냈을 것이오.]

어이없다는 듯 미소 짓는 길초량을 향해 다시금 전음을 보냈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훌륭한 한 수였소.]

[하하, 한 번 해본 건데 운 좋게 통했구려.]

웃기고 있네. 짜식이 어설프게 둘러대기는.

[철비정 날리는 솜씨가 기가 막히시더구려. 참으로 길 형다운 얍삽한 무기를, 제대로 연마하셨다는 생각이 드오. 역시 길 형이시오.]

[얍, 얍삽하다닛! 그리고 칭찬을 하시든 비난을 하시든 한 가지만 하시란 말이오!]

길초량이 미소 띤 얼굴로 내게 눈총을 주더니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후, 귀여운 놈 같으니.

그 즈음, 적들 중에 심상치 않은 기도를 풍기는 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복장은 다른 해적들의 복장과 별다를 게 없는데, 눈 아래쪽을 가리는 형태의 복면을 쓰고 있는 놈들이다.

내가 겪었던 사파의 어린놈들과 비슷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 대부분이 일류의 후반쯤이고, 얼핏 절정고수의 기운도 몇 개 느껴진다.

나는 제갈수광에게 넘겨줄 화살 한 묶음을 쥔 채로 절정고수의 기운에만 집중했다.

우리 측의 전력이 강하기에, 그들만 조심하면 크게 위험해질 일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첫 번째 돛대로 향하는 중인데, 내가 파악한 절정고수의 기운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첫 번째 돛대 옆에 다다르자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렸다.

[송유겸, 돛대 아래에 기름 뿌리고 불 붙여.]

이에 나는 즉시 차고 있던 작은 가죽 주머니를 풀어 돛대의 두꺼운 밑동에 기름을 뿌렸다. 이후에는 간이 화섭자를 꺼내어 불을 붙인 후, 돛대에 옮겨 붙였다.

화르륵!

첫 번째 돛대가 밑동부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동안 이 상태로 불타는 돛대를 지키며 싸워야 한다. 일정 정도 이상은 제대로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거 내게 건네고 화시 한 묶음 준비해 놔.]

또다시 들려온 제갈수광의 전음이다.

이에 내가 들고 있던 일반 화살 묶음을 건네자 제갈수광이 그것들을 본인의 옆에 가볍게 꽂아 놓았다.

이후에 나는 자루 안에서 화시로 쓰는 화살 묶음을 꺼내어 끈을 풀었다.

[화시는 내가 달라고 할 때 한 대씩만 건네도록. 일단 하나.]

내가 화시로 쓰는 화살을 하나 건네자, 제갈수광이 불타고 있는 돛대에 촉 부분을 대고 불을 붙였다.

그가 곧 불붙은 화시를 시위에 메기고는 허공을 향해 날렸다.

날아간 화시가 두 번째 돛대의 상단에 접혀 있는 돛에 제대로 박혔다.

돛에서 연기가 살짝 나는 듯하더니, 이윽고 불이 타오르며 불길이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제갈수광이 다음 화시를 날렸는데, 이번에는 저 멀리 세 번째 돛대의 상단에 접혀 있는 돛에 정확하게 박혔다. 그곳에서도 불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제갈수광은 화시를 꾸준히 날려 두 번째 돛대와 세 번째 돛대의 중단과 중상단에도 불을 붙였다.

적들이 도약해서 소화하지 못할 높이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을 끄기 위해 돛대를 타고 올라가는 적도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랬던 자들은 모두 제갈수광의 화살에 맞고 떨어졌다.

0